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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제국 황실의 후손, 이해경 여사 1부 180.56 MB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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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I I801:1501001-001-V00565
제목 대한제국 황실의 후손, 이해경 여사 1부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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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 생산일자
영상뉴스 201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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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 정보 기여자 명
제작사 영상뉴스
프로듀서 영상뉴스
기술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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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영역 기술 내용
내용정보 사적 제122호 창덕궁
역사정보 조선시대
지리정보 서울특별시 종로구
요약 정보 대한제국 황실의 후손인 이해경 여사.

고종의 손녀이자, 의친왕의 딸인 이해경 여사는 의친왕과 의친왕비 호적에 올라가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의친왕은 모두 13남 9녀의 자손을 봤지만, 정실부인 의친왕비와의 사이에 후손을 두지 못했고, 의친왕비는 다섯 번째 딸인 이해경을 유일하게 자신의 호적에 올렸다. 때문에 이해경은 의친왕비와 함께 궁에서 생활하면서

격동의 대한제국 황실의 궁궐생활을 또렷이 기억하는 마지막 증인이라 평가받는다.

대한제국 황실의 후손이 기억하는 궁과 황실 그리고 왕은 어떤 모습일까?

이해경 여사의 육성과 증
내용 대한제국 황실의 후손인 이해경 여사.

고종의 손녀이자, 의친왕의 딸인 이해경 여사는 의친왕과 의친왕비 호적에 올라가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의친왕은 모두 13남 9녀의 자손을 봤지만, 정실부인 의친왕비와의 사이에 후손을 두지 못했고, 의친왕비는 다섯 번째 딸인 이해경을 유일하게 자신의 호적에 올렸다. 때문에 이해경은 의친왕비와 함께 궁에서 생활하면서

격동의 대한제국 황실의 궁궐생활을 또렷이 기억하는 마지막 증인이라 평가받는다.

대한제국 황실의 후손이 기억하는 궁과 황실 그리고 왕은 어떤 모습일까?

이해경 여사의 육성과 증언을 문화유산 핫이슈가 담아냈다.



<창덕궁 방문정보>



위치: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99번지

연락처: 02-762-8261

주변볼거리: 경복궁, 창경궁,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관련홈페이지: www.cdg.go.kr
대본 정보 # 외경 3 지난 9월 27일 -



# 공항내부 8 귀한 손님이 한국을 방문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손님을 기다리는 전혜원씨 -





# 현장음 전혜원 / 문화재청 종묘관리소 연구원

결혼을 안 하셔서 후사가 없으시니까 저를 아들처럼 생각하고 계십니다.

올해에 연세가 많아지시니까 마지막으로 한 번 나오시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화면 6 워싱턴에서 지구 반 바퀴를 날아

한국에 온 손님 -

드디어 그의 모습이 보인다.



# 이해경 여사 보이는 18 대한제국 황실의 후손인

이해경 여사 -



고종의 손녀이자,

의친왕의 다섯째 딸,



의친왕과 의친왕비의

호적에 올려 진 유일한 후손.

그가 한국에 왔다.



타이틀 IN ->>

대한제국 황실의 후손, 이해경 여사 ①



# 외경 4 국립고궁박물관 -



# 부감 9 조선왕실과 관련된 유물을

전시해 놓은 이곳에 이해경 여사가 왔다.

어차를 유심히 바라보는 이해경 여사



# 현장음 (색 다르게) 그 당시에도 (어차가) 반짝거리긴 했겠죠?

물론이요. 이렇게 깨끗하진 않았지만



# 어차 9 순종효황후가 타고 다녔던 어차.

복원된 어차를 보며,

이해경 여사는 옛 추억을 꺼낸다.



# 인터뷰 이해경 / 의친왕의 다섯째 딸

(낙선재) 현관에 어차가 대어있으면 대비마마께서 나오세요.

나오셔서 어차를 타시고 후원으로 나오시면 우리는 그 뒤에 따라서

어머니가 먼저 가시고 그다음에 운현궁 마마(고 박찬주 여사)가 가시고 쫙 갑니다.



# 풀 13 보통 사람들에겐

역사의 유물에 지나지 않는 이곳 전시품이,

이해경 여사에겐 참 특별하다.

모두 가족과 관련이 있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 고종황제 7 고종황제의 어진.

할아버지의 초상화를 앞에 둔

손녀는 고개를 숙인다.



# 의친왕 사진 30 고종의 손녀이자,

의친왕의 다섯째 딸, 이해경 여사.

그는 의친왕과 의친왕비 호적에

올라가 있는 유일한 후손이다.

이해경 여사는 의친왕비와 함께

궁궐에서 생활했기에,

격동의 조선황실을 기억하는

마지막 증인이라 불린다.



# 미국사진 최고의 특권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황실이 싫었던 이해경 여사는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 인터뷰 이해경 / 의친왕의 다섯째 딸

미국에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 19년 만에 돌아왔는데 1975년에 돌아왔어요. (한국에 와서 수강재에) 들어가기 전에 상궁들이 세 분이 뒤에 살고 계셨는데 거기 가서 “누구 계세요?” 라고 했더니 김명길 상궁이라고 그분이 이렇게 보더니 무척이나 오래간만인데도 절 보자마자 “아이고, 붕아붕붕붕 아기씨 왔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덕혜옹주 계신 방에 들어와서 문안드리고 생전 처음으로 고모님을 만난 거예요.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 되었죠.



# 궁 외경 12 조선왕조의 궁궐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궁궐, 창덕궁 -

몰락하는 왕가라지만,

창덕궁에선 여러 가지 행사가 치러졌다.



# 인터뷰 (색 다르게) 어렸을 때 보시다 지금 보시니 감회가 어떠세요?

자세히는 생각이 안 나는 데 방에서 옷 갈아입던 생각이 나고요. 그러면서 서로 떠들고 이러쿵저러쿵 얘기했던 생각이 나요.



# 걷는 두 사람 11 궁궐 곳곳을 걸으며,

옛 기억을 떠올려본다.



궁은 이해경 여사가 태어난 곳이자.

20년 넘게 살아간 공간이다.



# 인터뷰 이해경 / 의친왕의 다섯째 딸

그때만 해도 단발머리 한 사람이 몇 명 안 되었어요.

제가 어렸을 적에 이렇게 단발머리를 하고 있으니까 미인은 아니지만 내 별명이 단발미인이었어요. 그래서 세 살 네 살 적에 다홍치마에 노랑 저고리 입고 그리고 어머니를 따라 다녔죠. 창덕궁엔 어머니께서 가셨어요. 어머니는 한 달에 두 번은 창덕궁을 꼭 가셨어요. 초하룻날하고 보름날은 문안드리러 가시니까요.



# 풀샷 15 궁궐을 둘러보며, 아버지를 떠올린다.

어렵기만 했던 아버지, 의친왕.

아버지에게는 이해경 여사 말고도

열 세 명의 후실과

스무 명의 자식이 더 있었다.





# 인터뷰 이해경 / 의친왕의 다섯째 딸

아버지하고는 보통 부녀지간처럼 아버지한테 안기거나 그런 거는 전혀 없어요. 앉아계시면 아버지가 먼저 물어보시기 전까지 우리가 먼저 물어보지 못해요. 가만히 앉아 있다가 아버지가 뭐라고 물어보시면 대답하고. 그게 나에게 남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에요.



# 사진 16 후궁들과 바깥에서

생활하는 아버지는 자주 볼 수 없었다.

이해경 여사는 어머니 의친왕비와

둘이서 궁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어머니 역시

무척이나 엄한 분이었다.



# 인터뷰 이해경 / 의친왕의 다섯 번째 딸

앉는 것도 똑바로 앉아야 하고 먹는 것도 순서에 맞춰 먹어야 하고 맛있는 것 먼저 집어 먹어도 안 되고 밤낮 배우는 것투성이였어요. 눈치를 볼 때는, 눈치 본다고 야단을 맞았어요.







# 사진 15 이해경 여사에게 삶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었다.

아버지의 많은 후궁들이 싫었고,

어머니의 엄격함도 답답했다.

일본인의 감시도 스트레스였다.



# 인터뷰 이해경 / 의친왕의 다섯 번째 딸

그런데 언제나 (일본이) 보고 있죠. 감시하는 것. 언제나 감시는 있었어요.



# 해방사진 9 그러다 찾아온 광복.

일제의 악랄한 식민통치에서

벗어났다는 기쁨도 잠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 화면 16 황실 가족은 급히 부산으로 피난을 떠났다.

자신의 기차표를 친척동생에게 양보한

이해경 여사는 히치하이킹으로,

힘들게 부산을 찾았다.

하지만 그곳에

이해경여사의 자리는 없었다.





# 인터뷰 이해경 / 의친왕의 다섯 번째 딸

어머니가 계신 곳을 찾아서 부산 서면에 동네 포교당에 계신다고 해서 찾아갔더니 다 내려와 계시는데 어머니도 계시고 아버지도 계시고 한 칸 방에 다 계시고 운현궁할머니, 아주머니, 광화당 할머니들 다 한 칸 방에 사시더라고요 그곳을 봤는데 내가 거기서 도저히 같이 살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나와 버렸어요





# 에필로그 18 대한제국의 황실 후손으로 태어났지만,

숨 막히는 궁중 법도가 싫고,

아버지의 후궁과

배다른 형제들이 싫었던 이해경 여사

그는 새로운 삶을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진짜 대한제국 황실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