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이미지 및 저작권 정보(N2L)
| 대표이미지 | 저작권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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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 미디어소풍 | ||
| 전자자원소장처 | 미디어소풍 | ||
| 공공누리 저작권 |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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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CL 정보 | |||
| 소스코드 | <iframe width="1000px" height="480px" src="http://uci.k-heritage.tv/resolver/I801:1501001-001-V00424?t=3"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
관련 파일 및 자원정보(N2R)
| 번호 | 파일명 | 파일크기 | 다운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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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의궤 5부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의궤_1280X720.mp4 | 169.08 M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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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의궤 5부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의궤_1920X1080.mp4 | 168.78 M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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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N2C)
| UCI | I801:1501001-001-V00424 | ||||||||||
|---|---|---|---|---|---|---|---|---|---|---|---|
| 제목 | 의궤 5부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의궤 | ||||||||||
| 콘텐츠 유형 | 동영상 | 언어정보 | 국문 | ||||||||
| 생산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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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여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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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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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 정보 | 2011년 7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외규장각의궤 특별전시회가 열렸다. 1866년 병인양요를 겪으며 프랑스군인에게 빼앗긴지 145년 만이다. 145년이 지나 겨우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 외규장각의궤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어떻게 우리의 품에 돌아올 수 있었을까? 지금부터 하나하나 알아가보자. <국립중앙박물관 방문정보> 위치: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6가 168-6 연락처: 02-2077-9000 관람정보 - 화, 목, 금요일 : 09:00~18:00 수, 토, 일 : 09:00~21:00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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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 2011년 7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외규장각의궤 특별전시회가 열렸다. 1866년 병인양요를 겪으며 프랑스군인에게 빼앗긴지 145년 만이다. 145년이 지나 겨우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 외규장각의궤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어떻게 우리의 품에 돌아올 수 있었을까? 지금부터 하나하나 알아가보자. <국립중앙박물관 방문정보> 위치: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6가 168-6 연락처: 02-2077-9000 관람정보 - 화, 목, 금요일 : 09:00~18:00 수, 토, 일 : 09:00~21:00 일요일/공휴일 : 09:00~19:00 매주 수, 토요일 야간개장 : 8:00 ~ 21:00 (3시간 연장) 매주 월요일 휴무 - 관람요금: 유료 관련 홈페이지: http://www.museum.go.kr <강화고려궁지(외규장각) 방문정보> 위치: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163 연락처: 032-930-7078 주변볼거리: 선원사지, 청련사, 고려고종홍릉, 갑곶돈대, 용진진 관련홈페이지: http://www.ganghwa.incheon.kr/open_content/tour.do?act=detail&tour_no=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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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본 정보 | -145년 만의 귀환이었다!국민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다시 제자리를 찾은 조선의 보물!외규장각 의궤! -자랑스런 우리의 역사!세계 그 어느 나라도 흉내낼 수 없는 한국의 기록유산!외규장각의궤가 돌아왔다! -145년 만에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2011년 7월부터 두달간 열린외규장각의궤특별기획 전시회!이 전시회에서는 프랑스에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 297책 중 71책이공개됐는데, 외규장각 의궤는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하던 것으로임금이 보는 어람용이 대부분이다. -인목대비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연회를 기록한 풍정도감의궤. 외규장각 의궤 중 가장 오래된 유일본이다-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에게 존호를 올릴 때 의식을 기록한 장렬왕후존숭도감의궤. -1751년 현빈 조씨의 장례절차에 관한 기록한 의궤 <현빈예장도감 의궤> -경희궁 중건 과정을 기록한 서궐영건도감은 궁궐건축의 면모를 글과 그림으로 전해주고 있는데,앞으로 궁궐건축을 연구하는데 있어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프랑스에서 귀환한 외규장각의궤가 원래 있는 곳은 강화도 외규장각이다.병인양요 때 불타 소실된 전각을2003년에 복원한 것이다. -외규장각은 1782년 2월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규장각이다. 이곳에 임금이 보는 어람용 의궤를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병인양요 당시조선에 패배한 프랑스 군대가후퇴하는 도중, 외규장각 전각을 불태우고 의궤를 비롯한 340여 책의 문서를 약탈해 간 것이다. -역사 속에 묻혀버릴 뻔 했던 외규장각 의궤를 발견한 이는재불 서지학자 박병선 박사였다. -프랑스에서 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박병선 박사는 먼지가 잔뜩 쌓인 채 창고에 방치돼 있던 고서가 조선의 의궤임을 확인하고 -그때부터 혼자서 프랑스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 목록을 정리해,1979년 기자들과 한국 정부에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프랑스에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동양의 오래된 고서가한국인에 의해 발견돼 그 가치가 입증되자, 프랑스 정부는 소유권을 주장하며 한국으로의 반환을 거부해왔다.박병선 박사 또한 의궤의 존재여부를 밝혔다는 이유로 프랑스 도서관에서 해임을 당했다. -하지만 박병산 박사는 프랑스가 고집을 부리면 부릴수록 의궤반환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박병선 박사의 노력으로 학계와 정부, 시민단체 등 많은 사람들이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관심을 갖게 됐고, -1992년엔 한국 정부가 직접 프랑스에 도서 반환 요청을 하고 나섰다. # 사진자료 등과 함께 아래 주요 반환 일지를 자막으로 처리 ▲1992년 7월 : 주프랑스 한국대사관, 프랑스측에 반환 요청. ▲1993년 9월 : 미테랑 대통령, 의궤 1권 전달하며 반환약속. ▲1994년 11월 : 영구대여 협상 무산. ▲2007년 2월9일 : 국내 시민단체 문화연대, 파리행정법원에 반환소송 제기. ▲2009년 12월24일 : 파리행정법원, 약탈은 인정했으나 반환청구 소송은 기각. ▲2010년 3월4일 : 한국정부, 프랑스에 외규장각 도서 191종 297권 영구대여 요청. ▲2010년 11월12일 : 한불 정상, 사실상 반환 공식 발표. -그리고 마침내 2011년 5월 27일145년 만에 약탈당했던 우리의 역사,외규장각의궤 297책이고국의 품에 돌아오게 된 것이다.박병선 박사를 비롯해 정부와 시민, 모두가 힘을 모아 이룩한 쾌거였다. -외규장각 의궤의 가장 큰 특징은임금이 감상하기 위해 제작된 어람용이라는 점이다. -어람용의궤는 분산용의궤에 비해색이 더 화려하고 여러번 덧발라 칠해도변색되지 않도록 최고급 안료를 사용했다. -겉표지도 분산용은 삼베를 사용한 반면어람용은 비단을 사용해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제목을 쓰는 부분도 비단을 덧대어 썼다. 어람용 의궤는 종이도 최고급 종이인 ‘초주지’라는 한지를 사용했다. 일반한지보다 초주지의 밀도가 더 높아 먹이 번지는 것을 방지한다. -무엇보다 이번 외규장각 반환이 주는 값진 의미는 돌아온 297책 중 30책이 국내에 없는 유일본이라는 것이다.-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왕실 전통행사를 복원하고 조선시대 궁중문화를 이해하는데 더할나위 없이 소중한 자료가 된다. -의궤는 상상이 아닌 현실이다!문자만으로 이해하기 힘든의식의 현장을 생동감 넘치는 그림으로 기록함으로서, 궁중의식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높이고 있다.-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철저한 기록정신을 바탕으로 완성된역사적 사실성과 예술성의 조화!세계가 부러워하고 인정하는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꽃, 의궤!의궤가 있기에 우리의 역사는 영원한 꽃을 피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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