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이미지 및 저작권 정보(N2L)
| 대표이미지 | 저작권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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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 미디어소풍 | ||
| 전자자원소장처 | 미디어소풍 | ||
| 공공누리 저작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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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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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CL 정보 | |||
| 소스코드 | <iframe width="720px" height="480px" src="http://uci.k-heritage.tv/resolver/I801:1501001-001-V00602?t=3"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
관련 파일 및 자원정보(N2R)
| 번호 | 파일명 | 파일크기 | 다운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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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숭례문 2부 숭례문 치열했던 5년의 기록_1280X720.mp4 | 169.07 M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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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숭례문 2부 숭례문 치열했던 5년의 기록_1920X1080.mp4 | 169.38 M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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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N2C)
| UCI | I801:1501001-001-V00602 | ||||||||||
|---|---|---|---|---|---|---|---|---|---|---|---|
| 제목 | 숭례문 2부 숭례문 치열했던 5년의 기록 | ||||||||||
| 콘텐츠 유형 | 동영상 | 언어정보 | 국문 | ||||||||
| 생산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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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여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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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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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 정보 | 2008년 2월 10일. 불에 탄 숭례문이 온 국민의 염원을 모아져 그 터, 그 자리에 숭례문을 다시 세우는 대역사가 시작됐다. 오늘의 것으로 숭례문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옛것을 살려 문화유산의 가치를 보존토록 한 것이다. 따라서 복원작업에 들어가는 재료 하나, 장비 하나에도 역사성과 전통을 따랐다. 600년의 시간을 하나하나 제자리에 옮겨놓는 작업! 치열했던 5년간의 복원작업, 그 현장을 만난다. <서울 숭례문 방문 정보> 위치 : 서울 중구 세종대로 40 (남대문로4가) 연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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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 2008년 2월 10일. 불에 탄 숭례문이 온 국민의 염원을 모아져 그 터, 그 자리에 숭례문을 다시 세우는 대역사가 시작됐다. 오늘의 것으로 숭례문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옛것을 살려 문화유산의 가치를 보존토록 한 것이다. 따라서 복원작업에 들어가는 재료 하나, 장비 하나에도 역사성과 전통을 따랐다. 600년의 시간을 하나하나 제자리에 옮겨놓는 작업! 치열했던 5년간의 복원작업, 그 현장을 만난다. <서울 숭례문 방문 정보> 위치 : 서울 중구 세종대로 40 (남대문로4가) 연락처 : 숭례문 관리소 02-779-8547 주변 볼거리 :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관련 홈페이지 : http://www.sungnyemun.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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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본 정보 | 2008년 2월 10일. 숭례문이 불탔다. 600년을 이어온 우리 가슴속의 보물. 온 국민의 염원을 모아 그 터, 그 자리에 숭례문을 다시 세우는 대역사가 시작됐다. 치열했던 5년간의 복원작업, 그 현장을 만난다. 숭례문을 다시 세우는 것이 온 국민의 염원이던 2008년. 문화재 전문가를 비롯, 장인들과 학계를 대표하는 전문가들로 복원 팀이 꾸려졌다. 하룻밤 불길 속에 잃어버린 600년을 다시 세우고 후세 대대로 이어갈 숭례문을 준비하는 복원작업, 그 첫걸음은 기존 숭례문에 대한 완벽한 분석에서부터 시작됐다. 먼저 불길 속에서도 용케 남아 있던 목재에 대한 분석과 해체 작업부터 시작됐다. 간신히 참화를 면한 이 목재들은 숭례문이 보낸 600년 의 시간을 간직한 소중한 원본들이다. 폐허 속을 뒤져 찾아낸 목부재가 3천여 점. 복원 팀은 이 목부재를 버리지 않고 새로 짓는 숭례문에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오늘의 것으로 숭례문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옛것을 살려 문화유산의 가치를 보존토록 한 것이다. 따라서 복원작업에 들어가는 재료 하나, 장비 하나에도 역사성과 전통을 따랐다. 복원장 한 곳에 마련된 이 대장간, 600년전 숭례문을 만들던 조선시대의 방식대로, 쇠와 불로 전통 연장을 만드는 대장간이다. 사람의 손으로 하나하나 수작업을 하게 될 전통연장들과, 돌 하나를 깨는 데도 기계가 아닌 옛 방식대로 구멍을 뚫어 파쇄하는 작업방법. 심지어 옷까지 한복을 갖춰 입었다. 숭례문에 담긴 정신까지도 되살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복원작업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숭례문의 핵심인 문루의 재료, 곧 목재를 구하는 일이었다. 600년 전의 목재와 비슷한 나무를 어떻게 구할까, 이 소식이 알려지자 자신의 나무를 써달라는 시민들, 전국각지의 좋은 나무를 알려오는 제보가 줄을 이었다. 철저한 검증 끝에 채택된 나무는 수령 100년 이상이 넘는 국내산 소나무였다. 소나무는 가공이 쉽고, 송진이 나무의 보존성을 높여줘 목재로서의 가치가 높다. 그러나 소나무를 건축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건조의 시간이 필요하다. 숭례문에 쓰일 소나무를 그늘에서 말리는데 걸린 시간만 3년이었다. 더 단단해지고 더 굳건해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 구에 5년이란 시간이 걸린 것은 이런 이유였다. 숭례문의 위용을 자랑하게 될 문루는 이런 시간을 거쳐 차츰 옛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문루와 함께 부서져버린 기와는 새로 제작해야 했다. 기와제작의 원칙 역시 최대한 옛것 그대로를 복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곳이 전남 장흥, 숭례문 기와를 분석한 결과, 장 유사한 성분비를 가진 흙이 장흥에 있었던 것이다. 곧바로 조선시대 전통방식대로 작업을 하는 기와가마가 설치되고 숭례문 복구에 쓰일 기와가 구워지기 시작했다. 옛것과 흡사한 흙과 조선시대의 가마, 그리고 전통의 작업 방식. 손으로 일일이 빚고, 가마에서 구워낸 기와는 세로로 쌓인이러한 장점은 지붕뿐만 아니라 문루의 목재가 썩는걸 방지하는 효과까지 갖게 된다. 쏟은 정성 그대로 한 장씩 빚어져 바느질 하듯 한 땀 한 땀 이어진 기와들이 마침내, 천년의 시간을 보내게 될 숭례문의 지붕으로 탄생했다. 전통 복원이라는 고집을 놓치지 않았다. 전통안료를 찾아내서 숭례문 본래의 차분한 색감을 재현하고, 옛 자료들을 뒤져가며 조선 전기의 문양을 그려냈다. 각 단계별로 세심한 노력과 원칙이 적용된 5년의 기간, 그것은 600년의 시간을 하나하나 제자리에 옮겨놓는 작업이기도 했다. 화마가 할퀴고 간 상처는 크고 깊었다. 하지만 누구도 숭례문을 포기하지 않았다. 단순한 재현을 넘어서서, 숭례문에 새겨진 한 올의 정신까지 복원하고자 했던 사람들. 그들이 보냈던 뜨거운 5년 덕분에 숭례문은 다시 우리 곁에 돌아 올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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