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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
UCI I801:1609001-001-V00019
제목 17강 조선의 그림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생산일자
문화재청 2016-06-01
기여자 정보
기여자 정보
역할 정보 기여자 명
배포사 한국문화재재단
개발사 문화재청
제작사 CL9
주연 최태성
기술 정보
기술 정보
기술 영역 기술 내용
기타정보
내용정보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호 신사임당초충도병, 국보 제217호 정선필 금강전도, 국보 제216호 정선필 인왕제색도, 보물 제527호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내용정보_신규
역사정보 조선시대
역사정보_시대국가
인물정보
지리정보 강원도 강릉시, 서울특별시 용산구
관련 키워드 ;최태성;큰별쌤;선사시대;조선시대;그림;임진왜란;조선군;명나라;조선통신사;
요약 정보 마스터
내용 어느 시대이든 그림에는 그 시대에 추구했던 미학과 가치관이 담겨있다.
조선 초기, 성리학적 이상향을 담아냈던 ‘산수화’,
조선 중기, 선비의 고아한 심성을 나타낸 ‘사군자’,
그리고 우리 산천과 인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드러낸 ‘진경산수화’ 등…
그림을 통해 조선시대를 살펴본다.
대본 정보 안녕하세요! 큰별쌤 최태성입니다.
오늘은 ‘한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싸이의 말춤이 아니라 조선시대의 ‘한류’말이에요.
지금 우리에게 아이돌이 있다면
조선시대에는 조선 통신사가 있었어요.
당시에 조선 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하면
팬들이 줄을 서듯 일본 사람들이 줄을 섰는데,
조선 사람이 쓴 그림이나 글씨 같은
작품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해요.
조선 문인이 써준 추천서는 명품을 보증하는 등
조선 회화는 오늘날 ‘한류’ 인기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이 시간 주제도 조선의 그림입니다.
먼저 퀴즈를 볼까요.
Q.다음 자료에 나타난 화풍과 관계 깊은 것은 무엇일까요.
자료를 보면요,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일어서자,
조선에서는 병자호란 때 당한 치욕을
‘조선이 곧 중화’라는 의식으로 극복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대두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 고유의 정서, 자연을 표현하려는 예술 운동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 남종과 북종 화법을 고루 수용하여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 알맞은
새로운 화법이 창안되었다.
보기에는 다섯 개의 그림이 있는데요,
답을 알려면 조선시대의 그림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먼저 조선 전기부터 살펴볼까요.
조선 전기에는 어떤 회화작품이 있을까요?
15세기에는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있어요.
굉장히 몽환적인 느낌이 드는 산수화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
잘 알려진 대로 이 그림은-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초여름날 밤에 꾼 꿈을 내용을 그린 거잖아요.
그날 꿈속에서 거닐었던 ‘도원’의 풍경을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안견’을 시켜 그리게 한 겁니다.
도원은 말할 것도 없이 서양의 유토피아에 해당하는
동양의 이상향이죠.
안견은 1미터가 넘는 커다란 화면에
3일에 걸쳐 그림을 그렸어요.
그리고 안평대군은 그림 뒤에
이 그림을 그리게 된 유래를 직접 쓰고
여러 사람과 함께 감상했다고 합니다.
당시 안평대군은 명필가이자 수집자로 유명했거든요.
그만큼 몽유도원도를 아꼈던 거죠.
그림을 살펴보면,
왼쪽은 현실 세계이고 //
오른쪽은 신선이 사는 도원향이에요.
복숭아나무가 보이죠?
현실 세계에서 오른쪽의 무릉도원으로 가는 중간에는
깎아지른 절벽과 동굴 등 험난한 길이 이어집니다.
도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과정이에요.
안견은 도원으로 가면서 본 실제의 풍경과
상상 속 도원의 모습을 한 화폭에 담았는데요,
이때 두 곳의 풍경을 바라보는 시점을 달리해서
묘사했어요. //
왼쪽부터 시작되는 도입부를 보세요.
보통의 산수화처럼 정면에서 본 시점으로 그렸잖아요.
그런데 바위틈을 지나면 펼쳐지는
상상 속 도원의 풍경은 어떤가요?
마치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부감법을 썼습니다.
안견이 한 그림 속에 이처럼 두 가지 시점을 적용한
이유는 뭘까요?
바로 몽중(夢中), 몽중몽(夢中夢)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다른 시점을 통해 한 눈에 나타낸 겁니다.
안견과 함께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화가로는
선비화가였던 강희안이 있어요.
이 그림은 강희안의 고사관수도예요.
바위에 걸터앉은 선비가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깊은 사색에 잠긴 것 같은데요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도 차분해 지는 것 같죠.
선비의 얼굴을 보세요.
여유로워 보이지요?
그런데 물은 왜 쳐다보고 있는 걸까요?
상산약수, 즉 인생이란 물 흐르듯 살면 된다는 뜻을
표현합니다.
사물을 관조하며 사물의 이면에 있는 진리를 탐구하는
선비의 모습이
도를 터득한 신선의 모습 같아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요, 이 선비가 누구냐는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에요. 상상 속의 인물인데요,
비록 우리나라 사람이 그린 우리의 그림이지만
그림 속 인물은 우리나라 사람을 그려 넣지 않았던 거죠.
이런 화풍은 16세기로 넘어가면서 조금씩 변화합니다.
16세기는 어떤 시대였죠?
성리학이 절정을 이루었죠.
명분과 의리, 절개를 중시하는 사림파가 등장하잖아요.
따라서 선호하는 화풍도 달라집니다.
산수화와 함께 사군자와 같은 그림이 유행하죠.
사림파는 선비정신을 드러내는 그림을 좋아했어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는 식물이지만
의인화해서 흔히 사군자라고 부릅니다.
겨울이 와도 시들지 않잖아요.
매서운 추위에도 꽃이 피고 향기가 나고 잎색이 푸른
사군자가
아픔과 시련에도 지조와 절개가 꺾이지 않는 선비정신을
표현한다고 생각한 거죠.
절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데 이보다 좋은 대상이 있을까요?
사군자는 선비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치관을 담아낸 대상이자 그림인 것입니다.
사군자 중 특히 매화는
추운 겨울을 뚫고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이에요
예로부터 많은 문인화가들에게 인기있는 소재였죠.
그 중 한 명으로 ‘어몽룡’이라는 화가가 있어요.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5만 원 권 지폐 있죠?
그 뒷면에 있는 그림이 어몽룡의 월매도예요.
월매도는 세로 119.4㎝, 가로 53.6㎝의
비교적 큰 작품이에요.
커다란 보름달을 배경으로
오래된 고목과 곧게 뻗는 새로운 가지들…
그리고 담묵으로 표현된 매화 꽃잎…
담담하면서 품격 있는 매화의 모습이 느껴지나요?
‘어몽룡’이 ‘매화’를 즐겨 그렸다면
화원 ‘이상좌’는 소나무를 그렸습니다.
달빛 아래 걸어가던 선비가 소나무를 올려다는 그림,
송하보월도입니다.
이 그림에서 중심이 되는 건
절벽에 뿌리를 밖은 소나무입니다.
결코 지조를 꺾지 않겠다는 듯 굳센 선으로 그려졌지요.
잘 보이지는 않지만 매화와 대나무도 있습니다.
이런 그림에서 고고한 선비 정신이 보이나요?
자, 안견, 강희안, 이상좌… 모두 남성화가들이죠.
그런데 조선에는 남성 화가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조선시대 천재 예술가로 이름을 떨친 신사임당이 있지요.
임진왜란이 끝나고 세력을 잡은 송시열 등을 비롯해
서인들이 이이를 숭상하면서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현모양처’로
이미지가 고정되었지만,
신사임당은 풀벌레를 그린 ‘초충도’의 대가였습니다.
물론 초충도 뿐만 아니라 산수화와 화조화 등
여러 장르의 그림을 그리는 데 뛰어난 재주를 보였지요.
이런 신사임당의 포도그림과 비교되는 화가가 있는데요,
바로 조선중기 선비화가인 황집중입니다.
그는 포도만을 그린 묵포도도의 화가로 유명하죠.
사실 포도는 서역이 원산지였어요.
한 송이에 알이 주렁주렁 많이 열리잖아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유입된 후에
자손의 번성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일찍부터 애호하여
고려청자나 조선 초기 백자에 그려졌어요.
그러다가 조선 중기에는 먹으로 그리는
포도그림의 소재로 사랑받은 겁니다.
탱글탱글한 포도 알, 넓적한 이파리,
꼬불꼬불한 넝쿨 등이
수묵화가가 표현하기에는 더없이 매력적인 소재였을
것 같죠?
한편 특정 동물만을 고집스럽게 그린 화가도 있었어요.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의 증손,
이암입니다.
기록을 보면 이암은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잘 그려
중종의 어진을 그리는데 뽑혔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겨진 그림으로 보자면, 이암은 동물 화가였어요.
흔히 영모화라고 하는데요,
‘영’은 새의 날개, ‘모’는 짐승의 털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영모화란
깃이나 털이 있는 새나 짐승을 그린 그림을 뜻하죠.
이암은 검둥이와 흰둥이와 같은 귀여운 강아지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모습을 그렸답니다.
이러한 강아지 그림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최고라고 평가받았어요.
자, 이제 조선 후기로 가볼게요.
조선 후기의 사회는 어떤 분위기였죠?
그렇죠,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잖아요.
명나라가 사라졌으니 조선이
소중화(小中華)의 법통을 넘겨받은 거라고 여겼어요.
이민족인 청나라에 비해 문화적 자부심이 강했고
동시에 우리 것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지요.
드디어 조선의 그림에
조선의 자연과 인물이 정면에 등장해요.
당시 학자들이 실학을 연구하여 국학을 발전시킨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이전까지 중국 유교사상에 따른
관념적으로 중국을 닮은 자연과 중국인을 그렸다면,
이때부터 조선에 실재하는 대상을 화폭에 담게 된 거지요.
특히 우리나라 산천을 관찰하고
실제 우리의 경치를 묘사한 진경산수화가 유행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치는 중국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 경치에 맞게 죽죽 내리긋는 수직준법처럼
독특한 화법을 창안하기도 했어요.
진경산수화 중에서 대표적인 화가로 겸재 정선이 있죠.
겸재 정선은 서울의 청운동 근처에서 자랐어요.
근처에 살던 노론의 핵심 인물인 안동 김씨 일가와
가깝게 지냈는데요,
이들 안동 김씨의 후원을 받으며 그림을 그렸어요.
이제까지의 화가들은
중국의 화보를 참고해 중국과 비슷한 그림을 그리는
경향을 보였다면
정선은 실제 조선의 풍경을 보고 그렸어요.
안동 김씨가 살던 청풍계는 물론이고
서울과 그 주변, 그리고 금강산과 그 일대 모습을 포함해
자신이 실제 가보고 인연이 닿은 곳을 그림으로 남겼죠.
물론 그림은 사진처럼 똑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선의 그림을 들고 해당 장소로 가서 보면
그곳의 요점을 포착해서 특징적 요소를 그렸음을
한눈에 알 수 있을 거예요.
겸재 정선, 하면 떠오르는 것은?
인왕산을 그린 인왕제색도,
금강산을 그린 금강전도가 걸작으로 꼽히잖아요?
특히 인왕제색도는
비가 온 뒤 안개가 걷힌 인왕산의 모습을
굵은 붓과 진한 먹을 이용해 거침없이 그려냈어요.
산 전체가 바위로 된 인왕산의 분위기 -가
크으, 정말 실감나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진경산수화가 우리의 자연을 그렸다면,
이제 우리 한국인의 얼굴,
조선시대 인물들을 그린 그림도 등장합니다.
바로 풍속화예요.
풍속화는 당대의 다양한 인물과 삶을 그린 그림입니다.
대표적인 화가가 누구죠?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그림을 그린 화풍도,
관심을 둔 주제도 달랐어요.
우선 김홍도는 서민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렸습니다.
정선이 그림의 소재를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렸다면
김홍도는 그 관심을
당시 조선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 돌린 거죠.
주로 서당이나 주막, 대장간 등에서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서민들의 특징을
소탈하고 익살스럽게 그렸어요.
예를 들어 김홍도의 신행길이라는 풍속화를 보면,
조선 후기의 결혼 모습을 알 수 있어요.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가고 있죠.
뒤에 있는 여자는 나이가 든 것으로 보아
신부가 아니라 중매를 해준 매파인 것 같아요.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밝아 보이네요.
이 그림은 서당이라는 풍속화인데요
한 아이가 서당 훈장에게 혼나 울고 있는 장면입니다.
옷차림을 보면 양반과 상민이 함께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리학이 무너지고 신분제가 무너졌잖아요.
양반 수는 증가하고 평민 수는 감소하는
그런 모습들이 풍속화에 드러나 있는 거예요.
조선 후기 신분제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그림이죠.
김홍도와 달리
신윤복은 양반들의 풍류와 여성들의 생활
남녀 사이의 애정을 감각적이면서도 해학적으로 그렸어요.
또 일설에는 “신윤복이 짝사랑하던 기생을 그린 것이
바로 미인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생을 자주 등장시켰죠.
단오풍정이라는 그림을 볼게요.
화려한 원색 한복을 입은 기녀가
그네에 오르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네 명의 여인들이 목욕을 하고 있네요.
그런데 승려처럼 보이는 어린 소년 두 명이
뭔가를 몰래 훔쳐보고 있습니다.
여인들을 훔쳐보는 어린 승려들의 행동이
꿀밤이라도 주고 싶을 정도로 발칙합니다.
엄격한 유교적 윤리관이 지배했던 조선시대,
신윤복은
한양 뒷골목 등 조선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어요.
월하정인이라는 그림을 볼까요.
길모퉁이 담장 곁에 젊은 남녀가 은밀히 만나고 있죠.
이들이 어떤 사이이며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남의 눈을 피하여 만나야 하는 사람들인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신윤복은 희미하게 뜬 조각달로 분위기를 잘 전합니다.
이렇게 신윤복과 김홍도는 화풍도 다릅니다.
신윤복의 그림은 선이 굉장히 가늘고 세밀한 반면,
김홍도의 그림을 보면 굵직굵직한 선이 많죠.
기생과 양반을 중심으로
남녀 사이의 내밀한 관계를 담아낸 신윤복,
그리고 일반 백성들의 삶을 실감나게 그린 김홍도.
다른 듯 비슷한 풍속화의 대가들이 나타난 중심에는
일반 백성, 즉 민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놓으면 됩니다.
덕분에 우리는 18세기 조선 백성들의 삶을
글이 아닌 그림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죠.
조선 사회가
이제까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백성들에게도
드디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어요.
이제 퀴즈를 풀어보죠.
Q.다음 자료에 나타난 화풍과 관계 깊은 것은…
우리 고유의 정서와 자연을 표현한 화풍은 뭐죠?
진경산수화죠. 진경산수화를 찾는 문제입니다.
진경산수화를 대표하는 화가는, 정선!
정선의 대표적인 그림은? 인왕제색도잖아요.
보기를 보면
1번은 선비가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어요.
강희안의 고사관수도죠.
2번은 풀과 벌레… 신사임당의 초충도네요.
그리고 3번은, 불화잖아요. 고려시대 양류관음도예요.
4번이 바로 정선의 인왕제색도네요.
그럼 5번은? 몽환적인 분위기!
꿈 속의 무릉도원을 그린 안견의 몽유도원도죠.
오늘 퀴즈의 정답은 4번이네요.
어느 시대이든 그림에는
그 시대에 추구했던 미학과 가치관이 담겨 있습니다.
그 시대를 비추는 거울과 같죠.
조선 초기 산수화가 성리학적 이상향을 담아냈다면
조선 중기의 사군자는 선비의 고아한 심성을 상징했죠.
그리고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나 풍속화는
우리 산천과 인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견에서 정선, 김홍도와 신윤복까지…
수많은 화가들의 그림이 없었더라면,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놀고, 어떻게 살았으며
또 300년 전 우리의 자연은 어땠는지,
알 수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한 폭의 그림이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는 이유입니다.
그 가치를 생각해 보면서 오늘 시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