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이미지 및 저작권 정보(N2L)
대표이미지 | 저작권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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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 KBS | ||
전자자원소장처 | 한국문화재재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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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코드 | <iframe width="720px" height="480px" src="http://uci.k-heritage.tv/resolver/I801:1612002-001-V00027?t=3"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콘텐츠 기본 정보(N2C)
UCI | I801:1612002-001-V000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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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KBS] 천상의 컬렉션 17편 - 정철 은잔, 나전 칠 모란넝쿨무늬 경전함, 송하맹호도 | ||||||||||||||
콘텐츠 유형 | 동영상 | 언어정보 | 국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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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키워드 | ;정철;은잔;나전;나전 칠 모란넝쿨무늬 경전함;송하맹호도;김홍도;송강;단원;모란문; | ||||||||||||||
내용 | 한국 예술 천년사,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다. 수많은 세월을 지나 기적처럼 전해진 문화재의 아름다움과 가치, 그에 얽힌 살아있는 역사 이야기를 호스트의 생생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살펴보고, 현장 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대한민국을 매혹시킬 단 하나의 보물을 선정한다. 배우 박철민이 소개하는 '정철 은잔' 뮤지컬 배우 김소현이 소개하는 '나전 칠 모란넝쿨무늬 경전함' 배우 김수로가 소개하는 '송하맹호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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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정보 | MC 한상헌>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을 선택하는 시간! <천상의 컬렉션>입니다. 어떤 한 보물이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독창적이면서도 누가 봐도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데요. 오늘 천상의 컬렉션에서는 여러분의 마음에 오래도록 기억될 아름다운 세 개의 보물을 준비했습니다. 총 100분의 현장평가단의 선택으로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이 결정되는데요, 세 호스트 분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주신 뒤, 최종 투표 때 가장 마음에 드는 보물에 불을 밝혀주시면 됩니다. 과연 이번 주는 어떤 보물이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게 될까요? 첫 번째 보물을 바로 만나보겠습니다! 1. 김수로 <송하맹호도> 김수로> 단언컨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용맹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한때 그들의 왕국이었습니다. 팔도강산 방방곡곡, 그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죠. 오죽하면 우리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 ‘단군신화’에도 등장해요. 또 이 땅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냐면 단군 할아버지보다 먼저 살고 있었어. 아시죠? 단군할아버지 엄마 ‘웅녀’랑 라이벌이었던 거.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직함을 이마에 떡!하니 새긴 채 태어납니다. 이마에 왕(王)! 목덜미에 대(大!) 대왕(大王)! 백수의 왕, 조선의 범! 호랑입니다. 제가 오늘 소개할 작품!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온,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호랑이! 김홍도의 송하맹호돕니다. 어떠신가요? 이 그림은요,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분명 그림인데, 두 눈으로 보고 있는데, 손끝이 간질간질해요. 이 느낌이 뭐냐? 만져져요! 촉감이 살아 있어요. 엄마 모피코트를 쓰다듬는 느낌! 집안 카페트를 쫙~ 쓸어보는 느낌! 너무 신기한 거예요. 어떻게 그림인데, 이런 느낌이? 그래서 이 그림을 뚫어져라 계속 봤어요. 거의 뭐 그림에 부딪힐 것처럼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 뚫어져라~ 봐봤죠 그런데 이 그림에는요, 호랑이의 윤곽을 그려낸 선이 없어요. 굵은 선이 있어야 할 자리에, 한 올 한 올, 잔털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그려져 있죠. 바늘이 통과할 정도로 가~늘고 섬세한 솜털! 안 그래도 몸집도 큰데, 털은 또 얼마나 많았겠어요. 그걸 한 올 한 올, 다 표현해낸 겁니다. 살아있는 듯한 호랑이의 비밀! 차르르, 윤기 나는 사실적인 털 표현에 있었던 거죠. 그런데, 이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왠지 등골이 서늘해요. 아니 이건 그림이란 말이에요, 그냥 종이 한 장 일 뿐인데! 대체 왜 이런 느낌이 생기는 걸까..? 일단 아래를 볼까요? 발만 봐도, 호랑이의 기운이 느껴져요. 두툼한 다리 보세요. 스치기만 해도 그냥 끽!! 네 다리엔 힘이 고르게 잡혀 있으면서 코어에 힘이 ‘똭!’ 잡혔죠. 포즈는 또 어떤가요? 고양이 키워보신 분들 아시죠? 걸을 때 일렬로 곧게 걷죠. 그 모습이 고대로~ 담겨있어요. 대체 어떻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호랑이의 습성까지 알았냐는 거예요. 그 시절, 사진이 있었겠어요? 동물원이 있었겠어요? 호랑이를 앞마당에서 키워서 “호 선생님, 잠시 포즈 좀... 왼발 앞으로.. 이렇게~” 부탁한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이렇게 완벽하냐는 거죠. 저는 이 그림을 그린 김홍도가 적어도 한 번은, 최소 한 번은 호랑이를 만났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그림의 호랑이를 보세요. 이빨과 발톱은 집어넣고 있지만 형형하게 살아 있는 이 눈빛! 레이저 팍팍! 이 눈빛은 김홍도가 언젠가 산골짝 아주 깊은 곳에서~ 우거진 수풀 틈 사이로~ 호랑이와 딱!하고 눈이 마주친 그 순간이 아니었을까요. 이 그림의 호랑이가 생생히 살아 있는 또 다른 이유, 바로 소나뭅니다. 이 그림에 이 소나무가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썰렁하기 이를 데 없어요. 그렇다고 소나무가 너무 크고 화려하면...? 호랑이보다 소나무에 눈길이 가죠. 이 그림 속 소나무는 단순히 여백만 채우는 게 아닙니다. 호랑이가 돋보이도록 아주 적당한 정도로, 아주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 산중 왕, 호랑이를 그대로 옮겨놨어요. 그런데, 이 그림에는요, 낙관이 두 개가 찍혀 있습니다. 호랑이 옆에 하나, 소나무 옆에 또 하나! 호랑이 옆에 찍힌 낙관은 김홍도의 것이 맞습니다. 김홍도 그림. 하고 찍어 놓은거죠. 그런데 이 소나무는요, 김홍도가 그린 게 아닙니다! 정조도 인정한 조선 최고의 화가, 김홍도! 풍속화는 물론이고 임금의 초상화부터, 왕실의 행사, 동물 그림, 꽃과 풀까지... 안 그리는 게 있을망정, 못 그리는 건 없던 양반이죠. 그런데요, 천하의 김홍도가, 이름 석 자가 보증수표였던 사람이, 소나무 하나 못 그렸던 걸까요? 송하맹호도는 김홍도가 30대에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그는 이미 조선팔도 스타 중의 스타였죠. 아마 김홍도가 소나무 그림을 그린다하면..? 사람들은 다들 “아! 김홍도니까 이런 소나무를 그리겠지...” 예상 가능했을 것도 같아요. 그런데... 그 예상을 깨뜨리고! 김홍도는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스스로를... 뛰어넘기 위해서! 자신의 화풍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거죠. 바로 컬래버레이션! 솔직히 저는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이 호랑이, 보세요. 그려놓고 김홍도도 놀랐을 거예요. 와- 이거, 정말 너무 잘생겼어~ “야 니가 그린 호랑이 진짜 끝내주더라” 나만 칭찬 받고 싶잖아요. 그런데 소나무를 다른 사람이 그리게 되면 칭찬 들을 때마다 구구절절 덧붙여야 돼요. “아니 사실 저 소나무는 제가 그린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이 그린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홍도는 이 소나무를 다른 사람에게 맡깁니다. 왜? 진짜 영리한 사람이니까! 위대한 작품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포기할 줄 아는 예술가니까! 이토록 멋진 호랑이에 어울릴 소나무는 새로운 느낌으로! 신선한 충격으로 그려내야 한다는 걸 김홍도는 알고 있었던 거죠. 기존의 것을 깨트리는 파격! 그게 예술의 본질이죠. 저는 그 예술가의 실험 정신이 이 그림을 완성했다고 생각합니다. 일 더하기 일은 이가(‘1+1=2’) 아닙니다. 컬래버레이션에서 일 더하기 일은 무한대죠. 무한한 가능성! 김홍도는 그 ‘가능성에’ 배팅한 겁니다. 아득한 세월동안 이 땅에서 우리 겨레와 함께 살아왔던 아름다운 생명체를 화폭에 옮겨 놓은 화가, 김 홍 도. 여러분 제가 한 번 여쭤보겠습니다. 지천으로 호랑이가 살았던 나라! 누가, 우리보다 더 아름다운 호랑이를 그릴 수 있단 말입니까? 그리고 어느 누가, 재능도 충분한데 예술가적 모험까지 서슴지 않았던 김홍도보다 더 완벽한 조선 호랑이를 완성할 수 있단 말입니까? 조선 최고의 컬래버레이션이 완성해낸 걸작! 소나무 아래 살아 숨 쉬는 호랑이! 송하맹호돕니다. MC 한상헌> 한국인이라고 하면 누구나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잖아요. 그런데 거장이 최선을 다해 그린 조선호랑이를 그림으로라도 만나게 되니 더욱 뜻 깊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다들 어떻게 보셨나요? 다니엘> 한국 사람들은 호랑이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실 서양에서는, 영화 <라이언 킹>도 있고, ‘동물의 왕’ 이러면 사자를 많이 생각하거든요. 근데 한국에서는 사자보다 호랑이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박성광> 남자라면 호랑이죠. 사실 전 어릴 적부터 사자보다 호랑이를 훨씬 더 좋아했어요. 털 라인이랑 무늬가 멋있잖아요. 저희 어머니가 해태 타이거즈 광팬이시기도 하셨고... 강아랑> 제가 얼마 전에 부산에 다녀왔는데요, 부산에 범일동 이라는 곳이 있더라고요. 호랑이가 많이 살던 지명이라 붙은 이름이라고 들었는데 강원도에 호촌리라는 곳도 있고, 호랑이가 전국 지천에 많이 살긴 했나 봐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 반구대 암각화에도 호랑이가 열 마리 넘게 등장한다고 들었거든요. 가장 오래된 그림이랑, 가장 오래된 이야기에도 등장한다니... 진짜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 호랑이왕국이 었구나 싶네요. 김소희> 생각해 보면 호랑이가 등장하지 않는 옛날얘기가 없는 것 같아요. 어떤 전래 동화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로 시작하잖아요. 사실 직접 본적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늘 우리 곁에 있었단 느낌이 들어요. 홍경민> 그러니까.. 우리 선조들이 상상력이 넘쳐요. 호랑이에게 담뱃대를 물려줄 생각을 하다니. 얼마나 사람 같이 느껴졌으면... 김수로> 우리 옛날 이야기에 등장하는 호랑이는요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되갚고, 의로운 이들을 구해주기도 하고, 효자를 등에 태우고 산삼을 찾아주기도 했죠. 이기환> 사실 이 땅의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를 사람만큼이나 지혜로운 존재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인간의 애환을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안타까워해주는 모습으로 등장하죠. 그래서 곧잘 민중들이 소원을 비는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백현주> 저는 이 그림 속 호랑이가 상당히 한국적인 호랑이란 생각이 들어요. 일단 표정이 사람 같고요, 감정을 읽을 수가 있어요. 작가의 해석이 굉장히 많이 들어간 재밌는 작품 같아요. 박성광> 사실 한국 모든 옛날 이야기는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로 시작하거든요. 궁금한 게 독일은 할머니가 옛날 얘기 해주면 뭘로 시작하나요? 다니엘> 저는 한국도 동물 이야기로 시작한다니까 재밌었어요. 독일은 ‘여우와 토끼가 인사하던 시절‘ 이라고 하는데 여우가 토끼를 잡아먹지 않고 인사할 만큼 평화로운 시절이라고 해요. 백현주> 이 땅에서 워낙 오래 산 동물이고 용맹함의 상징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 호랑이를 올림픽의 마스코트로 쓰는 경우가 많아요, 88올림픽 때 호돌이, 다가오는 평창 올림픽에서도 ‘수호랑’이라는 백호가 마스코트죠. 김수로> 맞습니다. 그래서 평창올림픽 기념 지폐에, 오늘 우리가 본 이 <송하맹호도>가 등장합니다! 박성광> 와 진짜요? 그럼 이제 우리 <송하맹호도> 가지고 과자 사먹으면 되는 거예요? 김수로> 아니 기념지폐니까 과자는 못 사먹지~ 다니엘> 저도 ‘호돌이’랑 ‘수호랑’을 본적 있는데 귀엽더라고요. 한 나라에서 사는 대표적인 동물 있는 건 좋은 것 같아요. 사실 독일엔 사자가 살지 않는데 사자를 독일월드컵 마스코트로 썼었어요. 독일을 대표하는 동물 세 개가 곰, 사자, 독수리거든요. 강아랑> 그런데 사실 이젠 이 땅에서 호랑이를 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됐잖아요. 이 땅에 오래 살았던 호랑이들은 왜 다 사라졌나요? 김소희> 그러게요 저는 9살 때 동물원에서 호랑이 처음 봤는데, 그 이후로도 본 적이 없어요. 김수로> 사실 우리 민족이 호랑이를 가까운 존재로 여기기도 했지만, 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호환마마’라는 말이 있잖아요. 호랑이한테 잡혀가는 걸 말하는 거거든요. 사실 호랑이 때문에 인명피해도 많이 발생해서 호랑이를 잡는 부대를 따로 두기도 했고요. 호랑이를 잡아오면 상을 내리기도 했죠. 이기환> 조선 호랑이가 멸종에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19세기 이후 열강들이 조선반도에 들어오면서부터 조선호랑이를 잡는 것을 트로피처럼 여겼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조선총독부에서 호랑이를 비롯한 맹수사냥을 장려했는데 이때 호랑이의 수가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김소희> 사실 제가 그림에 문외한임에도 불구하고 김홍도 이름 만큼은 알거든요. 정말 못 그리는 게 없는 ‘그림의 신’이라고 들었는데 이토록 공들여서 호랑이를 그린 이유가 있을까요? 홍경민> 김홍도 집 주변에 호랑이가 너무 많이 살아서 여기도 이미 왕 호랑이가 살고 있다.. 영역 침범 하지 말라고, 호랑이를 물리치려는 퇴치용이 아닐까요? 박성광> 그 미국 부자들 보면 호랑이랑 표범 키우잖아요. 김홍도가 너무 키우고 싶은데, 못 키우니까 그림으로 그린 게 아닐까? 강아랑> 저는 김수로 선배님이 김홍도가 한번쯤은 호랑이랑 마주쳤다고 상상하셨는데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때 받았던 강렬한 인상을 잊지 못해서 그림으로 남긴 게 아닐까요? 김수로> 백두산과 만주 근방에서 사는 호랑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힘세고 용맹하고 잘생긴 호랑이로 일컬어집니다. 저는 제가 만일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라면, 그럼 이렇게 잘생긴 동물을 싫어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한번 보고 반해서 한 한 올 한 올, 모든 혼을 바쳐서 그렸을 거 같아요. 홍경민> 그런데 저는 소나무를 누가 그렸는지 궁금해요. 이게 피쳐링을 해줬다고 하기엔 지분이 꽤 높아요. 그림에 호랑이랑 소나무 밖에 안나오거든요. 김소희> 저 그림에 낙관이 두 개 나왔다고 하는데, 누구의 낙관인건가요? 그게 제일 궁금해요! 도대체 김홍도가 그림을 부탁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숨겨진 실력자가 누구인가! 김수로> 일단 이 그림에는 김홍도의 낙관 말고도, ‘표암화송’이라는 낙관이 남아있습니다. ‘표암’은 김홍도의 스승 강세황인데요, 그런데! 제가 여러분들에게 ‘김홍도와 강세황이 그렸습니다’라고 소개하지 못한 이유가 있어요. 이기환 기자님, 이게 상당히 논란이 있다고 하던데, 어떤가요? 이기환> 이게 문제가 된 것이 표암이라는 글자가 굉장히 엉성해요 졸필로 쓰여져서 당대에 쓴 글이 아니라. 누군가 이 그림의 값어치를 높이려 의도적으로 조작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죠. 강아랑> 에이 그래도 김홍도의 그림에 조작이라뇨! 듣자하니 강세황이 김홍도가 젖니를 갈던 시절부터 그림을 가르쳐줬다고 하던데 “스승님 소나무 좀 완성해주십쇼.” 이러고 부탁드린 게 아닐까요? 다니엘> 아니 그러면 스승님이 아니면 누가 그려줬나. 더더욱 궁금하네요. 김홍도가 최고로 잘 그린 호랑이를 부탁할 정도라면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을 텐데. 김홍도 주변에 그림 그리는 사람이 또 있었나요? 홍경민> 잠깐! 저 스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1회 강산무진도 때 김홍도의 베프 있었잖아요. 김홍도가 그 사람이랑 같이 그린 그림들이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강아랑> 아 맞아요! 이인문 말씀하시는 거 맞죠? 이인문이 소나무를 워낙 잘 그려서 별명이 ‘고송’이라고 들었는데! 이인문이랑 김홍도랑 낮과 밤 그림을 나눠서 그린 것도 있다고 했어요! 김수로> 맞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동갑내기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지요. 특히나 송하맹호도에 그려진 소나무와 이인문이 평소 그리던 소나무 그림이 아주 닮았어요. 정답을 찾을 순 없지만 최근 들어 학계에서는 이인문이 그려준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에 더 힘을 싣고 있어요. 백현주> 저도 이인문에 한 표인데요. 왜냐면 이 그림은 소나무가 있음으로 해서 다른 배경 없이도 완벽해집니다. 저 소나무의 잔가지가 뻗어져 나오면서 빈 공간을 분할하고 있는데요. 그게 여백을 넘침도 없고 모자람도 없이 절묘하게 만들어주고 있어요. 이런 그림은 보통 소나무의 대가가 아닌 이상 힘들지 않은 솜씨가 아닐까... 박성광> 이를테면 그런 거네요. 우리도 복잡한 수술은 전공이 다른 의사선생님들이 나눠서 들어가잖아요. 호랑이 그림에 김홍도! 소나무의 대가 이인문이 나타난 것 같은 효과! 강아랑> 제가 궁금한 게 그럼 저작권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홍경민> 호랑이 그려진 비율 소나무 그려진 비율 해서... 비율대로 받는 건가? 김소희> 솔직히 소나무는 좀 피쳐링 느낌이 나요. 워낙 호랑이가 시선을 잡아끌어서요. 뭐 우정 출연 같은 거 아닌가요? 박성광> 저는 상상을 좀 가미해볼게요. 소나무를 먼저 그릴 수도 있잖아요. 이인문이나 강세황 선생님이 먼저 소나무를 그리고 김홍도에게 야 여기 좀 채워 줘봐! 부탁할 수 있는 거 잖아요. 김수로> 뭐 정답은 없는 거니까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죠. 저 역시 오늘 그림을 보고 저의 상상을 풀어본 거고요. 다만 그림 배치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소나무를 먼저 그리고 소나무가 주인공이었으면 소나무가 중앙에 중심을 잡고 있지 않았을까 김소희> 이 콜라보라는 게 상상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 같아요. 요즘 주변에 콜라보가 정말 많더라고요. 제가 쓰는 화장품도 케이스에 깨똑 캐릭터들이 있는 데 너무 귀여워요. 이것도 콜라보 맞죠? 혹시 여러분들 주변에 콜라보 이야기는 없나요? 다니엘> 저는 독일의 문학가들이 생각나는데요. 독일 문학가 중에 괴테와 쉴라라는 분이 계세요. 둘은 처음에 경쟁자로 만났지만 추후에는 서로의 아이디어를 빌려 공동 창작을 할 정도로 친해졌다고 해요. 두 문학가는 공동작업을 꽤 많이 했는데 쉴라가 죽자 괴테가 내 존재의 반이 사라졌다고 말할 정도 좋은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이였다고 합니다. 김수로> 이 꼴라보라는 것이요 기존에 가지고 있던 한계를 넘어서는, 기대치를 넘어서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여러분들이 스포츠 용품으로 즐겨찾는 세줄 짜리 그 브랜드 있잖아요 박성광> 아! 그 제품.. 임파서블 이즈 낫씽! 김수로> 네. 그 메이커는 줄 세 개!란 디자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단 말이죠. 그래선지 꼴라보 제품을 많이 만들어요, 가수 칸예 웨스트나 스텔라 메카트니 같은... 유명하고 잘나가는 제품인데도 왜 이런 시도를 하냐? 자기가 가진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선거죠. 그런 점에 있어선 정말 김홍도 선생님도 자기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혁신적인 화가가 아니었나. 강아랑> 아~ 저도 그렇게 콜라보레이션 한 작품 너무 좋아하는데 너무 슬픈 게 꼭 비싸지더라고요. 1+1=2니까 두 배만 비싸지면 좋은데 막 세 배 네 배 가격이 올라가니까.. 박성광> 이 그림도 다른 그림보다 두 배, 세 배 비싼 거 아닌가요? 이 정도 그림이라면 열 배는 더 비싸도 되겠는데.. 홍경민> 저는 사실 호랑이 그림이라고 해서 민화가 등장하는 거 아니냐 생각했었거든요. 호랑이와 까치 같은.. 그림 많잖아요. 이기환> 옛날에는 삼재 좇는 부적에 호랑이가 등장했었는데요. 민간뿐만 아니라 궁궐에서도 단오절에 호랑이 부적을 만들어 신하들에게 나눠 주었거든요. 무관의 용맹함을 상징하면서 귀한 자식을 낳을 수 있다고 해서요. 김수로> 호랑이가 워낙 용맹한 존재다 보니, 우리 조상님들은 자신들의 삶의 어려움을 호랑이란 존재에게 많이 기댔던 것도 같아요. 부적도 그리고 산신각에 호랑이를 그려서 소원을 빌기도 하고요 박성광> 호랑이 연고가 그냥 나온 게 아니네요. 어떤 병이든, 만병 통치죠! MC 한상헌> 이 땅의 터줏대감이었던 호랑이의 용맹한 기상을 느낄 수 있었던 그림이었습니다. 이제 김수로 씨 최후의 한마디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수로> 요즘 기운 없으신 분들 많잖아요~ 여러분 오늘 김홍도가 남긴 호랑이 그림을 본 김에 호랑이 기운을 받을 겸 어흥~ 우렁차게 외쳐볼까요? 어흥! 내가 이렇게 한두 분만 할 줄 알았어. 자 빼시지 마시고 같이 외쳐 봐요. 속는 셈 치고 해보세요. 진짭니다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요. 어흥~ 감사합니다. MC 한상헌> 김수로 씨가 소개한 <송하맹호도> 최후 한마디까지 잘 들었습니다. 여러분, 멋진 김수로 씨께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김수로 씨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2. 박철민 <정철 은잔> 박철민>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에겐 ‘공공의 적’이 한 분 있습니다. 만일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게 된다면 이 사람만은 꼭 만나 손봐주고(?) 싶은, 철.천.지.원.수.로 꼽히죠. 여러분은 수능 공부하며 제일 미웠던 사람, 누구였습니까? 수학의 로그를 만든 사람? 물리의 벡터를 만든 사람? 아니면 혹시 이분? 수능 국어영역에서 한 번 출제된 작가의 작품은 최소 3년은! 출제되지 않는데 이분 작품은 거의 매년 나와요! 절대 못 피합니다. 아주 징글징글합니다. ‘강호에 병이 깁퍼 듁님의 누엇더니..’ 듣기만 해도 멘붕 오시죠?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 고전문학 4종 세트로 우리를 괴롭힌 이분! 송강 정철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분 직업은 원래 문학도가 아닙니다. ‘정치가’죠! 그것도 30년 동안, ‘산전수전공중전, 우주전’ 다 겪다가 권력의 최정점까지 오른 프로페셔널 정치꾼입니다. 야구로 치면 이종범? 이승엽? 이 정도 급인 거죠. 그렇다면 정치가 정철은 어떤 사람이냐? ‘충성스럽고, 청렴하고, 강직하고, 절개가 있다’ ‘성품이 편협하고 말이 망령되고, 행동이 경망하다, 천~박스럽다!’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평가가 극과 극입니다. 바야흐로 정철이 살았던 16세기는 조선 역사상 당쟁이 가장 치열했던 시깁니다. 동대문 쪽은 동인! 정릉 쪽은 서인! 이렇게 둘로 딱 나뉘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사사건건 부딪힙니다. 그런데 갈등이 점점 심해지자 동인은 단 한 사람을 집중 공격하는데요. 그게 바로 서인의 대빵! 정철입니다. 뭐, 정철 입장에서는 17대 1로 싸운 셈이죠. 아, 너무 일방적인 거 아닌가요? 솔직히 고백합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17대 1로 싸워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전 상처가 거의 나지 않았습니다. 17명 중 한 명이었거든요. 아무튼 동인은 왜 하필 ‘정철’의 저격수가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가수 김건모 씨가 없으면 단 하루도 못 사는 그거! 5천만 국민을 늘 위로하는 바로 그 음식! 어떤 때는 그님! 어떤 때는 그놈! 그놈의 술 때문입니다. 정철은 술만 마시면 아무말대잔치! 막말대행진! 주사가 아주 심했고요. 술에 취해 근무 중에도 사모가 삐뚤어진 채로 정사를 보고, 심지어 왕이 소집한 회의에도 결석을 합니다. 아, 몰라, 몰라, 안 가~ 임금이 오라고 해, 왜 꼭 신하만 가야 돼! 이러니.. 정철이 술을 마시면 왕에게 상소가 올라온답니다. ‘정철은 술주정이 심하고 광망(狂妄)하니 파직시켜주시옵소서’라고 말이죠. 실제로 실록에는 이런 일이 무려 서른 번 이상 등장합니다. ‘술을 좋아하는 정철을 파직시켜주시옵소서! 어제 또 술을 마시고 견이 되었다고 합니다. 파직시켜주시옵소서! 내일도 술을 마시고 아비도 몰라볼 거라 하옵니다. 파직시켜주시옵소서! 오늘은 이미 3차째 마시고 있다고 하옵니다. 파직시켜주시옵소서!’ 이렇게 틈만 나면! ‘정철 탄핵’을 외쳤던 겁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정철 편을 들어준 이가 있으니.. 바로 왕, 선조입니다. ‘정철은 곧은 사람인데 단지 바른말을 잘해서 미움을 살 뿐이다. 정철이 술 마시는 것을 시비 거리로 삼아선 안 된다’ 야.. 부럽죠? 인생에 꼭 한 번! 갖고 싶은 그런 ‘빽’ 아닙니까. 그런데 이렇게 감싸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죠. 어떻게 매번.. 그럽니까. 결국 보다 못한 선조! 정철에게 특별 선물을 내렸다고 하는데요. 바로! 이 은잔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죠? 금주령을 내려도 모자랄 판에 술잔을 선물했다? 게다가 이거 보세요. 은잔의 크기가 보통이 아닙니다. 이건 술잔이 아니라 사발 같죠. 사발! 넓고, 깊습니다. 7도 막걸리 두 홉! 19도 소주가 한 병! 57도 고량주가 세 병이나 들어갑니다. 이 정도 먹으면 완전 인사불성이 될 텐데.. 세상에, 실컷 마시고 죽으라는 소린가? 잠깐만요! 자세히 보면 매끈해야 할 술잔이 막 만든 것처럼 울퉁불퉁합니다. 아니? 임금이 내린 잔인데 왜 그럴까요. 여러분, 여기에는 ‘믿거나 말거나~’ 한 어마어마한 사연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어느 날, 선조가 정철을 불러 신신당부합니다. '이 잔으로 하루에 딱 한 잔씩만 마시거라' 선조가 내린 은잔은, 딱 소주 한 잔 크기였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정철아, 술 좀 작작 마셔라! 한 잔 이상은 절대로 안 된다! 더 마시면 너는 그날로 끝이다!’ 이런 뜻이었겠죠. 그런데 잔을 받아든 정철 선생, 깊은 고민에 빠졌답니다. 왕의 명령이니 지키긴 해야겠는데! 하루에 달랑 요거 한 잔 마시는 것은 성에 안 차고! 아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겠죠. 고민 끝에.. 은잔을 망치로 계~속 두드렸답니다. 언제까지? 늘릴 수 있을 때까지! 언제까지? 빵꾸 나기 바로 직전까지! 늘리고~ 늘리고~ 이런 세상에.. 하하하 우리 같이 한번 웃어봅시다! 여러분, 한 잔이 무려 조금 거짓말 보태서 한 말 같았다는 바로 그 술잔! 이게 바로 한 방울이라도 더 마시겠다는! 정말로 술을 사랑하는 정철님의 집념으로 만든 ‘메이드 인 정철’ 은잔입니다. 여러분, 이건 물일까요? 술일까요? 정철의 주문답 3수가 생각납니다. 므사 일 일우리라 십년지이 너랄 조차 내 한 일 업시셔 외다 마다 하나니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시겠네. 직역을 해드리오리다? 네 이놈 술아! 너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겠다 십년이나 너를 따라다니느라 해 놓은 건 하나 없고 임금에게도 미움 받고 너랑 헤어져야 할 것 같다 미안하다, 이별하자! 괜찮지? 아이고~ 이리 할 거면 왜 나랑 사귄 겁니까? 내가 좋다 그리 따라다녀서 수많은 주당 다 물리치고 당신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흥!! 정 내가 싫으면 그만 만나! 상관없어! 가! 가! 가! 흥칫뽕! 아니다~ 아니다~ 내 말 들어 보거라 너 없으면 난 못 산다. 아무리 힘들어도 너 때문에 잘 이겨냈는데 내가 바보였구나. 임금이 뭐라 하든, 하늘이 뭐라 하든, 오늘 당장 너 마시고 죽는다 하더라도 내 너만을 바라보고 살겠다. 사랑한다! 어린 시절의 정철은 남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일단 집안이 왕실과 사돈!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의 누이가 왕가의 며느리였습니다. 궁궐을 제집처럼 드나들다 보니, 친구도 다 왕잡니다. 이렇게 떵떵거리고 살았는데 정철이 열 살 때 하루아침에 집안이 풍비박산 납니다. 을사사화에 연루돼서 쫄딱 망했습니다. 큰형은 고문으로 죽고, 매형은 능지처참당해 죽고, 자기는 아버지를 따라 7년이나 유배지를 전전했죠. 어린 정철, 얼마나 충격이 컸겠습니까. 권력이란 게 얼마나 비정한지, 온몸으로 깨달았겠죠. 권력, 그것은 정철에게 동아줄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철은 두 번의 과거에서 당당하게 일등을 차지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사법고시, 행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 화려하게 정치 무대에 데뷔합니다. 여러분, 드디어 정철이 권력의 중심에 섭니다. 정여립이란 자가 역모를 꾀했다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진 시점이었죠. 선조는 이 사건을 다스릴 최고 재판관으로 정철을 콕 집어 불렀습니다. 역모 사건에 연루된 이들은 그동안 정철을 공격했던, 반대파 동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정철의 재판은 강경하고, 냉혹하고, 처절했다고 합니다. 인구 4백만의 조선에서 몇 명이나 죽은 줄 아십니까? 천 명, 자그마치 천 명입니다. 재판 하나로! 그런데 말입니다. 이 피바람의 중심에서 무고한 사람들까지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정철의 마음, 과연 어땠을까요? 편했을까요? 좋았을까요? 신 났을까요? 글쎄요. 바로 이 문장이 대답해 줍니다. ‘옥사를 다스리던 때 정철은 항상 술기운에 취해 있었고, 말소리는 아주 거칠었다’ 그렇습니다.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었죠. 내가 먼저 칼을 휘두르지 않으면 반대로 그 칼끝이 자신을 향했으니까요. 여러분, 여러분도 괴로움을 술로 잊어 본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습니까? 그날?! 그때?! 기억나시죠? 실은 저도 인생의 고비에서.. 이 술이 저를 일곱 번이나 구해줬습니다. 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칼을 겨눠야 했습니다. 그가 술에 의지한 건 지옥보다 심한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3년.. 광란의 역사가 끝나자 선조가 돌변합니다. 토사구팽, 사냥이 끝난 사냥개를 삶아 먹어 버리듯이 정철을 아꼈던 선조는 영악하게도 갑자기 독철, 간철이란 표현까지 쓰며 모든 책임을 정철에게 뒤집어씌웁니다. 심지어 집 둘레가 가시덤불로 둘러싸여 있어 한 발짝도 못 나가는 위리안치라는 혹독한 형벌까지 내립니다. 피 비린내 나는 당쟁의 한복판에 자신의 온몸을 내던지면서까지 권력을 좇았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바로 이 찌그러진 은잔뿐이었습니다.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산 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 이 몸 죽어지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졸라매어 지고 가나 화려한 꽃상여에 만 사람이 울며 가나.. 인생의 허망함을 정철만큼 느낀 사람이 또 있을까요? 여러분, 저는 이 은잔이 정철의 아픔을 받아주고, 그를 지켜봐주고, 또 말없이 위로해준 유일한 친구였단 생각이 듭니다. 전쟁보다 더 엄혹한 시기였습니다. 선비들은 붓이 아닌, 칼을 들고, 잔인하게 상대의 목을 겨눌 수밖에 없었죠. 그 중심에 있었던, 비켜나갈 수 없었던, 한 정치인의 비극을 말없이 지켜 본 시대의 목격자, 정철의 은잔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은 술 한 잔 하시죠! MC 한상헌> 박철민 씨가 소개한 <정철 은잔>! 정철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보물이었습니다. 지금 홍경민 씨가 보고 있는 게 <정철 은잔>과 똑같은 크기의 복제품이죠? 그거 정말 술잔, 맞습니까? 홍경민> 이걸 늘렸다는 거 사실 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직접 보니까 그랬을 수도? 일단 크기가! 크기가.. 장난 아냐. 술잔이 아니라 밥그릇? 아니 국그릇이라 해도 믿겠어. 김소희> 내 밥그릇이 정말 딱 이만한데.. 이거 봐! 이 정도! 내 얼굴 보여? 다니엘> 왕이 은잔을 내렸다는 게 신기해.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귀족들은 은을 식기로 사용했어. 은 특유의 화려함과 더불어 자체적인 항균 효능이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야. 중세 유럽에 페스트가 유행할 당시 네덜란드 왕궁에서는 페스트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은 식기 때문이라는 속설도 있어. 박성광> 어쨌든 정철이 이 귀한 은잔에 술을 가득 채워 마셨다는 거잖아? 이거 한 잔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지 않아? 그래! 그럴 줄 알고 내가 준비했어! 홍경민> 술? 진짜 술~~? 박성광> 여러분, 이게 술일까요? 물일까요? 자, 그럼 따라 볼게~ 술술술~~~ 짠!! 박철민> 여러분, 조선시대 술은 요즘처럼 희석된 술이 아냐. 진짜 독한 술이지! 40도가 넘는 독주를 이 한 잔 가득 부어서 마셨다고 생가각하면, 어느 정도인지 알겠지? MC 한상헌> 그러니까 평소에는 정철이 이 독한 술을 이 잔보다 더 많이 마셨다는 거잖아요? 이기환 기자님, 정철의 술사랑, 어느 정도였나요? 이기환> 정철은 술을 사랑하는 정도가 아니라 술꾼이었어. 21살부터 45살까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술을 마셨다는 기록도 있어. 반평생 술에 취해 있어서 자기 스스로 광생(狂生), 미친 인생이라는 별명을 붙였을 정도. 홍경민> 나도 어디 가서 술로는 둘째라면 서러운데.. 20년 동안 매일, 아침저녁으로는 어우! 그거 정말 힘든 일인데 말이야. 정철이 조선 최고 술꾼인 덴 이유가 있네. 강아랑> 정철의 베프가 바로 율곡 이이였는데 정철에게 늘 이렇게 충고했어. '제발 술을 끊도록 하고 말을 함부로 하는 버릇을 없애라'고 말이야. 술 먹고 주사가 진짜 심했대. 본인도 술 먹고 괴로워하고, 그런데 못 끊었나 봐.. 박성광> 에이~~ 그 좋은 걸 어떻게 끊어? 못 끊지~~~ 술 못 끊었단 얘기 들으니까 정철 인간적이네. 술 끊는 사람 진짜 독한 사람이야.. 김소희> 그런데 나는 선조가 정철이 예뻐서 준 게 아니라 ‘벌주(罰酒)’의 의미로 내린 거 아닐까 싶은데? 그렇게 술이 좋다면, 죽을 때까지 마셔 보거라! 한 거지. 홍경민> 소희가 아직 술을 모르네.. 술 좋아하는 사람한테 벌주라는 게 어디 있어? 주면 주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마시는 거지! 캬~~ 백현주> 나는 보면 볼수록 이걸 잘 늘렸다는 생각이 들어. 만두피 홍두깨로 얇게 밀잖아? 이걸 정말 망치로 두드린 건지 너무 궁금한데? 박철민> 사실 이걸 늘렸다는 기록은 사실 어디에도 없어. 지금까지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나도 늘렸는지 궁금해서 왕이 신하에게 내렸다는 다른 은잔들을 좀 찾아봤는데 두 배 정도 크더라고. 김소희>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임금이 내린 술잔이잖아. 임금이 준 하사품 변형시키면 벌 받는 거 아냐? 이기환> 그래서 정철의 문중에서도 아무렴 왕이 내린 잔을 정철이 망치로 두드렸겠느냐고 하거든? 그건 정철의 반대파, 동인이 낸 소문이라고. 잔 모양이 울퉁불퉁한 건 만드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 아니겠냐고 이야기해. 백현주> 나는 처음에 굉장히 현대적인 세련된 작품인 줄 알았다. 망치질인지 엄지손자국인지 질감도 살아 있고, 울퉁불퉁 못 생겨서 오히려 투박하지만 자유로움이 느껴진 달까. 이거 만든 사람 정말 예술가구나 싶던데? 홍경민> 백현주 작가는 이거 딱 팔고 있다? 그럼 살 거야? 백현주> 네.. 삽니다. 집에 있는 장식장에 이거 하나 갖다 두면 고급스러울 것 같아요. 홍경민> 아.. 그래요? 듣고 보니 왠지 탐나는데.. 갖고 싶다.. 뛰어난 예술가들 하면 술 얘기 빼 놓을 수 없지! 예술~~~~가 라고 하잖아? 다니엘은 누구 생각나는 사람 없어? 다니엘> 여러분 압생트라는 술 알아? 압생트는 주머니 가벼운 예술가들이 사랑한 술, 굉장히 독하고 저렴해. 특히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한 술로 악마의 술로 더 유명하지. 고흐 말고도 에두아르 마네, 모파상, 랭보 등 뛰어난 예술가에게 특히 사랑받았어. 압생트는 이들에게 영감의 도구였던 것.. MC 한상헌> 저는 정철이 술을 하도 많이 마셨다고 하니까 사실 ‘흥청망청’ 이란 단어가 계속 떠올랐는데요. 이렇게 맨날 술만 마시면, 정치는 언제 하죠? 정철, 정치는 제대로 했나요? 박철민> 정철은 강직했어. 왕의 청탁을 거절할 정도로 원리 원칙주의자였거든. 그래서 관직 초반부터 왕의 눈 밖에 나고, 비교적 한산한 직책을 전전해. 김소희> 왕의 청탁을 거절하다니, 정철 멋진데? 강심장인가? 홍경민> 원래 곧게 뻗은 대나무가 부러지기 쉽다고 휠지언정 결코 쓰러지지 않는 부드러운 갈대 같아야 한다고 하잖아. 정철은 고집, 원칙주의 성향 때문에 탄핵을 많이 당한 거야? 이기환> 맞아. 실제로 정철은 자기 뜻과 맞지 않는 것엔 저래 뜻을 굽히지 않았고, 자기 소신에 따라 행동하고, 발언했는데, 이게 동인에게 공격의 빌미를 많이 제공했어. 강아랑> 그런데 이런 성격을 선조는 좋게 봤잖아. 그러니까 정철에게 주요 관직도 주고, 은잔도 주고~ 결국엔 가장 어려운 기축옥사 최고 책임자로 임명! 이건 정철이 충신이라고 믿어서 아닐까? 박철민> 나는 선조가 굉장히 영리한 왕인 거 같아. 선조는 정철이 개인감정이나 당파에 따라 억울한 사람을 몰아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왕권 강화를 위해 정철을 이용했다는 생각이 들어. 이기환> 하지만 정여립 사건이 마무리 되자 정철이 정여립 사건을 이용해 자기 세력을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는 동인의 주장에 솔깃해져서 결국 정철을 파직해 버려. 이때 이후 사실상 정치적 생명은 사실상 끝났고, 정권은 다시 동인에게로 넘어갔어. 박철민> 여러분, 만일 정철이 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그에 대한 평가, 지금과는 달라졌을까? 이기환> 선조수정실록에서조차 정철을 이렇게 평가해. ‘정철은 강호산림에 적합한 인물이지, 재상의 옷은 맞지 않은 인물이었다’고. 만일 기축옥사 3년의 세월을 되돌릴 수 있었다면 정철은 분명히 무결점의 위대한 시인으로 남았을 거야. 홍경민> 천 명의 선비를 죽음으로 몰아간.. 피바람의 중심에 있었으니.. 얼마나 죄책감이 컸겠어.. 에잇! 그놈의 정치만 안 했어도.. 강아랑> 아니 정치는 할 거면 제대로 했어야 하는 것 같아. 정치를 잘하는 사람이 해야 모두가 행복하지 나 혼자 좋자고 정치하면 다 같이 불행해지잖아. 많은 정치인들이 정철을 반면교사 삼으면 좋을 듯 박철민> 나도 같은 생각이야. 정철이 살았던 16세기 조선의 당파 싸움은 권력에서 밀려나면 처형되거나 탄압을 받았어. 그래서 모든 당파는 죽기 살기로 싸웠어. 안타까운 건 이런 당파 간 보복이 반복되면서 원한과 증오도 대물림되고 있다는 것. 홍경민> 맞아. 기축옥사에서 숙청된 이발 가문의 아낙네들은 지금도 고기를 다질 때 칼질 하면서 ‘정철정철’을 외힌다고 해. 원수를 잊지 못해 칼질로 한을 푸는 거지.. 다니엘> 같은 사례가 있다. 베를린 대학에서 함께 강의한 쇼펜하우어는 헤겔을 몹시 미워해서 자기가 집에서 기르던 개 이름을 ‘헤겔’이라고 짓고 수시로 구박했대. 박성광> 런데 잠깐만?? 만일 정철이 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땡땡별곡, 더 많이 썼겠는데? 여러분, 나는 괜찮은데 여러분도 정말 괜찮아? 김소희> 그럼 이제 ‘국포자’의 시대가 오나? 국어 포기자!! 나도 고전문학은 포기! 국문학과도 포기! 그래, 지금 이 정도가 딱 괜찮아.. 다니엘> 나는 이런 모진 상황과 시련을 겪어서 정철이 위대한 가사 문학을 썼던 것 같아. 송강 정철을 한국의 셰익스피어라고 하잖아? 그의 문학적 토양을 마련해준 거지. 백현주> 개인적으로 정철이 이런 당쟁의 회오리, 피바람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은 너무 안타깝지만 시대와의 불화를 위대한 시로 승화시킨 뛰어난 예술가임은 분명한 것 같아. 이기환> 맞아. 실제로 구운몽을 쓴 김만중은 ‘좌해진문장(左海眞文章)’ 우리나라에서 가장 참된 문장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세 개뿐이라고 했어. 그만큼 문학적으로는 흠 잡을 게 하나도 없는 사람! MC 한상헌> 가사 문학의 일인자인 줄로만 알았던 정철이 16세기 가장 치열한 당쟁의 한복판에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는데요. 이제 박철민 씨의 <정철 은잔>, 최후 한마디 들어보겠습니다. 박철민> 인생을 살다 보면.. 마음에 빗물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꽉 막힌 마음의 둑을 풀어 놓아야 할 때도 있죠. 어느 날보다 정철이 사랑한 술 한 잔이 생각나는 밤이지 않습니까? 술 한 잔에 근심을 담고, 술 한 잔에 걱정을 담아, 비워내고, 털어내기를 수십만 번.. 파도와 같은 인생길을 함께 한 보물, 정철의 은잔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MC 한상헌> 박철민 씨의 <정철 은잔> 최후 한마디까지 잘 들었습니다. 여러분, 박철민 씨께 다시 한 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자, 그럼 다음은 어떤 호스트가 어떤 보물을 소개해 줄까요. 지금 바로 만나보겠습니다. 2. 김소현 <나전칠 모란넝쿨무늬 경전함> 김소현> 자산이 백조 원에 이르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남자죠. 빌 게이츠가 2008년, 아주 특별한 게임기를 만듭니다. 게임기에 아주 귀한 장식을 주문하는데요, 세계 1위 부자의 한정판 게임기! 그 가격이 얼마였을까요? 놀라지 마세요. 1억 원 이었습니다. 남자 분들 좋아하시죠. 독일 명차 BMW에서도 새 모델을 발표하면서 이 장식을 새겨 넣었고요. 여자들이 사랑하는 브랜드, 샤넬에서도 이 장식을 모티브로 상상을 뛰어넘는 패션쇼를 선보였습니다. 전 세계 셀럽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특별한 장식! 세계 최고의 명품 브랜드가 탐내는 그것! 바로 우리의! 나전공예였습니다. 저 멀리 있는 찬란한 태양(빛) 느낄 수가 있어, 그 빛 내게 다가오네. 많은 사람들, 날 기다리네. 모두 반겨주네. 내 이름을 외치면서 기다림, 이제 다 지나고 그날이 온 거야. 우아하게 빛나는 나전함을 보는 순간 지금 이 노래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어요 어떠세요? 아주 신비롭죠. 보물 상자 같기도 하고요, 아주 소중한 무언가가 담겨있을 것 같아요. 고급스런 상자에서 뿜어내는 우아한 빛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부처님 말씀이 곧 법이었어요. 그래서 불경을 담는 함을 아주 귀하게 정성을 쏟아 만들었는데요. 네, 이 상자는 고려의 보물, 불교 경전을 담는 함이었습니다. 이 보물 상자의 이름은 ‘나전칠 모란넝쿨무늬 경전함’입니다. 경전을 담는 함인 건 알겠는데, 이름이 좀 어렵죠? 이제부터 하나씩 풀어볼까요? 이 경전함에는 모란꽃이 450여 송이 피어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꽃잎 하나하나가 아주 작은 조각으로 만들어져 있어요. 무려 2만 5천 개가 넘습니다! 꽃잎을 장식한 이파리의 크기는 2~3mm에 불과하고요. 꽃송이를 이렇게 많이 붙였는데도 상자 표면이 아주 매끄럽죠? 꽃송이의 두께가 0.3mm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종이 한 장 정도의 두께, 티끌만한 크기의 꽃잎 장식인 거죠. 그리고 이 모란꽃을 넝쿨로 이었는데요, 뭘로 만든 걸까요? 엑스레이 촬영을 해 보니, 놀랍게도 금속선이었습니다. 구리와 아연을 합금해서 0.3mm로 엮어낸 겁니다. 이 정도로 세밀하고 정교하게 표현하려면, 쉽게 자르고 붙일 수 있는 재료여야 할 것 같은데요, 이 얇디얇은, 티끌만한 조각의 정체! 무엇으로 만든 걸까요? 바로 조개껍데기였습니다. 우리가 바다에 놀러 가면 흔히 보는 그 조개 입니다! 그런데 울퉁불퉁하고 딱딱한 조개껍데기가 이렇게 얇은 종잇장이 된다? 쉽게 믿어지지 않죠. 천 년 전, 기계도 없던 시대에 장인들은 큰 돌과 철판 위에 조개껍데기를 올려두고 갈고 또 갈았다고 해요. 수백 번, 아니, 수만 번 깨지고 부러지면 또 다시 갈아냈어요. 제 살을 깎는 듯한 고통으로 묵묵히 수양하듯 깎아낸 0.3mm의 조개껍데기! 그걸 다시 오리고 잘라내 꽃모양을 만들었어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나전을 붙이는 경전함의 재료, 바로 나무입니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 금세 망가지죠. 장인들은 상자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천연방부제를 칠했습니다. 옻칠도 수차례 반복했죠. 상자를 보호하고 광택을 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길고 긴 인내와 노력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려 장인들은 왜 굳이 딱딱한 조개로 이토록 힘든 작업을 한 걸까요? 조개는 세계 어디에나 있는 흔한 재료죠. 우리나라에도, 일본에도, 동남아에도 바다가 있는 곳에는 어디든 조개가 있어요. 그러나 우리 남쪽 바다, 한려수도에서 나는 전복껍데기에는 특별한 이름이 있었어요. ‘색패’ 신비로운 빛깔 때문에 붙은 이름인데요, 여러분 이 나전 장식, 무슨 색으로 보이시나요? 흰색? 푸른색? 혹은 붉은 색? 정답은~ 그 때 그 때 다르다 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빛이 많을 때와 적을 때, 또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그야말로 천의 얼굴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이 나전은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 촛불이나 등잔불로 밤을 밝힐 때, 창호지 사이로 걸러진 은은한 달빛 아래, 가장 기품 있게, 또 영롱하게 빛났습니다. 고려의 바다를 그대로 담은, 오직 자연만이 만들 수 있는 신비로운 빛깔이죠. 고려의 명품, 나전의 아름다움은 이웃나라들에 입소문이 퍼집니다. 모두가 탐내는 워너비 아이템이 된 거죠. 원나라 왕후가 고려에서 가장 탐냈던 보물도 바로 이 나전이었습니다. 여러분, 원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아시죠? 동아시아 최고의 왕국이었죠. 당대 최고의 권력을 가진 나라에서도 고려나전의 섬세함과 아름다움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원나라 왕후는 노골적으로 고려의 나전 경전함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아주 많은 양을 말이죠. 고려는 어쩔 수 없이 경전함 제작을 전담하는 국가 기구까지 만듭니다. 고려의 자랑스러운 보물, 나전 경전함이 원나라의 조공품이 된 거죠. 고려 나전을 탐낸 나라는 원나라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고려의 멸망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나전경전함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일제 강점기였습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고려 나전 경전함은 총 9점 뿐! 그 중 5점이 일본에 있고, 나머지 3점은 일본을 통해 미국, 영국, 네덜란드로 뿔뿔이 흩어져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선 감히 따라올 수 없었던 고려의 나전 기술! 경전함은 그 특별한 아름다움 때문에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됩니다.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가 이 작은 경전함 속에 담겨 있는 거죠. 2010년, 일본에서 아홉 번째 나전 경전함이 깜짝 발표됩니다. 일본의 개인 소장자가 가지고 있었던 경전함이었죠. 수년간, 여러 차례의 설득 끝에 2014년, 이 귀한 나전 경전함은 기적적으로 고국 땅을 밟게 됩니다. 고려 경전함 최초의 귀환. 800여년 만에 우리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겁니다. 국내에 단 하나뿐인 유일무이한 나전 경전함, 나전칠 모란넝쿨무늬 경전함입니다. 고려의 흥망성쇠에 따라 반짝 빛났다 이내 그 자취를 감춰버린 찬란한 유산!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도 몰랐던 소중한 보물이 천년의 세월이 지나 여전히 우아하고 기품 있는 자태로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꼭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나전칠 모란넝쿨무늬 경전함> 이었습니다. MC 한상헌> 김소현 씨가 소개해주신 [나전칠 모란넝쿨무늬 경전함] ! 정교하면서도 세련된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김소현 씨 준비하시면서 어떠셨나요? 김소현>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할머니 댁에 약장 같은 자개장이 있었다. 당시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이후, 나전에 대한 기억조차 잊고 살았다. 이번에 [나전 경전함]을 보고, 잊고 있던 나전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홍경민> 드라마나 연속극 보면 부잣집 할머니 방에 눈부시게 화려한 자개장이 꼭 나온다. 으리으리하다. 그런데 오늘 본 고려 나전은 뭐랄까... 부를 과시하는 느낌보단 은근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김소희> 어렸을 때만 해도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자개장을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자개장을 보기 힘들어진 것 같다 박성광> 최근에 SNS에 재미있는 사진이 하나 올라왔다. 아마 일본인이 쓴 것 같다. “한국에선 뭔가 굉장한 게 버려지고 있다” 고 한 것! 홍경민> 가끔 길에 이런 거 나와 있는데, 그걸 보면서 ‘와 저거 버리려면 힘들겠다’ 이렇게 생각했었다. 사실 이런 자개장 버리려면, 구청에 다 신고하고 폐기물 스티커 받고, 힘들다. 박성광> 이 정도면 한 삼만 원 나오지 않을까.. 홍경민> 아마 더 나올걸? 우리가 너무 가까이 있어서 몰라봤나보다. 외국인의 시선으로는 이게 정말 놀랍고 대단한 건데, 우리가 이걸 잊고 지나쳤다는 게 안타깝다. 나부터 반성해야겠다. 다니엘> 독일에도 나전칠기 공예품이 있다. 퀼튼 동아시아 박물관에 있는 것. 그런데 박물관에서 귀하게 봐야 하는 이 보물이 일상생활 속에 있는 게 놀랍다. 김소희> 이걸 보고 네일아트로 해도 정말 예쁘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 실제로 현대 예술 작품으로 응용해도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 백현주> 나전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색감, 조도와 위치의 한계를 넘어서서 너무나도 자유자재로 보여준다. 이 때문에 빛의 예술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다. 경전함을 장식한 꽃무늬도 상당히 아름답지만 그 테두리를 장식한 기하학적 무늬가 인상적이다. 현대적 감각으로 봐도 충분히 세련되고 멋지다. 김소희> 빌 게이츠, 1억 짜리 게임기 박스 탐난다. 우리도 잘 모르는 나전을 어디서 어떻게 접했을까? 김소현> 해외에서 우연히 나전 전시회를 보고, 한 눈에 반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딱 3개를 주문해서 하나는 본인이 갖고, 하나는 보관하고, 하나는 당시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선물을 줬는데, 그 이후에도 VIP 선물용으로 나전 장식 게임기를 100개나 더 주문해 갔다고 한다. 강아랑> 빌 게이츠 뿐만 아니다. 스티브 잡스도 우리나라 나전 장인에게 사과 폰 케이스를 주문해 갔다. 박성광> 와, 사과 폰도 비싼데 케이스가 더 비싼 거 아니야? 그래도 하나 갖고 싶다. 홍경민> 소희 씨 게임기 박스, 박성광 씨 폰 케이스, 소박하네. 아마 여기 있는 남자 분들 다 공감하실 듯. 나는 나전 장식된 B 브랜드 자동차, 격하게 갖고 싶다. 박성광> 오빠 차 뽑았다~ 널 데리러 가~ 차도 비싼데 그 안에 고가의 자개 장식이라... 자개 장식 긁히기라도 할까봐, 조마조마해서 그 차를 어떻게 타나~ 홍경민> 자동차를 타는 게 아니라 모시고 다니는 거지. 이기환> 자동차에 나전 장식을 한 게 역사가 천년 쯤 된다. 옛날엔 자동차 대신 수레나 마차를 이용하지 않았나. 기록에 보면 고려가 송나라에 나전으로 장식한 수레를 보냈다고 되어 있다. 박성광> 와~ 수레를 끌고 가는데 나전장식이 박혀 있다? 남자들 로망, 스포츠카 몰듯이 옛날에는 수레 타고 허세 부렸나 보다. 김소희> 외국에서는 나전을 왜 이렇게 좋아한 걸까? 백현주> 장인들이 만든 나전장식을 보면 똑같은 게 하나도 없다. 설령 디자인이 같다고 해도 자개의 빛깔이 작품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그야말로 오로지 나만을 위한 작품인 거다. 김소현> 그래서 나전 장식은 외교할 때도 많이 쓰였는데, 최근에 영부인이 미국을 가면서 나전 장식된 클러치를 들기도 했다. 정말 예쁘더라. 강아랑> 맞다, 나전은 예부터 해외 정상들에게 선물로 전해지기도 했다. 고 이승만 대통령도 케네디 대통령의 아내인 재클린 여사에게 자개장을 선물했는데 그녀가 생전에 몹시 아꼈다고 한다. 힐러리 클린턴도 나전 보석함을 갖고 있다고 한다. 다니엘> 저도 한국에서 구입한 나전 공예품을 **에게 선물했는데 정말 좋아하셨다. 빌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그리고 또 외국의 명사들이 왜 나전을 좋아 했는지 알 것 같다. 조개로 만들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자개로 만든 은은한 빛의 아름다움이 서양에는 없다. 홍경민> 조개 하면 맨날 술 먹을 때 조개구이 안주로만 먹었지... 조개껍데기를 가지고 이렇게 예술품을 만들었다니 정말 놀랍다. 외국에서도 이렇게 좋아한 걸 보면 정말 우리나라 조개만이 가진 특별한 매력이 있나 보다? 김소현> 우리나라 조개 중에서도 특히 남쪽 바다에 나는 전복이 나전의 좋은 재료였다. 원래 우리 남해안의 한려수도가 아름답지 않나. 전복이 주로 많이 쓰였다. 이기환> 동물의 뼈를 이용한 화각이 활용되기도 했다. 거북이 등껍질을 얇게 갈아서 투명하게 만든 다음에 그 안에 노란색이나 붉은색을 이용해 은은하게 색이 밖으로 비치게 했다. 대모복채법이라는 아주 특별한 기법이다. 홍경민> 와 진짜 상상도 못할 정도의 예술이다. 누가 거북 등껍질에 색칠할 생각을 하겠냐. 이제 조개구이를 먹으면서도 나전 장인들의 예술 정신을 한 번씩 생각해야겠다. 다니엘> 경전함을 보고 놀란 게, 장식 모양이 일정하다. 마치 ctrl+c, ctrl+v, 컴퓨터로 붙여넣기 했나? 저 많은 조각을 어떻게 같은 모양으로 일일이 다 붙였을까? 홍경민> 요즘 말로 이게 실화냐? 싶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나? 김소현> 혼자라면 못 해냈을 것. 이 경전함 하나를 만드는데 많은 고려 장인이 동원됐다. 한 명의 장인이 아니라, 당대 최고의 장인들이 모두 모여 만든 합작품으로 보면 된다. 박성광> 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 작업하듯이 했다는 건가? 강아랑> 고려 시대엔 나라에서 운영하는 공방이 있었다. 이곳에는 조개를 가는 사람, 얇게 간 자개판을 꽃모양으로 자르는 사람, 목재 상자에 옻칠하는 사람, 각각 분야별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따로 있었다. 홍경민> 그럼 조개 가는 사람은 평생 조개만 가는 건가? 나중에는 인간이 거의 기계가 되었을 것. 요즘 AI, 뭐 인공지능 이런 얘기 하는데, 아무리 기계가 발전해도 이런 거는 못 따라할 거다. 박성광> 알파고도 나전 공예는 못해~ 이기환> 나전장인들 사이에선 ‘아교 서말은 먹어야 나전한다’ 할 수 있다고 한다. 아교는 천연 풀인데, 풀을 발라 놓고 또 0.3mm, 1mm 이렇게 작은 세공 작업을 하다 보면 그 사이에 풀이 금방 마르는 거다. 그럼 일일이 혀로 핥아서 다시 고정시켰다. 엄청난 장인 정신의 산물이다. 김소희> 너무 아름다워서 나라면 보석함으로 썼을 것. 보석함에 정말 잘 어울리지 않냐. 나전으로 만든 게 경전함 말고 또 있는지? 김소현> 나전은 가장 귀한 물건을 보관하거나 장식할 때 주로 쓰였다. 고려가 불교국가다보니, 염주함이나 스님들이 불교행사에 사용하는 지팡이 형태의 불자도 있었고, 보석을 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함도 몇 점 있다. 백현주> 나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작품 하시는 분들도 많다. 미디어아트 소재로도 많이 쓰이고. 교황님이 한국 오셨을 때 앉으셨던 의자가 있는데, 그 의자에도 나전 장식이 되어있었다. 김소희> 그런데 고려 나전은 왜 사라졌나? 그 많은 장인들이 실직자가 되었다는 건가? 이기환> 조선시대는 유교의 영향으로 사치를 배척했다. 고려시대에 비해 장인들도 천대 받게 되면서 찬란했던 나전기술은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다니엘> 아까 대부분이 일본에 있다고 했는데, 다른 유물들처럼 일제강점기에 약탈된 것인가? 김소현> 그보다 훨씬 전인 고려 말, 조선 초 혼란시기에 왜구에게 약탈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나전경전함이 유럽 등으로 유출된 시기는 일제강점기다. 강아랑> 고려 나전 경전함의 아름다움은 예나 지금이나 세계 어디에서든 인정받고 또 탐내는 것이다. 네덜란드에 있는 경전함은 독일인 수집가가 일본에서 구입한 것을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이 다시 사들였다 한다. 미국과 영국의 미술관에 있는 경전함도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 건너간 것으로 확인됐다. 홍경민> 그 정도면 정말 세계적으로 귀한 보물인데, 한국으로 귀환 과정도 쉽진 않았을 것 같은데? 김소현> 2010년 일본에서 깜짝 발표된 나전 경전함은 개인 소장가가 가지고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후원회에서 실물을 보는 데만 여섯 번 방문을 하고 이후 소장가를 설득하기 위해 수차례 재방문을 했다고 해요 박성광> 소장가가 그냥 넘겨주진 않았을 것 같은데... 귀한 보물인 만큼 가격이 어마어마할 것 같은데? 강아랑> 국내에 들여올 때 정확한 가격은 공개되지 않고, 고려불화의 가격 정도로 알려졌다. 뛰어난 예술성과 희귀성으로 경매시장에서 최소 20억 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 있는 고려 나전경전함 5점 중 3점이 보물급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김소희> 9번째 경전함처럼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고려나전이 어딘가에 꽁꽁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강아랑> 최근 몇 년 사이에도 경전함은 아니지만 화려한 고려 나전품이 일본에서 발견되고 있다. 고려 나전을 가지고 계신 분들, 혹시라도 이 방송을 보고 계신다면 돌려주세요옹~ 홍경민> 그거 일본어로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기환> 경전함은 청자, 불화와 함께 고려 미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중요한 예술품이다. 고려불화가 전 세계 160여 점, 국내에 20여 점 있는 것과 비교해 봐도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알 수 있다. MC 한상헌> 신의 예술로 일컬어지는 고려공예의 꽃, [나전칠 모란넝쿨무늬 경전함]을 만나봤습니다. 김소현 씨, 최후의 한마디 전해 주시죠. 김소현> 고려의 빛을 간직한 채 낯선 땅에 덩그러니 남겨진 보물이 있습니다. 영광과 수난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선 말이죠. 찬란하고 쓸쓸한 우리의 보물, 천년을 견딘 고려의 빛, 자세히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마치 마법에 걸린 듯 이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자세히 볼수록 예쁘고 오래보니 더욱 사랑스럽다. 네가 그렇다“ 나전 경전함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MC 한상헌> 김소현 씨의 최후 한마디까지 모두 잘 들었습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고려의 예술품, [나전칠 모란넝쿨무늬 경전함]을 우아하고 기품 있게 소개해준 김소현 씨께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자, 그럼 이제 오늘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해줄 보물만이 남았는데요. 어떤 보물인지, 바로 만나보시죠! 이제 호스트 세 분의 무대가 모두 끝났습니다. 여러분, 어떠셨나요? 재미 있으셨나요? 오늘 우리가 만난 세 개의 보물은 조선 당쟁의 피바람을 지켜본, 정철의 <은잔> 고려 귀족 예술의 꽃이었던 <나전칠 모란넝쿨무늬 경전함> 컬래버레이션이 완성한 살아 있는 조선 호랑이 그림 <송하맹호도>였습니다. 자! 이 주의 천상의 컬렉션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순서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00분의 현장평가단 여러분! 마음의 결정을 내려 주셔야 합니다. 오늘 만난 세 개의 보물 중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의 번호를 누르고, 옆에 있는 불을 밝혀주시면 됩니다. (박철민 씨의 <정철 은잔>는 1번, 김소현 씨의 <나전칠 모란넝쿨무늬 경전함>은 2번, 김수로 씨의 <송하맹호도>은 3번입니다.) 여러분, 마음의 결정! 내리셨습니까? 천상의 컬렉션!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에 불을 밝혀 주세요! 세 개의 보물 중에서 하나를 결정하는 게 고민스럽겠지만 이제는 결정해 주셔야할 땝니다. 집계 중에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고요. 그리고 이미 번호를 누르신 분들이라고 하셔도 다시 한 번 해당 번호를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자, 100인의 현장평가단의 투표가 모두 완료됐습니다. 그럼 이제 세 분의 호스트를 무대 위로 모셔볼까요? 호스트 세 분 나와주세요! 천상의 컬렉션에서 멋진 보물을 소개해 준 세 분의 호스트를 무대 위로 모셨습니다. 자, 그럼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에 오른 보물은 무엇인지, 바로 확인해 봐야겠죠? 100분의 현장평가단의 마음을 사로잡은 보물! 최종 결과 보여주세요! 오늘 천상의 컬렉션에는 호스트 OOO씨의 OOOO가 올랐습니다! 축하드립니다! 1등 하신 OOO 씨,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 주의 천상의 컬렉션엔 오르진 못했지만 멋진 무대 준비해 주신, 두 분의 소감도 들어봐야죠. OOO 씨, 어떠셨나요? 오늘 천상의 컬렉션과 함께 한 일곱 분의 패널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 처음 참여한 패널 분들 소감도 궁금한데요. 김소희 씨는 오늘 처음 자리해주셨는데 직접 오셔서 보시니 어떠셨나요? 미디어 아티스트, 백현주 씨는 어떠셨는지요? 오늘 함께 해주신 현장평가단 여러분 감사합니다. 100분의 현장평가단의 투표로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에는 호스트 000의 00000가 선정되었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불을 밝혀 줄 단 하나의 보물! 단 하나의 이야기가 찾아갑니다. 지금까지 천상의 컬렉션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