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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굽이굽이 옛 이야기 서린 구룡령 옛길_1280X720.mp4 145.09 MB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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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
UCI I801:1501001-001-V00725
제목 굽이굽이 옛 이야기 서린 구룡령 옛길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국문
생산자 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생산일자
미디어파크 2013-11-19
기여자 정보
기여자 정보
역할 정보 기여자 명
제작사 미디어파크
프로듀서 미디어파크
기술 정보
기술 정보
기술 영역 기술 내용
내용정보 명승 제29호 구룡령 옛길
역사정보 ,
지리정보 ,
요약 정보 강원도 양양군 서면 갈천리부터 홍천군 내면 명개리에 걸쳐 있는 구룡령 옛길.

갈천리부터 구룡령 정상까지 2.76km 구간은 명승 제29호로 지정되어 있다.

구룡령 이라는 이름은 아홉 마리 용이 구불구불 거리며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드러운 흙길로 이루어진 구룡령 옛길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오랜 세월 백두대간의 길목을 지키고 있는데…….

선조들이 걸었던 구룡령 옛길을 따라 그 속에 담겨 있는 옛 이야기들을 만나본다.



<구룡령 옛길 방문정보>



위치 : 강원도 양양군 서면 갈천리 산
내용 강원도 양양군 서면 갈천리부터 홍천군 내면 명개리에 걸쳐 있는 구룡령 옛길.

갈천리부터 구룡령 정상까지 2.76km 구간은 명승 제29호로 지정되어 있다.

구룡령 이라는 이름은 아홉 마리 용이 구불구불 거리며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드러운 흙길로 이루어진 구룡령 옛길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오랜 세월 백두대간의 길목을 지키고 있는데…….

선조들이 걸었던 구룡령 옛길을 따라 그 속에 담겨 있는 옛 이야기들을 만나본다.



<구룡령 옛길 방문정보>



위치 : 강원도 양양군 서면 갈천리 산 1-1번지

연락처 : 강원도 양양군 관광안내전화 033)670-2397

주변볼거리 : 국립 미천골 자연휴양림, 미천골 계곡, 국립 방태산 자연휴양림

관련홈페이지 : http://tour.yangyang.go.kr
대본 정보 험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 서 있는 강원도. 비교적 산세가 평탄하여 양양과 고성에 살던 사람들이 한양에 갈 때 주로 이용하던 길이 있다. 양양과 홍천을 연결하는 ‘구룡령 옛길’이다.

아홉 마리의 용이 아흔아홉 구비의 고개를 넘다 지쳐 마을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고갯길을 넘어갔다 하여 ‘구룡령’이라 이름이 붙여진 길이다.



구룡령 옛길은 영서와 영동을 연결하는 길로 원형이 가장 잘 보존돼 있는 옛길로 꼽힌다. 길은 양양군 갈천리에서 시작돼 홍천군 명개리까지 이어진다. 고갯마루까지는 2.76km. 두 시간 정도의 거리다.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는 갈천리 계곡을 건너면 본격적인 옛길로 접어든다. 길은 굴곡이 매우 심하다. 용이 구불구불 긴 몸통을 휘저으며 아흔아홉 구비를 넘어가는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 ‘구룡령’이라 이름 붙여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조선시대 양양과 고성 지방의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러 한양으로 갈 때 이 길을 이용했다. 아홉 마리 용의 영험함에 기대 과거 급제를 기원하며 넘나들던 길이다. 장사를 하는 보부상들에게는 영동과 영서를 잇는 상품 교역로로 이용됐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발길이 갈고 닦은 길은 경사는 가파르지만 오르기 힘이 들지 않는다. 지그재그로 길이 이어진 까닭이다.



자연 속에 조화롭게 파고든 옛길. 구룡령 옛길에는 사연을 지닌 독특한 지명이 남아 길의 위치를 표시해준다. 첫 번째 표지는 묘반쟁이다. 여기에는 이야기 하나가 전해진다.

조선시대 양양과 홍천의 경계를 가르는 문제를 두고 두 고을의 수령이 묘안을 냈다. 두 수령이 각 고을에서 같은 시각에 출발해 만나는 지점을 경계로 정하기로 한 것이다.

이 때 양양의 한 청년이 수령을 등에 업고 빠르게 달렸다. 구룡령을 넘어 지금의 홍천군 내면 명계리까지 달려가 홍천의 수령을 만났다. 고개 너머까지 양양의 땅이 되었으니 양양 수령은 무척 흡족해 했다.

그러나 죽을힘을 다해 뛰었던 청년은 돌아오는 길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 이 청년의 공적을 기려 묘를 만든 것이 ‘묘반쟁이’라 전해진다. 반쟁이는 반정(半程)에서 나온 말로 여정의 반을 의미한다. 옛 사람들은 길을 오르다 힘들면 반쟁이에서 쉬어가곤 했다고 한다.

200미터 쯤 길을 더 오르면 솔반쟁이가 나온다. 굵은 금강소나무가 많아 붙여진 지명이다. 구룡령에서 가장 큰 금강소나무는 높이 25미터, 둘레가 2.7미터에 달한다. 곧고 질이 우수한 구룡령의 금강소나무는 경복궁 복원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7부 능선의 횟돌반쟁이는 묘소의 땅을 다지는 횟돌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관을 놓는 자리에 횟가루를 뿌리면 나무뿌리가 목관을 파고들지 않아 인근 마을에서 상을 당하면 이곳에 와서 횟돌을 캐갔다고 한다.

구룡령에서 백두대간에 올라 약 40분쯤 부드러운 능선을 타면 고개 마루에 닿게 된다. 정상은 꽤 널찍하다. 과거 이곳에 주막이 서 있었다고 한다.

양양사람들은 바다에서 나는 생선과 젓갈을 가져오고 홍천사람들은 밭에서 나는 감자와 옥수수를 가져와 이곳 주막에서 막걸리 한잔 하면서 물건을 바꾸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구룡령 옛길 정상에 올라서면 백두대간의 빼어난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예로부터 능선이 천리를 달리고 만리가 내다보이는 명당으로 알려져 왔다.



옛길의 곳곳에는 애환의 역사도 서려있다. 일제강점기 때 철광석을 나르기 위해 설치되었던 삭도와 철을 채굴하던 흔적이 남아있다. 인근 주민들이 강제 징집되었던 곳이다.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몇 백 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길. 옛길의 원형과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는 구룡령 옛길은 문경새재, 문경 토끼비리, 죽령 옛길과 함께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더 빠른 길, 편한 길을 찾기 시작하며 서서히 사라져간 옛길. 그 길이 되살아나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살아가던 옛 사람들의 느린 삶을 전해준다.

백두대간에 가로막힌 마을과 마을을 잇고 사람과 사람의 삶을 연결하던 옛길은 수많은 사람들의 애틋한 사연을 품고 굽이굽이 이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