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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N2C)
| UCI | I801:1609001-001-V000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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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19강 조선의 무기 | ||||||||||||||||||
| 콘텐츠 유형 | 동영상 | 언어정보 | |||||||||||||||||
| 생산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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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여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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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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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키워드 | ;최태성;큰별쌤;조선시대;무기;성리학;산수화;선비;사군자;산천;진경산수화; | ||||||||||||||||||
| 요약 정보 | 마스터 | ||||||||||||||||||
| 내용 | 1952년 발발한 임진왜란. 7년 동안 계속된 전쟁… 임진왜란은 일본군과 조선군‧명나라군의 무기와 전력을 비교하는 장이었다. 승리했으나 상처가 컸던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조선의 무기를 살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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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본 정보 | 안녕하세요. 큰별쌤 최태성입니다. 먼저 오늘의 퀴즈를 볼까요? 제 2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출제됐던 기출문제입니다. 다음 자료에 대한 설명 중 옳은 것을 고르라는 문제네요. 설명을 읽어보죠. 2층 구조로 되어있던 전선(戰船)이고, 노 젓는 공간과 전투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넓은 전투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평저선으로 좌우 선회력이 뛰어나 뻘밭과 암초가 많은 우리나라의 연안에서 전투하기에 적합하였다. 보기를 보죠. 대마도 원정에 동원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수군의 주력 전선이었다 돌격선인 거북선으로 개량되기도 하였다 진포 싸움에서 왜구를 격퇴하는 데 사용되었다 먼저 이 배가 무슨 배인지 알아야겠죠. ‘노 젓는 공간과 전투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뻘밭과 암초가 많은 우리나라의 연안에서 적합하다’ 떠오르는 전투가 있나요~? 명량?! 그렇습니다. 이 배는 임진왜란 때 활약했던 판옥선입니다. 오늘은 임진왜란과 조선의 무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임진왜란, 조선을 뒤흔들었던 전쟁이죠. 1590년,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정부에 <정명가도>를 요구합니다. “명을 치러갈 테니 조선이 길을 내달라”, 이런 거죠. 말이 안 되는 강요잖아요. 우리가 일본의 속국입니까? 조선 정부는 당연히 거절합니다. 그러자 1592년 일본은 부산진을 함락시키고 곧장 한양으로 쳐들어가요. 엄청난 군세에 조선 정부는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그렇게 임진왜란은 7년 동안 계속되었어요. 당시 일본군과 조선군‧명나라군의 무기와 전력을 비교하는 장이 됩니다. 그럼 무기를 하나씩 살펴볼까요. 임진왜란 초기에는 조선 육군이 어마어마하게 밀립니다. 조선은 제승방략 체제를 밀었기 때문에, 첫 전투지인 부산진에서 격파 당하자 방어할 군사가 없어진 거예요. 일본군의 주력무기는 화승총(火繩銃)이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해서 ‘조총(鳥銃)’이라 불린 이 총은 포르투갈 상인들로 입수한 것으로 최신식 무기였죠. 임진왜란 당시 조선측의 전쟁 수행을 총괄했던 류성룡의 ‘징비록’에 따르면 조총의 유효 사거리는 100미터 내외였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하면 흔히들 “일본이 조총이라는 신무기를 들고 와서 조선군이 맥없이 당했다.”고 생각 하는데요, 조총이 무서운 무기인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 전에 조선도 조총을 알고 있긴 했어요. 그런데 왜 사용하지 않았느냐고요? 조선에서 보기엔 조총이 너무 조잡했거든요. 우선 장전부터 번거롭습니다. 탕! 하고 쐈어요, 그런데 다시 격발하려면 총신에 화약을 쑤셔 넣고 꾹꾹 다지고~ 총알 넣고~ 심지를 끼우고~ 불을 붙이고~ 하여튼 할 일이 많습니다. 칼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이런 여유를 어떻게 부려요? 활은 그냥 화살 끼워서 휙 쏘면 끝이잖아요. 게다가 조총은 비가 오면 쏠 수도 없었고요. 그래서 조선은 궁술을 중시했습니다. 바로 각궁입니다. 각궁은 물소뿔과 쇠심줄로 만든 무기였어요. 길이가 짧아 휴대하기가 편리하면서도 유효사거리가 200미터에 달할 정도로 강력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죠. 생각해 보세요. 각궁으로 조총을 당해낼 수 있었을까요? 쉽지 않았겠죠. 그런데 일본은 전국시대 내란 중에 조총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전술을 개발했어요. 세 줄로 세워놓고 맨 앞줄이 한 발을 쏘고 뒤로 빠져서 장전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다음 줄이 앞으로 나와서 쏘는 거예요. 이런 전술 때문에 조선군 진영은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허물어진 거죠. 일본군의 작전은 수륙병용이었어요. 육군이 상륙하자마자 무조건 한양으로 달려가는 동시에 수군은 바다를 장악해서 보급로를 확보하는 겁니다. 일본군은 거의 조선을 집어삼킬 뻔했어요. 그런데 이 야욕이 바다에서 막힙니다. 누구 덕분인가요? 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순신 장군이 등장하는 순간입니다. 이순신이 바다에서 일본군의 보급로를 끊어놓은 거예요. 이순신 장군에게는 비밀무기가 있었습니다. 화포예요. ‘총통’이라고 불렸죠. 일본의 조총은 이 포의 사정거리를 못 따라옵니다. 그중에서도 천자총통은 가장 큰 화기였죠. 화약을 넣은 후 나무를 깎아서 준비해 놓은 격목을 끼우고 그 위에 포탄을 넣어 발사했어요. 천자총통은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을 압도하는 화력을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가 화포와 화약을 사용한 것은 임진왜란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고려는 말기에 왜구 때문에 몸살을 앓았는데요, 최무선이 각고의 노력 끝에 화약과 화포를 개발해 냈죠. 이때까지 화약은 원나라의 극비 기술이었거든요. 최무선은 1377년 화약과 화통을 만드는 일을 담당하던 임시 관아를 설치한 후 <화통도감>이라고 했습니다. 이곳에서 개발한 화약과 화포를 가지고 1380년 진포대전에 출전해 왜구를 박살냅니다. 따지고 보면 조선시대에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큰 공을 세운 건 화약 덕분에 가능한 일이지요. 자, 다시 임진왜란으로 돌아와서 이순신 장군의 조선수군은 이 천자총통을 거북선과 판옥선에 장착했습니다. 드디어 판옥선이 등장했네요. 판옥선은 조선 명종 10년인 1555년에 처음 개발된 우리나라 최초의 전투용 함선입니다. 구조와 기능 등 모든 면에서 기존의 군선과는 아주 다른 혁신적인 전투함이죠. 기존의 군선인 ‘맹선’은 갑판이 1층뿐이었는데, 여기에 한 층을 더 올린 거예요. 노를 젓는 노군은 1층 갑판 안에 숨어 마음 놓고 노를 저을 수 있었고 / 병사들은 상갑판 위의 높고 넓은 자리에서 적을 내려다보며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었죠. 이번에는 조선의 판옥선과 일본의 배를 비교해 보죠. 구조가 완전히 다릅니다. 판옥선 밑바닥은 평평하고, 일본 배 밑바닥은 뾰족해요. 이 뾰족한 바닥은 물 저항을 줄여줍니다. 덕분에 일본 배는 날렵하고 빠르지요. 그런데 이게 늘 장점으로 작용하는 건 아닙니다. 한 번에 쭉 나아갈 수 있는 반면에 방향 전환이 어렵거든요. 이에 비해 판옥선은 속도는 느리지만 방향 전환에 유리합니다. 그래서 이순신은 일부러 물살이 험한 지역을 골라 전투지역을 정해요. 왜선이 거센 물살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본격적으로 치려고요. 육전에서의 연패와는 달리 해전에서는 이순신을 중심으로 한 조선 수군은 판옥선을 주력함으로 연전연승을 거두었어요.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판옥선이라는 명칭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옥포와 당포에서 올라온 승전보고문에서는 ‘판옥선’ ‘판옥전선’ 등으로 기록하고 있어서 임진왜란에서 조선함대의 주력선으로 활약한 것을 알 수 있죠. 조선시대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배는 거북선이죠. 거북선은 판옥선의 갑판 윗부분까지 단단하게 덮개를 씌운 군함입니다. 조선군의 움직임을 전혀 볼 수 없었던 일본군은 조총으로 사격을 하려 해도 쉽지 않았고, 덮개가 씌워져 있었기 때문에 조선 군함 내부로 침투할 수도 없었죠. 그런데 거북선을 만든 건 이순신 장군이 최초가 아니라고 해요. 태종 실록에도 기록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한참 잊혔다가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다시 건조한 거죠.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조총으로 사격한 뒤 적선 안으로 뛰어드는 전술을 사용했는데 이 거북선 덕분에 이런 전술이 통하지 않게 된 겁니다. 이순신 장군은 절대로 왜선과 근접전을 벌이지 않았어요. 붙지만 않으면 공격받을 일이 없으니까요. 이순신 장군은 한산대첩에서 처음으로 학이 날개를 펼친 것 같은 진법, 곧 ‘학익진’을 선보입니다. 일본군에게는 신출귀몰할 일이었을 거예요. 선두인 가운데를 공격했는데 어느새 좌우 배들에 포위당해 있으니 말이에요. 일본군이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이순신이 포를 쏩니다. 일본 배는 끽소리도 못 내고 쿵쿵 소리와 함께 수장되지요. 당시 거북선과 승자총통의 활약은 『난중일기』에도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임진년, 1592년 6월 2일. 편전과 승자총통을 비오듯 마구 쏘아댔더니 왜장이 화살을 맞고 떨어졌다. 모든 적이 한꺼번에 놀라 흩어졌다. 모조리 섬멸하여 남겨두지 않았다.”라고 말이죠. 거북선과 판옥선, 그리고 승자총통을 주력으로 한 이순신 장군의 전술은 전 세계 해전 역사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적함 위에 올라탄 뒤에 ‘백병전’으로 승부를 결정짓고는 했는데요, 이순신 장군은 원거리에서 전열을 다듬은 후 일제히 사격해 적함을 격침 시켰으니까요. 근대 해전의 시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임진왜란 당시에 육지에서 활약한 무기도 있었습니다. 행주산성에서 활약한 화차죠. 화차는 화살이나 포탄을 넣어 발사하는 무기예요. 발사대에 빽빽이 화살을 꽂아두고 화약이 터지는 순간 다연발로 핑핑 나가는 거지요. 귀신 신(神), 틀 기(機), 화살 전(箭). 신기전(神機箭)이라고 불렀어요. 신기전은 세종 때 등장한 화약무기였어요. 1477년 편찬된 『병기도설』에 그 설계도가 전해지고 있는데요, 이 신기전을 업그레이드한 것이 ‘화차’인 겁니다. 다시 임진왜란으로 돌아오죠. 1593년 2월 12일 오전 6시 무렵이었어요. 3만 명의 일본군이 행주산성을 둘러쌌습니다. 행주는 한강을 끼고 수도 한양을 코앞에 둔 아주 중요한 지역이었죠. 그러나 행주산성에는 단 2,300명의 병사만 있었습니다. 병력으로 보면 열세였죠. 객관적인 상황으로는 금방 함락될 것처럼 보였지만. 전투는 열두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행주대첩은 부녀자들이 행주치마에 돌을 날라 싸웠다는 전설이 만들어질 정도로 치열했어요.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을 겁니다. 2천여 병력으로 열 배가 넘는 3만의 일본군을 물리쳤다는 건 좋은 전술과 함께 뛰어난 무기가 있었다는 것을 뜻하죠. 행주대첩의 전투를 기록한 그림을 보면 화살이나 창, 칼과는 다른 무기가 눈에 띕니다. 화차예요. 이 화차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연려실기술」에 힌트가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인 1592년, 의병을 모집하던 ‘변이중’이 화차 300대를 만들었고 순찰사 권율에게 40대를 나누어주었다.”는 기록이 있죠. 변이중은 자신이 지은 <망암집>에서도 직접 고안한 화차의 그림과 설명을 하는데요, 일반적인 수레 위에 네 방향으로 방호벽을 설치하고 앞면과 좌우에 총통을 배열해 ‘화차’를 제작했습니다. 화차에는 40개의 승자총통을 장착해 사용했고요, 방호벽마다 관측 구멍을 설치해 바깥 상황을 확인하며 조준할 수 있도록 했죠. 아마 그동안 개발된 어느 화차보다도 탁월한 공격력을 발휘했을 겁니다. 행주대첩 당시 화차에서 승자총이 발사되는 소리에 산과 계곡이 진동했다고요, 상상이 되나요. 권율 장군은 이 ‘변이중 화차’를 활용해 대승을 거두었죠.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죠. 당시 아홉 번의 공격을 실패한 왜군은 1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하고 말았습니다.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입었고 전세도 역전됐죠. 자, 이제는 퀴즈의 정답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마도 원정에 동원된 것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판옥선은 명종 때인 1555년에 개발되어 임진왜란 때 활약한 전선이니까요. 판옥선은 임진왜란 당시 수군의 주력 전선이었음, 맞죠. 판옥선은 돌격선인 거북선으로 개량되었습니다. 진포 싸움에서 왜구를 격퇴하는 데 사용되었다? 관련이 없죠. 진포싸움은 고려 우왕 때인 1380년에 왜구와 벌인 해전으로 이 때에는 최무선이 발명한 화포가 사용되었습니다. 정답은 ㄴ과 ㄹ이 되겠네요. 임진왜란은 조선이 승리한 전투인데도 조선에 더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전쟁터가 우리 땅이었기 때문이에요. 임진왜란이 우리에게 미친 피해가 얼마나 막대했는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을 기점으로 조선은 전기와 후기로 나뉘게 되죠. 오늘은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조선의 무기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임진왜란의 참혹함과 비장함을 함께 기억하면서 이 시간 마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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