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이미지 및 저작권 정보(N2L)
대표이미지 | 저작권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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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 국가유산진흥원 | ||
전자자원소장처 | 한국문화재재단 | ||
공공누리 저작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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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L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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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파일 및 자원정보(N2R)
번호 | 파일명 | 파일크기 | 다운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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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문화유산 빅프로젝트_2편_익산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 그 20년의 여정_CHF_1920X1080.mp4 | 322.80 M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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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N2C)
UCI | I801:1803003-003-V000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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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 그 20년의 여정 | ||||||||||||||
콘텐츠 유형 | 동영상 | 언어정보 | 국문 | ||||||||||||
생산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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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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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키워드 | ;;익산 미륵사지 석탑;사리장엄구;백제 무왕;익산 미륵사지;석탑;보수 | ||||||||||||||
내용 |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지난 20년간의 작업 끝에 수리를 마친 모습과 조사연구 성과를 공개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은 1998년 전라북도에서 구조안전진단을 한 결과 콘크리트가 노후화되고,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는 판단에 따라 1999년 문화재위원회에서 해체·수리하기로 결정된 바 있다. 미륵사지 석탑은 추정 복원을 지양하여 지난해 12월 원래 남아있었던 6층까지 수리를 완료하였다.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는 단일 문화재로는 최장기간 동안 체계적인 수리를 진행한 사례이다. 특히, 국제적 기준에 따라 학술조사와 해체·수리 과정을 충실히 이행하였다는 점에서 석조문화재 수리의 선도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원래의 부재를 최대한 재사용하여 문화재의 진정성을 확보하고 과학적 연구를 통해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1,400년의 세월을 딛고 복원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통해 화려했던 백제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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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정보 | >사리장엄구 나레이션 > 백제 금속 공예와 화려한 미술양식을 보여주는 사리장엄구. 전체적으로 선의 흐름이 유려하고 생동감이 뛰어난 문양으로 세련된 멋이 느껴집니다. 사리장엄구는 익산 미륵사지 서쪽 석탑의 심주석 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석탑 가장 깊은 곳에 간직했던 사리장엄구. 과연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요? >멀리 미륵사지 석탑이 보이고 강신일 > 중생을 구제하는 미래 부처, 미륵불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랐던 사람들. 백제의 무왕은 미륵 신앙을 품고 이상 세계를 꿈꿨습니다. 그리고 수도인 사비성이 아닌 그의 고향 익산에 최대 사찰 미륵사를 세우게 되는데요. 무왕이 꿈꾸었던 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요. 미륵사에 숨겨진 이야기가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타이틀 자막 >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 그 20년의 여정 <장소고지> 익산 미륵사지 / 사적 제150호 나레이션 > 동서로 약 260m, 남북으로 약 640m에 이르는 미륵사지는 넓이가 5만 평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절터입니다. 길을 가던 중 미륵성전을 만나게 된 백제 무왕 부부. #1. 익산 미륵사지(사적 제150호) 마한(馬韓)의 옛 도읍지로 추정되기도 하는 한국 최대의 사찰지로 국보 제11호인 동양 최대 석탑인 미륵사지 서석탑과 보물 제236호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나레이션 > 왕후의 부탁으로 미륵불상을 모실 사찰을 짓고 미륵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발굴된 절터 중 최대 규모인 미륵사지는 규모 뿐만 아니라 건물의 배치와 구조면에서도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인터뷰> 배병선 실장 / 국립문화재연구소 백제의 사찰들은 대부분 탑이 하나 있고 금당이 하나 있는 1탑 1금당식이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사비시대의 특징적인 가람 형식이라 볼 수 있는데 미륵사지는 이와 다릅니다 탑과 금당이 있는 가람이 세 개가 모여서 되었기 떄문에 3탑 3금당 형식이라는 독특한 구조가 만들어졌던 거죠 특히 탑들이 중앙에 있는 절에서는 목탑이 9층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동쪽에 있는 동원에서는 석탑이 그리고 서원에서도 석탑이 세워져서 목탑과 석탑이 어우러져 있는 독특한 형태라고 하는 것이 미륵사지의 구조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소고지> 익산 미륵사지 석탑 / 국보 제11호 나레이션 > 위풍당당했던 미륵사는 백제의 몰락과 함께 사라져갔고 그나마 남은 석탑 역시 세월의 풍파 속에 화려하고 웅장했던 모습을 잃어갔습니다. #2.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세 개의 탑 중 서쪽에 위치한 탑으로 우리나라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창건시기가 명확하게 밝혀진 석탑 중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된 것이다 나레이션 > 그 후 오랜시간 방치되어있던 미륵사지 석탑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1910년. 일본에 의해 석탑과 주변 석재에 대한 주변 조사를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인터뷰> 배병선 실장 /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총독부의 조사에도 당시에 무너지기 전에 석탑을 실측했던 도면들이 있고요 그리고 조사했던 조사 보고서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당시에 이 사람들이 당시 미륵사 석탑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던가를 볼 수가 있고 이것을 그냥 뒀다가는 쓰러지게 생겼으니까 당시에는 최신 기술인 콘크리트로 무너지지 않게 뒤를 보강했던 거죠 #3. 1910년경 미륵사지 석탑 (조선고적도보) 나레이션 > 일제강점기인 1915년, 시멘트로 임시방편적인 보수를 해놓은 미륵사지 석탑은 그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오랜 시간 버텨오고 있었습니다. 찬란했던 백제의 문화를 되찾기 위해서는 온전한 미륵사지 석탑의 모습을 찾는 것이 우선되어야 했는데요. 하지만 일본인들이 임시로 보수한 미륵사지 석탑의 본래 모습을 찾는 일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4. 해체전 미륵사지 석탑 (동측) #5. 해체전 미륵사지 석탑 (북측) #6. 해체전 미륵사지 석탑 (서측) <인터뷰> 김현용 학예연구사 / 국립문화재연구소 미륵사 석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특히 1300년 이상 되면서 원래의 부재들이 많이 풍화되고 깨진 상태였기 때문에 이것들을 다시 살리는데 기술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미륵사지 석탑은 9층 설, 7층 설들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조사 과정에서 확인해본 바로는 7층 이상을 확신할 수 있는 사실적인 근거들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6층, 즉 남아 있던 부분까지만 수리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이런 것들은 추정에 의한 복원을 지양해야 한다는 국제적인 기준과도 부합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나레이션 > 미륵사지 석탑 살리기는 1998년부터 본격화 되었습니다. #7.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 주요 경과 1998~1999년 구조안전진단, 석탑 해체수리 결정 2000~2001년 가설덧집 설치, 사업단 구성, 고유제 2002~2010년 해체 및 발굴, 사리장엄구 수습 2011~2012년 석탑 보수설계, 수습유물 분석조사 2013~2014년 석탑 보수공사 착수, 기초보강, 보존처리 2015~2017년 석탑 조립, 사리 봉안, 보존처리 나레이션 > 전라북도에서 실시한 안전진단 결과, 문제점이 드러났고 1999년에 문화재위원회가 석탑의 해체 수리 결정을 내렸습니다. #8. 미륵사지 석탑 해체 조사 나레이션 > 먼저 일일이 석재를 걷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했습니다. 그러나 덧발라놓은 시멘트를 벗기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는데요. 일제가 발라놓은 시멘트 양만해도 185톤. 원석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치과에서 치석제거용으로 쓰는 도구까지 동원되었습니다. <인터뷰> 이재순 석장 / 국가무형문화재 제120호 우리 전통 공구인 돌을 깨는 정부터 시작해서 모든 공구를 다 사용했고 현대 공구 있잖아요 콘크리트가 너무 단단하다 보니까 치석이 붙어 있는 것처럼 원부재에 조금씩 남아 있는 것까지 다 제거를 하기 위해서 수작업으로 잘 안되는 부분들을 치과 공구까지 이용해서 공구를 현대적 공구와 전통적 공구까지 다양하게 많이 사용한거죠 #9. 해체 조사 / 10여 년간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본격적인 석탑 해체조사를 추진하여 석탑 외부부재 587개, 석축부재 853개, 적심부재 1,000 여 개를 수습하고 콘크리트는 총 185톤 해체하였다. 나레이션 > 국립문화재연구소 미륵사지 석탑 보수 정비단은 3년에 거쳐 콘크리트 전면을 세밀하게 벗겨내었고 마침내 185톤의 일제 잔재를 모두 씻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2,000개가 넘는 부재들을 수습하는데만 걸린 시간이 무려 10년이었습니다. 강신일 > 10년 간의 긴 해체 작업 중에 미륵사의 미스터리를 풀어줄 중요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석탑 1층의 첫 번째 심주석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인데요. 그동안 추정으로만 여겨지던 미륵사의 창건 배경이 드디어 밝혀졌습니다. #10. 사리장엄 최초 출토 모습 나레이션 > 해체 작업이 한창이던 2009년, 석탑의 가장 안쪽에 모셔진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는데요. 함께 발견된 금제사리봉영기에는 미륵사 창건 배경과 발원자, 석탑 건립 시기 등이 적혀있었습니다. #11. 금제 사리봉영기 미륵사 창건 목적과 발원자, 석탑 건립 연대 등을 새긴 기록으로 글자를 음각한 뒤 주사를 입혔다 앞쪽에 99자, 뒤쪽에 94자 모두 193자가 새겨져 있다 <인터뷰> 김현용 학예연구사 / 국립문화재연구소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구는 2009년 1월, 1층 내부의 심주석에서 발견이 되었는데요 그중에 금제사리봉영기라는 금판 내용을 보면 639년 정월 1월 29일 사리를 모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다른 내용들은 백제 왕후가 발원을 해서 이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내용들이 확인됐습니다 나레이션 > 목탑처럼 석재 1,600여 개를 짜맞춰 완성한 미륵사지 석탑. #12. 석탑조립 / 초반석 설치, 판축다짐 나레이션 > 일부 석재는 나무판처럼 얇고 넓어서 조립하는데 정교하고 세밀한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13. 석탑조립 / 1층 상옥개받침석 조립 #14. 석탑조립 / 2층 탑신받침부 조립 나레이션 > 단순히 돌을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옛날 선조들이 쌓았던 길을 되짚어가는 과정이었는데요. #15. 석탑조립 / 토층현황 3D 스캔 조사, 탑신받침부 조립 나레이션 > 미래에 출현할 미륵불을 기다리고 융성한 백제를 만들고자하는 염원으로 돌을 고르고 다듬고 쌓아올렸을 1,400년 전의 백제인의 마음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습니다. #16. 석탑조립 / 옥개석 조립, 조립완성 나레이션 > 이번 보수작업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17. 기술적 성과 / 흙의 재료적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무기질재료 개발, 생물 침해도 및 처리제 연구, 파손부재 구조보강, 유실부 성형 및 접합 등 실험연구를 통한 보강·접합 등 보존기술 개발 나레이션 > 기존 문화재 보수가 단순히 옛 것을 따르는 것에 만족했다면 미륵사지 석탑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나온 결과를 현장에 보완했다는 점입니다. <인터뷰> 배병선 실장 / 국립문화재연구소 새로운 수리방법 특히 신석재와 구부재를 결합해서 힘을 받도록 하는 구조 접합 기술이라든지 또는 구부재 사이에 힘을 균등하게 분포 시킬 수 있는 무기질 재료의 특허라든지 이런 것들이 새로운 특허 기술이 5개가 만들어졌어요 또는 구부재 사이에 힘을 균등하게 분포 시킬 수 있는 무기질 재료의 특허라든지 이런 것들이 새로운 특허 기술이 5개가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이러한 조사연구를 한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수리기술까지 저희가 개발을 한 것이기 때문에 저희들이 미륵사 석탑을 20년 동안 수리하고 나서 국제적인 수준으로 저희들의 기술 수준이 올라갔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8. 기술적 성과 / 구조보강 등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보존처리를 통하여 미륵사지 석탑 원부재의 재사용 비율을 40%대에서 80%대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나레이션 > 이런 과정을 통해 기존 부재의 재활용률을 47%에서 81%로 높혔습니다. 뿐만 아니라 추정에 의한 과도한 복원을 하지 않고 철저히 사실에 근거한 보수 원칙을 따라 6층까지 부분 보수했는데요. #19. 유네스코등재 실사단 방문 나레이션 > 진정성 있는 문화재 보수로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등재 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강신일 > 20년 간 이어졌던 미륵사지 서쪽 석탑의 해체 보수 작업은 단일 문화재로는 최장 기간이었습니다. 1,400년의 세월 속에 금이 가고 깨지고 부서져서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었던 석탑. 미륵사지 서쪽 석탑은 이제 백제의 화려함을 품고 다시 우뚝 섰습니다. 나레이션 > 시간 속에 갇혀 빛을 잃어가던 백제의 문화. 1,400년의 세월을 거슬러 다시 찬란하게 빛나는 미륵사지 서쪽 석탑. 무왕의 꿈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