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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이미지 | 저작권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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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 바이젠TV코리아 | ||
전자자원소장처 | 바이젠TV코리아 | ||
공공누리 저작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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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L 정보 | |||
소스코드 | <iframe width="720px" height="480px" src="http://uci.k-heritage.tv/resolver/I801:1501001-001-V00375?t=3"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콘텐츠 기본 정보(N2C)
UCI | I801:1501001-001-V0037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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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삼양동 유적, 탐라시대를 열다 | ||||||||||
콘텐츠 유형 | 동영상 | 언어정보 | 국문 | ||||||||
생산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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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여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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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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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정보 | 지금으로부터 2,000여년 전. 국가와 비슷한 체제가 형성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이 제주도 삼양동에서 발견됐다. 200여 기가 넘는 집터가 발굴되어 놀라움을 안긴 삼양동 유적. 그중 유독 눈에 띄는 주거지가 발굴됐다. 오늘날의 원두막처럼 생긴 집. 과연 이 집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삼양동 선사유적 방문정보> 위치 : 제주시 삼양2동 1660-5 삼양동 선사유적지(사적 제416호) 연락처 : 064-728-8673 관람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 주변 볼거리 : 삼화지구 선사유적, 국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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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지금으로부터 2,000여년 전. 국가와 비슷한 체제가 형성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이 제주도 삼양동에서 발견됐다. 200여 기가 넘는 집터가 발굴되어 놀라움을 안긴 삼양동 유적. 그중 유독 눈에 띄는 주거지가 발굴됐다. 오늘날의 원두막처럼 생긴 집. 과연 이 집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삼양동 선사유적 방문정보> 위치 : 제주시 삼양2동 1660-5 삼양동 선사유적지(사적 제416호) 연락처 : 064-728-8673 관람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 주변 볼거리 : 삼화지구 선사유적, 국립제주박물관 관렴 홈페이지 : http://samyang.jejusi.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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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정보 | 기원 전후의 제주도.청동기시대에서 초기 철기시대로진입하려는 찰나였다. 현재 제주도에서 발견되는선사유적의 대부분은바로 이 시기의 흔적. 삼양동 선사유적전시관에서발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집터와 토기 등 생활유적은 물론,고인돌 등 매장유적도 발견되고 있다. 지금도 육지와는 다른특별한 생활문화를 보여주고 있는 제주도.(pause)과연 당시 신석기인들은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 해안가에 인접해있는 선사시대 유적들.이 시기의 다른 지역 입지조건과비슷한 양상이다. 그 비밀의 열쇠는 용천수.화산섬인 제주도는 예로부터 물이 귀했다.해안에서 솟아나는 맑은 용천수는많은 사람들이 정착해 생활하기 위한필수조건이었다. 이즈음 지금의 국가와비슷한 체제가 형성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이삼양동에 있다.200여 기가 넘는 집터가 발굴된 삼양동. 2,000년 전 삼양동 사람들은어떤 집에서 살았을까. ----------------------------------------------------------------------------- 제주시 삼양동.바다를 이웃하고 있는 마을에움집 여러 채가 자리 잡고 있다.2,000년 전에 형성됐던 마을을고스란히 복원해놓은 유적지다.(pause) 지난 1996년에 처음 발견된 후,2년여에 걸쳐 발굴된 주거지만 236기. 큰 규모의 장방형 17기, 지상식 등 형태가 고정되지 않은 주거지 20기, 반움집 형태의 원형주거지 173기는 물론, 쓰레기 폐기장, 도랑의 흔적 등대규모의 마을 유적이 확인됐다. 특히 원형주거지는중앙에 타원형 구덩이를 파고,그 양쪽 끝에 중심기둥을 세웠다. 이는 고깔모양으로 두른 지붕을단단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했다. 또한 비바람을 막기 위해이엉을 단단하게 묶어 덮었다. 이미 신석기인들은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방법을체득했던 것이다. 이러한 주거지는 10여 기의 주거지가군을 이루며 한가운데 땅을 비운 채원형으로 배치됐다.그중 특히 눈에 띄는 집이 있다. 다른 집들처럼 땅 위에 붙어 있지 않고오늘날의 원두막처럼 생긴 집. 정체는 바로 창고.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막아식량을 오래 보관할 수 있었다. 이는 당시 삼양동의 경제적 기반을 이룬흔적이라 할 수 있다. (그냥 보여주기)잘 갖춰진 제주도 고대 취락의 모습을보여주고 있는 삼양동 유적. 그들은 온전한 집단생활을 했다.하지만 과연 그들끼리만 살았을까. 삼양동 선사유적전시관.주거지 내부에서 출토된다량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화면에 맞게 쉬어가며 내레이션)각종 토기류,석기류,불에 탄 곡식류는 물론,청동기류와 철기류까지시대의 변화와 함께했던 유물들. 특히 이곳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돼명명된 토기가 눈에 띈다. 바로 삼양동식 토기. 구연부가 나팔처럼바깥으로 향해 벌어진 형태의 삼양동식 토기는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 말기의토기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옮겨가는제주도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중요한 유물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제주도에서 생산되지 않는 재료로 만든물건들이 출토됐다. 그중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화폐.이는 중국 한나라 유물로 짐작되는데,2,000년 전 삼양동 사람들이이미 화폐로 거래를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옥으로 만든 장신구의 일종인 옥환,그리고 동경은활발한 해외교류의 흔적인 것이다.(pause)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제주도에는 우리의 상상보다훨씬 발달된 형태의 마을이 존재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