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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반도의 첫 사람 흥수아이_1280X720.mp4 188.85 MB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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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I I801:1501001-001-V00081
제목 한반도의 첫 사람 흥수아이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국문
생산자 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생산일자
영상뉴스 2010-07-31
기여자 정보
기여자 정보
역할 정보 기여자 명
제작사 영상뉴스
프로듀서 영상뉴스
기술 정보
기술 정보
기술 영역 기술 내용
내용정보 ,
역사정보 선사시대, 석기시대
지리정보 충청북도 청원군
요약 정보 아득한 옛날부터 수많은 우리 조상들이 삶의 터전을 이루고 살았던 한반도. 인류는 지구상에 나타난 이후 오랜 진화과정을 거치며 현대인에 이르렀다 4만 년 전, 이 땅에서 살았던 한반도의 첫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충북 청원군 문의면 시현마을 두루봉 일대에서 구석기 시대의 아이의 유골이 발견이 되었다. 유골에 이름은 최초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흥수아이'라 하였다 나이는 다섯 살 정도로 밝혀졌으며 동굴에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내용 아득한 옛날부터 수많은 우리 조상들이 삶의 터전을 이루고 살았던 한반도. 인류는 지구상에 나타난 이후 오랜 진화과정을 거치며 현대인에 이르렀다 4만 년 전, 이 땅에서 살았던 한반도의 첫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충북 청원군 문의면 시현마을 두루봉 일대에서 구석기 시대의 아이의 유골이 발견이 되었다. 유골에 이름은 최초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흥수아이'라 하였다 나이는 다섯 살 정도로 밝혀졌으며 동굴에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대본 정보 사람들

(보다가)



인류는 지구상에 나타난 이후, 오랜 진화과정을 거쳐 현대인에 이르렀다.



아득한 먼 옛날. 수많은 우리 조상들이 삶의 터전을 이루고 살아왔을 한반도.



흥수아이 발생

이 땅에서 살았던 한반도의 첫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서브타이틀

한반도의 첫 사람, 흥수아이





두루봉 일대 부감

(보다가)



충북 청원군 두루봉 일대. 깊게 파인 웅덩이와 깎아지른 벼랑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두루봉 동굴

한때, 석회석을 파내던 노천광산으로 유명했던 이곳은,한반도 역사의 뿌리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지로 손꼽힌다.



박물관 외경

두루봉의 존재가 처음 알려진 것은 1976년.

전시회관

당시 광산회사가 석회암 채취를 위해 발파하던 중,

동물뼈

예사롭지 않은 동물 뼈가 출토된 것이다.



동물뼈

큰 원숭이, 쌍코뿌리, 옛 코끼리 하이에나 등 후기 구석기 시대의 각종 동물 뼈와 석기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이융조 박사/인터뷰

역시 뼈가 보존될 수 있는 조건은 석회암 지대가 지극히 이상적입니다, 뼈들이 늘 박혀 나오니까요.



두루봉 일대 부감

그렇다면, 혹시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이 발견되진 않을까. 고고학계의 온 관심이 두루봉 일대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구석기 시대 인골이 출토된 것이다.



김흥수와 걷는 제작진

최초 발견자이자, 당시 현장소장이었던 김흥수 씨를 만났다.



0154김흥수 /최초 발견자 인터뷰

아우.. 굉장히 많이 변했네.

Q.얼마 만에 와보시는 거예요?



한 27-8년 됐어요.



이야기 나누는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아직도 당시의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는데,



김흥수

이 나무 있는데 이 쪽에.. 여기서 반듯하게 나무 큰 거 있죠. 버드나무 있는데 칡넝쿨 있는데서 발견됐어요.



이야기하는 두루봉

1982년 12월 5일.

두루봉에서는 대대적인 석회암 채취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런데, 작업 도중, 두루봉 끝자락 흥수굴에서 심상치 않은 인골이 발견된 것이다.



김흥수/최초발견자 인터뷰

돌을 채석하기 위해서는 흙을 제거해야 하는데, 흙을 제거하다 보니까 나오는 거야. 그 전에 이빨이 하나 흘렀었고. 이빨은 뭔가요? 그 아이 이빨.. 어디서 발견하셨어요? 흙에서 주웠지. 인부들이 이거봐요. 이빨이 나왔네요.





이융조 박사/ 인터뷰

아 소장님 어디 계세요? 돼지 한 마리 여기 있다고. 돼지 한 마리가 여기 있다는 게 무슨 말이냐면, 내가 여기서 사람 한 명만 발견하면 돼지 한 마리 잡겠다고. 수 십 번 얘길 했어. 그 얘길... 그러니까 자기들도 돼지 한 마리 여기 있다고 얘기했고. 이 포크레인이 굴착기로 내리쳐서 이걸 담아서 트럭에 심은 거죠. 그런데 트럭이 싣는 과정에서 이빨이 하나 떨어졌던가봐요. 그걸 인부가 봐서 찾아냈으니 이걸 극적이라는 표현밖에는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죠.



발굴 사진

기적 같은 소식을 듣자마자, 한 걸음에 달려온 충북대 박물관 이융조 박사팀은 즉시 발굴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흙과 뒤엉켜 있는 유골의 파편들을 일일이 찾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융조 박사/인터뷰

12월 5일날 밤에 전화했고, 12월 6일날 여길 가서 봤습니다. 가서 보니까 여기에 단면에 뼈가 보여요. 15센치 될 만큼. 뼈가 보이더라고. 여기다 버렸다고 하니까 채를 쳤죠. 채를 쳐가지고 모래하고 시멘트 골라내는 것처럼 2주 만에 사람 머리뼈를 찾았고, 일주일 만에 백 여개의 조각을 찾아서 이렇게 머리를 붙였습니다.



머리뼈

복원된 인골의 머리 크기는 1200에서 1300CC.

다리뼈

키는 120센티미터 정도로,

가슴뼈

동아시아로는 유일하게 전신이 완전한 상태로 발견된 구석기인이다.



영상 보는 치과의사

체질인류학분석 결과, 인골은 다섯 살 때 이 동굴에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빨

치아 구조를 통해 사망당시 나이를 추정할 수 있다.



곽형수 원장/치과 전문의

만 6세의 경우, 젖니가 탈락이 되고 영구치가 올라옵니다. 이 인골의 경우 아직 젖니가 탈락이 안됐습니다. 따라서 만 6세 미만의 어린 나이로 추정됩니다.





흥수아이

처음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이름 지어진 흥수아이.





흥수아이의 발굴은 구석기 시대의 생활상과 장례풍습을 잘 보여준다.



교수 인터뷰

여기는 넓적한 돌을 깔았어요. 그 다음에 고운 흙을 뿌리고, 죽은 어린아이를 묻고 고운 흙을 뿌리고, 다시 넓적한 돌을 덮었습니다.



회의하는

4만 년 전에 살았던 흥수아이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흥수아이를 복원하기 위한 작업이 이뤄졌다.



청동상 만드는

인골의 주요 포인트를 측정하고, 뼈 분석이 끝나면, 얼굴의 윤곽선을 잡고 근육과 피부를 만든다.



청동상으로 바뀌는

(보다가)

하지만, 청동상을 완성하기까지, 끝내 풀리지 않는 의문도 있었다.



교수 인터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의 차이가 있었어요. 이 쇄골이라는 뼈가 나온 것은 남자라는 거죠. 95~97퍼센트 남자라는 겁니다. 그러나 체질의학하는 교수는 골반이 다섯 살에서 여섯 살일 때는 남녀 차이가 없다는 거죠. 아 그러면 남자로 표시해, 여자로 표시해.. 하하 이거 고민이죠.



청동상

학자들의 거듭된 토론이 이어졌다.



아랫도리

치밀한 과학적 분석과 고증자료에 역사학적 상상력이 더해져

얼굴 등

몸체의 원형을 청동상으로 재현해 냈다.





그 결과,



4만 년 만에 환생한 흥수아이는,

청동상

바로 이 같은 모습이었다.



교수 인터뷰

어린이에서 추출되는 DNA가 앞으로 연구에 따라서 한국과 아시아의 고인류학 연구에 획기적인, 놀랄만한 자료를 제공하겠지만, 그것 말고도 고인류와 구석기 문화가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