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진흥원 국가유산 콘텐츠 검색 서비스


대표 이미지 및 저작권 정보(N2L)

대표 이미지 및 저작권 정보
대표이미지 저작권정보
저작권자 KBS
전자자원소장처 한국문화재재단
공공누리 저작권
CCL 정보
소스코드 <iframe width="720px" height="480px" src="http://uci.k-heritage.tv/resolver/I801:1612002-001-V00021?t=3"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관련 파일 및 자원정보(N2R)

관련 파일 및 자원정보
번호 파일명 파일크기 다운로드
1 KBS1TV_천상의컬렉션_11편_마스터_CHF_1920X1080.mp4 1.20 GB 다운로드

콘텐츠 기본 정보(N2C)

콘텐츠 기본 정보
UCI I801:1612002-001-V00021
제목 [KBS] 천상의 컬렉션 11편 - 책가도, 백자 달 항아리, 곽재우 장검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국문
생산자 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생산일자
KBS 2017-12-31
기여자 정보
기여자 정보
역할 정보 기여자 명
주연 최여진
주연 서경석
주연 안내상
제작사 KBS
기술 정보
기술 정보
기술 영역 기술 내용
기타정보
내용정보 국보 제309호 백자 달항아리, 국보 310호 백자 달항아리, 보물 제671호 곽재우 유물 일괄
역사정보 조선시대
인물정보 정조, 이응록, 이종현, 엘리자베스 여왕, 곽재우
지리정보 경기도 용인시, 서울특별시 용산구, 경상남도 의령군
관련 키워드 ;책가도;백자;항아리;곽재우;장검;천상의컬렉션;달 항아리;백자대호;
내용 한국 예술 천년사,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다.
수많은 세월을 지나 기적처럼 전해진 문화재의 아름다움과 가치,
그에 얽힌 살아있는 역사 이야기를 호스트의 생생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살펴보고,
현장 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대한민국을 매혹시킬 단 하나의 보물을 선정한다.

배우 최여진이 소개하는 '책가도'
개그맨 서경석이 소개하는 '백자 달 항아리'
배우 안내상이 소개하는 '곽재우 장검'
대본 정보 MC 한상헌>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을 선택하는 천상의 컬렉션!

요즘 기온이 서서히 올라가고 있는데요,
무더위 걱정하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이 더위를 잊기 위한 방법 중에
‘역사 소설 읽기’가 있다고 해요.
‘역사’하면 천상의 컬렉션이 빠질 수 없잖아요?

그래서 오늘도 준비했습니다!
여러분의 눈도 즐겁고 마음까지 울려 줄
세 개의 보물이 지금 기다리고 있는데요,

매력적인 세 호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이 이야기가 너무 마음에 든다!’
‘이 유물이야말로 진짜 보물이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여기 계시는 100분의 현장 평가단은
바로 옆에 놓인 불을 밝혀주시면 됩니다.

과연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에는
어떤 보물이 오르게 될까요?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2. 최여진 <책가도>
최여진> 조선시대, 왕의 뒤엔 늘 ‘이 그림’이 있었습니다
임금이 가는 곳, 그곳이 어디든!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죠
해와 달, 산봉우리 다섯 개, 넘실거리는 파도,
바로 일월오봉도!
사극에서 많이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요
400년 동안 왕의 곁을 지켰던 이 그림을
과감하게 치워 버린 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책 그림”을 세웠죠

‘경들도 보이는가?’
그림을 바꾼 왕은 신하들에게 말합니다

‘옛날, 정자(程子)가 이르길
비록 책을 읽을 수 없다 하더라도
책을 어루만지면 기분이 좋아진다 하였다
난 이 말의 의미를 이 그림으로 인해 알게 되었다’

책은 그저 바라만 봐도 즐겁다는 왕,
누군지 감이 오시죠?
맞습니다, 정조입니다!

정조가 일월오봉도 대신 세웠던 책가도입니다

일 중독자였던 정조,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자 책가도를 그리게 하는데요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을
책 그림 감상으로 대신한 겁니다
심지어 그림 속 책 제목까지 직접 지정해줬다고 하죠

한번은 직속 화원들에게
자유 주제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데요
그림을 채점하고 나서
화원 두 명을 콕 집어 귀양 보내기도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책가도를 그리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어요
정조의 책가도 사랑, 놀랍지 않습니까?

정조의 책가도는 곧 조선의 유행이 됩니다
상류층 양반들 사이로 급속히 퍼져나갔죠
조선을 뒤흔든 책가도 열풍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책가도가 정말 다양하죠?
보시는 것처럼 정조 스타일 책가도와는
다른 책가도가 아주 많은데요

사실 정조 스타일 책가도는
제 스타일과 거리가 멉니다
너~무 모범적이거든요

제 마음을 사로잡은 책가도는 바로 이겁니다
일단 책이 많이 줄었죠?
책보다는 도자기, 꽃, 기묘한 골동품이 눈에 띕니다
다채롭고, 화려하죠
바로 이응록의 책가도입니다

이응록, 그는 왕의 직속 화원이었습니다
아까 책가도를 그리지 않아서 귀양 간 두 명의 화가,
기억하세요?
이응록은 그때 귀양 갔던 이종현의 손자입니다
할아버지의 한을 풀기라도 한 걸까요?
이응록은 책가도의 대가로 유명세를 떨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책가도를 유행시킨 사람, 바로 정조죠!

그런데 왕의 직속 화원 이응록이 그린 책가도는 말이죠
검소하고 심플한, 책만 잔~뜩 있는 왕의 책가도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릅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사실 이응록에겐
몰래 찾아오는 손님이 많았습니다
바로 자기만의 책가도를 갖고 싶은 양반들이었죠

네, 이응록은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왕의 곁에서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양반집 사랑방을 전전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양반들, 책만 그려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보시는 것처럼 책보단 다른 데 더 관심이 많았죠
그리고 이응록은 철저히,
고객 맞춤형 책가도를 그렸습니다

그렇다면 책가도 속의 물건들, 다 어디서 온 걸까요?

때는 바야흐로 청나라 열풍이 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양반들 사이에서 청나라는
세상의 중심이자 동경의 나라, 별천지!
그야말로 신세계로 급부상하고 있었는데요
동시에! 청나라 아이템도 크게 유행합니다

그런데 청나라 물건을 얻는 거,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가격도 비싸고, 운반도 만만치 않았거든요

청나라 물건이 갖고는 싶은데
마음껏 가질 수 없었던 조선 사대부들,
어떻게 했을까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갖고 싶은 걸 그리는 거..
요즘엔 너무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조선에선 그렇지 않았어요

‘검소하라 또 검소하라!’

이게 바로 유교 사회의 원칙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보수적인 유교 사회의 금기를
책가도가 깨트립니다
양반들은 그동안 억눌렸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더 화려하고! 더 과감하게! 말이죠

이응록의 책가도, 다시 한번 볼까요?
온갖 화려한 청나라의 물건들이 눈길을 끕니다
서양에서 온 물건도 많습니다
그림을 주문한 고객의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죠

그런데요, 이 책가도에는
화원 이응록의 욕망도 담겨 있습니다

궁중 화원은 원래
그림에 자기 이름을 남길 수 없게 되어 있거든요

하지만..
이응록은 자기 이름을 떡- 하니 남겼습니다
어디에? 바로 이 도장에!
‘이응록인’,
자신의 이름을 슬그머니 새겨 놓았습니다
정말 깨알 같죠?
작품에 이름을 남기고 싶었던
화가의 열망이 느껴지시나요?

조선의 양반들, 이때만 기다렸나 봅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자신의 욕망,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책가도를 통해서 말이죠
그러면서 굉장히 파격적이고,
개성 넘치는 책가도가 탄생하는데요

이것은요, 조선 판 개성의 끝판 왕!
‘호피장막도’라는 책가도입니다
굉장히 독특하죠?
걷어 올린 장막으로 은밀하게 드러나는
이 공간의 주인, 어떤 사람일까요?

책이 펼쳐져 있고, 안경이 놓여 있는 걸 보아
주인은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습니다
둥근 부채와 담뱃대에선 주인의 고상한 취미가 느껴지죠
우리가 앞서 본 책가도에 등장하는
문방구, 도자기도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그림을 계속 보다 보니,
마치 나는 이런 사람이야,
혹은 나는 이런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제게 계속 말을 거는 것 같더라고요
우리가 SNS에 올리는 사진처럼 말이죠

정조의 책 사랑이 탄생시킨 책가도.
처음엔 소박하고 심플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은
드러내지 않는 게 미덕이라 여겼던 유교 사회의
산물이었죠

하지만 책가도의 유행은 정조의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바로 제가 좋아하는 이응록의 책가도처럼!
보다 화려하고, 개성 넘치는 책가도를 그렸습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
있는 그대로의 욕망을 인정한 솔직함!
제가 반한 이응록의 책가도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MC 한상헌> 투명 스크린을 활용한 퍼포먼스로
환상적인 무대를 만들어준 최여진 씨께
다시 한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책가도 굉장히 독특한 그림이던데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최여진> ‘한 권의 책은 우주’라는 말이 있죠.
저는 책가도를 보면서 이 말의 진짜 의미를 알았어요.

공부할수록 숨어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해서
굉장히 재미있었는데요.
이번 기회를 통해 책가도가 널리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MC 한상헌> 저는 ‘책가도가 단순하게 책이나 장식을
그린 게 아니라, 조선 후기 얽히고설킨 욕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보물이다‘라는
최여진 씨의 해석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요.
홍경민 씨는 어떻게 보셨나요?

홍경민> 책가도 나는 오늘 처음 보는데
요즘 우리가 열광하는 인스타그램이랑 비슷하지 않아?
뭔가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혹은 보여 졌으면 하는
아이템을 다 모아서 그린 거잖아

키썸> 맞아, 나도 그 생각했어!
난 인스타그램에 내가 하고 싶은 거,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올리거든
관심사나 감정을 해시태그로 표현하는데
책가도는 색깔이나 장식물로 그걸 드러낸 느낌이랄까
조선 시대 인스타그램이었던 것 같아

엄지인> 인스타그램이 100퍼센트 솔직한 건 아니잖아?
자기 자랑, 허세, 과시 그런 게 좀 있는데
나는 책가도에 이런 감정들도 읽혀지던데?

박성광> 아까 호피장막도 보니까
방금까지 공부하다 나간 것 같이 그렸잖아?
그게 진짜 허세! 실제로는 공부 안 했을걸?
되게 지적으로 보이고 싶었나 봐~

다니엘> 나는 보면서 유럽의 르네상스 시기가 떠올랐어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 저택에 호기심의 방이라 불리는
서재가 있는데 그 안에는
세상의 진귀한 수집품과 서책들이 잔뜩 모여 있는데
이 방을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보여주면서 자랑했대

이다지> 다니엘이 말한 방을 스투디올로(studiolo)라고 하는데,
지금의 박물관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어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 의해 탄생한 방이란 점에서
‘호기심의 방’이라고도 불리는데
책가도에서도 당시 조선 사람들의
왕성한 호기심이 엿보여. 수집광적인 모습이랄까.

키썸> 그런데 15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호기심의 방이
대체 어떻게 조선까지 전해진 거야?

이기환> 이 시기에 동서 교류가 있었단 증거지
서양 선교사들이 명, 청나라에 스투디올로를 소개했고,
그게 중국에서는 다보각경이라는 장식장 문화로 발전,
이게 조선에 전해졌는데 독특한 게
책이 오롯이 주인공인 책가도가 탄생한 것

엄지인> 책가도에 등장하는 물건들 대부분 중국 물건인데
이 출처가 북경 최대의 골동품 시장, 유리창이란 곳이야
조선 연행단에 의해 유리창의 물건이
물밀 듯 밀려오기 시작하면서
한때 한양의 종로거리가 유리창 물건으로 도배가 됐대

박성광> 비쌌겠지?
왜 요즘도 여행 가면 외국 물건 가방에 잔뜩 넣어서
기념품 들고 오잖아
그땐 이렇게 힘들게 들고 오는 것도 일이었을 것,
내가 저 때 상인이었으면 엄청 비싸게 팔았을 걸?

이다지> 엄청 비싸긴 했대
그래서 중국 물건이 고가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은
책가도 그림으로 눈을 돌렸어
당시 책가도 수요가 얼마나 많았냐면
웬만한 조선 양반가에선 책가도 병풍 하나쯤은
다 갖고 있었을 정도였대

MC 한상헌>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책가도를 찾다 보니
이렇게 다양한 책가도가 탄생한 것 같은데요.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게 우리가 본
정조 스타일의 책가도는..
저 같으면 보기만 해도 잠 올 것 같은데
홍경민 씨는 어때요?

홍경민> 그러게? 오늘 우리가 본 책가도 중에
정조의 책가도가 가~~~장 검소해 보이고, 지루하긴 하네
좋게 말하면 학자의 분위기가 물씬 난달까?

키썸> 솔직히 난 약간 숨 막히는 느낌도 들었어
책이 많아도~ 많아도~ 너~무 많아

박성광> 그래요? 난 우리 집 서재랑 느낌이 비슷해서 친숙한데?
내 서재에 와있는 느낌이야~~

홍경민> 아니 이렇게 아무도 못 믿을 얘기를!!
가장 최근에 읽은 책 뭔데?
박성광> 아.. 곤란한 질문인데 내 책들은 다 장식품이야..
이 안 올 때 꺼내 보는 용도랄까?

엄지인> 근데 정조는 저걸 다 읽었을 것 같아
왜냐면 정조는 별명이 책벌레야
새벽닭이 울 때까지 책을 읽었대
특히 24년의 재위 기간 동안 150여 가지 분야에서
4천 여권 이상의 책을 편찬하고, 출판할 정도로
정조의 책 사랑은 조선 넘버 원!

다니엘> 아무리 그래도 정조가 이런 스타일의
책가도를 굳이~~~ 고집한 건
일종의 ‘지적 허세’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최여진> 저도 그 말에 동감합니다.
이 책가도만 해도 그래요.
제가 책이 몇 권이나 있는지 직접 다 세어 봤는데요.
1,300권이 넘더라고요.
당시 조선에서 이렇게 많은 책을 가질 수 있는 건
왕만이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홍경민> 뭐라? 저 책들이 모두 1,300권이 넘는다고?
그런데 아까 정조가 이 많은 책 그림의 제목을
하나하나 다 지어 줬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거 정말 가능한 일입니까?

이기환> 정조의 책가도엔 아무 책이나 들어갈 수 없었거든
그래서 정조는 책 종류, 제목까지 지정해 주면서
책가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경사자집’이라고 역사책, 맹자, 노자 등의 자서, 시집,
그리고 중국 제자백가에선
오직 장자만 포함시킬 정도로 아주 엄격하게!

키썸> 정조는 진정한 책가도의 기획자이자 프로듀서였네!

엄지인>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게
정조가 단순히 책이 좋다는 이유로
조선 왕조 400년 전통을 깼다? 뭔가 좀 이상한데,
정조가 일월오봉도 대신
책가도를 세운 덴 뭔가 숨은 의도가 있는 것 같아

이기환> 정조가 일월오봉도를 치우고 책가도를 걸면서
신하들에게 ‘경들도 보이는가?’라고 물어
신하들이 ‘보인다’고 하니까
‘이건 책이 아니라 그림이다’란 유명한 말을 남기지
이제부터 나는 책정치를 펼치겠다는 선전포고이자
책과 학문으로써 세상을 다스리겠다는
정조의 정치적 포부를 밝힌 것 같아

홍경민> 책과 학문으로써 세상을 다스린다니
정조 정말 있어 보이는데요
본인이 책과 학문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가능한 거잖아요~

이다지> 그런데 그 책정치가 항상 좋은 건 아녔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당직을 하던 관리가 청나라 소설인
평산냉연이란 책을 읽고 있었어
이걸 본 정조는 크게 화를 내면서 책을 불태우고,
책을 읽은 관리를 파직시켜버려

키썸> 왜? 평산냉연이 뭐 위험한 책이었어?

이다지> 아니야, 청나라 초기, 남녀 4명의 사랑을 다룬
로맨스 소설이었는데, 당시 사람들이 엄청 좋아했대~

박성광> 이게 뭐라고, 책을 불태울 정도로..
정조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 아냐?

이기환> 정조는 소설을 패관문학이라고 정의했는데
이런 게 기존 글을 오염시키고, 격을 떨어트린다면서,
솔직한 감정과 인간의 본성을 다루는 글이
사람들의 정신을 흐린다고 봤어

다니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이 <삼국지>, <수호전>이거든
정조가 이런 소설도 싫어했던 얘기 들은 적 있는데
이것도 사실이야?

최여진 > 맞아요. 실망하지 말아요, 다니엘~~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싫어한 책이 있었는데
바로 온 국민이 열광했던 박지원의 <열하일기>였어요.
이게 베스트셀러가 되니까 정조도 직접 찾아서 봅니다.
그런데 다 읽은 정조, 어떻게 한 줄 아세요?
고문을 망치는 글이라며
박지원에게 반성문을 쓰게 합니다.
그 이유가 좀 황당한데요.
너무 술술 잘 읽히는 게 문제였어요.

MC 한상헌> 문화 군주 정조에게
이런 의외의 모습이 있다는 게 좀 놀라운데요.
로맨스 소설 읽었다고 파직!
책 그림 안 그렸다고 파직!
이 정도라면, 만일 정조가 최여진 씨가 좋아하는
책가도를 봤다면, 노발대발했을지도 모르겠는데요?

최여진> 그러게 말이에요. 하지만 다행히도!
정조는 제가 좋아하는 책가도는 못 본 것 같은데요.
아마 봤다면 마음에 들어 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중국산 사치품 수입이
계속해서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고,
정조는 호화로운 수집 풍조를 신랄하게 비판하거든요.

이기환>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조선 시대에는 완물상지라고,
물건을 갖고 노는 걸 좋아하면 마음을 잃는다고 했어
그래서 물건 수집은 지양하고,
청빈하고 검소한 생활을 이상적인 삶으로 여겼는데
이건 그것과 너무 배치되는 유행이니까

엄지인> 사실 조선이라는 사회가 오랫동안
다른 세계와 단절돼 있었잖아
그런 와중에 청나라라는 아주 신선한 자극제를 만났고,
새로운 세상을 눈을 뜨기 시작한 거 아닐까?

키썸>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는데,
정조가 그걸 막으려고 했으니, 괴로웠을 것 같아
하지 말라고 하면 더더더 하고 싶었을 텐데..

다니엘> <천상의 컬렉션>에서 소개된 정조는
항상 멋진 모습만 보였는데,
소설을 금지하고, 글을 검열하고, 너무 의외의 모습이네

이다지> 정조는 청나라 열풍을 경계했지만 결국은 막지 못했어
책가도도 정조가 원조지만,
정작 나중에 유행한 건 정조 스타일과
다 거리가 멀었던 것처럼.
19세기 후반, 조선 사회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었던 건 확실한 거 같아

MC 한상헌> 왕이 사랑한 책가도!
양반부터 서민까지 무려 200년 동안
완판 행진을 이어간 스테디셀러란 생각이 드는데요.
최여진 씨, 그런데 민화 책가도는
우리가 본 궁중 책가도랑은 또 다르네요?

최여진> 그렇죠. ‘책가도의 변신은 무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보시는 게 민화 책거리라는 건데요.
궁중 책가도에 비해서 훨씬 자유분방하고,
화려하고, 대담한, 파격적인 구성이 눈에 띄죠.

이다지> 최여진 씨가 정확하게 짚어주셨는데
민화로 넘어오면서 크기는 확실히 줄어들어
커다란 병풍은 왕이나 사대부 집에나 걸 수 있었지
일반 서민들의 주거 공간은 그보다 훨씬 작으니까
그거에 맞게 자연스럽게 축소된 거야

홍경민> 일단 딱 봐도 확실히 책이 확 줄어들었어!
원래 주연이었던 책이 조연으로 확 밀려났네?

박성광> 나는 작은 공간에 저 많은 걸 어떻게 다 넣었나 싶어
보자마자 테트리스 게임이 떠올랐어

이기환> 확실히 양반들이 좋아한 책가도는
나 이런 거 가진 사람이야~
이런 허세나 과시를 위한 그림이었던 것에 비해서
서민들의 책가도는 행복, 장수, 출세를 염원하는
길상의 상징들이 더 부각되어 있어

엄지인> 포도, 오이, 가지, 수박은 다산,
잉어는 장수, 금붕어는 성공,
나비와 호랑이는 부부 금슬을 상징한대
지금 당장 필요한 것, 바람,
이런 것들을 상징적으로 그렸어

다니엘> 부적이었던 거네요
확실히 양반들보다는 서민들이 훨씬 더 솔직하고,
현실적인 것 같은데?

MC 한상헌> 사실 책가도는 외국인들이
정말 좋아하는 그림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미국 주요 도시를 순회 중인데
그 반응이 아주 폭발적이라고 하더라고요?
다니엘이 보기엔 책가도의 어떤 점이
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아요?

다니엘> 서양 사람들이 좋아하는 중국의 물건들이 가득해서
아마 시선을 사로잡을 것 같아
게다가 어딜 봐도 똑같은 구성이 없고 다채로운 게
굉장히 호기심이 가는 그림이야

엄지인> 나는 처음에 조선 그림이란 게 너무 의외였어
서양식 원근법과 명암법으로 입체감을 살린 게
몬드리안의 작품을 보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 외국인들에게 친숙한 그림이지 않을까

이기환> 무엇보다 책가도에 표현된 욕망이
너무 과하거나 적나라하지 않고, 은유적이라는 거
그런 세련됨이 책가도의 인기 비결인 것 같은데?

최여진> 사실 책가도라는 건,
서양의 화법이 들어가긴 했지만
이렇게 책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그림은
오직 한국에만 있는 아주 독특한 장르잖아요?
그런 희귀성 때문에 이 책가도가
더 인기를 누리는 것 같습니다.

MC 한상헌> 조선의 르네상스!
그 시작과 끝을 함께 한 그림! 책가도를 만나봤습니다.
왕에서부터 민중까지,
무려 200년 동안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귀한 보물이었는데요.
이제 최여진 씨의 최후 한마디와 함께
책가도, 중간 투표를 마감하겠습니다.

최여진> 조선 시대 사람들은요
남들의 시선, 보이지 않는 평가에 연연하면서
자신의 감정은 꽁꽁 숨겼습니다
그게 최고 미덕이라 여기면서요
답답했겠죠

그래서인지 이응록의 책가도를 보면
자유로움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싶은 대로, 표현하고 싶은 대로
그린 느낌이 들거든요
이응록의 <책가도>를 보면서
인간의 감정은 아무리 억누르려 해도,
또 아무리 숨기려 해도 표출될 수밖에 없구나,
또 그렇게 표출되는 게 자연스러운 거구나..
라는 걸 느꼈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은 걸 느꼈다면
지금 이 스튜디오를 환하게 밝혀주세요, 고맙습니다

MC 한상헌> 최여진 씨의 환상적인 무대부터
마지막 최후 한마디까지 모두 잘 들었습니다.
이야기에 빠져드느라 버튼 누르는 걸 잊으신 분들은
지금 눌러주시면 됩니다.

자, 그럼 최여진 씨의 <책가도>!
투표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제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멋진 무대를 보여주신 최여진 씨께
여러분 다시 한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아직 불을 끄시면 안 됩니다.
집계가 모두 완료될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네! 이제 집계가 모두 끝났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불을 꺼주시면 됩니다.

중간 투표는 여러 번 투표하실 수 있으니까
두 번째, 세 번째 호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그 보물이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그때 또다시, 불을 밝혀주시면 됩니다.
자, 그럼 두 번째 호스트는
어떤 보물을 가지고 나왔을까요. 바로 만나 보시죠!

3. 서경석 <달 항아리>

서경석> 여러분 밤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던 경험,
다들 한번은 있으시죠?

오늘은 스튜디오에서
소원을 비실 수 있습니다.
제가 오늘 소개할 보물은 바로
저 달을 닮은 달 항아리, 백자대호입니다.

벌써부터 손 모으는 분들 계시는데
소원은 제 발표가 끝나고 비시는 걸로.
버튼 누르면서

근데 표정들이 영...
그동안 등장했던 보물들에 비해
좀 심심하고 상당히 밋밋하죠.

네, 이게 너무 평범해 보이니까
우리나라에선 그 매력을 처음엔 잘 몰랐습니다.

오히려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 ‘가치’를 먼저 알아봤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그릇! 이라는
찬사를 보낸 사람.
바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고요

세계적인 대부호
빌 게이츠는 이 달 항아리에 반해
달 항아리 그림을 석 점이나 사들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밀라노, 사우디, 런던 등지에서
달 항아리 전시를 할 때마다
세계인의 극찬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더한데요.
오사카 미술관에 이 달 항아리가
딱 한 점 전시되어 있는데
그것이 중간에 약 4년간 모습을 감춘 적이 있어요.

왜냐하면 도둑이 이 달 항아리를 훔쳐가다가
떨어뜨립니다. 산산조각이 나버렸어요.
깨져서 흩어진 조각이 무려 300조각 이상이었는데,
그것들을 하나, 하나 가루까지 모아서
원래 모습으로 복원시킵니다.
무려 4년에 걸쳐서 말이죠.
얼마나 귀하게 여겼으면 그랬겠습니까.
대체 그 매력이 얼마나 컸길래!

자, 저기 저것은
조선 시대 만들어진 달 항아리입니다.
국보 310호 달 항아리예요.

크기는 높이 40cm 이상이고요,
형태적으로 완벽한 조형감.
눈의 빛깔에 가까운 흰색을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됐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좀 특이합니다.
모양이 살짝? 비스듬-하죠?

자, 현대에 와서 제작된
이 달 항아리로 한 번 볼까요?
제가 지금 여기서 바라보고 있는
이 달 항아리와 저기 불을 안 켜고 계시는
여성 청중의 자리에서 보는 달 항아리.
과연 모양이 같을까요? 다를까요?

제가 천천히 돌려보겠습니다.
어떠세요? 돌아갈 때마다
차이가 느껴지세요? 조금씩 다르죠?

달 항아리는 다른 항아리들과 달리
완벽한 원형이 아니라서
보는 방향에 따라 그 모양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이 달 항아리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마치 열 개를 감상할 수 있는 것과 같다고들 하지요.

한 개의 항아리에서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첫 번째 매력입니다.

자, 이번엔 고정된 상태에서
5초간 달 항아리를 응시해보겠습니다.
자- 어떠세요?

정확한 원형이 아닌 비대칭, 부조화에서
은근-히 자유로움이 느껴지지 않나요?

특히 이 둥근 배 부분은
쓰다듬고 싶고, 안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저도 한 번
안아 보겠습니다. 아...편안합니다.

여러분, 분명히 제가 항아리를 안았잖아요?
그런데 놀랍게도 항아리가 저를
안아주는 것 같은 포근함이 느껴집니다.
제대로 힐링이 됩니다.

이래서 전 세계인들이 매료된 건 가 봐요.
친근하면서도 자유롭고
질리지 않으면서도 편안한 매력!
그럼 전 이만,
이 느낌 이대로 쉬고 올게요.

여러분도 이제 슬슬
달 항아리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고 계신가요?

지금까지 여러분의 ‘눈’을 통해
볼 수 있는 매력을 소개했다면,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매력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당시 조선 시대 도공들은
과연 ‘의도적’으로 이 달 항아리를
삐뚤어지고 일그러지게 만들었을까요?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시대를 막론하고
일관되게 유지된 우리 도자기의 기본은
완벽한 좌우대칭을 이룬 매끈함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당시 기술로는
이처럼 일정 크기 이상의 항아리를
한 번에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큰 도자기 반죽은
물레에 놓고 돌리자마자,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죠.
도공들은 어떻게든 둥근 달을 닮은
넉넉한 항아리를 만들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방법을 찾아냅니다.

바로 위, 아래 반죽을 따로따로 만든 후에
둘을 이어 붙이는 거죠.

드디어 완벽한 대칭의 모습을 한
도자기가 나오겠구나! 기대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갖은 정성을 다해 반죽을 만들어도
장작불 가마 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만 하면!
꼭 한쪽이 일그러지거나 뒤뚱거리는 모습으로
나타났던 겁니다.

게다가 두 개를 이어붙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깔끔하지도 않았죠.

영화, 드라마를 보면
가마에서 구워진 도자기의 모양이
맘에 안 들어서 장인이 가차 없이 깨버리는 장면!
많이들 보셨죠?

아마 수많은 달 항아리들이 깨졌을 겁니다.

도공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깨고 또 깨고...이젠 깨는 것도 지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달 항아리를 망연자실 쳐다보고 있었을 겁니다..

그 순간! 도공의 눈에
달 항아리의 매력이 들어온 게 아닐까요.
이렇게 보니 이런 모습,
저렇게 보니 저런 모습!
질리지 않는 다양함에
자유로움, 편안함, 푸근함까지
달 항아리가 품고 있는
오묘한 아름다움들을 발견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진인사대천명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난 할 만큼 했다!
하늘의 뜻이 그렇다면
그대로 받아들이겠다!
아무리 항아리를 열심히
빚고 다듬고 노력해도
1350도 가까이 되는 불가마 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달라져 버리는 모습,
불완전하지만 자연스런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기로 말이죠.

요즘 참 삶이 팍팍하죠.
하지만 생각을 좀 바꿔보면 어떨까요?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조금 키가 작고 배가 나왔지만,
그래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
‘나’ 그대로를 인정하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선보인 국보 달 항아리가
우리에게 지나친 욕심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라고
얘기하고 있는 듯합니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백자 달항아리였습니다.

MC 한상헌> 달 항아리가 우선 크기가 어마어마하네요.
그래서 ‘백자대호’라고 부르나 봐요.
사실 무늬도 없고 뭔가 심심하다고 여겼는데
확실히! 보면 볼수록 묘-한 매력이 느껴집니다.
서경석 씨는 준비하면서 어떠셨어요?

서경석> 사실 저도 처음에 이게 뭔가 했어요.
값비싼 금이 붙어있든가 화려하기는커녕
달 항아리는 정반대잖아요. 그래서 더
궁금하더라고요? 그런데 진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 달 항아리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홍경민> 혹시...! 대충 만든 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거든요. 그래서 비뚤어지더라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그냥 쓴 거 아닐까? 하고 말이죠.

서경석> 여러분들이 오해할 수 있는데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준비한 이 달 항아리 도예가 님 만 해도
흙을 구하는 것부터 어마어마한 정성을 들이시더라고요.
푸른색이 도는지, 노란빛이 도는지 백색 흙의 종류도
다양하거든요. 그리고 구울 때는 가마 옆에서 식사도
하시고 계속 불 조절을 하신다고 해요.

키썸> 이 귀한 보물에 값을 매기는 게
조금 죄송스럽긴 하지만,
저뿐만 아니라 모든 시청자들은 단 하나!
지금 이 달 항아리가 과연 얼마나 하는지!
궁금할 것 같아요. 얼마 정도 하나요?

서경석> 네, 그렇죠. 놀라지 마세요.
가격이 만드는 방식에 따라 천차만별이에요.
우선 이 도자기는 가격이 1,200만 원 이상 거래되고
있어요. 그만큼 옛날 전통 방식으로 빚은 달 항아리의
가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이죠

-우와~1,200만 원!
도예가님 기증하실 생각은 없으실까요? 저에게!
-오늘 하룻밤만 제가 좀 안고 자고 싶어지네요.

엄지인> 해외 경매시장에서도 달 항아리는
인기 만점! 이거든요 달 항아리 최고가가
얼마였을 것 같으세요?

키썸> 1억?

박성광> 에이~ 그래도 사이즈가 크니까 더 줘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5억 정도 봅니다.

엄지인> 자 다들 놀라지 마세요! 지난 2015년에
일본 수집가가 50년 간 소장하고 있던 백자 달항아리가
홍콩 경매장에 나왔거든요. 그때 낙찰가가 1,416만
홍콩달러, 한국 돈으로 약 21억 원이었어요.

- 그 돈이면 달도 사겠어요!
- 지금부터 열심히 달 항아리를 빚어야 할까 봐요.
- 보기엔 밋밋한데 강한 한방이 가격에 있었네~

홍경민> 아 맞다! 예전에 엄앵란 씨가 인사동에서
6만 원 주고 산 달 항아리를 진품명품에 가지고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감정가 5,000만원이었거든요.
진짜 부럽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당장 인사동에 가서
요렇게 생긴 항아리들 좀 수집해야겠어요.

다같이 -같이 가요~이제부터 아침에 인사동으로
출근 도장 찍어야겠네!

이기환> 18세기, 중국과 일본은 유럽 사람들의
기호에 맞는 도자기만을 빚어서 수출해요. 그러다 보니
정작 자기만의 색깔은 잃게 되거든요.
그런데 반대로 조선은 세계시장과 소통하지 못하고
단절되면서 달 항아리라는
조선 스타일의 도자기가 탄생하게 된 거죠.

MC 한상헌> 달 항아리가 세계에서 인정받는데
분명 어떤 매력이 있을 텐데요,
박성광 씨 보시기에는 어떤 매력이 있는 것
같으세요?

박성광> 사실 전 달 항아리를 보면서
저를 보는 것 같았어요. 사람이 뭔가 완벽하면 거리감
느껴지잖아요. 근데 저는 빈틈이 아주 쪼-금 있어요.
이 달 항아리처럼 완벽하지 않은 점이 제 매력이거든요.

홍경민> 응? 빈틈이 쪼-금 있는 것 맞아요?
아닌데~군데군데 보이는 것 같은데!

박성광> 에잇! 무슨 소리예요. 사실 가만 보면 사람들이
완벽한 것보다 약간 비틀어지고, 부족한 것에 끌려요.
예를 들면 전 퍼그! 약간 눌린 모습이 묘하게 사람을
웃게 만들거든요. 빵으로 치면 소보루빵!
울퉁불퉁할수록 맛이 또 기가 막혀요.
달 항아리의 매력이 그런 거 아닐까요?

키썸> 사실 제가 데뷔하고 나서 성형을 좀 하고 싶었거든요. 턱을 좀 깎고 싶었어요. 근데 주변에서 고맙게도 말리더라고요. 그래서 안 했는데, 사실 속으로 고민 좀 했거든요? 그러다 오늘 달 항아리를 보니 수술을 하지 말아야겠어요. 요즘으로 치면 성형미인이 아니라 진정한 자연 미인인 거잖아요?

엄지인> 달 항아리가 보면 진짜 달을 닮은 것 같아요.
달은 매일 모습이 변하잖아요.
어떤 날은 호빵 모양이었다가? 또 어떤 날은
손톱 모양을 하고 있고요.

다니엘> 서양에서는 달의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않아요. 마녀, 늑대를 상징해서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거든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같은 느낌?
반대로, 한국 사람들은 달을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보름달이 뜨면 소원도 빌고요.

이다지> 사실 달이 인류 최초의 TV와도 같다고 해요
옛날 사람들은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TV도 없었잖아요. 대신에 어둠 가운데 유일하게
빛나고 있는 달을 보면서 자신의 꿈이나, 바람 등을
그려 넣고 상상했던 거죠. TV 화면 처럼요.

MC 한상헌> 그런데 이 달항아리가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하게 되죠.
더 놀라운 점은 국내에서보다 사실 해외에서
먼저 알려졌다면서요?

서경석> 국내에서 달 항아리의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한 게 1950년대 이후의 일인데요.
한국 사람들보다 먼저 달 항아리의 매력에 푹 빠진
외국인이 있었어요. 영국 최고의 도예가 버나드 리치!
1935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는 행복을 안고 갑니다”
라는 말과 함께 달 항아리를 사갔다고 합니다.

홍경민> 오~아까 서경석 씨가 브릿지 전에
껴안았던 그 표정으로 똑같이 달 항아리를 안고 갔을 것
같은데요? 이 달 항아리가 국적 불문 포옹 유발자네!

이기환> 버나드 리치의 공방은 도자기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성지 순례의 장소예요. 버나드 리치의
영향을 받아서 영국에 달 항아리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공방이 여럿이라고 해요.

MC 한상헌> 그럼 이 달 항아리는 처음에 어디서 어떻게
쓰였을지 또 궁금해지는데요, 보시기에 어떠세요?
지금처럼 관상용으로만 쓰였을까요?

홍경민> 자, 상상해보세요. 둥근 달이 떠 있는 밤.
달 아래서 달 항아리 안에 무엇이 있으면
딱 어울리겠어요? 응? 캬~술 한 잔 아니겠습니까.
달 항아리에 담긴 술을 떠서 달을 안주 삼아
한잔 씩 마시는 거죠. 술독! 진짜 최고일 것 같은데요?

박성광> 오~일리가 있는데요?
가게에 달 항아리에 술을 담아서 하나 놓을까 봐요
저는 또 하나! 시골 할머니 집에 가면 딱 요만한 크기의
장독이 있어요. 크기랑 모양이 딱 이거랑 비슷하거든요.
달 항아리도 장독처럼 장을 담는 용기로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다니엘> 저는 운동을 하거든요. 태권도를 할 때 꼭 흰색을
입어요. 순수하고 깨끗한 정신을 지키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건데, 혹시 달 항아리도 놓고 보면서
정신을 맑게 힐링을 하는 용도로 만든 게 아니었을까?

키썸> 여자들이 남자친구한테 달 따달라고
하잖아요. 달 대신에 달 항아리를 선물하면 좋았을 것
같아요. 연인에게 줄 프러포즈 선물은 아니었을까요?

이기환> 국보 제309호 달 항아리를 보면 표면에
기름 얼룩이 남아 있거든요. 감상용으로만 썼다면 그런
자국이 안 남았겠죠. 기름이나 장을 담는 용도로
쓰다가, 장이 항아리 표면에 스며들어 얼룩이 생겼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크기가 작은 달 항아리의
경우 음식을 저장하는 용도로 썼다고들 하죠.

엄지인> 백자가 도자기 가운데 가장 만들기 힘든
도자기라고 하더라고요. 힘들게 만든 백자를 왜 장을
담는 용도로 썼을까 싶은데, 장이 변하면 집안에
문제가 생긴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장을 아끼고 귀하게
여긴 만큼 소중한 달 항아리에 보관했을 것 같아요.

이다지> 일본에서는 풍수지리학적인 이유로
달 항아리를 장식용으로 두기도 한다더라고.
달 항아리가 좋은 기운을 뿜는대요.
달 항아리 모양에 정답이 없듯이, 그 쓰임새에도 정답이
없는 거 같아요.

MC 한상헌> 사실 달 항아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고 해요.
그래서 다양한 상상이 가능한 것 또한 달 항아리의
매력이 아닐까 싶은데요, 분명한 건 지금 이 시대에
달 항아리를 힐링, 단순미 등으로 평가한다는 점이죠.
이런 달 항아리는 언제 처음 등장한 건가요?

서경석> 달 항아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 숙종 말년에 처음 등장하는데요,
숙종, 영조를 거쳐 정조 이후에는 완전히 사라져버려요.
딱 100년간 유행하고 그 이후로는 모습을 감춘 거죠.

홍경민> 왜 하필 딱 그때 등장해서 100년 만에
사라져 버린 걸까요? 달 항아리 만드는 비법이
제자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 됐나?

이다지> 숙종 때 영조가 왕실의 도자기를 만드는 곳에서
일을 했거든요. 그러면서 도자기에 관심이 많아져요.
왕이 된 후에도 직접 도자기 밑그림을 그려서
구워 오라고 시키기도 했대요. 검소한 왕이었던
영조의 취향, 미적 감각이 담긴 도자기가
이 달 항아리 아닐까 싶은데요, 희한하게 그 뒤에
사라져요. 그 뒤에는 화려하고 무늬가 들어가 있는
도자기들이 인기를 얻죠.

이기환> 이 달 항아리의 최대 매력 중 하나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 보이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궁궐 안에 놓든,
초가집에 놓든, 일본이든 런던이든 다 거기 환경에
맞춰서 녹아들듯이 어울리는 것이 달 항아리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볼 수 있죠.

한상헌> 마치 달을 품은 듯한 달 항아리!
오늘 함께 한 많은 분들도 달항아리처럼
넉넉하고 편안한 기운을 얻어가셨으면 좋겠네요.
그럼 서경석 씨의 최후 한마디 듣고
투표 마무리 하겠습니다.

서경석> 사실 현대 기술로
크고 완벽하게 좌우 대칭이 되는
달 항아리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해요.
그런데 그것의 가치는 높지 않습니다.
최대한 일그러지고
자연스러움이 녹아나는 것이
진짜 달 항아리에 담긴 진정한 가치니까요.

그래서 여러분?!
저는 이대로 살 겁니다. 전 누가 뭐래도 저니까요.
백자 달 항아리였습니다.

MC 한상헌> 서경석 씨의 최후 한마디 잘 들었습니다.
버튼 누르는 걸 깜빡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아차! 싶으신 분들은 지금 눌러주시고요.

이제 투표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도 감동을 전해준 서경석 씨, 고맙습니다.
이제 들어가셔도 됩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박수 부탁드립니다.

아직 불을 끄지 마시고요.
집계가 모두 완료될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이제 집계가 모두 끝났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불을 꺼도 됩니다.

아까도 알려드렸지만
중간 투표는 중복 투표가 가능한 거 아시죠?
마지막 호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그 보물이 또 마음에 드시면
그때 또, 불을 밝혀주시면 됩니다.
자, 그럼 다음 호스트는
어떤 보물을 가지고 나왔을까요. 바로 만나 보시죠!

4. 안내상 <곽재우 장검>
안내상> 임진년, 4월 13일
부산에 상륙한 왜군은 파죽지세였습니다.
부산성, 동래성을 함락시키고 서울로 진격!
조선의 왕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줄행랑을 치죠.
군대는 궤멸하고 왕은 도망을 간 상황..
그들은 아마 다 이긴 전쟁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왜군들을 당황하게 한 존재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존재!
바로 ‘의병’입니다.

일본 역사에선 대장이 항복하면 전쟁은 끝납니다.
그런데 조선이란 나라는 참 이상해요.
가장 힘 있는 자, 왕은 도망갔는데,
재야의 선비들과 가장 힘없고 나약한 사람들이
싸워보겠다고 일어섰어요.

저는 오늘 전쟁의 화마 속, 도망간 임금을 대신해,
백성들의 대장이 되었던 한 사람의
유물을 들고 나왔습니다.
바로 곽재우 장군의 검입니다.

검의 길이는 거의 90cm. 길죠?
칼자루 끝은 꽃 모양으로 장식 돼있고요.
검집엔 구리 장식이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칼날은 조선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길이가 길고 끝이 휘어진 건 일본 스타일!
왜군이 쓰던 칼에 손잡이를 새로 달고 장식을 해서
개량한 검입니다.
이게 뭘 뜻할 것 같습니까?
당시 의병들은 변변찮은 무기조차 없었단 얘기죠.
적의 무기를 쥐고 싸워야 할 만큼 처절했단 얘깁니다.

곽재우는 전쟁 전 이름난 부자였습니다.
돈도 많겠다, 맡은 임무도 없겠다
저 같으면 빨리 짐 싸서 피난 갔을 거 같거든요.
하지만 곽재우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선비로서 그가 공부해왔던 ‘의’를 선택하고 실천합니다.

의리를 지키려고 했던 그의 시작.. 어땠을 것 같으세요?
초라했습니다. 아주~ 보잘것없었죠.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이 수 만 명 밀려들어오는데
함께 싸우기로 한 사람이 몇 명이었는 줄 아세요?
열 명!
그것도 집에서 비질하고 농사짓던 집안 노비였어요.

적을 앞두고 쫄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었을까요?
그는 아버지가 명나라 천자에게 받았던
붉은 비단으로 옷을 해 입습니다.
그리고 앞장섭니다.
백성과 함께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이 호칭을 붙여줍니다.
홍의장군!

열 명으로 의병을 일으킨 뒤,
곽재우는 알고 지내던 선비들을 설득합니다.
그래 봤자 고작 수십 명.

하지만! 이 적은 숫자가 정암진에서
물리친 적의 수가 몇 명인 줄 아십니까?
2,000명!
얼마 되지 않는 수의 의병들로
무장한 군대 2,000명을 이긴 겁니다.
조선 의병 최초의 승리였죠.
왕도, 나라의 군대도 해내지 못한 승리를
힘없는 백성들과 재야의 선비들이 이뤄냅니다.

칼을 쓴다는 건, 목숨을 건다는 말입니다.
목숨을 걸었던 건 곽재우와 함께했던
의병들도 마찬가지였겠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백성들이
부양해야 할 자식, 부모를 버려두고 죽으러 나왔습니다.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간절함이 승리했어요. 이겼단 말이죠.
그때!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 환희가 조선 팔도 곳곳에 들불처럼 번져
너도나도 다 함께 가자고 일어난 거죠.

백성들은, 관군이 아니라.
곽재우 장군의 의병이 되길 바랐답니다.
왜? 곽재우 장군은 자신의 부하를 지켜주니까요.
반드시 지켜주니까!
그래서 옷 주고 무기 주고 관직 주는 관군이 아니라,
곽재우의 부하로 싸우길 원했어요.

백성들은 알아본 거죠.
곽재우가 부하에 대한 ‘의리’를 아는 사람이란 걸.
앞장서는 이가 의(義)를 아는 사람일 때,
이 사람이구나! 이 사람과 함께 가야겠다!
생각했을 거예요.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니, 뭐가 빨랐겠어요.
정보수집! 정보전에 능했죠.
진흙 뻘을 말 타고 이동하려고
적들이 메마른 땅에 말뚝을 박아둔단 소식을 입수하면?
밤새 말뚝을 다른 데다 박아버려요.
다음날 말뚝 따라가던 왜군이 진흙탕에 빠져서
허둥지둥 대면? 매복해 있다가 기습공격!

이 칼을 보면요,
적의 피를 많이 묻힌 검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두께가 3cm...
날렵해서 찌르고 빼는데 힘이 들지 않죠.

손잡이는 아주 짧아서 두 손으로 쥘 수 없죠.
한 손으로만 잡아야 해요.
이건 조선 검에서도,
일본 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스타일입니다.
왜 이렇게 만들었냐?
말을 타고 한 손으로 휘두르려고!
해치우고 빨리 사라져야 하니까...
의병들의 전투는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이죠.
다시 말해 이 검은, 의병 전투에 딱 맞는!
꼭 맞게 만들어진 검인 거죠.

임진왜란은, 화력으로 무장한 30만 일본 대군을 상대로
조선이 승리한 전쟁이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전쟁이라는 건 ‘군대’ 와 ‘군대’간의 대결만이 아닙니다.
백성이 승복했을 때, 비로소 전쟁은 끝이 납니다.
그런데 의병은 그 백성들이 모여 만든 군댑니다.

의병은요, 정말로 이기기가 어려워요.
힘이 세서? 아니죠?
짓밟혀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기 때문이죠!
그래서 곽재우가 백성과 함께한 전투에는
패배의 기록이 없습니다.
곽재우는 이 검으로 백성과 함께
무패의 신화를 쓴 거죠.

그런데 이상하죠?
선조는 곽재우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의심합니다. 곽재우가 인기가 너무 많으니까,
반역 일으킬까 봐.. 사람을 보내서 감시까지 해요.
잘 싸우고 있는 의병을 관군에 합치고 분산시켜요.
기세를 떨어트립니다.

대단한 공을 세운 것도 아닌 명나라 장수들은
공신책록에 팍팍 올려주면서
곽재우의 이름은 빼버립니다.
마치 백성에게서
장군에 대한 기억을 지우려고 하는 것처럼.

말년에 곽재우는 패랭이를 만들며
생계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낚시 배 한 척, 거문고 한 대...
그것이 백성들과 함께하며 나라를 구했던
그에게 남은 전부였습니다.
허나! 백성들은 그 이름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를 뭐라고 불렀습니까?
곽재우 ‘장군’! ‘장군’입니다.
관직을 받아서 얻은 호칭이 아니죠.
백성의 대장이자, 민중의 임금이란 뜻입니다.

곽재우가 쥐고 가리키는 칼끝이
전란 속을 헤매던 조선 백성이 나아갈 방향이었던 거죠.

400여 년 전, 민중이 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던 검.
백성과 함께 무패의 신화를 만들어 낸 불멸의 검.
망우당 곽재우 장검입니다.

MC 한상헌> 마치 홍의장군 곽재우 장군을
이 자리에서 만나본 것 같은 멋진 발표였습니다.
곽재우 장군이 사용한 곽재우 장검을 만나봤는데요.
준비하면서 어떠셨어요?

안내상> 제가 이 발표를 준비하면서
곽재우 장군과 그의 의병에 대해 많이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사실 임진왜란 하면
권율 장군 이순신 장군 같은 사람들만 기억하잖아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웠던 수많은 의병들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MC 한상헌> 오늘 충분히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남을 멋진 프레젠테이션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키썸> 저 궁금한 게 외국도 의병이 있나요?

다니엘> 독일도 의병이 있어요. 나폴레옹 전쟁 때 특히 학생들이
사방에서 모여 나폴레옹을 막으려고
전쟁에 나갔거든요. 나라에서 주는 군복이 없으니
직접 만든 군복을 입고 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군복의 색은 까만색, 단추는 노란색,
어깨에 털은 빨간색으로 통일시켰어요.
그게 나중에 상징적으로 독일 국기의 색이 된 거죠.

키 썸> 저도 곽재우 장군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고 있었어요.
특히 부자였던 사실은 몰랐었는데 사비 털어서 의병 일으켰다니 감동이에요.

홍경민> 저도 오늘 새로 안 사실이 많은데! 보다 보니까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랑 곽재우 장군이
닮은 점이 많아요.

MC 한상헌> 어떤 점이 누구랑 닮았나요?

홍경민> 아이언맨이요.
일단 두 분 다 빨간 옷을 입었고요. 똑똑했고요.
막대한 재산도 가지고 있고.
곽재우 장군은 조선의 아이언맨이네요.

박성광> 아이언맨 워머도 붉은색이잖아요. 곽재우는 홍의장군!
아이언맨도 부자, 곽재우도 부자!

이기환> 곽재우에겐 어머니가 둘 있었는데 세 살 때 돌아가신 친어머니는 의령 일대에 알아주는 부자였는데 외동딸이었어요. 새어머니가 들어오는데 이 새어머니 집안 역시 부자였죠. 당시는 여자도 재산 상속이 가능한 시대였으니 두 집 재산이 곽재우에게 간 겁니다.

이다지> 광해군일기에도 보면 ‘곽재우의 집에 재산이 수만금이나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요.

키썸> 근데 왜 빨간 옷을 입으신 거예요?
사실 빨간 옷은 패션 피플들도 소화하기 힘든 색인데
혹시 피부 톤이 빨간색이 잘 받는 웜톤이셨나요?

박성광> 예전에 학교 다닐 때 빨간 팬티 입고 시험 치면
시험 대박 난다 뭐 이런 말이 있었어요.
곽재우 장군도 그랬던 거 아닐까요?
빨간 옷 입고 나갔는데 이겼어. 그러니까 그 뒤부터
곽재우 장군에게 빨간색은 행운의 상징이었던 거죠.

키썸> 빨간 팬티? 슈퍼맨이셨나요?
홍경민> 저도 비슷한 징크스 있어요. 노래 부를 때..
그래서 꼭 그거 지키려고 해요.

엄지인> 곽재우 장군은 아버지가 명나라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때 명나라 황제에게 받은 비단으로 옷을 해 입었어요.
내 뒤에 중국 황제가 있다. 겁도 주고 또 본인도 그 힘을 받아서 싸우려고 했던 거 아닐까요?

박성광> 그런데 명나라 황제가 내려준 옷감이면
굉장히 품질 좋은 옷감 아니에요? 명품이네.
전쟁터에 나갈 때 명품 정장 입고 나가는 느낌??

이다지> 일제강점기에 독립투사들이 도망 다니면서도
항상 외출할 때는 단정하게 머리를 빗고
정장을 입으셨는데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나 가장 멋진 모습으로 마지막을 준비한 거죠.
비단으로 된 빨간 옷은 장렬한 전사를 각오하고 싸운
곽재우 장군의 의지라고 생각해요.


MC 한상헌> 죽음을 각오한 의지가 담긴 옷이라니
저까지 굉장히 뭉클한데요. 곽재우 장군의 위대함을 이야기할 때 무엇보다도
엄청난 전략가였다는 점을 빼놓을 수가 없죠?

이기환> 곽재우 장군은 2차 진주성 전투를 지원하라는
조정의 명을 거부한 걸 보면 곽재우는 언제나 전략을
세워 이길 수 있는 전쟁만 했죠.

홍경민> 아니 상관의 명령을 그렇게 무시해도 되는 겁니까?

박성광> 저는 곽재우 장군이 맞는 거 같아요.
의병은 무기도 부족하지 숫자도 적지
머리를 써서 효과적으로 전쟁해야죠.

이다지> 곽재우 장군은 심리전의 달인이기도 했는데요.
횃불을 들고 다닐 때도 나뭇가지 다섯 개짜리를 들어서
가지마다 붙여요. 의병 숫자가 많아 보이려고요.
그리고 적을 공격할 때는 꽹과리와 징을 치면서
함성까지 지릅니다. 기선을 제압하는 거죠.

엄지인> 저도 어린 시절 위인전기에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본인만 붉은 옷을 입힌 게 아니라 몇몇 부하들한테
빨간 옷을 입혔대요.
여기저기에서 불시에 튀어나와서 싸우면
왜군이 혼란스러워하니까.
신출귀몰한 홍의장군에 놀란 일본군 사이에서는
곽재우는 귀신이라는 소문까지 돌아요.


안내상> 장군은 지략이 아주 뛰어났어요.
한번은 궤짝에다 벌통을 가득 넣어 놓고 일본군 지나는 길목에 둬요.
식량인 줄 알고 궤짝을 열어본 일본군이 벌에 쏘이죠.
그러고 얼마 뒤에 또 같은 궤짝을 일본군이 지나는 길목에 둡니다.
일본군이 이번엔 안 속아~하고 일본군이 불을 붙여버립니다.
그런데 그 안에 뭐가 있었냐? 화약!
폭탄이 펑펑 터지는 바람에 싸우지 않고 적을 물리쳤죠.

키 썸> 곽재우 장군님은 요즘으로 치면 밀당의 고수셨네요!
일본군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하는 게
보통 스킬이 아니세요~

MC 한상헌> 이런 심리전도 참 재미있지만
저는 무엇보다 곽재우 장군 칼의 칼날이
일본제라는 게 제일 신기했어요.
어쩌다 일본 칼을 개량해서 쓰게 된 걸까요?

키 썸> 일본 칼날이 훨씬 더 좋아서 쓰지 않았을까요?
회 뜨는 사시미칼은 엄청 예리하고 잘 드는 걸로
유명하잖아요!

엄지인> 사실, 조선은 검이 별로 발달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우리나라는 전투의 대부분이 산이나 성벽을 이용해서 이뤄졌거든요. 그래서 당시 조선의 최종병기가 뭔지 아세요?

키썸> 저 그 영화 봤는데 박해일 씨 나온. 최종병기 활!

엄지인> 네 맞습니다. 활과 화포가 발달하고 대신 칼은 보조 무기에 지나지 않았었어요

이다지> 반면 일본 검은 세계에서도
세계최강의 검이라고 할 만큼 품질이 좋았어요.
명나라의 기록을 보면
‘왜구가 한 길 너머 한 번 뛰면 그 앞에 있는 자가
양단되는 것은 칼이 예리하고 두 손을 사용해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라고 하거든요.

키썸> 궁금한 것이 가장 임진왜란에서 가장 유명한 검 하면
이순신 검도 있지 않나요?

이다지> 맞습니다. 보물 326호죠.
칼에 새겨진 글귀로도 유명하죠.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천이 떠는구나.
한번 휘둘러 쓸어 버리면, 피가 강산을 물들을 지니.

키썸> 야 그 칼이 만화책 같은 데도 나올 것 같고 더 멋있는데
망우당 칼엔 뭐 적혀 있는 거 없나요?

안내상> 곽재우 검엔 글귀는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게 있죠?
바로 직접 전투를 누볐다는 점.
이순신 장군의 칼은 한 손으로 들기 어려울 정도로 크고
무거워요. 이게 뭘 뜻하느냐 이순신 장군이 이 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거인이란 뜻이 아니라,
의장용일 가능성이 높단 뜻이죠.

이기환> 곽재우 검은 전문가들이 봤을 때도
일본의 하급 무사가 아니라, 장교급이 썼을 만큼
담금질이나 제련이 잘된 검이라고 해요.
아마 전장에서 꽤나 많은 공훈을 세웠을 겁니다.

MC 한상헌> 초야에 묻혀서 글공부만 했던 선비 곽재우가 검을 들면서 뭔가 마음가짐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사실 검을 든다는 것 자체가 적을 물리칠 수 있는 무력을 갖추게 된 거잖아요.

이다지> 칼이라는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둘로 나눠서 가른다’는 의미가 있거든요. 칼의 양면성이라는 말 많이 하는데 곽재우 장군은 이 칼의 양면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다니엘> 서양에서도 검은 정의의 상징이에요.
법원의 상징으로 많이 사용되는 정의의 여신
유스타치아의 모습을 살펴보면
오른손에 이성과 정의를 상징하는 칼을 들고 있거든요.

안내상> 이 칼을 잘 살펴보면 칼자루의 가죽이 닳아 있습니다.
마치 고민의 흔적처럼 보이죠? 아마 곽재우 장군은
이 칼을 손에 쥐고 늘 고민했을 거예요. 나의 이 행동이
옳은 것인가, 오늘 이 전투가 의를 행하는 것이 맞는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날카롭게 판단한 뒤에 이 검을 사용했을 거예요.

이기환> 이 칼은 전설도 많은데요,
예로부터 곽재우 장군의 후손들은 칼을 쇳돌에 갈았을
때 나오는 검은 물을 마시면 병이 치료된다는 전설이 있
었대요. 그래서 고령이신 곽재우 장군 후손분 아버지는
어린 시절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 이 칼을 간 물을 드셔
보셨다고 합니다.

키썸> 이야~ 그래서 나으셨나요?

이기환> 아마 나으셔서 장가도 가시고 하셨으니 후손분이 존재하는 거 아닐까요?

박성광> 요즘 체력도 자꾸 떨어지는데
곽재우 장군 칼 갈아서 먹으면 좀 나을까요?

엄지인> 실제로 경남 지역엔 곽재우 관련 전설이나 설화가 너무 많이 있어요. 이게 뭘 의미하냐면 조선의 백성들이 곽재우를 너무나 사랑했다는 이야기죠. 장군이 떠나고 나서도 흠모했다는 얘깁니다.

안내상> 우리 조상들은 사람을 죽이는 검을 살인검, 사람을 살리는 검을 활인검이라고 불렀어요. 이 검은 어떻습니까? 우리 백성들을 죽이는 일본 사무라이의 살인검을 곽재우가 다시금 개량해 백성을 살리는 활인검으로 다시 만들었죠.

MC 한상헌> 살인검에서 활인검이 된 곽재우 장군의 칼 이야기
너무 잘 들었습니다.
그럼 이제, 안내상 씨가 소개한 <곽재우 장검>
최후의 한마디를 들어볼까요?

안내상> 임진왜란은 왕이 이긴 전쟁이 아닙니다.
풀뿌리 민초들이 단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바쳐서 이긴 전쟁이죠.
가진 것 없이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하나 되어
승리했을 때, 그들은 정말로 기뻐했겠죠.
그리고 그 승리의 날 곽재우 장군은
이 검을 정말 높게, 아주 높게 치켜들었겠죠.
민중의 승리를 기억하고 있는 400년 전 승리의 검,
곽재우 장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MC 한상헌> 안내상 씨의 <곽재우 장검>!
최후 한마디까지 잘 들었습니다.
이제 투표를 모두 마무리하겠습니다.
백성이 하나 되는 기적을 보여준
붉은 옷의 사나이, 곽재우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멋진 무대 보여준 안내상 씨께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아직 불을 끄지 마시고,
집계가 모두 완료될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이제 집계가 모두 끝났습니다.
불을 꺼주셔도 됩니다.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
천상의 컬렉션!

자, 이제 호스트 세 분의 경연이 모두 끝났는데요.
최여진 씨의 책가도
서경석 씨의 달 항아리
안내상 씨의 곽재우 장검
모두 다 잘 들었습니다.

이제 최종 투표만을 남겨 두고 있는데요,
그 전에! 먼저 패널과 현장평가단 100인이 선택한
중간 투표!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중간 투표 결과!
OOO의 OOOOO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습니다.

아! 역시 오늘도 제 마음과 같았습니다.
세 분 모두 막상막하인데요.
이럴 땐 지금 결정하는 최종 투표가
결과를 판가름 짓게 합니다.

현장 평가단 여러분, 마음의 결정 하셨나요?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
지금 불을 밝혀주세요!

아직 100개의 불이 다 들어오지 않았는데요.
그래도 이제는 버튼을 눌러주셔야 합니다.

6명의 패널단은 모두 선택하셨나요?

그리고 현장평가단 여러분, 결정하셨습니까?
네! 드디어! 100개의 불이 모두 들어왔습니다.

자, 오늘 멋진 보물들을 소개해 준
세 분의 호스트를 무대 위로 모셔보겠습니다.
호스트 세 분, 나와주세요.

오늘 정말 박빙의 승부였습니다.
박성광 씨, 최종투표 순간 많이 고민하시던데,
어떠셨나요?

MC 한상헌> 천상의 컬렉션!
드디어 최종 투표 결과가 나왔습니다.
과연 어떤 보물이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에 오르게 될까요?
최종 결과! 보여주세요!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에는
호스트 OOO씨의 OOOO가 올랐습니다!
축하합니다!!

1등 하신 OOO 씨,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아쉽게도 이주의 천상의 컬렉션엔 오르지 못했지만
멋진 무대 준비해 주신
두 분의 소감도 들어봐야죠?

당신의 마음에 불을 밝혀 줄
단 하나의 보물!
단 하나의 이야기가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금까지 천상의 컬렉션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