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이미지 및 저작권 정보(N2L)
| 대표이미지 | 저작권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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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 미디어소풍 | ||
| 전자자원소장처 | 미디어소풍 | ||
| 공공누리 저작권 | |||
| CCL 정보 | |||
| 소스코드 | <iframe width="720px" height="480px" src="http://uci.k-heritage.tv/resolver/I801:1501001-001-V00441?t=3"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
관련 파일 및 자원정보(N2R)
| 번호 | 파일명 | 파일크기 | 다운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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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성균관 3부 전설의 1582학번, 3정승이 나오다 | 160.66 M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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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성균관 3부 전설의 1582학번, 3정승이 나오다_1920X1080.mp4 | 160.91 M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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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N2C)
| UCI | I801:1501001-001-V0044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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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성균관 3부 전설의 1582학번, 3정승이 나오다 | ||||||||||||||||||
| 콘텐츠 유형 | 동영상 | 언어정보 | 국문 | ||||||||||||||||
| 생산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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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여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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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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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키워드 | 성균관;교육;3정승 | ||||||||||||||||||
| 요약 정보 | 성균관에서 배출되는 인재들은 나라에 중요한 관직에 올랐다. 이 때문에 성균관은 관직의 등용문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 중에서도 동시에 3정승을 배출한 성균관 사마시 합격 1582학번의 동기들. 그들은 50여년만에 모임을 가지고 이를 '임오사마방회도'를 남겼다. 임오사마방회도를 통해 당시 관직의 등용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성균관의 저력을 살펴보자. <성균관 방문정보>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3가 53번지연락처 : 02-760-1472주변 볼거리 : 성균관 내 대성전, 명륜당, 동재와 서재, 존경각관련 | ||||||||||||||||||
| 내용 | 성균관에서 배출되는 인재들은 나라에 중요한 관직에 올랐다. 이 때문에 성균관은 관직의 등용문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 중에서도 동시에 3정승을 배출한 성균관 사마시 합격 1582학번의 동기들. 그들은 50여년만에 모임을 가지고 이를 '임오사마방회도'를 남겼다. 임오사마방회도를 통해 당시 관직의 등용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성균관의 저력을 살펴보자. <성균관 방문정보>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3가 53번지 연락처 : 02-760-1472 주변 볼거리 : 성균관 내 대성전, 명륜당, 동재와 서재, 존경각 관련 홈페이지 : http://www.skkok.com/default.as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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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본 정보 | 인조 12년, 병조의 옛 관아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1582년, 생원진사시에 합격한 성균관 동기모임이 열린 것이다 그런데 모인 12명 가운데 3명이 정승. 어떻게 함께 입학한 한 학번에서 세 명의 정승이 나올 수 있었을까. (틸다운 되면)전국의 내노라하는 수재들이한 곳에 모여 공부한 성균관. 유생들은 24시간을 함께 생활하며같은 꿈을 향해 달려갔다. 이런 동거동락의 시간이 쌓이면서성균관 동기들의 우정도끈끈해질 수 밖에 없었다. ----------------------------------------------- 1630년 어느 날, 12명의 노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1582년 임오년에 생원 진사시험인 사마시에 합격한 성균관 동기들이었다. 48년 만의 동기모임. 성균관 입학 당시 20대였던 이들은 백발 성성한 70대 노인이 되었고,이들은 이날의 기억을 ‘방회첩’을 만들어 남겼다. 그런데 동기생 12명은 모두 종 4품 이상의 품계를 지닌 인물들.어떻게 동기 전부가 이렇게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었을까. ------------------------------- 성균관 유생들의 지상과제는과거급제를 해서 관리가 되는 일이었다 관리가 되는 길은 부와 명예를 얻고, 정치적 신념을 펼칠 기회로 여겨진 것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유생들은밤낮없이 공부에 매달렸다. 사서오경에, 각종 역사서와 문화서까지, 해야 할 공부는 매우 광범위했다. 이런 성균관 유생들을 더욱 괴롭힌 것은 각종 시험이었다. 전국 규모로 이루어진 대과는 3년에 한번 뿐. 하지만 유생들은 일일고사인 일고에서부터 열흘 마다보는 순두전강 등 수많은 교내시험을 치렀다.여기에 성균관 유생들만 특별히볼 수 있는 과거시험까지 준비해야 했다. 시험이 많은 만큼 그만큼의 공부가 요구됐고, 과거급제의 기회도 많았기 때문에한 학번에서 관직에 진출하는 유생도 많았던 것이다. ------------------------------------- 유생들을 관리로 등용시키기 위한 조선 임금들의 지원도 남달랐다.명륜당에는 역대 임금이 내린 친필 휘호와 학문을 권장하는 교시문이 가득하다.이곳을 찾은 임금은 여름에는 얼음을겨울에는 밀감을 내려줬고,유생들과 경서문답을 하면서 사기를 높여 주기도 했다. 임금은 3년에 한 번, 성균관에서 문묘를 한 후 특별 과거시험인 ‘알성시’를 열기도 했다.조선왕조의 관심과 지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왕세자가 8살이 되면 성균관에 입학시키는 의례를 치루게했다. 왕과 관리들이 모두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였다. 이는 장차 국왕이 될 왕세자 교육을성균관에서 담당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로써,성균관이 유교교육의 본산임을 천명한 것이다. ------------------------------------------ 실제로 조선을 이끌어간 학자와 정치인 대부분이 성균관 출신이었다.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패가모셔진 대성전에는,성균관 출신의 유학자들의 위패도함께 모셔져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조선 최고의 대유학자, 퇴계 이황.과거시험에서 아홉번이나 장원급제한 율곡 이이도 성균관 출신이다. 그밖에 조광조, 송시열 등 수많은 성균관 유생들이 관직에 올라,국가의 동량이 되었다. ------------------------------ 인조 12년, 전설의 사마시 학번이 4년 만에 다시 뭉쳤다.(대화체로)“같이 합격한 이들 가운데 정승이 하나 나오기도 힘든데 우리는 셋이나 동시에 정승이 되어 지금 이모임에서 자리를 나란히 하고 있네“ “그렇지 아마도 전무후무한 사건일 것이야.” “그렇기 우리 동기들은 가히 인재의 복록이야, 아니 그런가” 한 학번에서 삼정승이 탄생한 것이다. 관직으로 나가는 첫 관문을 함께통과한 사마시 동기들. 이 가운데 조선 최고의 재상이라는 삼정승을 동시에 배출했으니, 그 자부심과 결속력은 대단했을 것이다. # 에필로그(보고)인재육성을 우선시했던 조선의 왕과 치열한 학문연구로 조선 500년의 사상과 정치를 선도했던 성균관의 유생들,이들이 있기에 성균관은 조선 최고의 국립대학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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