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이미지 및 저작권 정보(N2L)
| 대표이미지 | 저작권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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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 한국문화재재단 | ||
| 전자자원소장처 | 미디어소풍 | ||
| 공공누리 저작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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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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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CL 정보 | |||
| 소스코드 | <iframe width="720px" height="480px" src="http://uci.k-heritage.tv/resolver/I801:1501001-001-V00800?t=3"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
관련 파일 및 자원정보(N2R)
| 번호 | 파일명 | 파일크기 | 다운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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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마곡사 2부 승려가 된 김구_1280X720.mp4 | 157.01 M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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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마곡사 2부 승려가 된 김구_1920X1080.mp4 | 157.38 M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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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N2C)
| UCI | I801:1501001-001-V00800 | ||||||||||
|---|---|---|---|---|---|---|---|---|---|---|---|
| 제목 | 마곡사 2부 승려가 된 김구 | ||||||||||
| 콘텐츠 유형 | 동영상 | 언어정보 | 국문 | ||||||||
| 생산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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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여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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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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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 정보 | 마곡사가 위치한 태화산 자락. 솔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선 사이로 호젓이 난 숲길이 있다. 11KM 에 달하는 산책로의 이름은 백범 명상길. 해방 후 이 곳을 추억하며, 백범 김구 선생이 심었다는 향나무다. 향나무는 사람의 뜻을 향기에 실어 멀리 하늘까지 전한다고 하는데-그 향나무에 싣고 싶었던 김구의 뜻은 어떤 것이었을까. 민족의 영원한 지도자 김구, 백범 김구의 은신처 마곡사로 떠나보자. <마곡사 방문정보> 위치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567 연락처 : 041)841-6226 주변 볼거리 : 무령왕릉, 모덕사 관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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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 마곡사가 위치한 태화산 자락. 솔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선 사이로 호젓이 난 숲길이 있다. 11KM 에 달하는 산책로의 이름은 백범 명상길. 해방 후 이 곳을 추억하며, 백범 김구 선생이 심었다는 향나무다. 향나무는 사람의 뜻을 향기에 실어 멀리 하늘까지 전한다고 하는데-그 향나무에 싣고 싶었던 김구의 뜻은 어떤 것이었을까. 민족의 영원한 지도자 김구, 백범 김구의 은신처 마곡사로 떠나보자. <마곡사 방문정보> 위치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567 연락처 : 041)841-6226 주변 볼거리 : 무령왕릉, 모덕사 관련 홈페이지 : www.magoksa.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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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본 정보 | 전란의 틈이 없다는 십승지지에 자리한 마곡사.이곳엔 사람의 뜻을 향기에 실어 천년을 전한다는 향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다. 나이 일흔이 넘어 마곡사에 와 나무를 심은 이. 그가 바로 백범 김구다.백범 김구가 향나무에 실어 전하고 싶었던 뜻은 무엇이었을까. 마곡사가 위치한 태화산엔 백범 명상길이라 는 산책로가 있다. 소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선 사이로 호젓이 난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백련암이라는 작은 암자를 만나게 된다. 이 백련암에 거하며 수행했던 수많은 스님들중 청년 김구가 있었다. 속세와 인연을 끊고 해탈의 경지에 오르고자 했던 스무살 청년 김구.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1895년 벌어진 명성황후시해사건,그 소식은 청년 김구의 인생을 뒤흔들었다. 울분에 차있던 김구는 황해도 치하포에서 우연히 만난 일본인 중위를 죽이고 만다. 곧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중 김구는 고종의 명으로 목숨을 건진다. 이 때 김구는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며 탈옥을 감행했다. 그 후 수원, 목포, 함평 등 이 곳 저곳을 떠돌던 김구가 택한 곳이 태화산 마곡사였다. 예로부터 천하제일의 명당으로 손꼽히던 땅.마곡사에 온 김구는 승려가 되기로 결심한다. 세상의 모든 잡념이 식은 재와 같다 라는 생각 끝에 출가를 한 김구, 원종이라는 법명도 얻는다. 그리고 태화천 옆 바위에서 삭발식을 갖고-하룻밤사이, 청정법계의 세계로 들어간다. 불교에 귀의한 청년 김구는 이 곳 마곡사에 기거하며 수도생활을 했다.중이 되려면, 먼저 자기 마음을 낮추어야 한다는 불법에 따라 낮에는 일하고, 밤이면 부지런히 불경을 외웠다. 그렇게 부처와 불법을 향해 정진했지만,김구는 온전히 풍진세상의 인연을 끊을 수 없었다.머릿속엔 울분과 통탄이 더해갔다.그 때마다 김구는 이 길을 수도 없이 걸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이다. 가난한 나라, 너무나 허약한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마곡사에 들어온 지 6개월.수도승 김구는 결심을 굳힌다. 더 이상 자신앞에 놓인 과제를 외면하지 않겠다 다짐하며 산을 내려간 것이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에서 우리 근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독립투사 김구로의 결정적 전환의 시점에 마곡사가 있었다. 서울로 올라와 신교육사업에 뛰어들었고 한일합방 조약이 체결되자 군자금을 모으다 다시 투옥되기도 했다. 이후 중국 상해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임시정부 주석으로 올라 해방이후 귀국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상해,만주를 진행된 조국해방과 독립의 최전선에 그가 있었다. 1946년.일흔의 나이에 김구는 해방된 조국에서 다시 마곡사를 찾는다. 그리고 젊은시절 그를 일깨웠던 대광보전의 글귀를 보며 깊은 감회에 잠겼다. 각래관세간 유여몽중사 물러나와 세상일을 돌아보니, 모두가 마치 꿈속의 일과 같다. 이때 김구는 마곡사에 무궁화 한 그루와 향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그 때 심은 무궁화는 사라졌지만, 천년을 산다는 향나무는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직 한 길.살아서도 죽어서도 조국의 독립을 간절히 원했던 백범 김구.해방된 조국에 닥친 분단이라는 크나큰 시련속에서 숨을 거두어야했던 그는 이곳 마곡사에 ‘영원히 잊지 않는다’는 한마디 말을 남겼다. 강건한 나라, 바르고 지혜로운 민족의 영원한 번영을 염원했던 백범 김구의 일생은 마곡사 향나무에 심겨져 오늘도 우리를 일깨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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