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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1부 부처가 뜰로 나선 까닭은?_1280X720.mp4 157.58 MB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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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
UCI I801:1501001-001-V00553
제목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1부 부처가 뜰로 나선 까닭은?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국문
생산자 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생산일자
미디어소풍 2012-09-25
기여자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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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 정보 기여자 명
제작사 미디어소풍
프로듀서 미디어소풍
기술 정보
기술 정보
기술 영역 기술 내용
내용정보 보물 제218호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역사정보 고려시대
지리정보 충청남도 논산시
요약 정보 충청남도 논산시 반야산 기슭에 있는 천년고찰, 관촉사.

고려 광종의 명에 의해 창건된 사찰에는 거대한 부처가 서 있다.

조화롭지 못한 몸의 비율, 못생긴 얼굴.

부처는 왜 거대한 모습으로 법당 안이 아닌 뜰에 나와 있는 걸까

높이가 무려18미터에 이르는 6층 건물 정도의 높이다.

몸체는 하나의 기둥처럼 머리에서 발끝까지 일직선으로 내려와 다소 사실감이 떨어진다.

얼굴은 몸 전체의 4분의 1이나 될 만큼 크고, 눈, 코, 입, 귀의 표현도 과장되어있다.

석조미륵보살은 왜 이런 모습으로 관촉사에 서 있는 것인지 알아보
내용 충청남도 논산시 반야산 기슭에 있는 천년고찰, 관촉사.

고려 광종의 명에 의해 창건된 사찰에는 거대한 부처가 서 있다.

조화롭지 못한 몸의 비율, 못생긴 얼굴.

부처는 왜 거대한 모습으로 법당 안이 아닌 뜰에 나와 있는 걸까

높이가 무려18미터에 이르는 6층 건물 정도의 높이다.

몸체는 하나의 기둥처럼 머리에서 발끝까지 일직선으로 내려와 다소 사실감이 떨어진다.

얼굴은 몸 전체의 4분의 1이나 될 만큼 크고, 눈, 코, 입, 귀의 표현도 과장되어있다.

석조미륵보살은 왜 이런 모습으로 관촉사에 서 있는 것인지 알아보자.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방문정보>



위치 : 충남 논산시 관촉로1번길 25

연락처 : 041-736-5700 (관촉사)

주변 볼거리 : 은진향교, 탑정저수지, 충곡서원, 부여백마강

관련 홈페이지 : http://tour.nonsan.go.kr
대본 정보 7분다큐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1부> 부처가 뜰로 나선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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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deo A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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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발길 14 (좀 보다가)

고요하고 간절한 걸음이 향하는 곳..



미륵 마음을 낮추고 올려다 본 그곳에

거대한 부처가 서 있다.



발가락, 손가락,

얼굴 조화롭지 못한 몸의 비율,

참으로 못생긴 얼굴,

스님 불공 (보고)



미륵 10 부처는 왜, 거대한 모습으로

법당 안이 아닌 뜰에 나와 있는 걸까/



(타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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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논산시 부감 5 (보고)



논 팬 8 충청남도 논산시 반야산 기슭에 있는

천년고찰, 관촉사



경내부감 6 고려 광종의 명에 의해 창건된 사찰이다.



스님 안에서 불공 4 (보고)



경내 팬 - 미륵 보이면 13

(자막 : 석조미륵보살입상 보물 제 218호 / 고려 10세기 후반)

관촉사 경내에는

거대한 석조 미륵보살입상이 서 있다.



발 틸업 18 높이가 무려18미터에 이르는

6층 건물 정도의 높이다.

몸체는 하나의 기둥처럼 머리에서 발끝까지

일직선으로 내려와 다소 사실감이 떨어진다.



눈, 코, 입 12 얼굴은 몸 전체의 4분의 1이나 될 만큼 크다.

(자막 : 눈, 입, 귀 크기) 또한 눈, 코, 입, 귀의 표현도 과장되어있다.



얼굴 팬 (보고)



손에든 연꽃 15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균형과 조화를 잘 이루어 신성함을 갖추고 있는

보통의 불상 구조에서 벗어나

거대하고 과장된 몸을 표현하고 있다.



금동미륵반가사유상 10 온화한 얼굴과 균형잡힌 신체 비례..

우리에게 익숙한 불상과는 전혀다른 모습이다



미륵전경 6 석조미륵보살은 왜 이런 모습으로

관촉사에 서 있는 것일까?



동국여지승람 발생 14 조선시대의 지리서 동국여지승람에는 석조미륵보살이 고려시대 광종의 명에 의해서 만들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자막: 고려광종(949-975년)때 큰 바위가 솟아올랐으므로 혜명스님이 이를 쪼아서 불상을 조성했다.



계단 - 문 4 (보고)



지미짚 문 넘어 경내 10 크고 둔중한 모습을 한 부처를

고려인들은 왜

법당이 아닌 절의 마당에 세워 놓았을까?



미륵전 안 스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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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 6 (보고)



디졸브 - 군사들 10

자막: 660년 백제멸망 918 고려건국 936 후백제멸망 7

신라군을 맞아 최후의 격전을 벌인 백제의 황산벌

그후, 후백제 또한 고려에게 멸망하는 비운의 땅이

바로 논산이다.



삼국지도 13 논산은 삼국시대와 후삼국시대의 격전지였다.

그러다보니 나라를 잃은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혼란한 민심은 위로가 필요했을 것이다.





절 부감 고려의 지배층은 후백제 세력을 진압한 후

부처의 위엄으로 민심을 위로하고자 했다.

자신들의 권력을 상징할 수 있는

거대한 조형물을 조성했던 것이다.





갓 14 석조미륵보살의 머리에는 이단으로 된

사각의 보개가 올려져 있다.

쇠 방울과 화려한 장식을 더한 보개는

불교장식이지만 당시 왕의 권력을 상징하는

조각의 형태로도 보고 있다.



미륵 부감 3 (보고)



측면 틸업 6 고려는 관촉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에

왕의권위를 투영시켜 세워 놓았다.



예산 미륵불 14 고려시대 각 지역에 걸쳐 투박하지만

거대한 불상들이 많이 조성된 것은

당대 정치적 의도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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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 전경 (보다가)



목탁 두드리는 고려는 불교의 대중화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불상을 법당 안에만 모셔놓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쉽게 볼 수 있도록

절의 경내에도 세웠다.



미륵 전경 5 거대한 규모의 불상을 세워

절 밖 에서도 예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얼굴 틸다운 8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의 눈, 코, 입은

얼굴의 크기에 비해 매우 크다.



귀 틸다운 7 귀는 양 어깨까지 내려와 있고

목도 매우 굵다.



미륵 6 멀리서도 잘 보일 수 있도록 하다보니 생경한 인상을 풍기게 된 것이다.



미륵 뒤에서 본 경내 사람들 16 법당에 모셔져 위엄 있는 불상과는 달리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뜰에 세워져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참배할 수 있는 친근한 부처로 민심을 위로했을 것이다.





미륵얼굴 8 (3초 보다가)

격의 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배려해

석불을 조성한 마음..



미륵 멀어지는 경내 부감 10 보다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품고자 했던 바람..

거대한 불상은 그렇게 고려의 자화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