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이미지 및 저작권 정보(N2L)
대표이미지 | 저작권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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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 문화재청 | ||
전자자원소장처 | 한국문화재재단 | ||
공공누리 저작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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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코드 | <iframe width="720px" height="480px" src="http://uci.k-heritage.tv/resolver/I801:1706001-002-V00005?t=3"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관련 파일 및 자원정보(N2R)
번호 | 파일명 | 파일크기 | 다운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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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불교문화를_꽃피운_고려_불교문화이야기_제2부_CHF_1280X720.mp4 | 223.19 M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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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N2C)
UCI | I801:1706001-002-V000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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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불교문화를 꽃피운 고려, 불교문화이야기 제2부 | ||||||||||||||
콘텐츠 유형 | 동영상 | 언어정보 | 국문 | ||||||||||||
생산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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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여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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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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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키워드 | ;왕건;노비안검법;과거제도;팔관회;불교문화;연등회;팔만대장경; | ||||||||||||||
내용 | 고려시대 불교문화와 문화유산에 관한 역사 이야기 | ||||||||||||||
대본 정보 | (나레이션) 통일신라를 이어 한반도에 세워진 나라는 고려였습니다. 고려는 고구려의 문화를 계승한 나라로 나라를 세운 것은 태조 왕건이었죠. 고려는 고구려, 백제, 신라 뿐 아니라 북쪽의 발해까지 아우르는 한민족의 실질적인 통일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데요. 특히, 한반도에서 불교문화가 가장 발전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고려의 불교문화는 어떠했고, 어떤 문화유산들을 남겼을까요? 고려시대로 함께 가보실까요? 고려를 대표하는 불교문화유산으로 팔만대장경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교의 경전을 팔만장의 목판에 새긴 것으로 동양에서 가장 앞선 목판 인쇄 기술을 자랑하는 유산이자, 세계적으로 불교경전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는 목판 인쇄물입니다.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데에는 16년이나 걸렸는데요. 왜 불교였던 걸까요? 고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오랜 기간동안 정성들여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던 걸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 고려의 정치문화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민란으로 어지러울때 각각 백제와 고구려의 부활을 꿈꾸던 사람들은 후백제 후고구려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오래가지 못하고 고려의 왕건이 후백제, 후고구려의 후삼국을 통일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고, 이는 지방의 호족세력 덕분이었습니다. 통일신라시대가 끝나갈 무렵에 중앙정부의 힘이 약해지면서 지방에서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호족세력이 등장했고 이들 호족들은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세우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고려의 왕실은 지방의 호족들을 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들을 견제하면서 중앙의 왕권을 강화하고자 노력했는데요. 관리로 등용될수 있는 일종의 시험인 과거제도를 실시해 인재를 두루 등용하고자 했습니다.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들을 풀어주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고려는 뷱방의 발해가 멸망하고 나라를 잃은 유민들까지 받아들이며 실질적인 민족을 통합하고자 노력했는데요. 이를 위해 국가에서 장려한 것이 불교였습니다. ‘나라를 통일한 것은 부처의 힘이며 불교를 장려하라‘ 태조 왕건은 이런 유언을 남길 정도로 불교를 숭상했죠. 왕실뿐만 아니라 지방의 세력가들도 지역백성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전국 곳곳에 많은 절과 큰 불상들을 세웠습니다. 당시 절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아이가 자라면 부모들은 학식 높은 스님에게 보내 교육을 받도록했고 가뭄이나 홍수에도, 집안의 크고 작은 근심이 생기면 절에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절에는 사람들이 묵을 수 있는 숙박시설이 있었고 가끔은 시장도 열리는 경제활동의 장소였죠. 특히 고려 왕실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두 가지 불교축제를 성대하게 열었습니다. 그 하나가 팔관회인데요. 원래는 하루 동안 여덟 가지 계율을 지켜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는 의식이었는데, 점차 복을 비는 행사로 바뀌었습니다. 고려에서는 매년 가을 추수가 끝나면 팔관회를 열어 춤과 노래와 놀이를 즐겼습니다. 백성은 물론이고 왕과 신하, 외국인들까지 대대적으로 참여한 고려 최고의 행사였죠. 또 하나는 연등회였습니다. 불교에서는 등불을 세상을 밝히는 지혜의 상징으로 여겨서 부처님에게 연등을 올렸는데요. 매년 초에는 연등회를 열어 궁궐과 전국 곳곳에 등을 밝히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모두 나라의 평온과 개인의 행복을 비는 대축제였죠. 이렇듯, 고려시대에 불교는 국가의 후원을 받으며 백성들 생활 속에 깊게 자리잡았고, 불교로 모아진 백성들의 염원을 기반으로 고려는 안정적인 국가로 자리잡아갑니다. 그러나 국가의 기틀이 다져지고 나라가 평온을 찾아가면서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게 되는데요. 그들은 바로 높은 관직을 차지하고 많은 재산을 가지게 된 중앙의 귀족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권력과 재산을 대물림하면서 귀족중심의 신분질서를 만들어갔습니다. 이들의 대부분은 학문을 전공했던 문신들입니다. 문신들은 권력을 잡은 후에 백성을 돌보기보다는 사치로운 생활과 권력 횡포를 계속 부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에 대해 반기를 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무술이나 무예를 전공했던 벼슬을 했던 무신들이었습니다. 문신들의 부당한 대우에 참다못한 무신들은 난을 일으키게 되고 이후 100년 동안 고려의 권력을 차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문신처럼, 초기에는 백성을 위하는 정책을 펼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문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점점 부패해갔죠. 문신과 무신세력 간에 권력을 위한 세력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이 혼란한 틈을 타 북쪽에 있던 몽골이 고려를 침입하게 됩니다. 잔인한 몽골군의 침략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백성들의 희생과 피해는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는데요, 30여 년 동안 계속된 전쟁으로 고려는 나라가 극심한 위기를 겪게 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종교의 힘, 즉 불교에 의지하게 되죠. 그렇게 해서 팔만대장경이 태어나게 됩니다. 8만여 개나 되는 목판을 일일이 다듬고 거기에 경전의 한자 한자를 새기는 대 공사였는데요. 이는 부처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백성의 강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동양에서 가장 뛰어난 목판인쇄술을 자랑하는 팔만대장경은 이렇게 외세의 침략이라는 아픈 역사 속에서 탄생한 한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었던 겁니다. 불교는 이렇듯 고려인들의 삶과 문화에 핵심적인 사상으로 자리잡으면서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되는데요. 불교문화뿐이 아닙니다. 고려시대에는 과학기술에서도 눈부신 발전을 이루게 되는데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