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이미지 및 저작권 정보(N2L)
대표이미지 | 저작권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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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 한국문화재재단 | ||
전자자원소장처 | 아시아채널 | ||
공공누리 저작권 | |||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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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L 정보 | |||
소스코드 | <iframe width="720px" height="480px" src="http://uci.k-heritage.tv/resolver/I801:1501001-001-V00766?t=3"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관련 파일 및 자원정보(N2R)
번호 | 파일명 | 파일크기 | 다운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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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신라, 새로운 탑을 세우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_1280X720.mp4 | 70.14 M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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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신라, 새로운 탑을 세우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_1920X1080.mp4 | 70.45 M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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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N2C)
UCI | I801:1501001-001-V0076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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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신라, 새로운 탑을 세우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 ||||||||||
콘텐츠 유형 | 동영상 | 언어정보 | 국문 | ||||||||
생산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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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여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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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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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정보 | 경주 분황사는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의 권위를 세우고 백성들을 살피기 위해 지은 왕실 사찰이다. 여왕이 등극했을 때, 당 태종이 벌과 나비가 없는, 향기 없는 모란 꽃 그림을 보내오자 ‘향기로운 임금의 절-분황사(芬皇寺)’를 지어 응수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국보 제30호인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은 현재 남아있는 신라의 석탑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당시 인도와 중국에서 유행했던 전탑(벽돌로 쌓은 탑)의 형태를 빌어, 자연석을 벽돌처럼 다듬어 신라 목탑 형태로 쌓은 독특한 양식의 석탑이다. 또한 사면에 새겨진 인왕상 조각 등은 | ||||||||||
내용 | 경주 분황사는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의 권위를 세우고 백성들을 살피기 위해 지은 왕실 사찰이다. 여왕이 등극했을 때, 당 태종이 벌과 나비가 없는, 향기 없는 모란 꽃 그림을 보내오자 ‘향기로운 임금의 절-분황사(芬皇寺)’를 지어 응수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국보 제30호인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은 현재 남아있는 신라의 석탑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당시 인도와 중국에서 유행했던 전탑(벽돌로 쌓은 탑)의 형태를 빌어, 자연석을 벽돌처럼 다듬어 신라 목탑 형태로 쌓은 독특한 양식의 석탑이다. 또한 사면에 새겨진 인왕상 조각 등은 당시 신라의 빼어난 조각술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방문 정보> 위치 : 경북 경주시 분황로 94-11, 분황사 (구황동) 연락처 : 분황사 종무소 054-742-9922 주변 볼거리 : 첨성대, 서출지, 계림, 배동 삼릉 관련 홈페이지 : http://www.bunhwangsa.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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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정보 | 경주 분황사는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의 권위를 세우고 백성들을 살피기 위해 지은 왕실 사찰이다. 여왕이 등극했을 때, 당 태종이 벌과 나비가 없는, 향기 없는 모란 꽃 그림을 보내오자 ‘향기로운 임금의 절-분황사(芬皇寺)’를 지어 응수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국보 제30호인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은 현재 남아있는 신라의 석탑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당시 인도와 중국에서 유행했던 전탑(벽돌로 쌓은 탑)의 형태를 빌어, 자연석을 벽돌처럼 다듬어 신라 목탑 형태로 쌓은 독특한 양식의 석탑이다. 또한 사면에 새겨진 인왕상 조각 등은 당시 신라의 빼어난 조각술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