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이미지 및 저작권 정보(N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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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N2C)
UCI | I801:1806001-001-V000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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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한반도의 고인돌 선사시대의 타임캡슐 | ||||||||||||||||||
콘텐츠 유형 | 동영상 | 언어정보 | 국문 | ||||||||||||||||
생산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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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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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키워드 | ;;고인돌;선사시대;청동기시대;간돌검;반달돌칼;청동검 | ||||||||||||||||||
내용 | 세계유산 한반도의 고인돌은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어른들의 가까이 있는 생활의 도구이자, 편안한 휴식처였고 아이들에겐 그저 친근한 놀이터였다. 하지만 이 돌은 크고 강하고 오래 살아남을 존재로 선택될 선사시대 사람들의 메세지를 담은 타입캡슐이다. 바로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 선사시대의 비밀을 밝혀줄 열쇠인거다. 고창과 화순 그리고 강화의 고인돌들은 세계의 어떤 다른 유적보다도 선사시대의 기술과 사회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연 고인돌이란 무엇일까? 고인돌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찾아 함께 떠나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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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정보 | 자막> 벨기에 사진작가 세바스티안 슈티제의 사진 작은 돌 위에 커다란 돌을 얹은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비와 바람을 견뎌낸 돌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 정체를 알지 못했던 신비의 돌 나레이션> 이 돌은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어른들의 가까이 있는 생활의 도구이자, 편안한 휴식처였고 아이들에겐 그저 친근한 놀이터였습니다. 하지만 이 돌은 크고 강하고 오래 살아남을 존재로 선택될 선사시대 사람들의 메세지를 담은 타입캡슐입니다.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 선사시대의 비밀을 밝혀줄 열쇠인거죠. 바로 세계유산 한반도의 고인돌입니다. 자막> 선사시대의 비밀을 밝혀줄 열쇠 한반도의 고인돌 선사시대의 타임캡슐 전라북도 고창군 죽림리 나레이션> 우리나라는 고인돌 왕국이라고 불립니다. 남북한의 고인돌을 합하면 약 4만개에 달하는데요. 숫자만 많은게 아니라 다양성과 밀집도 측면에서도 세계적으로 손꼽힙니다. 자막> 고창 고인돌유적 나레이션> 그 중에서도 전북 고창군 죽림리 일대는 좁은 범위 안에 450여개의 고인돌이 모여있는 특별한 곳입니다. 나레이션> 이게 다 고인돌이랍니다. 마치 고인돌 전시장같군요. 근데 이 울타리만 없다면 얼핏 보기에 어느 것이 고인돌이고 어느 것이 그냥 바윗덩어리인지 구분하기 매우 힘든 것도 있습니다. 자막> 이순재 과연 고인돌이란 무엇일까요? 자막> 군장 고인돌 나레이션> 고인돌은 말 그대로 고여있는 돌이란 뜻입니다. 자막> 고인돌 - 고여 있는 돌 나레이션> 커다란 덮개돌을 받침돌로 고인 돌은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인 선사시대에 세워졌는데요. 무덤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탁자 모양처럼 생긴 고인돌 외에도 다양한 모습의 고인돌이 있습니다. 고인돌은 형태에 따라 크게 3종류로 나눠지는데요. 고인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땅 속 구조까지 파악해야합니다. 자막> 탁자식 고인돌 나레이션> 먼저 탁자식 고인돌은 판자형 받침대를 3매를 땅 위에 새워 돌방을 만들어 덮개돌을 얹은 후 그 안에 주검을 넣은 것입니다. 자막> 바둑판식 고인돌 나레이션> 바둑판식 고인돌은 땅 아래 판석을 세우거나 깬 돌을 쌓아 무덤방을 만들어 주검을 묻고 땅위에는 낮은 받침돌을 놓은 상태에서 거대한 덮개돌을 얹어 만들었습니다. 자막> 개석식 고인돌 나레이션> 이에 반해 바둑판식 고인돌과 비슷하지만 받침돌 없이 덮개돌만 얹은 것이 개석식 고인돌입니다. 자막> 고창 고인돌 유적 이순재 나레이션> 이 울타리 안에 있는 고인돌이 마치 목장에서 평화롭게 쉬고있는 양떼들처럼 느껴집니다. 아주 오랜 세월동안 이 땅에서 묵묵히 이 자리를 지켜왔겠죠. 그렇다면 한반도의 고인돌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자막> 전라남도 화순군 효산리 나레이션> 그 해답의 열쇠를 찾을 수 있는 곳이 전람 화순에 고인돌 유적지입니다. 지난 1995년 발견된 이 고인돌군은 효산리에서 대신리를 잇는 보검재 계곡일대 반경 5km 안에 무려 600여개가 모여 있습니다. 자막> 대신리 발굴지 보호각 나레이션> 그 중 대신리에는 1999년 조사한 고인돌의 무덤방들이 발굴 당시 모습대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고인돌의 하부구조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발굴지에는 다양한 모습의 무덤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곳의 무덤방에선 불에 탄 나무조각이 수습되기 했는데요. 방사선 탄소연대측정결과 기원전 555년으로 나왔습니다. 즉,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전 청동기 시대의 것이지요. 자막> 무덤방이 없는 고인돌 나레이션> 그런데 이 곳의 고인돌 중에는 받침돌만 있을 뿐 그 아래 무덤방이 아예 없는 것도 있습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요? 잘 알려져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고인돌 중 무덤이 아닌 것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핑매바위 고인돌입니다. 어이구 이거 정말 엄청납니다. 자막> 핑매바위 길이 7.2M X 높이 4.5M X 폭 5M 이 고인돌 길이가 7미터가 넘고요. 그리고 높이도 4.5미터 그리고 무게는 무려 200톤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나게 큰 규모의 돌을 잘 다음어서 만들어진 이 핑매바위 고인돌은 공동체의 재단이나 마을의 경계석으로 상징적 기념물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중장비도 없었던 선사시대에 도대체 어떻게 이 엄청난 돌을 캐고 운반해서 이 거대한 고인돌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자막> 1992년 여흥 민씨 문종이 선산임을 표시하기 위해 새긴 것 나레이션> 고인돌 축조에 대한 고고학 자료는 극히 일부만 남아있기 때문에 현재로썬 몇가지 실마리를 근거로 추정하곤 합니다. 화순의 고인돌 근처에는 돌을 캐기쉬운 암벽이 많습니다. 자막> 각시바위 채석장 감태바위 고인돌군 감태바위 채석장 나레이션> 이곳은 고인돌의 덮개돌을 캐던 채석장인데요. 암벽을 자세히 보면 결을 따라 돌을 떼어내기 위해 판 구멍과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자막> 채석 과정 나레이션> 고인돌을 만든 사람들은 돌을 떼어낼 때 쐐기나 지렛대를 사용하기도 하고, 바위에 구멍을 판 후 나무 쐐기를 박고서 물을 부어 나무가 팽창하는 원리를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자막> 덮개돌 운반 나레이션> 이렇게 떼어낸 덮개돌을 바닥에 통나무를 레일처럼 깔고 그 위에 덮개돌을 올려 운반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자막> 탁자식 고인돌 축조 나레이션> 또 덮개돌을 받치돌 위에 얹을 때에는 세워진 받침돌 주위를 통나무나 흙 등으로 쌓아 등덕을 만든 후 통나무를 이용해 끌어올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덮개돌을 얹고나면 덮었던 흙 등을 파내 고인돌을 완성했겠죠. 그렇다면 고인돌을 만드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을까요? 자막> 인도네시아 숨바섬 나레이션> 이것을 가늠해볼 수 있는 귀중한 예가 있습니다. 자막> 사진제공 : 가종수 교수/일본 슈지츠 대학 나레이션> 놀랍게도 인도네시아 숨바섬에선 최근까지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고인돌을 만들었습니다. 지난 2008년 서숨바의 디키타 마을에서는 4톤 정도되는 덮개돌을 운반하는데 최대 400명이 참가했는데요. 도로 사정에 따라 불과 500미터를 끄는 데 약 7시간이 걸리기도 했고 이웃마을 사람들까지 합류했다니 그야말로 대단한 공력이 들었습니다. 숨바섬의 상황과 우리나라 고인돌 축조과정이 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 고인돌을 만드는 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극한 정성과 힘을 모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하면서 이 거대한 고인돌을 만들었을까요? 신석기 시대를 거쳐 청동기 시대로 들어서면서 한반도에서 본격적으로 벼농사가 시작되고, 대규모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점차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지배자와 지배를 받는 자 등 같은 계급이 생겨났죠.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우월한 지위를 확고히 하기위해 자신들의 선조를 신성화하고 그들이 가진 힘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마을을 지키고 세력을 키우기위해서는 공동체의 단합을 위한 의례도 중요해졌습니다. 마을사람들의 힘을 합쳐 고인돌을 만드는 것은 공동체 의식을 높히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죠. 이러한 이유로 만든게 바로 거대한 고인돌이었던 것입니다. 자막> 전라북도 고창군 도산리 고인돌 인천광역시 강화군 나레이션> 그렇다면 고인돌 속에서는 무엇이 나왔을까요? 그 해답을 찾아간 곳이 강화도입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에는 150여개의 고인돌이 있습니다. 강화의 고인돌은 대개 북쪽인 고려산 주변에 분포하는데 탁자식 고인돌이 많습니다. 지난 2000년 발굴 조사 후 복원된 오상리 고인돌도 모두 탁자식입니다. 자막> 오상리 고인돌군 나레이션> 일반적으로 고인돌에서는 그다지 많은 유물이 출토되지는 않습니다. 특히 탁자식 고인돌의 경우 무덤방이 땅위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서 막음돌이 훼손되어 부장품이 없어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곳 고인돌에서는 다양한 부장품이 출토되었는데요. 자막> 강화역사박물관 나레이션> 강화 역사 박물관에는 강화의 고인돌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간돌검과 돌 화살촉 같은 무기류에서부터 반달돌칼과 같은 농기구와 장신구로 쓰인 데로모 그리고 달도끼와 여러 종류의 다양한 토기조각과 같은 유물들을 통해 고인돌을 만든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짚어볼 것이 있는데요. 강화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다른 지역에 있는 고인돌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유물에는 간돌검이 있습니다. 자막> 간돌검 비파형 청동검 나레이션> 또 간혹 비파모양의 청동검이나 사람뼈 등이 나와 학계의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죠. 자막> 충청북도 제천시 황석리 고인돌에서 발견된 사람 뼈 사람 뼈 출토 모습. 충북 제천 황석리에서 나온 인골 모습. 강화 부근리 지석묘 나레이션> 강화의 고인돌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것은 뭐니뭐해도 강화 부근리 지석묘라 불리는 이 고인돌입니다. 자막> 지석묘(한자표기) 고여 있는 돌무덤이라는 뜻으로 고인돌의 한자식 표현 나레이션> 교과서에도 실린 이 고인돌은 규모도 클뿐만 아니라 세련된 조형미까지 갖춰 일찍부터 널리 알려졌습니다. 강화의 이러한 탁자식 고인돌은 북한 지역과 중국 요동반도 일대에서도 발견되고 있는데요. 때문에 동북아시아 지역을 하나의 고인돌 문화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수천년의 시간을 견뎌온 고인돌은 어쩌면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품고있는 뜻과 지혜가 온전히 이해되는 그 날을 말이죠. 자막>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 2000년 세계유산 등재 나레이션> 고창과 화순 그리고 강화의 고인돌들은 세계의 어떤 다른 유적보다도 선사시대의 기술과 사회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인돌 속에 담겨있는 과학과 기술, 문화의 수수께끼 중에는 아직도 풀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는데, 고인돌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이해하고 그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것은 우리의 뿌리를 찾는 과정이자 인류의 문명사를 다시 쓰는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