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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N2C)

콘텐츠 기본 정보
UCI I801:1501001-001-V00411
제목 경복궁 6부 경복궁의 눈물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국문
생산자 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생산일자
미디어파크 2011-09-28
기여자 정보
기여자 정보
역할 정보 기여자 명
제작사 미디어파크
프로듀서 미디어파크
기술 정보
기술 정보
기술 영역 기술 내용
기타정보
내용정보 사적 제117호 경복궁
내용정보_신규
역사정보 조선시대
역사정보_시대국가
인물정보
지리정보 서울특별시 종로구
요약 정보 조선 말 격동의 시대를 견뎌낸 경복궁에는 우리 역사상 뼈아픈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왕실의 권위를 세우고자 했던 흥선대원군과 시대의 어지러움 속에서도 최신식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의 발전을 도모했던 고종황제.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서양 열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자 했던 명성황후까지.당시 경복궁이 흘렸을 눈물을 따라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경복궁 방문 정보>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1 연락처: 02-738-9171 주변볼거리: 건청궁, 장안당,옥호루, 집옥재, 향원정 관련홈페이지:
내용 조선 말 격동의 시대를 견뎌낸 경복궁에는 우리 역사상 뼈아픈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왕실의 권위를 세우고자 했던 흥선대원군과 시대의 어지러움 속에서도 최신식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의 발전을 도모했던 고종황제.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서양 열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자 했던 명성황후까지.당시 경복궁이 흘렸을 눈물을 따라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경복궁 방문 정보>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1

연락처: 02-738-9171

주변볼거리: 건청궁, 장안당,옥호루, 집옥재, 향원정

관련홈페이지: http://www.royalpalace.go.kr
대본 정보 고종이 명성왕후와 함께 기거하기 위해 새로 지은 궁속의 궁, 건청궁... 이곳은 우리에게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경복궁에 침입한 일본 낭인들은 건청궁으로 쳐들어와 이곳에 머물고 있던 조선의 국모,명성왕후를 잔인하게 시해했다.

조선말... 격동의 시기, 경복궁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여기에 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온 나라가 초토화되면서 불타 없어진 경복궁은 조선 후기 왕들의 무관심 속에서 270년 넘게 폐허로 버려진다.

오랫동안 빈 터로 남아 있던 경복궁은 왕권을 강화하려는 흥선대원군의 집념으로 1868년 다시 세워진다.7년 만에 마무리된 대역사였다.

중창된 경복궁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흥선대원군과 갈등을 빚던 고종은 궁궐 뒤편 깊숙한 곳에, 건청궁을 지어 명성왕후와 함께 생활했다.

아버지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왕으로서의 권위를 세우겠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건청궁은 세부분으로 나뉜다. 고종이 기거했던 사랑채, 장안당...

(pan하면서 조금 보다가) 명성왕후가 기거했던 안채인 곤녕합...

그리고 상궁들이 거처하고, 곳간이 있던 복수당이 그것이다.

건청궁의 사랑채인 장안당에는, 누마루가 있다.

이곳에서 밖을 내다보면 눈 앞에, 향원정 연못이.. 그림처럼 들어온다. 향원정은 건청궁에 딸린 정원으로, 창덕궁 부용정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못으로 꼽힌다.

향기는 멀수록 맑다는 뜻을 가진, 향원정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건물로는 유일하게 육각형의 중층 정자다.

경회루가국가의 공적인 연회공간이라면, 향원정은 왕과 왕비의 사적인 공간이다.

2층은 마루방이지만, 1층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어 겨울에도 여느 정자와는 달리, 오붓하게 풍정을 나눌 수 있다.

4. 향원정/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그런데 향원정에는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이 전한다.

이곳 향원지의 물을 끌어들여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전깃불을 밝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유학생인 유길준이 고종에게 밤을 낮처럼 밝히는전구를 소개했다.

이에, 고종은 미국의 에디슨 전기회사에 공사를 맡겨 건청궁 앞에서, 발전기를 돌리게 한다.

그런데 발전기를 돌리면서 연못의 물고기들이 모두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등’을 물고기를 삶아 죽인다는 뜻에서 ‘증어’라 했다.

4. 집옥재-서구문물 흡수

이곳은 고종의 서재로, 외국사신의 접견장으로 사용된 집옥재다.

다른 전각들과 달리 청나라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집옥재에는 한지 대신 유리창이 끼워져 있었다.

용마루의 용도 용머리를 앉힌 게 아니라, 용이 휘감아 올라가는 모습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모습과 많이 다르다.

고종이 이처럼 집옥재를 청나라식으로 지은 것은 최신식 문물을 받아들여.. 나라의 힘을 기르고자 함이었다.

고종의 지시로... 집옥재에는 4만권의 책이 갖춰져 있었다. 이름 그대로 ‘보물을 모아 놓은 곳’이었다.

고종은 궁중 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집옥재에서, 새로 들여온 책을 읽으며

세상의 흐름을 읽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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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왕후와 휴식을 취하며 거처할 목적으로 지은 건청궁은 정치적 논쟁의 장소가 되어갔다.외교사절들이 끊임없이 접견을 요구했고 고종은 이곳에서 정치적인 문제들을 처리했다.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청과 러시아 공사들을 만나며서양열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자 했던 명성왕후는 일본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다.이에, 1895년... 일본 낭인들이 건청궁으로 난입해, 조선의 국모 명성왕후를 시해한다.

이것이 을미사변이다... (조금 보다가) 이 끔찍한 사건 이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고, 다시는 경복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