대표 이미지 및 저작권 정보(N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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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자원소장처 | 미디어하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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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L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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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파일 및 자원정보(N2R)
번호 | 파일명 | 파일크기 | 다운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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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생명을 담은 검은 물결 제주밭담_1280X720.mp4 | 69.01 MB | |
2 | 생명을 담은 검은 물결 제주밭담_1920X1080.mp4 | 68.86 MB |
콘텐츠 기본 정보(N2C)
UCI | I801:1501001-001-V000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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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생명을 담은 검은 물결 제주밭담 | ||||||||||||||||||
콘텐츠 유형 | 동영상 | 언어정보 | 국문 | ||||||||||||||||
생산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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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여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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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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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제주밭담 부가정보 밭담은 제주 지역에서 돌을 이용하여 밭의 가장자리를 쌓은 담으로 총 길이가 2만2천 미터에 이르러 흑룡만리라 부르기도 한다 제주의 중요한 풍경 중의 하나가 된 밭담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고종(高宗)[1192~1259] 때부터라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는 경작지의 경계가 불분명해 이웃의 경작지를 침범하기도 하고 지방 세력가들이 백성의 토지를 빼앗기도 하는 등 토지를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제주판관 김구(金坵)[1211~1278]가 지방의 사정을 자세히 살펴보고 토지 소유의 경계로 돌을 이용해 담을 쌓도록 했다고 한다. 돌담을 쌓은 후부터 토지 경계의 분쟁이 없어지고 방목했던 소와 말에 의한 농작물 피해가 줄었다. 또한 제주 특유의 바람을 막아 농작물을 보호하는 역할도 하였으며 돌밭에서 돌을 치우고 나니 경지 면적이 넓어지고 농사일도 편해지면서 수확량이 많아져 농업 경제에 큰 도움이 되었다. 거센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 돌담은 제주 선인들이 험한 자연환경을 극복해 살아나가려는 지혜의 발로라고 할수 있다. 농경지를 따라 끊임없이 나뉘고 합쳐지는 검은 밭담은 제주의 독특한 풍경으로 외지인에게 이국적 향취를 불러일으킨다. <제주밭담 방문정보>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전역 문의처: 제주특별자치도 064-120 주변 볼거리: 한라산, 성산일출봉, 지미오름,산방산 관련홈페이지: 제주사이버 삼다관 http://www.jejusamd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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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정보 | 생명을 담은 검은 물결 제주밭담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도는 감귤,당근,무 등의 주요 산지로 농업이 지역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제주밭담 국가중요농업유산,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세계중요농업유산 제주 밭담은 돌을 이용하여 밭의 가장자리를 쌓은 담으로 그길이를 모두 합하면 2만2천Km에 이른다 밭담은 고려시대 때 불분명한 경작지경계로 인해 분쟁을 막기 위해 1234년 제주판관 김구가 토지소유의 경계를 돌로 담을 쌓도록 하면서부터 라고 한다 돌담을 쌓은 후 분쟁이 없어지고 바람과 방목했던 가축에 의한 피해가 줄고 밭에 돌을 골라내 경지가 넓어져 농업에 큰 도움이 되게 되었다 밭담은 지역마다 농업형태나 땅의 특성이 달라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밭담은 척박한 자연환경과 함께 살아온 제주인의 삶을 보여주는 유산으로 제주섬의 선과 색을 대표하는 제주 미학의 정수로 평가 받는다 제주에는 밭담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