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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
UCI I801:1609001-001-V00016
제목 14강 조선의 과학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생산일자
문화재청 2016-06-01
기여자 정보
기여자 정보
역할 정보 기여자 명
배포사 한국문화재재단
개발사 문화재청
제작사 CL9
주연 최태성
기술 정보
기술 정보
기술 영역 기술 내용
기타정보
내용정보 국보 제230호 혼천의 및 혼천시계, 국보 제249-1호 동궐도,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보물 제561호 금영 측우기, 국보 제229호 창경궁 자격루
역사정보 조선시대
인물정보
지리정보 서울특별시 성북구,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전광역시 유성구
관련 키워드 ;;최태성;큰별쌤;선사시대;과학;조선의 과학;고대;왕권강화;천문과학;별자리;
요약 정보 마스터
내용 고대부터 하늘의 질서를 아는 것은 왕권강화와 관련이 있었다.
그래서 천문과학은 아주 중요한 기술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과학은 실용정신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조선시대 과학을 통해 백성을 생각한 왕의 마음을 느껴본다.
대본 정보 안녕하세요! 큰별쌤 최태성입니다.
오늘은 돈 얘기로 시작해 볼까요.
여기 만 원짜리 지폐가 있어요.
앞면의 모델은 모두가 아는 대로 세종대왕이죠?
그런데 뒷면을 보면요,
조선의 과학 유산들이 숨어있어요.
뭔지 아나요?
혹시 몇 개나 보이나요?
우선 여기 보이는 동그란 것은
‘혼천의’라는 천문관측기예요.
왼쪽으로 보이는 것은 보현산 천문대의 ‘망원경’이고,
배경에 희미한 별자리 그림은 ‘천상열차분야지도’입니다.
혼천의와 보현산 천문대, 그리고 천상열차분야지도!
조선의 과학 유산이죠. 하늘의 과학입니다.
지금부터 이 만 원짜리 지폐를 떠올리면서
강의를 들어보세요.
그럼, 오늘의 퀴즈를 볼게요.
Q.다음 글의 내용과 가장 거리가 먼 문화유산은
무엇일까요?
조선 초기에는 민족 문화가 크게 발달하였다.
당시의 집권층은 민생 안정과 부국강병을 위하여
과학 기술과 실용적 학문을 중시했다.
보기에는 다섯 개의 문화유산이 있는데요,
답을 알려면 조선시대의 과학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주제도 ‘조선의 과학’입니다.


먼저 하늘의 과학을 보죠.
하늘의 질서를 아는 것은 왕권강화와 관련이 있었죠.
그래서 천문기술은 아주 중요한 기술이었어요.
1395년 조선 태조 때에는 천문도를 비석에 새겼습니다.
바로 ‘천상열차분야지도’예요.
‘천상’은 ‘하늘 위’가 아니라 ‘하늘의 모습’을 뜻하고
‘열차’는 ‘차례로 늘어놓았다’는 뜻이죠.
또 ‘분야’는 ‘구획된 땅’을 의미합니다.
‘도’는 ‘그림’이죠.

그러니까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하늘의 모습을 차례로 늘어놓고 그 하늘 아래
땅을 배당한 그림인 거예요.
별자리를 정교하게 수놓았지요?
동그라미 안에 꽉 차 있는 게 모두 별이에요.
실제로 하늘의 별을 세는 것처럼 복잡하죠.

이 별들을 하나하나 세어본 학자들이 있었는데요
별자리가 290여 개, 별이 1,460여개라고 하네요.

그림 아래에
이 별들의 이름이 한자로 적혀 있는 게 보이죠?
옛날 학생들은 이 별 이름들을 다 외워서 시험을 봤어요.
왼쪽 부분을 둥글게 돌아나가는 하얀색 선은 뭘까요?
바로 은하수예요.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고구려 천문도를 참고로 해서 만들었지요.
물론 현재 고구려 천문도는 실존하지 않습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든 데에는 정치적 동기가 있습니다.

태조가 조선의 문을 열었잖아요?
백성에게 하늘의 질서를 보여주면서
왕조의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한 거죠.
조선시대에 ‘왕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신성한 존재였죠.
또 하늘의 기운이 길흉을 좌우한다고 믿었죠.
그래서 일식을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천명을 받은 군주가 통치를 잘못해서 일어나는 재해로
받아들였어요.
일식을 예측해 왕에게 보고해야 했죠.

당시에 천문을 관장한 관청은
고려 말부터 이어진 서운관이에요. //
1432년 음력 1월 1일,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서운관이 일식을 예보했어요.
왕을 비롯한 신하들이 예를 갖추고 기다렸겠죠?
하지만 일식은 예상 시간보다 14.4분 늦게 일어났고
세종은 예보가 틀린 죄를 물어 곤장을 쳤다고 합니다.
담당 관리는 억울했을 겁니다.
역법대로 했는데 틀렸으니까요.
그만큼 중요하게 여겼다는 거겠죠.
이렇게도 생각해보죠.
조선은 농업국가였잖아요?
그만큼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때 개발된 천체 관측 도구로는
‘혼천의’와 ‘간의’가 있습니다.
별들의 움직임을 재는 각도기인데요,
세종 때 만들었어요.
조선시대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를 돌기 때문에
하늘은 둥글며 땅은 네모나다고 여겼어요.
그래서 하늘을 이해하기 위해 혼천의(渾天儀)를 만들어
천체의 운행 이치를 배우고,
별자리가 그려진 천문도나 해시계를 통해
24절기와 시간을 관측한 거죠.
특히 간의는 혼천의의 여러 환을
따로따로 회전하도록 만든 관측기구예요. //

적도환과 사유환의 실을 통해서
별과 태양의 위치를 측정할 수 있었죠.
여기 이 그림은 조선시대 후기에 그려진
동궐도라는 그림이에요.
누가 언제 그렸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분명한 사실은
1830년대에 궁궐에 화재가 났었는데
불 타 없어진 건물들도 다 그려져 있는 걸로 봐서
그 전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 그림을 확대해서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보입니다.
창덕궁 앞 쪽으로
간의와 측우기가 설치돼 있는 게 보이죠?
마치 기록사진처럼 생생합니다.
그림 속의 측우기를 볼게요.
측우기는 ‘비의 양을 측정하는 기구’라는 뜻입니다.
겉으로 보면 깡통처럼 보이죠?
그런데 어떻게 ‘세계 최초의 우량계’라는 타이틀을
얻었을까요.
바로 안에 새겨진 작은 눈금들 덕분이죠.
안에 눈금자를 넣어서 빗물의 양을 잰 겁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건 실용성이에요.
몇 월에 얼마만큼 비가 왔는지 꾸준히 기록해서
데이터베이스, 자료를 만든 거죠.
자료가 쌓이면 뭐가 가능한가요?
어느 계절에 강수량이 어느 정도 될지 예측할 수 있죠.
이런 강우 측량 시스템은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유럽 같은 다른 나라에서도 농경에 써먹었어요.

하지만 대단한 것은 조선이 세계 최초였다는 겁니다.
그리고 비록 서울 지역에 한정되기는 했지만
측우기로 200여 년 동안 관측한 자료가 남아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에는 시계를 볼게요.
해시계에는 대표적으로 앙부일구가 있지요.
이름 뜻부터 풀어볼까요?
‘앙’은 앞쪽 또는 열린 쪽을 뜻합니다.
‘부’는 가마솥을 의미하죠.
‘일구’는 해 그림자라는 뜻도 있고 해시계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앙부일구는
‘솥 안쪽의 해시계’라는 거예요.
지구를 반으로 자른 듯한 모양이죠.
꼭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처럼 생겼는데요,
안에 든 바늘의 그림자를 보고 시간을 아는 겁니다.

반구형의 대접모양에는
24절기와 12지신이 새겨져 있어요.

해가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지면서 생기는 그림자가
시각선에 비쳐 시간을 알 수 있고,
또 절기마다 태양의 고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계절선에 비치는 그림자 길이를 보고
24절기를 알 수 있죠.
잠깐 질문 하나 해볼까요?
가운데 놓인 꼬챙이처럼 생긴 바늘은 ‘영침’입니다.
살짝 기울어져 있는데요,
실수였을까요? 아닐 겁니다.
그럼 왜 기울여 달았을까요? //

놀랍게도 영침이 기울어진 정도는
서울의 위도와 일치합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37도 39분 15초,
세종 때 기준으로 환산하면 37도 20분이죠.

이렇게 그림자 바늘의 각도를 서울에 맞춘 것은
이 시계가 중국이 아닌 조선의 시간을 재는
시계였다는 걸 의미해요.
그리고 앙부일구의 또 다른 특징은
쥐와 소, 호랑이와 토끼 등 12지신 그림을 보고
시간을 읽는다는 겁니다.
집현전 직제학 김돈의 설명을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이렇게 설명을 했다고 하네요.
“설치해서 베푸는 것 중에 시각을 알려 주는 것만큼
큰 것이 없습니다.
1424년 세종 때 경루(更漏)라는 물시계를 설치해
밤에는 시간을 알 수 있으나 낮에는 알기 어려웠습니다.
12지신의 그림을 그려넣은 것은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말이죠.
실제로 세종 16년인 1434년의 실록을 보면
‘처음으로 앙부일구를 종로에 혜정교와 종묘 앞에 설치해
그림자를 관측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세종은 혜정교와 종묘 앞,
그러니까 백성들이 많이 다니던 종로대로에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설치했던 것이죠.
그런데 해시계는 해가 지면 쓸모가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물시계인 자격루가 나옵니다.
사실 그전에도 물시계는 있었어요.
관리가 눈금을 지켜보다가 종을 울려서
시간을 알려야 했지요.
밤에 피곤해서 꾸벅꾸벅 졸다가 종치는 시간을 놓치면
곤장을 맞기도 하고요.
그런데 천민 출신이었던 장영실이
이를 업그레이드해서 대단한 물건을 만듭니다!
자격루에 자동 시보장치를 단 거예요.
뻐꾸기 시계를 보면 12시 정각이 되었을 때
‘뻐꾹! 뻐꾹!’ 하면서 새가 튀어나오잖아요.
같은 기능입니다.
때가 되면 인형이 알아서 종을 쳐요.
그래서 스스로 울린다는 뜻으로 자격루라고 불렀지요.
자격루가 어떻게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정확하게 작동할 수 있었을까요?
물을 넣은 항아리의 한쪽에 구멍을 뚫어
물이 흘러나오게 만든 겁니다.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의 양을 이용해
시각에 따라 저절로 종이 울리는 원리죠.
물받이통인 수수호에
동일한 간격으로 같은 양의 물이 흘러들어 가면,
시간마다 부표인 눈금자가 정확하게 떠오릅니다. //

그 눈금자가 작은 구슬을 하나씩 건드리면
작은 구슬이 나와 자동시보장치로 들어가면서
큰 구슬을 움직이는 거죠. //

그러면 매 시간을 상징하는 십이지신 인형이
자동으로 나와 시간을 알려주는 겁니다.
자격루는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물통만 남고 소실됩니다.

복원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100퍼센트 재현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장영실의 손재주가 그만큼 대단했던 거죠.
이번에는 역법을 보죠.
세종 때 칠정산이라는 달력이 나옵니다.
칠정산은 내편과 외편으로 되어있어요.
조선시대에는
해와 달, 그리고 수성과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을
‘칠정산’이라 했습니다.
세종은 중국의 하늘이 아닌 우리의 하늘에 떠 있는
칠정산을 봐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중국이 아닌 조선의 서울 ‘한양’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세종은 조선의 역법을 새롭게 만들라고 명했고,
조선의 젊은 집현전 학자들은
북한산에 올라 한양의 북극고도를 계산하고
1년의 길이와 1달의 길이를 계산했습니다.

그렇게 10년에 걸쳐 새로운 역법을 완성한 것이
바로 『칠정산 내편』과 『칠정산 외편』이죠.
『칠정산내편』은 원나라의 역법인 수시력(授時曆)을
발전시켜 만든 역서이고,
『칠정산외편』은 이슬람 역법인 회회력(回回曆)을
발전시킨 거예요.
그런데 기록에 따르면
원나라의 역법을 기본으로 한 『칠정산내편』보다
이슬람의 역법을 발전시킨 『칠정산외편』이
더 정확했다고 합니다.
『칠정산외편』에서는
1년을 365일 5시간 48분 45초로 측정했는데
현대의 기준과 비교하면
1초 밖에 차이가 안 날 정도로 거의 일치했다고 하니,
멋진 일 아닌가요.
칠정산의 역사적 의의는
최초의 한양 중심을 중심으로 한 역법서라는 겁니다.
이전까지는 중국이 시간대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조선과는 맞지 않았다는 걸 인지했다는 거죠.
현대는 어떨까요?
여러분이 보는 시계가 정확하다고 생각하세요?
우리나라 표준 시간대는 동경의 135도 선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1910년 경술국치 때
일본과의 시차를 없애기 위해 채택된 겁니다.
그래서 실제 우리나라 시각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런데 조선 전기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시간을 정했다는 거예요.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런 천체관측, 강우량 측정 같은 과학발전은
농사에 큰 도움을 줬어요.
그리고 또 실용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장영실이 천민출신이면 뭐 어떻습니까.
재능을 높이 사면 그만이죠.
이런 실용정신이 조선의 과학을 만든 것입니다.
이제 퀴즈를 풀어보죠.
조선 초기에 민생 안정과 부국강병을 위한 노력과
관련 없는 문화유산을 찾는 문제입니다.
측우기,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민생의 안정과 왕권강화를 조선의 과학유산이죠.
훈민정음과 신기전 역시 ‘과학 관련 문화재’는 아니지만
백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한 유산이죠.
5번은 서원입니다.
성리학의 확산과 관련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오늘 퀴즈의 정답은 5번이네요.
현재의 우리에게 조선시대의 과학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옛 사람들이 하늘을 대하던 자세를 알 수 있고
백성을 생각한 왕의 마음을 읽을 수 있죠.
수백 년 전의 과학으로 새로운 우주를 상상해 보면서
오늘 강의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