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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경궁 2부 문정전 앞뜰은 알고 있다_1280X720.mp4 169.63 MB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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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N2C)

콘텐츠 기본 정보
UCI I801:1501001-001-V00614
제목 창경궁 2부 문정전 앞뜰은 알고 있다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국문
생산자 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생산일자
미디어소풍 2013-06-25
기여자 정보
기여자 정보
역할 정보 기여자 명
제작사 미디어소풍
프로듀서 미디어소풍
기술 정보
기술 정보
기술 영역 기술 내용
내용정보 사적 제123호 창경궁
역사정보 조선시대
지리정보 서울특별시 종로구
요약 정보 창경궁 문정전. 그곳에 조선 최대의 비극. 사도세자의 죽음이 있다

영조 38년 윤 5월 창경궁에는 때 아닌 못질소리가 울려퍼진다. 아들을 뒤주에 가둔 아비는 직접 자물쇠를 잠그고 못을 쳐, 왕위를 이을 유일한 혈육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만다.



<창경궁 방문정보>



위치: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연락처: 02-762-4868

주변볼거리: 창덕궁, 종묘, 혜화동, 경복궁

관련 홈페이지: http://cgg.cha.go.kr
내용 창경궁 문정전. 그곳에 조선 최대의 비극. 사도세자의 죽음이 있다

영조 38년 윤 5월 창경궁에는 때 아닌 못질소리가 울려퍼진다. 아들을 뒤주에 가둔 아비는 직접 자물쇠를 잠그고 못을 쳐, 왕위를 이을 유일한 혈육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만다.



<창경궁 방문정보>



위치: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연락처: 02-762-4868

주변볼거리: 창덕궁, 종묘, 혜화동,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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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정보 조선왕조의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 창경궁

내전 전각중 하나인 환경전은 중종이 대장금의 진료를 받던 곳이었으며 지금은 없어진 자경전은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건물이었다.

또한 역대 왕들이 직접 농사 시범을 보이던 내농포도 창경궁에 있었다.

창경궁은 수많은 왕과 왕후들이 승하한 곳이자, 순조, 헌종, 정조 등이 탄생한 산실이기도 했다.

내전에 위치한 ㅁ자 형태의 독특한 전각인 집복헌.

후궁들의 처소로 사용되던 이곳은 조선 최대 비극의 주인공인 사도세자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문정전은 창경궁의 편전으로 일종의 왕의 집무실이었다. 임금이 평상시 거처하며 일상적인 집무를 보거나, 신하들과 학문을 토론하는 '경연'을 여는 곳이었던 문정전.

그런데 영조는 문정전을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 죽은 첫째왕비 정성왕후 서씨의 위패를 모셔놓은 혼전으로 삼은 후, 휘령전이라 이름붙힌 것이다. 어느 날 문정전을 거닐던 영조는 죽은 정성왕후의 환청을 듣게 된다. 변란이 호흡사이에 달려있단 말은 역모가 가깝다는 뜻으로, 영조는 이를 듣고 사도세자를 떠올리게 된다.



사도세자는 영조가 첫아들을 잃고 마흔 하나의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이었다. 세자에 대한 영조의 사랑과 기대는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사도세자는 남 달리 영특하여 왕을 기쁘게 했다.

왕세자 책봉당시 내렸던 죽책에도 그 같은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영조는 종종 아들을 불러 공부한 내용을 확인하곤 했는데, 엄격한 아버지 영조는 세자가 조금이라도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매섭게 다그쳤다.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세자는 커갈수록 비행을 일삼았고, 정신병과 강박증에 시달렸다. 영조의 분노는 나경언이란 자가 올린 고변을 통해 극에 달한다

나경언의 고변이 있고 21일 후 영조는 세자를 문정전에 부른다. 그리고 세자에게 믿기지 않는 전교를 내린다.

자결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거부한 세자... 영조는 더욱 화를 내며 아들을 뒤주 속에 가두고 스스로 못질을 하기에 이른다.



홍화문에서 남쪽으로 70여 미터 떨어진 선인문. 사도세자가 들어간 뒤주는 문정전에서 이 선인문 안쪽으로 옮겨진다. 윤 5월 중순. 양력으로는 7월의 뙤약볕 아래 여드레를 지낸 사도세자는 마침내 뒤주 안에서 숨을 거둔다.

선인문 앞에서 이 비극을 고스란히 목격했을 400년된 회화나무. 밤새 흐느꼈을 세자의 울음을 들었음일까 고통스러운 듯 온몸을 비튼채 서있다.



그러나 어떤 아비가 자식을 죽이고 가슴을 치지 않을까. 훗날 영조는 아들의 묘비에 절절한 슬픔을 토로했다.

세자가 죽자 영조는 사도세자라는 묘호를 내린다. 사도의 도는 서러워할 도로. 잔인한 운명을 서러워한 아비의 마음이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무소불위의 삶이지만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었던 두 사람. 문정전 앞뜰에는 두려움 속에 죽어간 사도세자의 처절한 외침과 후회로 가슴 치는 아버지의 눈물이 서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