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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주 2부 첨성대, 1300여년의 비밀_1280X720.mp4 153.65 MB 다운로드

콘텐츠 기본 정보(N2C)

콘텐츠 기본 정보
UCI I801:1501001-001-V00380
제목 경주 2부 첨성대, 1300여년의 비밀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국문
생산자 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생산일자
미디어소풍 2010-10-14
기여자 정보
기여자 정보
역할 정보 기여자 명
제작사 미디어소풍
프로듀서 미디어소풍
기술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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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영역 기술 내용
내용정보 국보 제31호 경주 첨성대
역사정보 삼국시대, 신라
지리정보 경상북도 경주시
요약 정보 우리나라 최초의 천문대이자 동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1300여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변함없이 서 있는 첨성대! 그 비밀은 무엇일까? 7세기 중반, 신라시대 선덕여왕 때 세워진 첨성대는 지금까지 단 한번의 보수나 개축이 없었습니다. 3층 건물 높이에 달하는 돌의 개수는 음력으로 1년을 의미하고, 27개 단의 수는 신라 27대 선덕여왕을 상징한다고 전해집니다. 쌓아올린 돌의 개수와 단의 수에서도 그 치밀함이 엿보이는데, 첨성대가 세워진 후 779년 경주에 100여명의 사망자를 낸 지진이 있었다는 기록에도 첨성대는 무너지지
내용 우리나라 최초의 천문대이자 동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1300여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변함없이 서 있는 첨성대! 그 비밀은 무엇일까? 7세기 중반, 신라시대 선덕여왕 때 세워진 첨성대는 지금까지 단 한번의 보수나 개축이 없었습니다. 3층 건물 높이에 달하는 돌의 개수는 음력으로 1년을 의미하고, 27개 단의 수는 신라 27대 선덕여왕을 상징한다고 전해집니다. 쌓아올린 돌의 개수와 단의 수에서도 그 치밀함이 엿보이는데, 첨성대가 세워진 후 779년 경주에 100여명의 사망자를 낸 지진이 있었다는 기록에도 첨성대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요? 지금까지 궁금했던 첨성대의 내부! 4.5미터 높이에 난 출입구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1300여년 무너지지 않고, 하늘을 향해 우뚝 서있는 첨성대의 비밀을 밝혀봅니다.
대본 정보 우리나라 최초의 천문대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랜 천문대로, 1300여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변함없이 서 있을 수 있는 첨성대, 그 비밀은 무엇일까요?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반월성과 대릉원 사이 벌판에 우뚝 서 있는 첨성대..

특이한 점은, 7세기 중반, 신라시대 선덕여왕 때 세워져 지금까지 단 한번의 보수나 개축이 없었다는 겁니다. 고대 건축물 중에 유일하게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첨성대가 갖는 의미는 특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3층 건물 높이에 달하는 첨성대의 돌의 개수는 음력으로 1년을 의미하고, 단의 수는 신라 27대 선덕여왕을 상징한다고 전해집니다.

쌓아올린 돌의 개수와 단의 수에서도 그 치밀함이 엿보이는 첨성대, 천년이 넘는 세월을 버텨 현재까지 그 모습을 유지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첨성대의 축조방식을 면밀히 살펴보기 위해, 대전 국립 문화재 연구팀이 함께 했습니다.

실측결과, 첨성대는 1300여년 이란 세월 속에 미세하게 기울어져 있을 뿐이었고,

첨성대를 이룬 화강암의 강도는 콘크리트에 2배가 될 정도로.. 아직도 견고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재료의 선정과 건축기술에 있어 뛰어났음을 보여주는데, 그렇다면, 내부 구조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첨성대의 출입문은 독특하게도 중간 위쪽 부분에 위치해 있습니다. 출입문 아래에는 당시, 사다리를 댔던 흔적이 보입니다. /왜 출입구가 높은 곳에 있어야 했을까요?/어쩌면 그 안에 비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문화재 연구팀의 도움으로, 늘 궁금했던 첨성대 내부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첨성대의 내부는 조직적으로 돌을 쌓아 두른 모습이었습니다.

(여유)그리고, 그 위로 하늘이 보이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첨성대의 바닥을 보면, 출입문 4.5미터 높이까지 자갈과 흙으로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갈과 흙의 적절한 배합은 1300여년 동안 첨성대의 좋은 배수로 역할을 했습니다.

자세히 보면 바닥 뿐 아니라, 쌓아 올린 단에서도 흙과 자갈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요즘의 시멘트와 같은 접합제 역할을 했습니다.

안정적인 볼록한 아치형 하단부를 만들어 흙과 자갈을 적절히 섞어둔 건, 첨성대를 지탱하게 한 힘이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첨성대가 1300여년 동안 무너지지 않았던 비밀입니다.

당시 신라인의 건축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알 수 있는데, 지진으로 100여명이 사망했던 당시에도,무너지지 않았던 기록이 전해집니다.

몸체를 비집고 나온 이 돌 역시, 건축기술의 과학성을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내부 구조를 가로지르는 돌의 끝부분으로, 이 길다란 돌은 둥근 구조를 잡아주어 첨성대의 견고함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돌은 상층부로 올라가는 받침대 역할까지 했습니다.

신라인들은 이런 모습으로 상층부 꼭대기에 올라갔을거라 여겨집니다.

그렇게 첨성대에 오르면, 보이는 판석 하나. 한 명 정도 앉을 크기의 판석으로, 신라인은 이 위에 앉아 천문을 관측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 최초의 천문대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자랑스런 우리의 문화유산 천문대.

여전히 신비에 쌓인 채 그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천문대는, 신라인의 건축과학이 빚어낸 자존심으로, 1300여 년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