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이미지 및 저작권 정보(N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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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N2C)
UCI | I801:1501001-001-V004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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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토우 1부 순간포착! 신라인의 스냅사진 토우 | ||||||||||
콘텐츠 유형 | 동영상 | 언어정보 | 국문 | ||||||||
생산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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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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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정보 | 정교한 표현은 생략하고, 과감할 정도로 대상의 순간적인 동작이나 표정만을 포착해 투박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 힘이 넘치는 신라만의 고유한 유물, 토우. 신라인들은 통일신라의 화려한 시대를 이뤄내기 이전의 생활상을 토우로 만들어 냈다. 신라인들의 생활상을 투박하게 빚어낸 스냅사진 같은 토우. 신라 토우에 대해 알아보자. <경주국립박물관 방문정보>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76 연락처 : 054-740-7500 주변 볼거리 : 대릉원, 첨성대, 경주향교, 안압지 관련 홈페이지 : http://gyeongj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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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정교한 표현은 생략하고, 과감할 정도로 대상의 순간적인 동작이나 표정만을 포착해 투박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 힘이 넘치는 신라만의 고유한 유물, 토우. 신라인들은 통일신라의 화려한 시대를 이뤄내기 이전의 생활상을 토우로 만들어 냈다. 신라인들의 생활상을 투박하게 빚어낸 스냅사진 같은 토우. 신라 토우에 대해 알아보자. <경주국립박물관 방문정보>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76 연락처 : 054-740-7500 주변 볼거리 : 대릉원, 첨성대, 경주향교, 안압지 관련 홈페이지 : http://gyeongju.museum.go.kr/html/kr/ <국립중앙박물관 방문정보> 위치 :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6가 168-6 연락처 : 02-2077-9000 주변 볼거리 : 용산 전자상가, 남산타워, 인사동, 국립현충원 관련 홈페이지 : http://www.museum.go.kr/main/index/index001.jsp <토우 방문정보> 위치 : 경북 경주시 하동 224-1, 박병택 전통 토우 기능 전승자 연락처 : 054-746-7571 <신라금 정보> 천익창 고대악기 복원연구가 연락처 : 010-8790-77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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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정보 | 날렵하게 달리는 모습.생김새는 마치 진돗개를 연상케 한다.이 개는 신라시대부터 살아온 경주개, 동경이다. 꼬리가 없거나 짧은 개로 역사 속에서 그 존재를 확인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신라토우가 그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 토우는 동경이의 오랜 역사를 밝혀준 결정적 증거였다. <순간포착, 신라인들의 스냅사진 토우>======================== 신라 시대의 고분들이 밀집해 있는 대릉원.신라고분 가운데 가장 큰 무덤인 황남대총의 동쪽 평지는 토우가 최초로 출토된 곳이다. 1926년, 경주 토목공사 현장에서 발견된 수십 개의 고분 안에서 독특한 유물들이 발굴됐다.깨진 토기와 함께, 토우가 처음으로 출토된 것이다. 토우는 흙으로 빚은 작은 인형이다.10센티미터 미만의 크기로,사람에서부터, 동물,생활도구 등이 다양하게 표현돼 있다.고대 삼국 가운데 오직 신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유물인 것이다. 토우는 손으로 흙을 빠르게 주물러 빚어낸다. 정교한 표현은 생략하고, 과감할 정도로 대상의 순간적인 동작이나 표정만을 포착해 낸다. 즉흥적으로 만들어 투박하지만, 오히려 그 단순함 속에 힘이 넘친다. 토우가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시기는 5,6세기 무렵. 당시는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강력한 고대국가로 성장하던 때다. 신라인들은 통일신라의 화려한 시대를 이뤄내기 이전의생활상을 토우로 만들어 냈다. 말을 탄 남자토우를 통해 1500년전신라인들의 삶을 따라가보자. 한 남자가 말을 타고 어디론가 달려간다. 수렵에 나선 것이다. 그는 수렵도구인 커다란 활을 들고,등에는 화살통을 매고 있다. 사냥감을 포착한 남자. 자신의 키 만한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긴다. 활끝은 멧돼지를 향해 겨누어져 있다 멧돼지는 신라인들의 주된 사냥감이었던 모양이다. 사냥꾼과 함께 멧돼지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개 한 마리. (멍멍듣고)용맹하게 사냥감을 추적하고 있다.그런데 개의 모양이 독특하다. 꼬리가 아예 없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꼬리가 짧거나 아예 없는 개토우는 5-6세기 신라고분에서 여럿 발견되었다.발굴단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꼬리가 떨어져 나갔다고 추측해왔다. 그런데 꼬리의 비밀이 동경이를 통해 드러났다.2011년, 동경이가 개토우의 실제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혈통복원작업을 통해 밝혀진 것이다. 옛 문헌에 나온 내용과도 일치했다. ‘삼국사기’에 야생사슴과 같이 짧은 꼬리 모양을 한 개라고 기록돼 있다. 역사적 고증을 거쳐 재조명된 동경이. 2012년 4월, 문화재청은 진돗개와 삽살개에 이어, 토종견 동경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했다. 현재 경주에는 팔작지붕의 가옥이 많이 남아있다. 마치 부채살이 퍼지는 듯한여덟 팔자의 모양의 지붕을 가지고 있고, 옆 지붕면은 삼각형인 팔작지붕집. 이 모습은 집토우와 그대로 일치한다.지붕 모양과 기와 형태까지 똑같이 표현돼 있다. 팔작지붕이 신라시대부터 존재한 가옥 형태라는 사실이 토우를 통해 입증된 것이다.당시는 수렵만으로는 살 수 없던 시절. 신라인들은 다양한 농기구를 이용해 활발하게 농사를 지었다. 소를 가축으로 키워 밭을 갈고,수레를 이용해 농사지은 곡식을 운반했다. 본격적인 농경사회로 접어든 신라의 모습이 토우에 반영된 것이다. 신라의 농경 모습은 디딜방아 토우를 통해 자세히 살펴 볼 수 있다. (보다가) 경주 평야 남쪽에 자리잡은 경주 남산. 지금도 산 중턱에는 신라인들이 사용했던 디딜방아 흔적이 남아있다. 두 개의 돌은 절구공이의 받침,가운데가 움푹 파인 큰 돌은 아마 절구였을 것이다. 이를 복원해보면 토우의 형태와 정확히 일치한다. 신라인들은 이런 농기구를 활용해 식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보고)열심히 사냥도 하고 농사를 짓던 신라인들. 고된 노동 후에는 삶의 여유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흔적을 경주박물관 토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다가) 토우에는 유난히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많이 발견된다. 비파을 비롯해 악기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 중 토우장식 장경호에도 악기를 연주하는 토우가 장식돼 있다.여러 개의 현이 그려져 있고 무릎에 놓고 연주하는 이 악기는 신라금이다. 이 토우를 따라 복원된 신라금. 현은 12줄로, 무릎에 놓고 연주하는 모습이 신라토우 그대로다. 신라금이 연주되면 한껏 흥이 오른 사람들은 두 팔을 벌여 춤을 추었을 것이다. 다양한 악기 연주에 맞춰, 춤을 추며 인생의 기쁨을 노래했을 신라인들. 고된 일상 속에서도 풍류와 멋을 즐길 줄 알았던 것이다. 수렵과 농사로 식탁을 풍성하게 채우고, 풍류를 즐겼던 신라인들. 그 소박한 일상은 1500년이 지난 지금, 토우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