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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N2C)
UCI | I801:1501001-001-V0015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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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는 줄광대다! 줄타기 예능보유자 김대균1부 | ||||||||||
콘텐츠 유형 | 동영상 | 언어정보 | 국문 | ||||||||
생산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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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정보 | 줄타기 예능 보유자 김대균(45)은 전통 판줄을 하는 국내 유일의 줄타기 꾼이자, 이 시대 마지막 줄광대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는 과거 우리네 최고의 놀이판이자, 우리 전통의 맛이 살아있는 예능이다. 특히나 줄 위에서 보이는 현란한 기술과 구성진 재담, 삼현육각의 연주는 우리나라 줄타기가 단순한 곡예기술이 아닌 종합예술 한 분야임을 나타내는데... 9살에 줄타기에 입문한 이래, 33살에 최연소로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선정, 지난 35년간 외줄위에서 살아온 남자 김대균. 하지만, 화려해 보이는 그의 공연과 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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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줄타기 예능 보유자 김대균(45)은 전통 판줄을 하는 국내 유일의 줄타기 꾼이자, 이 시대 마지막 줄광대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는 과거 우리네 최고의 놀이판이자, 우리 전통의 맛이 살아있는 예능이다. 특히나 줄 위에서 보이는 현란한 기술과 구성진 재담, 삼현육각의 연주는 우리나라 줄타기가 단순한 곡예기술이 아닌 종합예술 한 분야임을 나타내는데... 9살에 줄타기에 입문한 이래, 33살에 최연소로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선정, 지난 35년간 외줄위에서 살아온 남자 김대균. 하지만, 화려해 보이는 그의 공연과 달리, 그의 일상은 지나칠 정도로 단출하다. 혼자 사는 남자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그의 집. 줄 위의 인생만큼이나 외롭다는 마흔다섯의 남자. 그에게는 과연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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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정보 | -반갑습니다 얼씨구! 오늘 여기 뭐하러 오셨어요? 그냥 멋도 모르고 오셨어요? 네.. 익살스런 재담 뒤로이제부터 신명나는 한판이 벌어질 터-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전통 줄타기 놀음-인 ‘판줄’이다! 35년을 외줄에 의지해서 살아온이 시대에 마지막 줄타기꾼!줄광대 김대균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5부작 나는 줄광대다! 줄타기 예능보유자 김대균 -1부- 경기도 여주 세종대왕릉.세종대왕의 탄신일을 맞아 오늘 특별한 구경거리가 생겼다. - 서서 구경 하는 사람들 2 (보고 ) 그 옛날, 궁중축제에서 연희를 펼쳤던 광대줄타기! 오늘날에 다시금,그 공연을 되살리는 주인공은줄타기 꾼 김대균 -이다. -큰형님. 고사상을 앞으로 조금만 빼주세요 하체의 중심을 잡아주는 각반.- 원래 줄 위에서 하는 동작들이 43가지인데, 실제 무릎을 이용하는 기예가 15가지 정도 되거든요. 근데 이거(각반)는 무릎을 보호하는 역할도 하고 바람의 방향을 가늠해주는 공작털과,바람의 세기를 조절해 주는 부채.줄 위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과 바람 뿐이다. -이 바람도 그냥 막 부는 게 아니고 일정 부분 다 숨구멍이 있거든요. 사실은 바람의 세기 그 순간순간의 숨구멍을 찾아내서 줄 위에서 잔제비, 그 기예를 전개 하는 건데 일정 부분 그런 영향도 있죠. 감각적으로 느끼는 거 3미터 높이에 설치된, 줄의 탄력도 매번, 직접 점검 한다.줄의 느낌에 따라, 그날 공연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됐어요. 세 번 풀러주세요 - 늘 축제현장마다 줄의 감이 다르거든요. 감이 어떤가. 오늘 아주 좋습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여 앉은 사람들.그 옛날부터 줄타기는 축제의 백미였다. -임갑순 80세 / 참 재밌어. 어떻게 저렇게 배웠나 내가 그런 생각한 거야 - 너 참 똑똑하다. 여자 집단은 여사당 이라고 예전에 있었어- 아! 그래요. 정말로?-그럼요. 원래 사당이라고 여성들이 모여서 연희하는 것을 여사당. 사당이라고 그러고. 이제 조선 후기에 생긴 게 남사당이죠. 아이의 작은 관심에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줄타기꾼. 그는 줄판 앞에선 모종의 사명감마저 느낀다. -엄청나게들 오셨다. 아따! 많이들 오셨네 -10만 은 안 될 것 같고 9만 7천 분 오신 것 같다 만은...(발생)얼씨구 그랬구나 -정성껏 뫼시고 한 번 건너보는데... 삼현육각의 국악 연주에 맞춰 줄위의 곡예가 시작된다. 흔히 잔노릇-이라고 불리는 줄타기의 전통 기예는 모두 43가지. (보고) (외홍잽이와 쌍홍잽이를 비롯해서)다양한 재주를 선보이며 줄광대는 줄 위에 올라 온 천하를 풍자하며 희롱하였다 -천생만민의 필수직 직업이라 하였거늘 나는 저 격동에다가 외줄을 매고 거미같이 왕래를 하는데...(발생) 얼씨구 (보고)(동작 중에 재미난 동물 흉내도 많지만) 특히나 어릿광대의 재담과 줄타기 삼현육각의 연주, 줄광대의 기예와, 연극이 어우러진다는 면에서 우리 전통 줄타기는 관객과 소통하는 하나의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5천만 인구 중에 인간문화재가 저를 포함해서 채 210명이 되지 않습니다 평생을 올곧게 민속예술에 헌신하신 연로하신 선생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제는 그 분들 이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세상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발생)옳거니! 함께 하는 즐거움 못지않게전통을 되살린다는 의미도 있는 자리. -김인정 38세/ 여주 월송리 가슴이 떨려서 못 보겠더라고요. 떨려서 못 보겠더라고요 -이순애 84세/여주 옛날 선조할아버지들을 위해서 고생 많이 하셨어요. -박태희 8세/여주 아저씨가 우리나라의 보물 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공연이 끝나면 그는 스타가 된다. 이제는 고정적으로 그의 공연을 찾아다니는팬들도 있을 정도다. -저는 민속촌이 어렸을 때 저의 놀이터였어요. 실제 민속촌 안 전시가옥에서 생활도 했고... -백영옥 50세 / 여주 전복리 십 수 년 전에 민속촌에 가족여행을 갔다가 봤어요. 그 때 정말 저 김 선생님이 공연을 하셨고요. 재담이나 이런 게 둥그렇게 판을 깔고 앉았을 때 저한테는 처음 공연이었고 얘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접하면서 너무 즐거웠거든요. 그리고 저분의 공연이 긴장감도 있기 때문에 너무 좋았어요 줄광대 김대균이 줄을 만난 인연은아홉 살, 어린 나이로 거슬러 올라간다. 3남 2녀 가운데 둘째아들이었던 그는초등학교 2학년때용인민속촌에 갔다가 처음 줄타기를 배웠다. 그 후, 줄타기 분야 초대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인 고 김영철 명인의 지도아래 피나는 훈련을 했고,35년의 세월을 오롯이 줄 위에서 흔들림 없이 살아왔다. - 너 덧 시간 훈련을 하고 나면 그 엉덩이 살하고 속옷, 그 다음에 들보 이게 다 응어리가 지거든요. 피범벅이 돼서. 그런데 막상 학습할 때는 고통을 참고 하는데 이제 학습 마치고 잠깐씩 쉬어가잖아요. 그러면 그때 고통이 수반 되는 경우도 많고 어느 날 그러시더라고요. 선생님이 처음으로 제 엉덩이를 보시더니 내가 60 평생을 살아왔어도 천하에 너처럼 미련한 놈은 처음 봤다는 거예요 줄타기 동작 가운데 가장 어렵다는 살판을 넘으면서 김대균은 2000년 서른 셋의 나이에최연소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많은 공연을 통해 전통 연희를 알렸다.하지만,줄타기를 그저 서커스 기술정도로만 여기는 해외의 편견 앞에 한국 줄타기의 진면목을 알리기란 쉽지 않았다. 너희 나라 줄타기는 예술이라고 생각을 하느냐? 그게 첫 질문 이었거든요. 그런데 첫 질문이 굉장히 예리한 질문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난 한국의 줄타기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한국의 줄타기는 아크로바틱 기술 중심이 아니고 기예 중심도 아니고 음악적인 요소, 춤 적인 요소, 이야기적인 구성 또 기예적인 요소 그 다양함을 통해서 외줄로 풀어내고 그 관객들로 하여금 심금을 울려주는 이야기구성을 가지고 있다 # 프랑스 앙굴렘 공연 당시 화면 - 거리 그런 김대균의 적극적인 노력이 통해서 일까?프랑스와 독일, 유럽과 미국등. .각국의 거리 공연을 통해서 - 줄타기 신명나는 줄타기 판을 벌이고 나면한국의 언어와 정서를 이해 못하는 외국인들조차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감탄을 했다. - 당신네 줄타기는 진짜 예술이다. 내가 태어나서 이런 줄타기를 본적도 없거니와 세계 어디에 가도 이런 줄타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보다가)해마다 많은 공연과 행사를 소화하느라 집에 들를 새가 없었던 김대균이 모처럼의 휴일, 집을 찾았다. - 계속 공연하고 학교 다니고 최근에 용인 집(부모님 댁)에 자주 갔더니.. 오랜만에 찾은 집이지만,방마다 썰렁한 기운만 가득해서오히려 낯설기까지 한데 이 공간에 혼자 있으니까 얘라도 있으면 덜 외로울 것 같아서...아마 20대 중반 같아요 혼자 사는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변변히 차려먹는 것도 없고- 늘 혼자 있다 보니까 음식을 잘 해먹지도 않고... 어머니가 챙겨준 밑반찬도 냉장고에 고스란히 남았다. - 사실 잔뜩 남았는데(4) # 커피 마시는 김 그에게 가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도 생활인으로 돌아오면대한민국 현실에 흔한, 기러기 아빠가 되는 것이다. -가령 예전 같았다면 집에 왔을 때 5분 전에 한 쪽에서는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고 상차림이 되어있고 그 다음에 세면하고 들어오면 그 된장찌개에 밥상보 올려져있고 늘 그렇게 생활을 해왔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니까 그런 부분이 많이 힘들죠 스물일곱에 결혼한 그는그림을 그리는 연상의 여인을 아내로 맞았다. 아들을 낳고, 줄타기의 맥을 이어보겠단 생각도 해봤었지만, 아들 줄위에선 자라면서 자신만의 꿈을 찾아 더 큰 세상에 나가 공부하겠다는 아들을 끝까지 말릴 수는 없었다. - 줄을 타든 안타든 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 한국문화나 전통문화쪽으로 길을 다른 길로 가지만 멋진 후원자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여러 가지 방면으로 참여를 할 수 있는 거니까 아버지 입장에선 그래줬으면 하는거죠 -그래 하도 오랜만에 왔더니 무서워서 한참 서 있다 들어 왔네. 내 집인데 무서워서 못 들어 왔네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