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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
UCI I801:1803003-003-V00001
제목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개관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국문
생산자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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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 생산일자
한국문화재재단 2018-09-21
기여자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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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 정보 기여자 명
제작사 CPN
조연 강신일
기술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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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영역 기술 내용
기타정보 2018년 5월 22일
내용정보 ;
역사정보 일제강점기
인물정보 고종 황제, 이완용, 이하영, 이채연, 박정양, 이상재, 클리블랜드 대통령
지리정보 미국워싱턴D.C.
관련 키워드 ;주미대한제국공사관;대한제국;고종;국외소재문화재;
내용 2012년 매입한 미국 워싱턴 D.C.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하 ‘공사관’) 건물의 복원공사를 모두 마치고, 5월 22일 오전 10시 30분(미국 동부 현지 시각) 워싱턴 D.C.에서 개관식을 개최했다.
1893년 개최된 시카고박람회 참가 준비 등 16년간 활발한 외교활동의 중심 무대로 쓰였으나, 1905년 11월 대한제국이 을사늑약으로 일제에 외교권을 빼앗기면서 공사관의 역할도 멈췄으며, 1910년 한일강제병합 직후에는 소유권마저 일제에 단돈 5달러에 넘겨지고 말았다.
이에 문화재청은 정부차원의 매입 필요성을 느끼고 문화유산국민신탁을 통해 전(前) 소유자(젠킨스 부부)와 협상해 2012년 10월 매매가 이루어지면서 일제에 공사관을 빼앗긴 지 102년 만에 다시 소유권을 되찾아왔다.
문화재청은 공사관 매입 이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지건길, 이하 ‘재단’)을 위탁관리자로 지정(2013.1.)해 정밀실측조사를 마쳤고(2013.11.), 국내외 각종 문헌과 사진자료 등을 바탕으로 보수·복원 공사를 하여 지난 3월 12일 최종 준공하였다.
공사관은 조선 후기 동북아시아의 구질서를 극복하고, 더 큰 외교적 지평을 열고자 했던 고종의 자강․자주외교 정신을 상징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현존하는 대한제국 외교공관을 통틀어 유일하게 원형을 간직한 단독건물이란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도 매우 크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워싱턴 D.C. 안에 있던 19세기 외교공관 30여개 가운데 내외부의 원형이 남아 있는 유일한 건물로 확인되어, 미국의 외교사적 측면에서도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대본 정보 -------------------------------------------------------------------------------------------------------
VIDEO A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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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의 벽. 소원지 타이트 저마다의 희망을 담은 조각들로 완성된
한 장의 그림,
그 속에 우리의 역사가 있습니다.
# 공사관 테잎커팅식

# 박혜선(박정양 공사 손녀) 인터뷰

# 공사관 외관 Na/ 누군가는 잃어버린 역사라 말한 대한제국.
113년의 세월을 넘어
잊혀졌던 우리의 역사가 다시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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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다시 찾은 주미대한제국공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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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 타이트
# 고종 f.s Na/ 19세기, 열강들에 둘러싸인 조선은
그야말로 바람 앞에 등불 같았습니다.
청나라와 러시아, 일본은 물론
서구 열강까지...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는 외세의 간섭 속에
고종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덕수궁 타이트 Na/ 고종은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했습니다.
쇠락하는 조선이 아닌
제국의 새 역사를 꿈꿨습니다.

#강신일/ 고종이 꿈꾸던 당당한 대한제국의 모습.
잊혀졌던 우리의 역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과연, 무슨 사연이 담겨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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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사관 외경
# 공사관 f.s Na/ 화창한 햇살을 가득 품은 고풍스런 건물,
이곳이 바로
옛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건물입니다.

# 공사관 도로 보이는 Na/ (미국 워싱턴시 로건서클 15번지.
이것이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의 주소입니다.)

# 안내판 Na/ 공사관 건물이 위치한 로건서클 일대는
워싱턴시가 역사보존지구로 지정한
유서 깊은 지역입니다.

# 미국국기 후 거리 f.s Na/ 백악관에서 1.5km 떨어진 로건서클은
지도 CG 정치·외교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는데요.
이것을 증명하듯,
19세기 당시 이곳과 듀퐁서클 주변에는
무려 32개 나라의 외국 공사관이 있었습니다.

# 프리젠터 걸어가는 Na/ 1887년, 고종은 왜
1만Km 이상 떨어진 이 머나먼 타국까지
공사를 보냈던 걸까요.

# 한종수 차장 인터뷰/
조선후기로 갈수록 일본이라든지 러시아, 중국 이런 주변의 열강들의 많은 간섭과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외교의 다변화를 위해서 특히나 미국이란 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고 뿐만 아니라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고종께서는 미국과 수교를 원하셨고 그 결과로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 고종 화면 Na/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5년 뒤인 1887년.
고종은 박정양을 초대주미전권공사에
임명합니다.
그리고 공사관원으로는
참찬관에 이완용을, 서기관에는 이하영,
번역관에는 이채연 등
총 11명을 임명하고 미국으로 파견했습니다.

# 강신일/이것은 자주 외교를 위해 고종이 내린 중대한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청은 이를 반대하며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이름하여, 영약삼단이라는 것입니다.

# 프리젠터 화면 옆으로 영약삼단 자막 in
영약삼단
1. 조선공사는 미 국무성에 갈 때 청 공사와 함께 갈 것
2. 조선 공사는 연회에서 청 공사 뒤에 앉을 것
3. 조선 공사는 주요 외교사항이 있으면 먼저 청 공사와 의논해 지시를 따를 것
-박정양의 문집 ‘죽천고’

# 자막 in Na/ 당시 청은 조선을 자신의 속국으로 여기며
조선의 내정은 물론 외교 활동까지
간섭하고 있었습니다.

# 조선 공사관원 일러스트 Na/ 그러나 박정양 일행은 이런 청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직접 클리블랜드 대통령을 만나
고종의 국서를 전달하는데요.
이것은 조선이 자주국임을 알리는
공사관원의 첫 활동이었습니다.

# 고종 걸어가는 모습 Na/ 미국에 공사를 파견한 고종은
자주독립국의 위상과 적극적인 외교를 위해
상주 공사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데요.

# 계약서 CG Na/ 그 결과 1891년에,
당시로서는 거금인 2만5천달러를 들여
공사관 건물을 매입했습니다.

# 공사관 흑백 외경사진 Na/ 이렇게 해서 이역만리 타국에 공식적인
조선의 공간이 생기게 됐습니다.

# 내부 동영상 Na/ 지하1층 지상3층으로 꾸며진 공사관 건물.
1층과 2층은 방문객을 위한 공간과
사무공간이,
지하와 3층은 공사관원들의 생활공간이
자리했습니다.

# 실내 소품 Na/ 공사관 실내는 조선의 특색과 문화를
보여주는 한국적인 소품으로 채워졌는데요.
특히, 곳곳에 태극문양을 두어
조선이 청의 속국이 아닌 자주국임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 샹들리에 포커스 Na/ 공사관원들은 이곳에서 화려한 파티를
# 기사 자료화면 주최하는 등 자주 외교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였는데요.
당시 미국 신문기사를 통해서도 공사관원들의
외교활동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1893년에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시카고 박람회에 참가해
서방세계에 조선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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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사관 외경 Na/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머나먼 동양의
작은 나라, 조선과 대한제국의 존재를 알리며
당당히 세계무대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 일본순사 얘기하는 Na/ 그러나 1910년 한일강제병합 직전,
일본은 공사관 건물을
단돈 5달러에 사들였는데요.
형식만 매매일 뿐 실상은
강제로 빼앗은 것이었습니다.

# 공사관 옛 사진 Na/ 그리고 한일강제병합 직후
한 미국인에게 장부가격 10달러,
실거래가 1만 달러에 공사관을
팔아넘겼습니다.


# 공사관 사진들 Na/ 그 후 군인 휴양시설과
화물운수 노조사무실 등을 거치며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 블랙 화면에 1982 Na/ 그러던 1982년.

#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 공연 Na/ 한미수교 100주년을 맞아 교민들과
역사학자, 언론인 등에 의해
사라졌던 건물의 흔적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 회의하는 Na/ 1997년 재미교포들의 모금운동을 시작으로
공사관을 되찾기 위한 각계각층의 노력이
십여 년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빼앗긴지 102년 만인
2012년 10월 18일!!
마침내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 지건길 이사장 인터뷰/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외교?? 주변 개발이 되면서 대부분의 다른 나라 공관들은 다 없어지고 우리 공사관이 거의 유일하다시피 남아있는 흔적?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도 상당한 상징성이 있고 미국으로 봐서도 재외공관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물이었기 때문에 한미 양국이 외교 관계를 갖다가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그런 상징적인 건물로 우리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이정표
# 외경 f.s

# 문 열리면 들어가는 내부 Na/ 오랜 시간 가정집으로 쓰였던 이 건물을
19세기의 모습으로 되돌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는데요.

# 회의하는 모습 Na/ 각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오래된 사진과 작은 기록 하나까지도 꼼꼼히
살펴야했습니다.

# 컴퓨터 작업하는 Na/ 그렇게 찾아낸 옛 문헌에 3D기술을 접목해서
19세기 대한제국공사관의 옛 모습을
재현해냈습니다.

# 한종수 차장 인터뷰/
1층에 객당과 식당의 사진 두 컷이 있었고 외부 사진이 한 컷이 있었습니다 총 3컷이 있었는데 1층은 이 사진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복원하면 됩니다 그러나 2,3층이 어떤 방이 어떤 용도로 사용됐는지를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2,3층 복원의 근거들을 찾다보니까 1900년도에 이 공사관이 노후가 되다 보니까 현지 업체에 수리 견적서를 받아봅니다 그래서 아마 수리업체가 각 방마다 수리해야할 공간들을 방을 명명하고 2층에 라이브러리가 있었고 오피스가 있었고 베드룸이 있었고 이런 부분들은 저희들이 확인할 수 있었고요. 1900년 이후에 객당에 소파가 몇 개가 있고 액자가 몇 개가 있고 이런 부분들을 구체적인 물품명세서를 본국에 보고했던 기록을 찾았습니다. 그런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1,2층은 재현공간으로 3층은 전시공간으로 복원완료할 수 있는 기초적인 근거가 됐습니다.

# 수리작업하는 Na/ 자, 그럼~
새롭게 단장한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만나볼까요?

# 문 열리고 내부 들어서면 Na/ 1층 입구 왼쪽에는 외부손님을 맞이하는
객당이 있고 그 맞은편으로는 식당이
위치했는데요.
이곳에서 우리 공사관원들은 각국의 인사들과
만찬을 즐기며 외교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식당을 나서서 가장 안쪽이
고종의 어진을 모신 정당입니다.

# 2층 올라가는 Na/ 2층은 공사의 사적인 공간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공사의 집무실과 공사관원 사무소
그리고 침실이 있습니다.
1층과 마찬가지로 당시 미국에서 유행했던
빅토리안 양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 3층 올라가는 Na/ 3층은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재개관을 준비하며
새롭게 꾸며진 곳인데요.
한미외교의 시작과 공사관 개설 및 활동
그리고 재매입과 복원과정 등
공사관의 어제와 오늘을 알리기 위한
전시실로 만들어졌습니다.

# 최지혜 고증자문 인터뷰/
기준 사료가 되는 1893년도의 사진을 바탕으로 해서 그것을 가깝게 되살리는 것이 중요했는데요. 사진이 흑백이다보니까 지금 재현을 할 때 어떤 색감으로 어떤 방식으로 재현을 할지가 가장 큰 관건이었는데 다행히도 그 당시의 지역신문 기자가 공사관을 방문해서 상세하게 묘사를 한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객당에 들어왔더니 아주 밝은 색의 녹색 벽지에다가 브라운색의 커튼이 있었다. 이런 묘사가 등장을 하는데요. 그런 것을 토대로 비록 흑백사진이지만 명암이라든지 그런 느낌을 살려가면서 1890년대 당대의 미국 인테리어 양식을 참고를 해서 저희가 그 색감을 되살릴 수가 있었습니다.

# 강신일/100년이 넘는 시간을 거치며
모두의 기억 속에서 흐려져 간 주미대한제국공사관.
하지만, 우리는
자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먼 타국에까지 전했던
우리 선조들의 당당함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그날을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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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하는 흑인여성 Na/ 2018년 5월 22일.
조용했던 로건서클이 활기로 넘칩니다.

# 풍물놀이 아이들 Na/ 미국 땅에 울려 퍼지는
신명나는 한국의 소리에
너나할 것 없이 흥겨운 모습인데요.

# 서있는 사람들 Na/ 오늘은 미국과의 첫 외교관계를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13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또한, 고종이 자주외교를 위해
초대공사를 파견한지
130년이 되는 해입니다.


# 희망의 벽/테잎 컷팅 Na/ 130년 전 조선이 자주국임을 알리기 위해
공사를 파견하고 공사관을 두었던 그곳에
다시 모인 사람들.
얼굴 가득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 이상구(이상재 공관원 증손) INT

# 공사관 흑백 사진 Na/ 자주외교의 상징이자 한미 외교의 요람이었던 대한제국 공사관.
당당한 자주 국가를 염원했던
고종의 꿈이 담겨있던 이곳에 113년 만에
다시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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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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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보 Na/ 누군가는 짧은 역사를 가진 나라라고 했고,
누군가는 잃어버린 역사라고 말한 대한제국.

100년의 시간을 넘어 찬란했던
자주국의 역사를 우리는 다시 마주하고
있습니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의 개관은
지난 100년의 역사를 넘어
또 다른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