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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N2C)

콘텐츠 기본 정보
UCI I801:1501001-001-V00384
제목 경주 5부 불국사, 부처의 나라를 꿈꾸다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국문
생산자 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생산일자
미디어소풍 2010-11-03
기여자 정보
기여자 정보
역할 정보 기여자 명
제작사 미디어소풍
프로듀서 미디어소풍
기술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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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영역 기술 내용
내용정보 사적 제502호 경주 불국사; 국보 제23호 경주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 국보 제20호 경주 불국사 다보탑; 국보 제21호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국보 제126호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역사정보 삼국시대, 신라, 통일신라
지리정보 경상북도 경주시
요약 정보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의 33계단은 불교에서 말하는 33개의 하늘을 상징합니다. 욕심의 정화에 뜻을 두고 걸어 올라가는 다리로, 계단을 올라와 자하문을 통과하면 비로소 부처님의 나라에 도착합니다. 구조물 하나, 배치하나에도 숨은 뜻이 담겨 있는 불국사. 대웅전을 중심으로는 현재, 과거, 미래의 세계를 드러낸 놀라운 가람배치를 보입니다. 신라인들이 그려내고자 했던 이상적인 불국의 세계, 불국사를 만나봅니다.
내용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의 33계단은 불교에서 말하는 33개의 하늘을 상징합니다. 욕심의 정화에 뜻을 두고 걸어 올라가는 다리로, 계단을 올라와 자하문을 통과하면 비로소 부처님의 나라에 도착합니다. 구조물 하나, 배치하나에도 숨은 뜻이 담겨 있는 불국사. 대웅전을 중심으로는 현재, 과거, 미래의 세계를 드러낸 놀라운 가람배치를 보입니다. 신라인들이 그려내고자 했던 이상적인 불국의 세계, 불국사를 만나봅니다.
대본 정보 신라 호국신앙의 중심지로 신라 최대규모의 목탑이 있던 황룡사와

신라 최초의 석탑이 만들어진 분황사를 비롯해,

세계 최초의 천문대 첨성대에 이르기까지

그 중심에는 강한 추진력으로 한 나라를 이끈 선덕여왕이 있었습니다.

신라천년의 찬란했던 역사를 간직한 경주에는,

신이 내려와 놀던 곳으로 '신유림'이라 불린 신령스러운 산, 낭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들이 노니는 숲으로 신성시 되던 이곳에, 통일신라의 초석을 마련한 선덕여왕이 잠들어있습니다.

선덕여왕은, 632년 신라 최초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으로 왕위에 오릅니다. 여성의 왕위계승은 당시에도 파격적이고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숱한 반란과 전쟁을 겪어야만 했던 선덕여왕, 그녀는 여성군주로서 중요한 결단을 내립니다.

바로, 불교를 국가 통치의 구심점으로 활용한겁니다.

분황사를 비롯해, 선덕여왕 대 창건된 사찰만 20여개에 이릅니다. 다른 왕대의 창건사찰보다 무려 2~3배나 많은데, 이는 대규모 불사를 통해 외부적으로는 건재를 과시하고, 내부적으로는 결속력을 다지기 위함이었습니다.

(바로) 향기로운 황제의 사찰이란 뜻을 담고 있는 분황사.

석탑에서는 황실용 가위, 실패 등 여성생활 유물들이 출토돼 이 곳이 여왕의 자리였임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줍니다.

또, 궁궐을 지으려다 황룡이 승천하는 모습을 보고, 절을 지었다는 황룡사는 13세기,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지고 그 터만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목탑터와 금당터만으로도 당시의 엄청났던 규모를 짐작 할 수 있는데, 지금은 그 모습을 볼 수 없지만, 황룡사는 신라 왕실의 권위와 호국을 상징하는 세가지 보몰, 신라삼보 중 두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보통 사람 키의 2배가 넘은 높이의 불상, 장륙존상과

신라시대 최대 규모로, 높이가 90미터에 달해, 사궐 어디에서도 보였다는 황룡사 9층목탑이 바로 그것입니다.

불교의 힘으로 이웃나라를 막아 신라를 지키겠다는 여왕의 굳은 의지로 세운 황룡사의 탑이 9층으로 이루어진 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탑의 각 층은 신라가 극복해야 할 변방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으로, 선덕여왕은 이 아홉나라를 누르고 강한 나라가 되게 해 달라는 소망을 목탑에 담았습니다.

선덕여왕 때 만들어진 첨성대 또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첨성대를 이루는 27단의 돌은 (달의 공전 주기와 같으면서) 27대 선덕여왕을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

하늘의 뜻을 관찰하며, 신과의 소통을 바랬던 선덕여왕은 신의 세계에 이러 그 권위를 빌어오자고 했습니다.

(바로 이어)많은 군사를 전쟁터에 보야 했던 여왕은 대규모 불사로, 불교의 힘을 빌어 국력을 모았던 것입니다.

그 힘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당과의 적절한 외교관계 속에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선덕여왕.

(바로)강한 추진력에 예지능력까지 지녔던 선덕여왕은, 자신이 죽는 날을 미리 알고,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아듣지 못했고, 이에 선덕여왕은 낭산이 바로 그곳이라 말합니다.

여왕이 죽은지 32년 후, 선덕여왕의 무덤 아래에는 사천왕사가 세워졌습니다.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는 상태인데, 불경에 따르면, 사천왕사 위가 도리천이라니, 바로 여왕의 무덤을 말하는 겁니다.

결국, 선덕여왕은 자신의 유언에 따라 도리천에 묻혔고, 그렇게 신의 세계로 갈 수 있게 된 겁니다.

16년의 재위기간동안, 강한 리더십과 카리스마로 국력을 다졌던 신라 27대왕 선덕여왕. 그녀는 삼국통일을 이룩하는 기틀을 다진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으로 기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