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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
UCI I801:1501001-001-V00812
제목 서해 최북단 섬의 아름다운 절경, 백령도 두무진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국문
생산자 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생산일자
한국문화재재단 2013-12-10
기여자 정보
기여자 정보
역할 정보 기여자 명
제작사 한국문화재재단
서비스권자 한국문화재재단
프로듀서 아이앤티디지털
기술 정보
기술 정보
기술 영역 기술 내용
내용정보 명승 제8호 옹진 백령도 두무진
역사정보 시대미상
지리정보 인천광역시 옹진군
요약 정보 1997년 12월 30일 명승 제8호로 지정되었다. 백령도의 북서쪽에 있는 포구로, 지정면적은 4,500,000㎡이다. 백령도의 원래 명칭은 곡도로, 따오기가 흰날개를 활짝 펴고 나는 모습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연화리의 지명은 마을 앞에 연꽃이 많이 피는 연당이라는 연못이 있어서 연지동이라고 부르다가 후에 연화리로 개칭한 것이다.

두무진이라는 이름은 뾰족한 바위들이 많아 생긴 모양이 마치 머리털 같다고 하여 두모진이라 부르다가 후에 장군머리 같은 형상이라 하여 두무진으로 개칭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곳을 산림
내용 1997년 12월 30일 명승 제8호로 지정되었다. 백령도의 북서쪽에 있는 포구로, 지정면적은 4,500,000㎡이다. 백령도의 원래 명칭은 곡도로, 따오기가 흰날개를 활짝 펴고 나는 모습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연화리의 지명은 마을 앞에 연꽃이 많이 피는 연당이라는 연못이 있어서 연지동이라고 부르다가 후에 연화리로 개칭한 것이다.

두무진이라는 이름은 뾰족한 바위들이 많아 생긴 모양이 마치 머리털 같다고 하여 두모진이라 부르다가 후에 장군머리 같은 형상이라 하여 두무진으로 개칭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곳을 산림이 울창한 곳이라 하여 두모진이라고 하였으나, 러일전쟁 때 일본의 병참기지가 생긴 후로 두무진으로 바뀌었다고도 한다. 예전부터 이곳에는 해적의 출입이 많았다고 전해지며 1832년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인 토마스가 두문진을 통해 상륙하였다.

주로 사암과 규암으로 되어 있으며, 층리가 잘 발달하여 곳에 따라 사층리의 물결자국이 관찰된다. 오랫동안 파도에 의해 이루어진 병풍같이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과 가지각색의 기암괴석이 솟아 있어 금강산의 만물상과 비견되어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린다.

홍도나 거제도의 해금강의 기암괴석과는 달리 층상암벽에 코끼리바위, 장군바위, 신선대, 선대바위, 형제바위 등 온갖 모양이 조각된 바위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홍도와 부산 태종대를 합쳐 놓은 듯한 절경이다.

특히 선대바위는 1612년(광해군 5) 백령도로 귀양온 이대기가 《백령도지》에서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높이 30~40m 되는 일부 암벽에는 해국이, 해안에는 땅채송화, 갯질경이, 갯방풍, 벌노랑이 같은 염생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큰바위 틈에서 범부채가 자라고 있다.

<백령도 두무진 방문정보>
소재지 :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연화리 255-1 외
문의처 : 백령면사무소 032-899-3512
주변볼거리 : 콩돌해안, 사곶천연비행장, 심청각, 대청도
관련 홈페이지 : http://www.ongjin.go.kr/main/index.asp?
대본 정보 1997년 12월 30일 명승 제8호로 지정되었다. 백령도의 북서쪽에 있는 포구로, 지정면적은 4,500,000㎡이다. 백령도의 원래 명칭은 곡도로, 따오기가 흰날개를 활짝 펴고 나는 모습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연화리의 지명은 마을 앞에 연꽃이 많이 피는 연당이라는 연못이 있어서 연지동이라고 부르다가 후에 연화리로 개칭한 것이다.

두무진이라는 이름은 뾰족한 바위들이 많아 생긴 모양이 마치 머리털 같다고 하여 두모진이라 부르다가 후에 장군머리 같은 형상이라 하여 두무진으로 개칭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곳을 산림이 울창한 곳이라 하여 두모진이라고 하였으나, 러일전쟁 때 일본의 병참기지가 생긴 후로 두무진으로 바뀌었다고도 한다. 예전부터 이곳에는 해적의 출입이 많았다고 전해지며 1832년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인 토마스가 두문진을 통해 상륙하였다.

주로 사암과 규암으로 되어 있으며, 층리가 잘 발달하여 곳에 따라 사층리의 물결자국이 관찰된다. 오랫동안 파도에 의해 이루어진 병풍같이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과 가지각색의 기암괴석이 솟아 있어 금강산의 만물상과 비견되어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린다.

홍도나 거제도의 해금강의 기암괴석과는 달리 층상암벽에 코끼리바위, 장군바위, 신선대, 선대바위, 형제바위 등 온갖 모양이 조각된 바위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홍도와 부산 태종대를 합쳐 놓은 듯한 절경이다.

특히 선대바위는 1612년(광해군 5) 백령도로 귀양온 이대기가 《백령도지》에서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높이 30~40m 되는 일부 암벽에는 해국이, 해안에는 땅채송화, 갯질경이, 갯방풍, 벌노랑이 같은 염생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큰바위 틈에서 범부채가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