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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
UCI I801:1609001-001-V00003
제목 1강 선사시대 하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생산일자
문화재청 2016-06-01
기여자 정보
기여자 정보
역할 정보 기여자 명
배포사 한국문화재재단
개발사 문화재청
제작사 CL9
주연 최태성
기술 정보
기술 정보
기술 영역 기술 내용
기타정보
내용정보 국보 제285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역사정보 선사시대,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인물정보
지리정보 울산광역시 울주군
관련 키워드 ;;최태성;큰별쌤;선사시대;청동기;구석기;신석기;농경;;철기
요약 정보 마스터
내용 ‘문화재’의 사전적 의미는
조상들이 남긴 유산 중에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아서 보호해야 할 것을 뜻한다.
문자가 없던 시기, 구석기와 신석기 청동기 사람들의 삶은 어땠을까.
선사시대의 문화유산들을 통해 역사가 말하는 것들에 귀 기울여 본다.
대본 정보 어느덧 시간이 흘러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가 막을 내리고
인류는 드디어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됩니다.
바로 청동기시대죠.
청동기시대가 되면서 농업에 변혁이 일어났어요.
벼농사를 지은 거죠.
그런데 벼농사를 하려면 인공적으로 논에 물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김도 매고 추수도 해야죠.
즉 농사를 짓는 데에도 지식과 기술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당연히 시대가 내려가겠지요?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농사를 지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유물로 농경문 청동기가 있습니다.
폭 12.8 센티미터의 작은 청동기죠.
대전의 한 고물상에서 우연히 발견됐는데요,
아랫부분은 사라졌고 윗부분에 난 여섯 개의 작은 구멍은
끈을 매달아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안에 새겨진 그림을 살펴볼까요?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 두 마리가 있어서,
솟대 혹은 당시 종교적 의미를 가진 ‘소도’라고 봅니다.
남자로 보이는 사람이 긴 막대기를 들고 있습니다.
곡식을 타작할 때 쓰는 도리깨처럼 보이네요.
오른 쪽에 벌거벗은 남자는 농기구로 밭을 갈고 있어요.
그 남자 아래로는 열 개의 선이 그어져 있어서
농작물이 심어져 있는 ‘밭’일 겁니다.
밭의 왼쪽에서는 한 여자가 무언가를 바구니에 담고 있네요,
곡식을 수확하는 거겠죠.
자, 청동기시대의 유물 중 꼭 기억해야할 유물이 있어요.
바로 반달돌칼입니다.
말 그대로 돌로 만든 반달 모양의 칼인데요,
바로 곡물의 이삭을 베기 위해 제작한 농기구지요.
어? 청동기시대 도구인데 왜 돌칼일까요?
청동기로 농기구를 만들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청동기는 최첨단 기술로 만드는 공예품이어서
지배계급을 위한 의식용품이나 무기만 만들 수 있었어요.
따라서 청동으로 만든 농기구는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농사만 지었던 것은 아니에요.
1971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경상북도 울주 반구대에서
높이 3미터 너비 10미터의 절벽에서
아주 오래된 그림을 발견했어요.
이렇게 절벽에 그림을 새겨놓은 것을
반구대 암각화라고 합니다.
이 반구대 암각화에는 당시의 생활상이 풍부하게 담겨있어요.
호랑이도 보이고 멧돼지도 보이고 사슴도 보이고
여러 가지 동물들이 보입니다.
잘 들여다보면 새끼 밴 고래라든지,
배에 탄 사람들이 작살로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등지느러미가 없는 ‘북방긴수염고래’도 보이고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는
‘혹등고래’로 추정됩니다.
다섯 개의 선이 그려져 있는 이 고래는 ‘귀신고래’예요.
암각화에 그려진 고래들은 바다를 헤엄치기도 하고
사람들이 쳐 놓은 그물에 잡히기도 합니다.
지금이야 별 것 아닌 작품으로 보이겠지만,
실은 이것이 전 세계 고래잡이 유적 중
가장 오래된 거라고 하니 참 대단하지요?
이제 당시 사회구조가 어떠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가 평등사회였다면,
청동기시대는 계급사회예요.
그 증거가 문화유산에 남아있죠.
청동기시대의 계급사회를 가장 잘 보여주는 유물은
고인돌입니다.
고인돌은 지배자의 무덤이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기도 해요.
전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에 제일 많이 있습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지요.
그런데 기둥을 받친 덮개돌을 보세요.
강화도에 있는 가장 큰 고인돌은
덮개돌의 무게가 53톤이나 나간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원되어야
이걸 올릴 수 있었을까요?
한 사람의 무덤을 위해 여러 사람을 부릴 수 있었다는 점은
지배와 피지배 계급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근거입니다.
그리고 이런 계급사회를 배경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가 출발합니다.
바로 고조선이죠.
기원전 2333년의 일이었습니다.
고조선은 청동기를 배경으로 출발해서
철기시대까지 번성합니다.
고조선의 세력 범위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요하강을 기점으로 동쪽을 요동이라고 하고
서쪽을 요서라고 하는데요,
고조선의 문화 세력범위는 대략 요서와 요동,
그리고 한반도의 북부지역을 아우릅니다.
이 세력 범위를 보여주는 유적이 바로 고인돌이고,
대표적인 유물로는 비파형동검이 있습니다.
비파형동검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기예요.
비파형동검을 보면 칼날의 하단부고 둥글고 풍만하게 퍼져있고,
몸체의 중앙부에서 굵고 둥근 기둥 형태가 있으며
칼날 좌우에 돌기가 발달했는데요,
이런 모양이 악기 ‘비파’처럼 생겼다고 해서
‘비파형동검’이라고 불러요.
손잡이는 대개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발굴하면 청동으로 만든 칼날만 출토되는 경우가 많죠.
그리고 비파형 동검의 분포지역과 일치하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또하나 있습니다.
바로 미송리식 토기죠.
압록강 하구 미송리에서 발견된 이 토기는
밝은 갈색에 복주머니처럼 생겼는데요,
미송리식토기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손잡이가 달려있다는 거예요.
아마도 물항아리로 쓰이지 않았을까,
역사학자들은 추측합니다.
이제 퀴즈를 다시 볼까요.
다음 유적이 처음 만들어진 시기의 사회 모습으로
적절한 것은?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유물이죠.
무엇을 알려주나요? 계급사회를 말해주죠.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였다 이건 어느 시대예요? 신석기!
철제 농기구를 사용하였다 어느 시대죠?
철제 농기구니까 철기죠.
지배자인 군장이 등장하였다 청동기 시대죠.
고인돌이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구분을 알려주는
유물이잖아요.
빗살무늬 토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빗살무늬 토기는 어느 시대죠? 신석기.
주로 동굴이나 강가에 막집을 짓고 살았다
동굴이나 막집은 어느 시대죠? 구석기죠.
정답은 3번입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우리 문화재>!
오늘은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의
문화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요. 어떤 역사학자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습니다.
이제 과거와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문화재에 담겨있는 시간들을 꺼내
역사가 말하는 것들에 귀 기울여 보시기 바라면서
오늘 이 시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