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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 무령왕릉 1부 무령왕릉 발굴 40년!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들 119.41 MB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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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
UCI I801:1501001-001-V00338
제목 아! 무령왕릉 1부 무령왕릉 발굴 40년!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들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국문
생산자 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생산일자
미디어소풍 2011-12-15
기여자 정보
기여자 정보
역할 정보 기여자 명
제작사 미디어소풍
프로듀서 미디어소풍
기술 정보
기술 정보
기술 영역 기술 내용
내용정보 사적 제13호 공주 송산리 고분군 ;국보 제163호 무령왕릉 지석
역사정보 삼국시대, 백제
지리정보 충청남도 공주시
요약 정보 고고학사상 이보다 더 위대한 발견은 없었다.

삼국시대의 왕릉 중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 정확히 확인된 유일한 고분!!!

하지만 그 위대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이 왕릉 발굴은 세계 고고학 발굴사 사상 최고의 졸속발굴로 기록이 되었다.

40년 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공주 송산리 고분군(무령왕릉) 방문정보>



위치: 충남 공주시 금성동 산5-1

연락처: 041-840-2114

주변 볼거리 : 공산성, 웅천관광농원, 금학생태공원, 국립공주박물관

홈페이지: http://www.cha.go.kr/korea/heri
내용 고고학사상 이보다 더 위대한 발견은 없었다.

삼국시대의 왕릉 중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 정확히 확인된 유일한 고분!!!

하지만 그 위대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이 왕릉 발굴은 세계 고고학 발굴사 사상 최고의 졸속발굴로 기록이 되었다.

40년 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공주 송산리 고분군(무령왕릉) 방문정보>



위치: 충남 공주시 금성동 산5-1

연락처: 041-840-2114

주변 볼거리 : 공산성, 웅천관광농원, 금학생태공원, 국립공주박물관

홈페이지: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3,00130000,34
대본 정보 고고학사상 이보다 더 위대한 발견은 없었다.

삼국시대의 왕릉 중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

정확히 확인된 유일한 고분!!!하지만 그 위대한 가치에도 불구하고이 왕릉 발굴은 세계 고고학 발굴사에서 가장 뼈아픈 실수 중의 하나로 기록되었다. 40년 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충정남도 공주시에 위치한 송산리 고분군은 웅진 백제시대 왕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기록으로만 존재하던 무령왕릉은 40년 전, 이곳에서 우연히 발견됐다.(송산리) 6호분의 배수로 공사를 하던 중, 인부의 삽자루 끝에 뭔가 딱딱한 물체가 닿았다.

아래를 조금씩 파내려가자 예사롭지 않은벽돌 벽이 보이기 시작한 것! 공사는 중단되고 긴급 조사단이 꾸려졌다.

조사단의 작업이 진행되자점차 벽돌로 쌓아 올린 부위가 넓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사내용 : 발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폭우가 내력 조사 작업은 중단됐고, 계획된 야간작업도 취소됐다.엄청난 폭우가 쏟아진 것이다.임금 무덤을 잘못 건드려 비가 온다는 유언비어까지 돌았다.

-파는 사람들 사진비가 그치자 발굴 조사는 다시 시작됐다.노출된 벽돌 벽을 따라 8미터 남짓 파내려가자 전축분이 드러났다.입구를 단단히 막고 있던 벽돌이 어렵게 빠졌다. 천오백년의 암흑을 깨고 왕의 무덤이 세상에드러난 것이다.무령왕릉발굴은 고대사의 획기적인 수확이었다.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께서 나이 62세로 계묘년 5.7 붕어하셨다...고분의 주인을 적어놓은 지석에는 무령왕의 어릴 적 이름, 사마가 새겨져 있었다.기록으로만 존재했던 무령왕의 무덤이었다.그런데!!! 무령왕릉 발굴은 단 하룻밤 만에 끝나버렸다.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40년 전.. 발굴현장에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신문 기사 제목 : 최초의 지석 최고의 신비) 헤드라인 기사내용 1971년 당시,세상은 무령왕릉의 발굴로 떠들썩했다.

현장음 5초 듣고특종 기사가 나가자 발굴현장에는 취재 기자와구경 인파가 몰려들었다. 고분 안을 먼저 보기 위해 아우성이었다.급기야 조사단원들이 들어가기 전, 무덤이 언론에 먼저 공개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당시 발굴단장은 철야로 발굴 작업을 끝내기로 결정한다.그렇게 밤사이 유물은 짓 밟혀졌고.. 두서없이 꺼내졌다.

나의 실수였고 고고학자로서 평생의 아쉬움의 하나다. 나라와 국민에게 큰 죄를 저질렀다.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고 김원룡

17시간의 졸속 발굴... 역사의 흔적을 잃어버린 왕릉엔 뼈아픈 후회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만 남았다.

처음 고분의 문을 열였을 당시!관은 폭삭 내려앉은 채무덤으로 들어가는 길까지 지나치게 튀어나와 있었다..도자기는 넘어진 채 나 뒹굴고 있었다. 내려앉은 관재 사이로 유물들이 어지럽게 놓여있었고, 모든 유물들이 제자리를 이탈해 있었다. ..무덤 안에 분명히 어떤 충격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3초 보다가) 관이 삭아서 내려앉을 때 충격이 커서 그랬을까!아니면 지진 때문이었을까.. 1500년 동안 지하에선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백제 25대왕, 무령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던 무덤.하지만, 나뒹굴고 있는 유물들이 어떤 위치에 왜 놓여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을 밝힐 유일한 기회는 영원히 사라져진 것이다.무덤안의 소중한 정보들은 모두 날아가 버렸다.유물에 대한 정확한 기록도 남아 있는 사진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백제사 연구에 큰 전환을 가져온 중대한 발견! 새롭게 밝혀진 사실도 많지만 오히려 해결되지 않은 의문들이 더 많다.

한국 고고학계가 저지른 돌이킬 수 없는 과오.. 이 또한 기억해야 할 소중한 역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