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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 KBS | ||
전자자원소장처 | 한국문화재재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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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N2C)
UCI | I801:1803002-003-V000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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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KBS] 천상의 컬렉션 39회 - 태조 왕건 동상, 청자상감운학매병, 창령사 터 오백나한 | ||||||||||||||
콘텐츠 유형 | 동영상 | 언어정보 | 국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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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키워드 | KBS;천상의 컬렉션;태조 왕건 동상;청자상감운학매병;창령사 터 오백나한;창령사;오백나한;태조 왕건 | ||||||||||||||
내용 |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 천상의 컬렉션! 우리 문화재도 애정을 가지고 오래, 자세히 보았을 때 진정한 가치를 드러낸다. 수많은 세월을 지나 기적처럼 전해진 문화재의 아름다움과 가치, 그에 얽힌 살아있는 역사 이야기를 호스트의 생생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살펴보고,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을 단 하나의 보물을 선정한다. 이정진이 소개하는 '태조 왕건 동상' 윤상이 소개하는 '청자상감운학매병' 최여진이 소개하는 '창령사 터 오백나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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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정보 | 한상헌 /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을 선택하는 시간! 천상의 컬렉션! 반갑습니다. 세계가 우리를 부르는 이름, 아시죠? 네~ 코리아는 ‘고려’가 그 원형입니다. 고려의 대표적인 항구 벽란도를 드나들던 아랍, 페르시아, 로마의 상인들에 의해 세계에 알려진 아주 유서 깊은 이름이죠. 올해는 고려가 이 땅에 세워진지 1100년이 되는 해인데요, 그래서, 오늘 천상의 컬렉션에서는 고려 유물을 한 자리에서 만나는 특별한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완전한 통일국가! 개방적이고 활력 넘치는 글로벌, 다문화 국가 고려의 흥미로운 보물 이야기! <고려건국 1100주년 특집> 지금 시작합니다. 1.이정진 <태조 왕건 동상> 이정진 / 안녕하세요. 이정진입니다. 제가 <천상의 컬렉션> 미스터리 보물 전담인 거, 아시죠? 사라졌다 되찾은 국보, ‘연가7연명금동여래입상’을 소개해 드렸고, 행방불명된 국보 ‘소원화개첩’을 이 자리에서 공개 수배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고려 건국 1100주년 특집이니까요, 미스터리를 품은 고려시대 보물 한 점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때는 1992년. 한 왕릉 근처에서 보수 공사가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포클레인 삽에 뭔가 딱딱한 물체가 걸리는 겁니다. 포클레인 기사는 별 생각 없이 물체를 삽으로 끌어올리려 했죠. 그런데, 이게 어찌나 큰지 땅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겁니다. 결국 현장에 있던 작업자들이 전부 달라붙어 그걸 땅 위로 끄집어 올렸습니다. 왕의 무덤 근처에서 나온 거대한 물건. 뭐였을까요. 바로 청동으로 만든 동상이었습니다. 이 동상이 오늘 제가 소개할 보물인데요. 자세히 한번 볼까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반듯하게 앉아 있는데요, 키가 무려 140센티미터입니다. 제 가슴 높이까지 오는 거니까, 굉장히 크죠? 넉넉한 턱과 가로로 긴 눈. 두꺼운 귀. 영락없이 인자한 표정을 한 불상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 동상이 처음 전시될 땐 ‘청동불상’이란 아주 평범한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불상이라고 바로 단정짓기엔 몇 가지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이 머리에 쓴 관! 이건 보통 관이 아니라 황제들만 썼던 통천관이라고 하는 겁니다. 부처님이 황제를 상징하는 관을 썼다? 좀 이상하죠? 학자들은 의문을 품고 이 동상의 정체를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먼저 동상이 발견된 장소부터 주목합니다. 이 크고 웅장한 무덤의 주인공은 바로,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이거든요. 그래서 처음엔 왕건과 함께 묻어준 불상인가 했죠. 그런데 한 학자가 세종실록에서 단서가 될 만한 기록 한 줄을 찾아냅니다. ‘태조 왕건 동상을 왕건릉 주변 어딘가에 묻었다’ 이 동상의 정체는 태조 왕건인걸까요? 자, 그런데 왕건 동상으로 단정 짓기엔 여전히 이상한 점이 많습니다. 이 동상을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있습니다. 바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 상태라는 것. 사실 나체 동상이 아주 드문 일은 아닙니다. 유럽 박물관에 가면 많이 볼 수 있죠. 우리가 잘 아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좀 보세요. 단련된 몸을 가진 건장한 모습이죠. 그런데 이 동상은, 보세요. 팔 다리는 근육도 없이 비쩍 말랐습니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배는 아래로 축 쳐져 있죠. 만약 이게 태조 왕건이라면, 왕의 위엄을 살려 만들었을 법도 한데 그런가요? 전혀 아니죠. 곤혹스러운 점은 또 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지만, 남성의 중요 부위가 밖으로 드러나 있거든요. 그런데 또 크기는 아~주 작아요. 여러분, 태조 왕건이 누굽니까. 전쟁 없이, 외세 간섭 없이! 오로지 자기 힘으로 통일을 이룬 위대한 왕입니다. 분열과 혼란에 빠져 있던 삼국시대를 끝내고 고려를 세웠죠. 당연히 고려인들에게 최고 존엄한 존재였습니다. 그런 고려의 상징, 태조 왕건을 이렇게 볼품없이 만들었다고요? 자...이 동상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 1100년 전 고려시대로 시계를 돌려보겠습니다. 태조 왕건이 죽은 뒤 남은 아들은 무려 25명. 아들들 사이에 치열한 권력 투쟁이 벌어집니다. 왕은 6년 사이에 두 번이나 바뀌고, 민심은 흉흉해집니다. 고려의 네 번째 왕에 오른 광종. 나라의 혼란으로 깊은 고민에 빠졌던 그는 한 가지 결단을 내리죠.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녔던 고려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를 되살려 이 혼란을 수습해보자! 광종은 전국을 뒤져 장인들을 불러 모읍니다.태조 왕건 동상 제작을 지시하죠. 네, 이 ‘청동불상’의 정체는 아들 광종이 만든 태조 왕건이었던 겁니다. 자, 그럼 광종은 왜 존경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이렇게 오묘한 모습으로 만들었을까요? 고려의 국교가 뭐죠? 네, 불굡니다. 일상생활 속에서는 물론, 나라에 몽골군이 쳐들어와 생명을 위협당할 때도 고려인들은 부처님에 기대 살 길을 구했습니다. 자 그럼, 불심 가득한 고려 사람들의 눈이 되어, 이 동상을 다시 한 번 볼까요. 인자한 얼굴과 가늘고 섬세한 손가락! 반듯하고, 가지런하게 놓인 발! 불교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신체적인 특징이 고스란히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주 유명한 보물이 떠오릅니다. 바로 현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불상 금동반가사유상! 잘록한 허리와 매끈한 몸, 손가락 모양까지 느낌이 비슷 합니다. 당시 광종은 백성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겼던 불상의 모습을 본 떠 왕건 동상을 완성한 겁니다. 가장 미스터리했던 작은 남근 역시 마찬가집니다. 조금 민망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이 모습은 도가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만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한마디로 이 동상은 태조 왕건을 부처에 버금가는 모습으로 탄생시킨 겁니다. 광종의 예상대로 왕건 동상은 탄생 순간부터, 고려인들의 경배 대상이 됩니다. 고려왕들은 천재지변이나 나라의 중대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이 동상에 찾아와 기도했습니다. 온 백성들이 참여하는 축제에서, 행렬이 마지막으로 향했던 곳도 이 태조 왕건이 모셔져 있던 절이었습니다. 태조 왕건 동상은 500년 동안 고려인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신앙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여전히, 이상합니다. 이렇게 귀한 보물은 왜 땅에 묻힌 채로 오랫동안 자취를 감췄던 걸까요. 1392년.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즉위하자마자 가장 먼저 고려의 흔적부터 지워나갑니다. 제거 1순위는 뭐였겠어요. 바로, 고려의 상징, 왕건 동상을 없애는 일이었죠. 왕건 동상을 작고 누추한 암자로 보내버립니다. 그 뒤로 경기도로 충청도로 옮겨지다 세종은 결국 태조 왕건 능 옆에 묻어버립니다. 그렇게 왕건 동상은 역사 속에서 철저히 지워졌습니다. 그래도 공사 중에 무사히 찾아냈으니 이제 볼 수 있겠구나, 싶으시죠?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동상을 직접 볼 수 없습니다. 왜냐면...북한에 있거든요. 북한의 국가대표 보물로 인정받으며 평양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습니다. 언젠가 좋은 날이 와서, 북한에 갈 수 있는 날이 오면 저는 1100년 전 고려인들이 가장 흠모하고 숭상했던 태조 왕건 동상을 꼭 만나보고 싶습니다. 그때는 제가 태조 왕건 동상 가이드가 되어 여러분을 안내할 테니 함께 하시죠. 감사합니다. 한상헌 / 이정진 씨의 <태조 왕건 동상> 잘 봤습니다. 이 정도면 이정진 씨는 천상의 컬렉션 공식 미스터리 큐레이터가 아닐까싶습니다. 이정진 씨도 처음엔 불상인줄 알았다고? 이정진 / 제가 불상을 모으거든요. 그래서 처음 이 동상을 보곤 딱 불상이라고 생각했거든. 태조 왕건상 귀를 보시면 부처님처럼 귀도 큼~직하고 생김새도 부처님같다. 그런데, 이게 불상이 아니라 왕의 동상이라고 해서 너무 신기했다. 박영진 / 오늘은 제가 노래로 소감을 표현해 보겠습니다. ‘불상인 듯 불상 아닌 불상 같은 너~♪’ 저도 불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왕의 나신이라니 더 놀라웠다. 강아랑 / 그러게, 불상들은 보통 옷을 입고있지 않아? 바지라도.. 어깨에 천이라도 두르고 있었던 것 같아. 왕의 나신을 보긴 건 또 처음. 왜 나체상으로 만든 거야? 홍경민 / 예전에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동화가 있었잖아~ 착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옷을 입었던 거지! 다니엘 / 나신인 게 어때서? 유럽에는 나신 동영상이 많잖아. 그리스만 해도 ‘남자의 나신’을 신성하고 절대적 아름다움으로 여겼던 때가 있어. 박영진 / 아니 여러분, 저 동상이 나체로 보인다고요? 저는 옷이 보이는데요. 일상생활 가능하십니까? 저 황금비단 옷 안보여요? 이정진 / 태조 왕건상은 옷을 입은 동상. 처음 발굴됐을 때 동상에 비단 조각이나, 옷 가루들이 붙어있었다고 해. 그런데, 동상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들이 그냥 동상을 씻어버린 것. 보존을 잘 해서 그대로 복원했으면 우리는 옷을 입은 왕건 동상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지도 몰라. 홍경민 / 아까부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분들 다 그렇겠지^^? 나만 궁금한 거 아니지? 저 부분은 왜, 저렇게...작게 표현한 건가? 박영진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이 있잖아. 그런 의미 아닐까? 안현정 / 여러분, 이 조각상에서 뭐가 가장 눈에 띄나요? 보시면, 남근을 아주 작게 표현했어. 고대 로마와 그리스에서는 작은 남근을 ‘지적이고 절제적’이라 이상적으로 여겼거든. 오히려 크기가 큰 남근은 문란하고 어리석은 사람의 상징이었어. 다니엘 / 근대엔 근대로 와서는 아예 반대잖아. 특히 왕이 성적으로 무능해 남성성을 잃으면 국부로서 통치력을 상실하게 되거든. 실제로 프랑스 혁명 때, 시민들은 루이16세가 고자라는 설을 퍼트리고 그의 권위는 바닥을 치게 된다. 이기환 / 맞아, 처음 왕건동상이라는 추측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어딜 봐서 저 동상이 부인 29명에게서 자녀 34명을 낳았던 고려 태조라는 것이냐"고, 항의했어. 근데 사실 이 표현은, '마음장상’ 이라고 성인으로서 성욕을 초탈한 모습을 표현한 불교적 표현이거든. 강아랑 / 원래 왕건이 저렇게 배불뚝이었어? 왕건처럼 대단한 왕이었다면 초콜릿 복근에! 딱! 당당하게 위엄있게 만들었을 것 같은데! 박영진 / 그러게, 이게 왕건의 아들이 만든 거면, 왕건의 의사가 반영된 겁니까? 나라면 저런 모습은 싫을 것 같아~ 아들이 아빠 안티였어? 왜 불상의 모습으로 만든건가? 이정진 / 이게 뱃살이 아니라, 완만한 곡선을 표현한 거야. 이건 부처님을 상징하는 아주 신성한 배. 완만한 곡선을 가진 몸은 부처님의 고귀한 신체 특징 중 하나! 이기환 / 사실 태조 왕건 동상은, 부처님이 갖춘 거룩한 용모의 특징 32가지를 담은거야, 부처의 법으로 전 세계를 통치하는 전륜성왕의 모습을 닮았다. 이 왕의 시대가 끝나면, 세상은 암흑기로 접어든다고 해. 전륜성왕이라는 존재를 통해 왕건을 더욱 신성화한 거지. 안현정 / 고려 팔만대장경도 거란의 침략을 부처의 힘으로 막기 위해 새긴 것. 백성들은 팔만대장경을 새기며 불심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고려의 안위를 간절히 바랐다. 고려에서 불교는 종교 그 이상의 의미. 한상헌 / 절대자인 신과 견줄 정도면, 고려에서 영향력이 어마어마했을 것 같아. 태조 왕건은 어떤 지도자였나? 홍경민 / 태조 왕건 하면 삼국통일! 고려건국의 위대한 왕업을 달성한 아주 훌륭한 분으로 알고 있지 않나. 근데 제가, 왕건의 검은 민낯을 포착했다. 바로 이거다! 홍경민 / 여러분, 사진 속 여인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왕건의 부인들이다. 여러분, 고려는 일부일처제 사회였어. 그런데 왕건은 무려 29명의 부인이나 뒀다는 것!! 박영진 / 헐~!? 그럼 왕건... 두 집 살림도 아니고 세집 살림도 아니고 29집 살림남?! 강아랑 / 왕건이 바람둥이였어? 이정진 / 아냐. 아냐, 이건 바로 왕건의 인맥! 경영법. 왕건의 가장 탁월한 능력 중 하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 이었거든. 왕건은 분란이 생기거나 적대관계에 선 지방 호족의 딸과 혼인을 맺어서, 그들과 우호관계를 유지했어. 왕건의 평화통일 비법 중 하나. 다니엘 / 아무리 정략결혼이어도, 아버지와 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왕건에게 시집보내지 않았을 것 같다. 29명의 마음을 사로잡은 왕건도 대단한 매력남이었을 듯 이기환 / 왕건이 인기가 많았던 이유는 사람의 마음을 잘 얻은 것도 있지만 항상, 백성을 먼저 섬겼기 때문이야. 계속되는 전쟁과 궁예같은 지도자의 폭정으로 괴로울 때, 갑자기 나타나서, 전쟁 없애줘, 세금도 1/10으로 깎아줘. 인기가 없을 수가 없었다. 한상헌 / 이 정도 대단한 보물이라면, 제작진이 실물로 준비했을 법 한데, 그러지 못한 게 이 동상이 북한에 있어서라고? 실제로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이정진 / 맞아. 태조 왕건 상은 북한을 대표하는 국보급 문화재. 북한에서 일반인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아주 귀~한 보물이었어. 근데, 2006년, 우리나라에서 딱 한 번 온 적이 있다. 그때도 귀빈 대접을 받았어 박영진 / 아~ 2006년에 그 안타까운 기회를 놓쳤네 나 뭐하고 있었지? 이기환 / 이건 북한의 국가대표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어진은 많아도 동상은 없다. 이건 삼국, 조선시대 통틀어 유일하게 남은 왕의 동상이자, 왕의 나신을 나타낸, 전례가 없는 보물이다. 안현정 / 이게 바로 우리나라에 왔을 때의 모습이다. 이 사진을 보면 북한이 얼마나 애지중지 했는지 알 수 있어. 일부분은 천으로 가린 채로 전시했어. 혹시나 왕건의 위엄을 손상할까봐 북한이 요청했거든. 홍경민 / 이렇게까지 중요한 보물이니까 이성계가 그렇게 숨기려고 했었나 보네. 동상을 없애려면 부숴버리거나 멀리 갖다 버릴 수 있었을 텐데, Q5. 왜 하필 왕릉 근처에서 발견됐나? 강아랑 / 이성계가 고려의 흔적을 지우려 왕씨 일가를 몰살시키자 꿈에 왕건이 나와서 호통쳤다는 얘기도 있잖아. 그만큼 이성계에겐 두려운 존재였기 때문에, 버리진 못하고 왕건의 무덤 근처에 묻은 거겠지. 박영진 / 이성계도 조선을 세우기 전에는 왕건 동상 앞에 제사도 올렸을 거면서,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한다. 안현정 / 근데 이 왕건 동상을 무덤 밖에 묻은 사람은 우리가 다 아는 세종대왕이다. 태조의 손자인 세종대왕代까지 견제해야 했을 정도로 태조 왕건과 고려의 영향력은 긴 세월 이어졌던 것 같다. 다니엘 / 과민 반응을 한다는 건 그만큼 두렵기 때문이라고 하잖아요. 이성계와 조선왕조가 그렇게 왕건과 고려의 흔적 지우기에 집착했던 걸 보면, 정말 왕건이 대단한 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정진 / 고려의 흥망성쇠를 함께했던 태조 왕건 상은 고려 백성들에게는 남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1000년 전에는 백성을 위로하는 절대자로, 지금은 북한의 정신적 지주로 개성 땅에 남아 있다. 이 태조 왕건 상이야 말로 고려 1100주년에 걸맞는 천상의 컬렉션이 아닐까 싶다 한상헌 / 최고 군주의 나신상! 이정진 씨의 <태조 왕건 동상> 잘 봤습니다. 다음 고려시대 유물은 어떤 호스트가 어떤 보물을 소개할까요? 2.윤상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윤상 / 20세기 초, 대한제국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었습니다. “고려의 무덤 안에서는 황금 닭이 운다” 아니, 무덤에서 소리가 난다는 것만 해도 섬뜩한데, 황금 닭의 울음소리라니... 뭔가 의미심장합니다. 혹시 보통 닭이 우는 것처럼, ‘꼬끼오~’ 하는 소리였을까요? 아니면 망자의 한스러운 울음소리였을까요? 궁금하시죠. 제가 이 자리에서 한 번 들려드리겠습니다. 아... 심장이 약하신 분들은, 잠시 귀를 막으셔도 좋습니다. 네... 황금 닭이 우는 소리였습니다. 어떠세요? 여러분 표정을 보니까 약간 황당해 하시는 것 같은데요. 이 소리는 진짜, 정말로, 고려의 무덤에서 자주 들리던 소리였습니다. 사실 이 소리는 ‘탐침봉’이라고 하는 쇠꼬챙이를 무덤 깊이 찔러 넣었을 때 청자와 부딪히면 나는 소리였거든요. 당시 도굴꾼들은 이 ‘탱!’하는 소리만 들어도 알았대요. “아! 이거 돈 좀 되는 청자겠다!” 그러면 금광을 캐듯이, 본격적으로 무덤을 파헤치는 거죠. 그런데 우리의 고려청자는 어쩌다 도굴꾼들에게 황금 닭 신세가 됐을까요? 당시 일본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고려청자에 그야말로 푹 빠져 있었습니다. 늘 품절사태가 벌어졌을 정도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죠. 무덤 속에서 고려청자를 꺼내는 족족 비싼 값에 팔려나갔으니, 그야말로 땅 속의 로또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 어땠겠어요. 개성 주변 100리 안팎에 있는 고분들은 벌집마냥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습니다. 그런데요. 알 만한 도굴꾼들이라면 모두 탐내는 진짜 노다지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고려의 임시수도였던 강화도였죠. 아니나 다를까... 일본인 도굴꾼들은 강화도에서 엄청난 무덤을 찾아냅니다. 최씨 무신 정권을 일으킨 최충헌의 아들이자, 무려 30년이나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최우’의 무덤이었죠. 그리고 도굴꾼들은 최우의 무덤에서 그야말로 눈부신 황금 닭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제가 오늘 소개할 보물. 국보 제68호,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상하죠? 이쯤 되면 청자가 딱! 하고 나와 줘야 하는데, 안 나오죠? 사실, 이 청자를 본 사람들은 꼭 이런 말을 하거든요.“아, 사진발 참 안 받는다. 실물이 훨씬 낫다!” 마치 저처럼요. 저도 화면보다는 실물이 낫죠...? 아무튼 그래서 제가, 국내 최고의 청자 명장이 혼신의 힘을 다해 재현한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을 이 자리에 가지고 나왔습니다. 어떠세요. 실물을 보는 순간! ‘고놈 참 잘생겼다.’ 이런 말이 절로 나와요. 42센티미터의 훤칠한 키. 늠름하게 떡 벌어진 어깨. 날씬하게 내려오는 잘록한 허리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밸런스입니다. 이 청자에는 예순아홉 마리의 학이 새겨져 있는데요. 원 안의 학은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고, 원 밖의 학은 땅으로 내려앉고 있어요. 예순아홉 마리의 학이 구름을 품은 채로 저마다 오르내리고 있죠. 이렇게 청자를 한 바퀴 돌면서 바라보면, 천 마리의 학이 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천학매병’이라고도 불렸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일본인 도굴꾼이 도굴한 이 매병이 어떻게 우리 곁에 남을 수 있었을까요? 사실 처음 매병을 도굴한 도굴꾼은 청자가 너무 아름답고 화려해서 값을 얼마를 불러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기와집 한 채 값인 천 원을 불렀는데, 한 골동품상이 냉큼 사버려요. 사실 천 원만 해도, 당시 도굴품으로는 전례가 없던 가격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매병을, 대구의 한 의사가 사천 원을 주고 사서는, 다시 경성의 골동품상에게 육천 원을 받고 매병을 되팔죠. 그러니까 이 매병은 주인이 한 번 바뀔 때마다 기와집 몇 채의 가격이 더해지는 셈이었는데요. 이즈음, 고려청자계의 엄청난 큰 손이 등장합니다. 바로... 조선총독부였죠. 조선총독부는 골동품상에게, 매병의 가격으로 만 원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골동품상은 총독부의 제안을 거절하고 원하는 가격을 딱! 부릅니다. 무려... 2만 원! 기와집 한 채가, 눈 깜빡할 새 스무 채가 됐습니다. 총독부도 엄두를 못 낼 정도로 엄청나게 몸값이 뛰어버린 이 매병... 결국 누가 샀을까요? 천상의 컬렉션 3년차, 홍경민 씨? 감이 오시나요? 홍경민 / 우리 문화재 하면 이분 빼고 이야기하기 힘들죠! 간송 전형필! 윤상 / 그렇습니다. 평생을 문화재 수호에 바친 분이죠. 서울 종로 상권을 장악한 당대 최고의 거부, 간송 전형필 선생이었죠.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의 가치를 한 눈에 알아본 전형필 선생은 곧바로 일본인 골동품상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혹시나 골동품상의 마음이 변할까, 10분 만에, 단 한 푼도 깎지 않고 전액 현찰, 그것도 일시불로 단박에 사버려요. 매병의 기나긴 여정은 이제 끝이 날까요? 아닙니다. 전형필에게 2만원이나 받고 팔아버린 골동품상은 몇 배의 차익을 남겨 마냥 기뻤는데, 주변 사람들 반응이 심상치 않아요. ‘아이고, 이 사람아. 골동품으로 먹고 산다는 사람이 그렇게 훌륭한 매병을 겨우 그 값에 팔면 어쩌나’ 이렇게 타박을 하는거죠. 아니나 다를까, 뒤늦게 소식을 듣고 더 큰 돈을 주고 사겠다는 일본인 수집가가 나타납니다. 그리곤 전형필이 낸 돈의 딱 두 배, 겨우 며칠 사이에 두 배의 값이라니... 누구라도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순간, 전형필 선생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 매병보다 더 좋은 청자를 가져온다면, 매병을 원금인 이만 원에 드리겠소” 네, 전형필 선생은 이 세상에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보다 더 뛰어난 청자는 없을 거란 확신이 있었던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선견지명이었던 것 같아요. 여러분도, 이 청자 상감 운학문매병보다 더 아름다운 청자, 보신 적 있으세요? 고려인들이 유독 사랑해 마지 않았던 학이 자유롭게 노닐고 있는 고려 최고의 상감청자! 간송 전형필은 그렇게 우리의 국보 68호를 지켜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토록 아름다운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 한쪽에 깊은 금이 가 있습니다. 도굴꾼이 마구잡이로 쇠꼬챙이를 쑤실 때 청자에 부딪쳐 생긴 슬픈 상처죠. 사실 우리가 이 매병의 진정한 모습을 마음껏, 자유롭게 감상할 수 없게 된 것도 이 상처가 더 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섭니다. 오직 고려만이 가능했던 눈부신 아름다움과 일제가 문신처럼 새겨놓은 깊은 상처를 동시에 간직하고 있는 우리의 보물,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상헌 / 개인적으로 이 보물, 천상의 컬렉션에서 언제 나오나 했거든요. 고려 보물 특집에서, 드디어 나왔습니다!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 매번 교과서에서나 보다가 이렇게 청자를 실물로 보니까 도자기의 라인이라든가, 색상이 아주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홍경민 / 엄청 유명한데 오늘에야 이름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 교과서 단골 표지모델! 무대 위에 있는 건 진품은 아니죠? 윤 상 / 네, 아무래도 국보 68호니 함부로 바깥나들이를 할 수 없어서 대신 진품과 비슷한 재현품을 어렵게 구해왔습니다. 도예부문 대한민국 명장, 해강 유광열 선생님의 작품입니다. 강아랑 /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이 얼마나 유명하냐면 외국 대통령이나 국빈들이 오면 종종 명장님이 만든 매병 재현품을 선물한다는데요. 오늘 우리 녹화장에 온 청자도 그렇게 만들어진 청자 중 하나! 박영진 / 오. 그렇게 들으니 혹시 저도 하나 구입할 수 있을지? 윤 상 / 명장님이 만드신 작품 가격을 함부로 평가하긴 그렇지만 국빈 선물로도 나가다보니 대략 1,500만 원 정도 박영진 / 어이쿠. 재현품이라고 집에 있는 도자기 정도 생각했으면 큰일날뻔! 다니엘 / 저는 이 매병을 책에 프린트되어 있는 것만 봤거든요. 직접 가까이 가서 봐도 되나요? 왜 ‘천학매병’이라고 했는지 알겠어요. 정말 하늘에 학 수천마리가 날아다니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한국 도자기나 그림 보면 학이 자주 나오는 것 같은데, 옛날 사람들은 학을 굉장히 사랑했나봐요? 이기환 / 학은 십장생에 속하는 장수의 상징. 특히 학은 작품으로 많이 그려지는 인기 새. 조선시대때는 학문을 숭상하는 사람을 학으로 비유하거나 문관 관복 흉배에 학 문양을 넣어 선비의 고고한 인품을 상징하기도 했지. 강아랑 / 그거 아세요? 학의 학술적 이름은 두루미! 두루미는 우리나라 대표 겨울 철새인데요. 두루미는 중국 북부, 몽골, 시베리아 지역에 머물다 우리나라로 날아와 겨울을 보내는데요. 추운 겨울이 되면 고기압의 영향을 받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 떼 지어 날아다니는 학의 무리가 장관을 이루곤 합니다! 이상 기상캐스터 강아랑이었습니다!” 다니엘 / 그럼 청자의 색이 한국의 겨울 하늘색을 표현한 걸까요? 볼 때 마다 아주 오묘한 색깔이에요. 홍경민 / 청자하면 역시 색이라곤 하지만, 오늘의 보물은 구름과 학 문양이 압도적이지! 이렇게 빽빽하게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이게 다 흙을 채워서 색을 낸거죠? 안현정 / 맞아. 상감기법은 나전칠기 같은 공예품에서 적용하던 기법. 이를 도자기에 응용한 것은 정말 고려 도공들의 창의적인 발상이라고밖에. 무늬를 새기고 흰색과 검은색의 흙을 메워넣는 장식 기법. 다니엘 / 이렇게 생긴 병을 매병, 매화꽃병이라고 부르던데, 당시 꽃병을 이렇게 화려하게 만든 이유가 있을까요? 이기환 / 이름은 매화꽃을 꽂아두던 병이지만 주로 술을 담는데 쓰인 것 같다. 충남 태안에서 발굴된 마도 2호선에선 매병에 꿀을 담아뒀다는 죽간도 나와서 귀한 액상을 담는데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영진 / 아니 모양만 봐도 액체를 담았다가 따라서 먹기 되게 불편해보이는데요? 뭐 따르다가 깨먹겠어요. 윤 상 / 강진청자박물관에서 매병을 똑같이 재현한 다음 거기에 물을 담아서 6개월간 방치하는 실험을 했다고 해요. 냉장고도 아니고 실온이었는데 전혀 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청자에서 원적외선이 방출되서 그런게 아닌가 추정돼요. 아마 고려시대때도 술이든 꿀이든 상하지 않고 보관성이 좋았던걸 그때도 알았던게 아닐까 싶어요. 홍경민 / 사실 술병이 예쁘면 술 맛이 더 좋기도 하고요. 맛도 잘 보존되는데 술병 보는 재미까지 있는거! 박영진 / 그렇게 취해서 술 따르다 깨먹고? 아이고 한상헌 / 국보인 청자 상감운학문매병 뒤에 금이 가 있고, 이게 도굴 때문이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당시 고려청자 도굴의 규모는 정말 상상을 초월했던 것 같아요? 윤 상 / 고려청자 장물아비라는 별명이 있는 사람이 있어요. 역사 관심 많은 분들이라면 잘 알 것 같은데, 바로 이토 히로부미입니다. 하수인에게 고려자기를 보이는대로 다 사들여라는 명령을 내릴 정도였습니다. 조선에 있는 고려청자 씨를 마르게 할 정도라는 말이 돌 정도로 싹쓸이. 그런 권력자가 고려청자를 사들이니 도굴꾼들이 판을 칠 수 밖에 없었죠. 홍경민 / 이토 히로부미가 그렇게까지 고려청자를 모은 이유가? 이기환 / 일본 귀족들에게 선물할 용도로 수집한 것. 특히 자신이 모은 자기 중 가장 뛰어난 103점을 일왕에게 ‘조선 장악 선물’로 진상하기도 했지. 강아랑 / 그렇게 무덤 훼손까지 해서 마구잡이로 외국으로 반출되는데, 당시 조선 정부에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나요? 홍경민 / 아아 그래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거야. 고종과 이토히로부미가 이왕가박물관에서 대화인데, 나는 고종. 자 박영진씨가 이토 히로부미 역할을 좀 해줘. ‘세상에 이렇게 파란 그릇이 있느냐? 이게 어느 나라 사람이 만들었느냐? 뭐라고 부르느냐?’ 박영진 / ‘이것은 이 나라, 고려 시대의 거시무니다’ 홍경민 / ‘뭐? 그럴 리가 없는데? 이런 물건은 이 나라에는 없는 거요. 난 생전 처음 본 물건인데?’ 이랬다고 해. 윤 상 / 네, 당시 조선의 왕이었던 고종조차 고려청자를 본 적이 없다는거. 무얼 뜻하겠습니까. 이토 히로부미도 아무 말 못했다고 해요. 조선 정부나 민간에서 도굴에 대한 항의가 끊임없이 들어오자 조선총독부에서도 처벌을 하는 시늉은 하긴 했는데 솜방망이 처벌뿐이었대요. 안현정 / 1909년 열었던 이왕가박물관에 도자기를 납품했던 골동품상 리스트를 보면 더 가관. 한 사람이 무려 529개나 납품했어. 그리고 여기 납품 가장 많이 한 사람들 열 명이 모두 일본인이지? 이왕가박물관에 납품한 도자기 구입 대금 누가 댔는줄 아세요? 조선왕실! 강아랑 / 그러니까 우리껄 훔쳐서 우리한테 판거잖아요? 와, 너무 어이 없어요. 이기환 / 이왕가 박물관으로 팔려간 청자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 우리나라에 남았으니까. 아직까지 일본에 있는 청자가 추정치로 3만 여개 가까이 된다고 해. 다니엘 / 일제의 문화재 약탈이 얼마나 심했는지 북한 언론에서도 다룬 내용도 볼 수 있었는데요. ‘1924년 10월에는 경찰들까지 동원해서 평양 부근 옛 무덤을 파헤치고 귀중한 유물을 모조리 약탈했다’ 박영진 / 경찰까지 동원한거면 뭐, 일본이 대놓고 훔쳐갔네요. 다니엘 / 이런 내용도 있어요. ‘당시 평양에 살던 일본인치고 낙랑고분에서 나온 거울이나 질그릇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머저리 취급을 당하였다’ 홍경민 / 고려 무덤 뿐 아니라 돈 되는 무덤은 다 파헤쳤구만. 우리나라 문화재 없으면 머저리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다니, 정말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된다. 다니엘 / 예전 나치도 모네, 고갱, 세잔느 등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많이 약탈했어. 이 그림들은 나중에 다시 프랑스로 돌아갔지. 일본은 도굴 문화재를 안 돌려줬나요? 이기환 / 1966년 한일협정 이후 우리나라는 일본에 문화재 4479점의 반환을 요청했으나 돌려받은 건 1432점에 불과해. 민간 소유의 문화재는 아예 돌려받지 못했어. 한상헌 / 윤상 씨는 천상의 컬렉션의 도자기 보물과 인연이 깊은 것 같습니다. 조선 백자 수집가 박병래 선생님의 이야기를 전해주셨는데, 윤상 씨께서 수집가 분들과 인연이 있으신가봐요. 윤 상 / 네. 일본의 손에서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애쓰신 분들을 소개하게 되어 정말 영광이었는데요. 두 분에 대해 공부하다보니, 박병래 선생이 전형필 선생에 대해 남긴 글이 있더라고요. ‘경매 값을 턱없이 올려놓고 일본인들이 감히 엄두도 못낼 금액에 척척 사들여 본때를 보여 주었다’ 박병래 선생도 꽤 통쾌해 하신 듯 해요. 박영진 / 전형필 선생이 그렇게 시세를 올리면 다른 수집가들이 싫어하지 않았을까요? 윤 상 / 아뇨. 전형필 선생은 조선인 수집가들과는 경쟁하지 않았어요. 일본인에게 넘어갈만한 문화재에만 아주 비싼 값을 치르면서도 사셨대요. 애초에 다른 사람처럼 투기 목적으로 문화재를 사들인게 아니라 일본인들로부터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사는게 목적인 분이셨으니까요. 안현정 / 자꾸 그림이나 도자기를 비싼 값에 사들이니까 주변에서 물어봤겠죠. 전형필 선생 답변이 비싸게 산다는 소문이 나면 좋은 물건이 나왔을 때 자신에게 가장 먼저 가져올 것 아니겠냐고 하셨대. 강아랑 / 그래서인지 전형필 선생이 수집한 문화재 중에 국보랑 보물이 많잖아. 개스비 컬렉션도 그렇고. 오늘의 매병도 그렇고요. 전형필 선생처럼 되려면 재산과 안목이 모두 두루 갖춰져야 가능한 일 같아요. 이기환 / 전형필 선생이 청자 상감운학문매병을 사지 않았더라면 어땠을지 상상해봐라. 일본의 손에 넘어갔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럼 우리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일본에 가서 봐야했을 거야. 간송 전형필의 문화보국 정신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오늘의 보물이 아닐까 싶다. 한상헌 / 고려청자의 전성기와 우리 민족의 암흑기를 동시에 담고 있는 국보 중의 국보,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이었습니다. 소개해주신 윤상 씨에게 다시 한 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3.최여진 <창령사 터 오백나한> 최여진 / 배우에게 얼굴은 어떤 의미에선 또 다른 무대이기도 합니다. 얼굴의 기초 재료라고 할 수 있는 눈, 코, 입.. 이 얼마 되지 않는 재료를 갖고, 다양한 미소를 만들어내야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저의 오랜 습관 중에 하나가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는 겁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미소’를 주의 깊게 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미묘한 감정이나 뉘앙스를 ‘미소’로 얼굴에 나타내는데요. 그 순간을 포착하지 않으면, 붙잡을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삭~! 사라져 버리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고려시대에도 저처럼, 이 미소의 매력에 흠뻑 빠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려 건국 1100주년 특집! 오늘 제가 들고 나온 마지막 보물은요. 바로 고려의 미소, 창령사 터 오백나한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강원도 산골 오지에서 토지 경지 정리 작업을 하던 김 씨가 이따만 한 돌덩어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열 개, 오십 개, 아니 백 개.. 파도, 파도, 계속 나오더랍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돌밭인가? 싶을 정도로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그냥 단순한 돌이 아니더래요. 분명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보시다시피 대부분, 얼굴과 몸이 분리돼 있었습니다. 누군가 고의적으로 훼손한 뒤, 불태운 것이죠. 아마 조선의 억불정책이 이 산골 오지에도 미쳤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훼손된 것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다행히도! 자, 이분은 머리에 두건을 쓴 여인이고요. 나무 뒤에서 누군가를 몰래 엿보고 있네요. 와, 이분은 여의주를 두 개나 들고 계십니다. 언뜻 보면,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은 것 같은데.. 과연 이들은 누구일까요. 답을 바로 알려드리면 재미없으니까, 그림 하나 보여드릴게요. 이 안에 힌트가 있습니다. 이건 고려 불화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그림입니다. 에이~ 평범한 산수화 아니냐고요? 확대해 보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누가 보이죠? 네, 사람. 2센티미터의 크기로 깨알 같이 그려져 있습니다. 무려 오백 명이나! 멀리서는 산봉우리와 능선, 언덕과 계곡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삼삼오오 모여서 토론도 하고요.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줍니다. 불법 교리를 열심히 설파하기도 합니다. 딱 봐도 스님처럼 보이지만, 스님은 아닙니다. 바로 오백나한입니다. 오백나한은 부처의 제자로, 최고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가리키는 말인데요. 이들에겐 두 가지!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중생 구제와 불교 진리 전파. 아무래도 현장에서 뛰어야 하다 보니, 출중한 능력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습니다.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하고요. 수명을 연장시키는 능력도 있고, 또 변신술의 귀잽니다. 가뭄에는 비를 내리게 하는 탁월한 능력까지! 친해지면 여러모로 쓰임이 아주 많을 것 같은, 신통방통한 능력을 소유한 존재들이죠. 여러분, 이제 눈치 채셨죠? 창령사 터에서 나온 이 317점의 돌덩어리가 뭔지. 맞습니다. 오백나한. 종이에 그린 게 아니라, 돌에 새긴 거예요. 우리가 흔히 보는 오백나한은 전형적인 고승의 모습입니다.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듯, 근엄한 표정이죠. 하지만 창령사의 오백나한은 수수하고, 순박한 게.. 굉장히 친근합니다. 사람들의 바람을 하나하나 귀담아 들어주는 듯하죠. 처음엔 이게 뭔가 싶은데 자꾸 보게 되고, 보면 볼수록 정이 가는, 블랙홀처럼 빠져드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특히 이 미소! 금방이라도 살아나올 듯 생생합니다. 놀라운 건, 기쁨, 슬픔, 화, 공감, 사랑.. 이렇게 비슷한 느낌의 나한상들끼리 묶어 놔도 똑같은 표정이 없습니다. 단 하나도! 아직 놀라긴 이릅니다. 나한상 하나의 무게 얼마나 되는 줄 아세요? 네, 20킬로그램이 넘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이 돌이 창령사 인근에서 나는 돌이 아니란 거예요. 창령사와 직선거리로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제천 송학산에서 많이 나는 화강암입니다. 영월에서 제천까지.. 차로 가도 꼬박 30분이 걸리는 곳이던데, 고려 시대의 석공은 이걸 대체 어떻게 날랐을까요? 한 개도 아니고, 자그마치 오백 개를? 우리가 이름조차 모르는 고려의 한 석공은 하루는 20킬로그램이 넘는 돌을 손수 옮기고, 또 며칠은 그 돌에 미소를 새겨 넣고, 그러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을 겁니다. 오백나한을 만드는 것 자체가 수행이었겠죠. 그래서 저는 석공이 나한을 돌에 새긴 게 아니라, 돌 속에 갇힌 나한을 꺼낸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까지 해봤습니다. 보세요. 이게 보통 정성이 아니거든요. 여러분, 석공은 대체 왜, 이렇게까지 지극정성으로 오백나한을 만들었을까요? 그 답은 60초 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오백나한상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열이면 열,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이 있다고 합니다. 뭘까요? 네, 자기랑 똑같은 얼굴 찾기! 이 친근한 표정을 마주하는 순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내가 아는 누군가가 떠오르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거든요. 저도 저희 가족, 친구들 얼굴까지 다 찾았습니다. 박영진 / 음.. 최여진 씨랑 똑같은 얼굴은 아무리 봐도 없는 것 같은데요? 최여진 / 아닙니다. 저는 찾았습니다. 박영진 씨와 꼭 닮은 나한상도 찾아왔는데, 그건 잠시 후에 보여드리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나한상을 좀 더 자세히 보여드리기 위해서 제가 나한상 하나를 직접 가져와 봤는데요. 전문가에게 부탁해서 실제와 거의 똑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제작한 겁니다. 생각보다 엄청 크죠? 어떤가요? 저랑 닮았나요? 일단 표정이 아주 예술입니다. 살며시 감은 눈. 코와 입에서 은근히 배어 나오는 미소. 붉은 빛이 도는 입술. 수줍게 드러난 손까지.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저처럼~ 타임캡슐을 타고, 고려 시대로 가면 이런 사람들이 있을 것만 같죠. 그래서 제가 상상의 나래를 펼쳐봤습니다. 대체 왜 이런 순박한 오백나한을 만들게 된 건지. 사실 영월 창령사는 이미 오래 전에 폐사된 절이라 고려 시대에 남아 있는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기록이 하나 있더라고요. ‘고려 왕실에서는 각 절에 오백나한상을 모셔두는 나한전을 따로 만들어 나한재를 베풀었다.’ 고려의 왕들은 가뭄이 극심하면, 비를 내려 달라고, 외적이 침입하면, 나라를 지켜 달라고. 오백나한에게 빌었습니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비가 내렸고, 외적은 물러갔습니다. 특히 고려 말에는 오백나한 신앙이 백성들에게도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요. 그 이유가 뭔지 아세요? 고려 말 백성들의 삶은 아비규환. 지옥이 따로 없었거든요. ‘원래 우리 땅에선 한 해에 400석의 쌀이 나온다. 그런데 난 태어나서 한 번도 그걸 본적이 없다. 내가 태어나던 해 240석을 바쳤고, 내가 6살 때 320석을 바쳤고, 얼마 전엔 주인이라 주장하는 8명의 귀족이 나타나 사람들을 죽이고, 곡식을 다 빼앗아 갔다. 우리는 낱알 한 톨조차 보지 못했다.’ 고려 말, 가난한 백성들에겐 송곳 하나 꽂을 땅조차 없었다더니.. 강원도 산골 오지에서도 귀족들의 횡포는 피하기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고려의 석공은 힘없는 고려 사람들의 모습을 돌에 새겼습니다. 이 미소처럼, 웃고, 울고, 화내고, 슬퍼하고, 분노하며.. 빌고 또 빌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디 오백나한이 이 고통에서 우리를 구해주길. 오백나한상 하나하나는 모두에게 주목받으며 화려하게 피는 꽃이 아닙니다. 처마 밑에, 길가에, 들판 한쪽에 소박하게 핀 풀꽃들의 표정이죠. 나의 얼굴이고, 내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이고, 내 친구의 얼굴입니다. 하지만. 결코 고급스럽지 않고, 세련되지도 않은 이 얼굴들이 수천 년 동안 울고 웃으며, 이 땅을 지켜왔습니다. 고려 말, 백성들이 역경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모두가 어울려 사는 세상을 바랐던 것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미소 지으며 사는 세상. 이것이 바로 창령사 오백나한이 지금 여러분에게 띄우는 미소의 의미입니다. 한상헌 / 마치 고려 시대로 돌아간 느낌이었어. 고려의 미소, ‘볼매’라고 하지. 보면 볼수록 매력 있는 것 같은데, 최여진 씨도 처음엔 오백나한상의 매력을 잘 몰랐다고? 최여진 / 작가가 자꾸 나랑 닮았다고 사진을 보내주는데 처음에는 진짜 장난치는 줄 알았다니까. 그런데 나태주 시인의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잖아.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실제로 자꾸 보니까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가더라고. 여러분은 어땠어? 홍경민 / 최여진 씨가 카리스마가 넘치는 모습이 많이 알려져서 그렇지. 알고 보면 굉장히 곱고, 우아하거든요. 그런 분위기까지도 닮은 게 신기하다. 최여진 / 처음에 이게 뭐야? 싶었다고 했잖아. 그런데 이게 오백나한 중에 최고 미인 나한상이라고 하더라고. 어때? 손가락도 닮은 것 같지 않아? 홍경민 / 그래! 뭐. 일단 닮은 거로 하자. 박영진 /나는 표정이 다양해서 고려 시대 개그맨들 보는 줄. 알 수 없는 경쟁의식을 내내 느꼈어. 그래서 표정을 유심히 보다가 저 나한상 보고 깜짝 놀랐잖아. 아니, 장모님이 왜 여기 계시나? 홍경민 / 정말? 나도 우리 장모님인 줄. 날 보면 늘 함박웃음을 닮았어, 닮았어~ 강아랑 / 우리 엄마랑도 닮았는데! 최여진 / 엄마에 장모님까지 찾다니 대단. 실제로 국립춘천박물관 학예사분들은 각자 자기만의 나한상 갖고 있대. 나도 여러분 닮은 나한상 직접 찾아왔어. 박영진 씨 갖고 왔지? 박영진 / 이게 그거야? 어쩐지 이게 녹화 전에 최여진 씨가 주더라고. 나를 닮기 쉽지 않은데.. 이게 뭐라고 떨리지? 강아랑 / 나도 받았는데 너무 궁금하다. 얼른 볼게. 어때 닮았어? 자꾸 보니까 너무 좋아. 힐링 되는 느낌이야. 한상헌 / 나한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수도 있지만, 우리들 때문에 부처가 되길 미룬, 고마운 분들이 아닐 수가 없는데 우리 열혈 이기환 기자님은 직접 보고 오기도 했다고? 어땠어? 이기환 / 오백나한상이 왜 이렇게 친근할까 그 이유를 생각해 봤어. 요즘 못생긴 사람을 오징어라고 하잖아. 평평하고, 윤곽도 뚜렷하지 않은데 요즘 성형수술이나 포토샵이나 보정과는 정반대. 보통 나보다 못난 사람에게 더 친근감을 느끼기 때문 아닐까. 강아랑 / 이건 유명한 거조암 오백나한상인데 장풍 쏘고, 도술을 부릴 것 같은 신통한 존재란 느낌. 그에 비해 창령사 오백나한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사람들 같아. 안현정 / 대부분 오백나한은 중국이나 인도에서 온 듯한 이국적인 얼굴. 하지만 어떤 연구가는 창령사 오백나한은 정말 한국적인, 특히 강원도 사람 얼굴이란 재미있는 해석도 하더라고. 다니엘 / 어쩐지. 나는 나랑 닮은 걸 계속 찾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없더라. 한국 사람들 눈이 길고, 미소 지을 때 입가에 미소가 예쁜데 그게 동안 얼굴의 특징. 그런 게 정확히 포착돼 있는 것 같다. 한상헌 / 언뜻 보면 대충 만든 것 같지만, Q2) 미소 하나는 정말 예술이지 않아? 너무 생생하지? 홍경민 /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껏 본 최고의 미소는 반가사유상의 그 오묘한 미소인데, 오백나한은 그에 버금가는 것 같아. 다니엘 / 나는 모나리자. 보는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 다르고,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잖아. 오백나한이 동양의 반가사유상, 서양의 모나리자에 절대 뒤지지 않는 듯. 박영진 / 대체 이 석공은 이 오백 개의 미소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동네 사람들을 모델로? 홍경민 / 에이~ 저 산골오지에 오백 명이나 살았다고? 강아랑 / 동네 사람들을 모델로 했다고 해도 사진기도 없던 고려 시대. 짧은 순간 사라지는 미소를 포착하는 게 가능하긴 한 건가? 다니엘 / 나는 동네 사람들을 보고 한 게 아니라 조각가가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조각한 게 아닐까 싶어. 이 오백나한을 보면서 렘브란트 자화상이 생각났는데 그가 그린 자화상 백여 점. 얼굴이 다 달라. 그가 마지막에 그린 자화상의 미소는 해탈의 미소로 유명한데 마치 오백나한상의 미소와 비슷해. 이기환 / 나한이나 불상은 여성 남성이 없다고 하거든. 성을 초월한 성인. 해탈의 존재. 오백나한이 울고, 웃고, 슬프고, 화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이걸 다 초월한 존재란 건데 이걸 표현한 고려 석공 정말 대단! 최여진 / 미켈란젤로가 ‘조각을 하는 것은 돌덩이 속에 갇혀 있는 생명을 꺼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 속의 영혼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거든. 여러분은 오늘 고려의 미켈란젤로를 만나고 계신 거다. 강아랑 / 오백나한을 완성하기까지 실수도 정말 많지 않았을까? 박영진 / 조각하다 실수하면 아휴~ 끔찍해. 나한상 하나가 20킬로그램이 넘는다고 하거든. 돌을 다시 가지러 다시 가는 데만 하루. 자동차도 없던 시절. 무거운 걸 들고 올 생각하면 아휴~ 생각만 해도 땀난다. 최여진 / 그래서 보다보면 석공의 아주 귀여운 실수가 보여. 재밌는 게 이 나한상의 뒤통수를 보면 이렇게 눈을 그리다가 실패한 흔적들이 더러 보이거든. 돌 가지러 가기 싫어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뒤에다 그린 듯. 홍경민 / 그런 꼼수도 부렸다고? 부처님이 좋아했을 것 같진 않은데... 그래도 인간적이긴 하다. 한상헌 /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점은 고려 말, 백성들의 삶이 어려울수록 오백나한에 의지했다는 대목이었는데? 이기환 / 나한은 일반적으로 16나한, 18나한, 그리고 500나한으로 무리를 이루어 신앙화 되는데 그중 오백나한은 나한의 위력을 가장 극대화시킨 것! 오백나한처럼 누구든지 일심으로 공부해 나한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어. 홍경민 / 그렇게라도 현실에 벗어나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고려 말 백성들에게 송곳 꽂을 땅도 없는 상황이란 게 난 상상도 안 되거든. 박영진 / 요~~만한 땅도 없었다니.. 이게 바로 헬고려. 무시무시! 강아랑 / 그래서 나는 백성들이 오백나한에게 하소연했을 것 같아. 진짜 힘든데 내 얘길 좀 들어달라고. 힘들 때 누군가 내 얘기 들어주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잖아. 다니엘 / 그래서 그런지 오백나한상 자세히 보면 뭔가 잘 들어줄 것 같아. 뭐든 얘기해! 내가 네 맘 다 알아. 토닥토닥해주는 느낌? 이기환 / 당시 사람들은 나한상을 보면서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을 것. 죽을 만큼 불행한 삶 속에서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누추한 삶에서 따뜻한 웃음과 미소로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지 않았을까? 최여진 / 나도 그랬을 것 같아. 나한 신앙 중엔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어.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오백나한에게 가라고 할 정도로. 귀족의 횡포로 땅도, 가족도, 이웃도 잃었던 백성들은 오백나한에서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고 만났을 거야. 한상헌 / 오늘 고려 1100주년 특집. 너무나 인간적인 고려의 미소를 만나봤는데, 정말 보석 같은 아름다운 보물을 만난 것 같다. 창령사 터 오백나한을 소개해준 최여진 씨께 다시 한 번 큰 박수! 한상헌 / 이제 호스트 세 분의 무대가 모두 끝났습니다. 즐거우셨습니까 오늘 우리가 만난 세 개의 보물은 고려의 개국공신이자, 고려왕조 500년의 상징 <태조 왕건 동상> 고려청자 중에서도 ‘베스트 오브 베스트’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 우리를 닮은 고려의 미소 <창령사 터 오백나한> 이었습니다. 여기 계신 100인의 현장평가단 여러분들은 이제 마음의 결정을 내려주셔야 합니다. 잠시 후에 호스트 세 분을 무대에 모시고, 최후의 한마디를 들어볼 텐데요. 세 분의 최후 한마디를 모두 듣고 난 뒤,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에 투표해주시면 됩니다. 세 개의 보물 가운데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보물이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에 오르게 되고요. 우승을 한 호스트는 문화재 보호기금에 기부자로 등록됩니다. 자, 준비되셨나요? 자, 그럼, 세 분의 호스트! 무대 위로 나와 주세요! 자,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순서입니다. 여러분의 최종 선택을 도와줄 최후의 한마디 시간입니다. 태조 왕건 동상의 미스터리를 하나하나 풀어주신, 천상의 컬렉션 미스터리 보물 전담 이정진 씨, 최후 한마디를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이정진오늘 소개된 고려청자, 창령사 터 오백나한 정말 아름다운 보물이죠? 저도 보면서 정말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태조 왕건이 고려를 세우지 않았다면 이 보물들은 존재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고려의 시작. 태조 왕건 동상, 1번입니다. 윤상 / 저도 사실 전공이 도예였어요. 물론 음악을 하기 위해 중간에 그만 둬야 했는데요. 오늘 이 아름다운 매병을 보니 그때 어깨 너머로만 봤던 선배들의 뜨거운 열정과 이름 없는 고려 도공들의 모습이 겹쳐보여서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여러분도 도공들의 혼이 느껴지신다면 2번, 2번입니다. 최여진 / 오늘 초롱초롱한 눈빛과 환한 미소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신 두 분이 계십니다. 일어나 보시겠어요? 두 분과 꼭 닮은 나한상을 선물로 찾아왔습니다. 고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고려의 미소는 이렇게 살아남아 세상을 밝히고 있습니다. 고려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삶이 힘들고, 어렵고, 두려울 때 한번쯤은 이 나한의 미소가 떠오를 것 같다! 그럼 3번을 눌러주세요. 한상헌 / 자 그럼, 세분의 최후 한마디까지 잘 들었습니다. 자, 100분의 현장평가단 여러분! 이제는 마음의 결정을 내려 주셔야 합니다. 오늘 만난 세 개의 보물 중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의 번호를 누르고, 옆에 있는 불을 밝혀주시면 됩니다. 이정진 씨의 <태조 왕건 동상>은 1번윤상 씨의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은 2번 최여진 씨의 <창령사 터 오백나한>은 3번입니다. 자 여러분, 마음의 결정 하셨습니까. 천상의 컬렉션!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을 선택해주세요! 자, 결과가 나왔습니다. 100분의 현장평가단을 사로잡은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에 오른 보물은 무엇일까요.최종 결과 보여주세요! 오늘 천상의 컬렉션에는 호스트 윤상씨의 청자상감운학매병이 올랐습니다! 오늘 우승한 호스트 윤상씨는 문화재 보호기금에 기부자로 등록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마음에 불을 밝혀 줄 단 하나의 보물! 단 하나의 이야기! 지금까지 천상의 컬렉션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