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이미지 및 저작권 정보(N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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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N2C)
UCI | I801:1609001-001-V000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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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강 선사시대 상 | ||||||||||||||
콘텐츠 유형 | 동영상 | 언어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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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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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키워드 | ;;최태성;큰별쌤;선사시대;청동기;구석기;주먹도끼; | ||||||||||||||
요약 정보 | 마스터 | ||||||||||||||
내용 | ‘문화재’의 사전적 의미는 조상들이 남긴 유산 중에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아서 보호해야 할 것을 뜻한다. 문자가 없던 시기, 구석기와 신석기 청동기 사람들의 삶은 어땠을까. 선사시대의 문화유산들을 통해 역사가 말하는 것들에 귀 기울여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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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정보 | 안녕하세요! 큰별쌤 최태성입니다. 교과서에 수많은 문화재들이 등장하죠. 문화재가 뭔가요. 사전적 의미는 조상들이 남긴 유산 중에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아서 보호해야 할 것인데요, 우리는 문화재를 왜 배우고 또 기억해야 하는 걸까요? 그냥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아닐 겁니다. 오늘부터 문화재들 속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만나면 그 답을 찾아보려고 해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 듯 수십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문화재들을 만나볼 겁니다. 매 시간마다 퀴즈도 하나씩 풀어볼 거예요. 오늘은 첫 시간이니까 아주 간단한 퀴즈로 시작해 보죠. 다음 유적이 처음 만들어진 시기의 사회 모습으로 적절한 것은? 보기를 먼저 볼까요?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였다. 철제 농기구를 사용하였다, 지배자인 군장이 등장하였다, 빗살무늬 토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주로 동굴이나 강가에 막집을 짓고 살았다… 사진 속의 문화재는 뭔지 아시죠? 고인돌! 맞습니다. 어느 시대인지 아시죠? 청동기시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뭘 알려주는지도 알고 있나요? 이 문제는 선사시대 각 시기의 특징과 사회 모습을 알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예요. 자, 그럼 선사 시대로 가봅니다. 인류는 도구를 사용한 것은 재료와 발달 정도에 따라 구석기와 ·신석기, 청동기·철기 시대로 분류되죠. 구석기시대는 기원전 70만 년으로 올라갑니다. 까마득한 먼 옛날이에요. 하지만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주 긴 시대지요. 구석기인들은 주먹도끼로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활동적인 삶을 영위 했어요. 당시 사람들이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한 도구는 뗀석기입니다. 말 그대로 큰 돌을 ‘탁탁탁’ 쳐서 가장자리를 떼어낸 석기지요. 대표적인 유물은 손에 쥐고 쓸 수 있는 주먹도끼입니다. 구석기시대의 유물을 논할 때 지나칠 수 없는 곳이 한 곳 있는데요 바로 경기도 연천 전곡리입니다. 주먹도끼가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지역이 바로 전곡리거든요. 여기에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1978년 그렉 보웬이라는 주한민군이 한탄강변에서 애인과 데이트를 하고 있었어요.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주전자에 물을 끓이려고 돌을 모으는데,여자 친구가 웬 이상한 돌을 주워온 거예요. 그런데 이 미군의 전공이 뭐였는지 아세요? 고고학이었대요. 멀리 한국까지 온 이유도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학비에 보태려 했던 거라네요. 돌멩이를 가만 들여다보니 자연 풍화로 깨진 돌멩이가 아니라 인위적인 힘에 의해 떼어진 석기인 거예요. What? What is This? 단순한 돌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보고서를 만들어 세계적인 고고학 전문가에게 보냈습니다. 그 돌이 바로 주먹도끼였습니다. 그런데 주먹도끼가 왜 중요한 걸까요? 주먹도끼는 구석기시대로 치면 요즘의 스마트폰처럼 굉장한 선진기술의 산물입니다. 주먹도끼 이전에는 두 손으로 들고 찍어야 하는 석기를 썼단 말이에요. 그런데 주먹도끼는 한 손에 쏙 들어옵니다. 구석기인은 동굴이나 막집에서 살았어요. 아무 동굴에나 들어가서 그냥 다리 쭉 뻗고 쉬면 그만이었어요. 그러니 요즘처럼 전세자금 걱정도 없었겠죠? 그런데 기후가 매우 추워서 옷 걱정을 해야 했고 과일을 따 먹거나 사냥을 해서 먹고 살아야 했죠. 이때 이 주먹 도끼가 매우 유용했을 것 같지 않나요? 도끼의 뾰족한 끝으로 땅도 팔 수 있고 가죽도 벗길 수도 있고 나무도 가를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맥가이버 만능 칼이었던 셈이죠. 이 주먹도끼는 그때까지 유럽과 아프리카에서만 발견되고 아시아권에서는 없었어요. 그래서 유명한 고고학자들조차도 “아시아? 거기에는 구석기문화가 없어. 미개해”라며 평가절하하고는 했지요. 그런데 한탄강변에서 동아시아 최초로 주먹도끼가 발견된 겁니다. 세계 고고학계가 발칵 뒤집어졌겠죠. 정식으로 발굴 조사가 진행됐고, 당시 주먹도끼를 비롯해서 자갈로 만든 찍개 등 4천5백여 점의 유물이 발굴됐죠. 연천 전곡리 유적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구석기 유적으로 지정됐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이제 신석기시대로 넘어갑니다. 신석기시대의 도구는 구석기시대와 어떻게 다를까요? 구석기시대의 이동생활에서 벗어나 신석기시대에는 비로소 정착생활을 하게 됩니다.아울러 제1차 녹색 혁명이 일어나 농사를 짓기 시작해요. 물론 당시의 농경은 쌀이 아닌 밭농사였지요. 옷 입는 법도 한결 그럴 듯해졌습니다. 식물에서 실을 뽑아 옷감을 만드는 기술이 등장한 거예요. 실을 엮어 그물을 만들기도 하고요.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뼈바늘과 가락바퀴가 발굴됐거든요. 뼈바늘은 뼈로 만든 바늘이고 가락바퀴는 원시적인 물레라고 할 수 있어요. 가운데에 있는 구멍에 막대기를 끼우고 실을 뽑아낼 때 그 실을 막대기에 감는 겁니다. 신석기인은 어디에서 살았을까요? 구석기인은 동굴이나 막집에서 살았잖아요. 신석기인은 움집에서 살았습니다. 주로 강가나 바닷가에서 움집을 지었어요. 이런 지대는 흙이 무르니까 땅을 파기가 쉽잖아요. 이때는 벽을 쌓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구덩이를 파고 내려간 다음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었어요. 밖에서 보면 세모난 지붕이 마치 텐트를 쳐놓은 것처럼 보여요. 서울에는 암사동 유적지가 있어요. 1925년 을축년에 유례없는 기록적인 비가 내렸답니다. 7월부터 두 달 동안 무려 네 차례나 태풍이 강타했고 한강이 넘쳐 대홍수가 났어요. 엄청난 홍수에 마을이 사라질 정도로 흙이 쓸려 내려갔어요. 그리고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이전에 한 번도 볼 수 없던 수수께끼 같은 흔적이 드러났어요. 이때 땅 속에 묻혀있던 유물이 모습을 드러낸 겁니다! 그 곳에서 엄청난 양의 토기와 석기가 발굴됐죠. 당시 발굴된 유물들을 보면 신석기시대에는 도구를 제작하는 기술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을 알 수 있어요. 구석기시대에는 돌멩이를 떼어서 뗀석기를 만들었잖아요? 그런데 신석기시대에는 표면을 매끈하게 갈아낸 간석기를 사용했어요. 또 하나 여러분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토기입니다. 농사를 짓다 보니 음식을 담거나 씨앗이나 수확물을 저장할 필요가 생긴 거예요. 토기는 음식이나 곡식을 담기 위해 만든 겁니다. 당시에 등장한 토기로 뭐가 있을까요? 빗살무늬토기, 아가리무늬토기나 덧무늬토기, 눌러찍기토기 등이 있지요. 여러분이 잘 아는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이지요. 이 토기는 밑이 뾰족한 게 특징이에요. 이렇게 뾰족하게 만들면 쓰러지잖아요. 어떻게 세웠을까요?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다 이유가 있어요. 당시 사람들이 거주했던 강가나 해안가는 땅이 무르잖아요. 그러니까 밑을 뾰족하게 해서 흙에 꾹 박아놓고 사용한 거죠. 무늬 또한 생선뼈 등으로 파도 등을 새겨 넣었을 거예요. 매우 스마트하지요?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이렇게 보관한 곡물이나 도토리 같은 열매를 갈아서 요리를 해 먹었는데요, 이때 절굿공이 역할을 한 기구가 갈돌입니다. 일종의 원시맷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갈돌로 갈판 위의 음식이나 곡물들을 갈았던 거죠. 자, 조금만 더 상상력을 발휘해 볼까요. 빗살무늬토기를 이용해서 음식을 보관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일정한 장소에 머물러 살았다는 증거예요. 실제로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된 암사동 유적에서 30여기의 집터가 발굴됐는데요, 이 집터에 움집을 짓고 기원전 4000년에서 3000년 사이에 걸쳐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움집터를 보면 크기는 5~6미터, 깊이는 50~100센티미터 정도 되는데요, 가운데에 화덕자리가 있습니다. 둘레에 모여앉아 따뜻한 불도 쬐고 고기도 구워먹으며 옹기종기 살아간 거지요. 이 집터에서 빗살무늬토기 이외에도 돌도끼나 그물추, 불에 탄 도토리 등이 나왔습니다. 특히 불에 탄 도토리로 봐서 빗살무늬토기에 도토리를 담아 먹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