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진흥원 국가유산 콘텐츠 검색 서비스


대표 이미지 및 저작권 정보(N2L)

대표 이미지 및 저작권 정보
대표이미지 저작권정보
저작권자 국가유산진흥원
전자자원소장처 한국문화재재단
공공누리 저작권
CCL 정보
소스코드 <iframe width="1000px" height="480px" src="http://uci.k-heritage.tv/resolver/I801:1807001-001-V00005?t=3"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관련 파일 및 자원정보(N2R)

관련 파일 및 자원정보
번호 파일명 파일크기 다운로드
1 위대한 유산 시즌1_5편_CHF_1920X1080.mp4 507.83 MB 다운로드

콘텐츠 기본 정보(N2C)

콘텐츠 기본 정보
UCI I801:1807001-001-V00005
제목 위대한 유산 시즌1 - 5편 - 화순 고인돌 유적, 비봉리 신석기 배, 해남 공룡발자국 화석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국문
생산자 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생산일자
한국문화재재단 2014-12-31
기여자 정보
기여자 정보
역할 정보 기여자 명
제작사 SKY A&C
조연 이성현
기술 정보
기술 정보
기술 영역 기술 내용
기타정보
내용정보 사적 제312호 화순 운주사지, 사적 제410호 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지석묘군, 사적 제486호 창녕 비봉리 패총, 천연기념물 제394호 해남 우항리 공룡·익룡·새발자국화석 산지
역사정보 ,
인물정보 마고 할머니,
지리정보 전라남도 화순군,경상남도 창녕군,전라남도 해남군,
관련 키워드 ;위대한 유산;고인돌;화순 고인돌 유적;운주사;화석;비봉리 신석기 배;공룡;
내용 우리 전통유산의 아름다움을 쉽고 재밌게 소개하는 <위대한 유산>
우리나라 곳곳에서 살아 숨쉬는 문화유산들을 소개해본다.
- 7분다큐 '고인돌 왕국, 화순 고인돌 유적'
- 발굴스토리 '꿈에서 먼저 만난 유물 - 비봉리 신석기 배'
- 이미지문화유산 '태곳적 신비의 공룡을 만나다, 해남 공룡발자국 화석'
대본 정보 이성현 우리 전통유산의 아름다움을 쉽고 재밌게 소개하는 <위대한 유산>!
안녕하세요 이성현입니다.

오늘은 건축미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죠.
다양한 고대 건축물들을 만나보겠습니다.


먼저, 소개할 우리의 유산은 선사시대의 무덤 고인돌인데요
고인돌은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많이 발견되고 있지만,
특히 우리나라는 고인돌이 밀집된데다 보존상태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 2000년에는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는데요.
그 중 한 곳, 화순의 고인돌 밀집지역을 화면에 담았습니다.


전남 화순의 핑매바위.

자막> 핑매바위 고인돌 / 전남화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고인들이다. 핑매바위에는 마고 할머니의 전설이 전해진다.

마고할머니는 하늘에 닿을 만큼 키가 크고 산을 들어 올릴 만큼 힘이 센 거인이었는데 어느날 운주골에서 천불천탑을 쌓는다는 소문에 치마에 돌을 싸서 길을 나섰다.

자막> 운주사 / 전남화순

그런데 가는 도중 닭이 울어 탑을 다 쌓았다고 하자 화가 나 돌을 발로 차버렸다. 그 돌을 바로 핑매바위라 부른다고 한다.

핑매바위는 길이 7미터에 높이 4미터, 덮개돌의 무게가 무려 2백 톤이 넘는 거대한 규모의 고인돌이다.

3-4천 년 전의 돌무덤인 고인돌. 한반도는 고인돌의 왕국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고인돌이 남아있다.

자막> 타이틀 “고인돌왕국 - 화순 고인돌 유적”

고인돌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지금까지 남한에서 발견된 게 3만여 기, 북한 지역의 1만 여 기까지 합하면 전 세계 고인돌의 40%에 해당하는 고인돌이 한반도에 남아있다.

자막> 화순 고인돌 / 고창 고인돌 / 강화 고인돌

고인돌 유적의 보존 상태가 좋은 화순, 고창, 강화의 고인돌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언뜻 보면 바위덩이와 비슷해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고인돌. 3천 년 전의 무덤 양식인 고인돌이 한반도에 왜 이렇게 많이 있는 걸까.

화순의 보검재 계곡.

자막> 전남 화순 고인돌 유적지

이 계곡을 따라 고인돌 6백 여기가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것 없이 다양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자막> 핑매바위 고인돌

핑매바위와 같이 거대한 덮개돌을 가진 고인돌이 있는가 하면 작은 고인돌이 집단적으로 모여 있기도 한다.

고인돌은 지배자의 무덤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집단을 이룬 작은 고인돌들은 무엇일까.

자막> 관청바위 고인돌군

산 중턱에 자리한 관청바위 고인돌군. 보성 수령이 쉬고 있다가 한 백성이 민원을 올리자 이곳에서 잠시 관청 일을 봤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관청바위 고인돌군 주위에는 많은 고인돌이 열을 지어 분포한다. 화순 고인돌 유적지 중에서 가장 큰 무리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 많은 고인돌이 모두 지배자의 무덤이었을까.

고인돌이 만들어지던 청동기 시대는 촌락 공동체를 이루던 때였다. 고인돌이 무리를 지어 있는 것은 혈연을 기반으로 한 공동묘역으로 볼 수 있다. 당시 고인돌은 지배자 뿐 아니라 누구나 묻힐 수 있는 일반적인 무덤 양식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거대한 핑매바위 고인돌도 누군가의 무덤이었을까.

고인돌의 바닥을 보면 덮개돌 아랫면을 오목하게 인위적으로 깎고 경사진 아래쪽으로 고인돌을 촘촘히 배치해 덮개 돌의 무게를 지탱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핑매바위를 중심으로 보검재 방향으로는 더 이상 고인돌을 발견할 수 없다. 능선의 아래쪽으로만 고인돌이 밀집해 있다.

이처럼 규모가 크고 잘 다듬어진 고인돌이 높은 곳에 위치한 경우 무덤이라기보다는 제단으로서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본다. 여러 집단의 협동과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상징적인 기념물이었던 것이다.

청동기 시대, 돌은 신비력을 가진 것으로 신앙의 대상이었다. 돌무덤인 고인돌은 죽은 이의 혼령이 안식하는 곳이자 살아있는 사람을 보호하는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 거대한 핑매바위의 덮개돌은 어디에서 어떻게 구해온 것일까. 고인돌 무덤군 가까운 산기슭에 고인돌의 축조 과정을 보여주는 채석장이 자리하고 있다.

자막> 채석장

채석장에는 큰 돌들과 돌을 잘라낸 흔적들이 남아있다.

그런데 3천여 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장비도 없이 거대한 암석을 어떻게 잘라냈던 것일까. 그 비밀은 채석장에 남아있는 구멍을 팠던 흔적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돌을 이용해 구멍을 판 뒤 그 구멍에 마른 나무를 박고 계속 물을 부으면 나무가 팽창돼 돌이 잘리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3천 년 전에도 돌을 다루는 기술이 상당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청동기 시대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고인돌 문화.

그 문화의 흔적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이곳을 세계 고인돌 문화의 중심지로 주목받게 하고 있다.


(2)
이성현 고대 건축물에 담긴 기술과 섬세함을 마주하다 보면,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이 절로 나오게 되는데요.
이번에는 기원전 6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신석기 시대의 배를 만나보겠습니다.
이 배는 2003년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뒤 흔들던 당시에 침수된
경남 창녕군 비봉리 배수장에서 발견돼 화제가 되었는데요
한국에서는 최초로 발견되어 더욱 의미가 깊은 신석기 배.
그 발굴에 담긴 놀라운 이야기를 함께 만나보시죠.


#태풍 ‘매미’ NA>2003년 9월 12일.
(영상자료)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매미 이동경로 NA>남부지역을 지나,
-뉴스보도 영상 7시간만에 동해쪽으로 빠져나간 태풍의 위력은 대단했다.
낙동강과 인접한 경남 창녕군 비봉리 배수장
태풍때문에 이곳도 침수되었다.

#비봉리 유적 F.S NA>그러나, 이 태풍으로 인해
-발굴현장 사진 대한민국은 신석기시대의
-멧돼지 그림 귀중한 유산을 발굴하게 된다.
-배

경남 창녕군 비봉리에서 발견된 기원전 6천년 전의 신석기 배가 그것이다.

자막> 타이틀 “꿈에서 먼저 만나 본 유물 - 창녕 비봉리 신석기 배”


#태풍 매미관련 기사 NA>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규모는 우리나라 역대 최고의 기록이었다.
-이재민 발생 132명의 인명피해와
-재산피해액 전국적으로 4조 7,000여 억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경상도 남부지방 지도 NA>가장 타격이 심한 곳은
경상도 남부지방이었다.

#매미 이동경로CG NA>총 4천여 세대 1만여 명의 이재민 가운데
58%가 경남지역에서 발생했다.

#창녕 비봉리 유적 F.S NA> 경남 내륙에 속한 창녕군도 사정은 마찬가지.
태풍의 수마로 부터 비켜갈 수 가 없었다.

자막> 청도천

낙동강의 지류인 청도천이 범람하면서 비봉리의 배수장이 그만 침수가 되어버린 것.

태풍이 물러간 후 창녕군은 배수장 복구에 나섰다.

하지만 공사 도중, 뜻밖에 일이 생겼다.
내륙지방인 이곳에서 대량의 조개무지가 드러난 것이다.
이곳에서 왜 선사시대 유물인 조개가 나올까
조개를 발견한 사람들은 놀라움에 빠졌다.
하지만 그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 자막, 음성 #발굴자 임학종 (당시 발굴현장 총 책임자/현 진주박물관 학예실장) # 인터뷰

Q.창녕 비봉리 유적의 발굴 계기는 무엇 때문인가요?
A. 창녕에서 이상하게 공사를 하는데 조개 무덤이 나왔다고 해서 현장을 가 봤더니
나뭇가지가 나오고 바다 조개가 섞여 있고 그리고 거기에 빗살무늬 토기가 같이 나오니까
이것은 분명히 조개무지가 맞죠. 그러니까 유적이 되는 거죠

바로 발굴단이 꾸려졌다.
그리고 마침내 수천년 동안 잠들어있던 유물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풀과 나무, 열매와 씨앗, 동물 뼈 등의 유기물질이 다량으로 출토된 것.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도토리였다.
옛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지닌 도토리는 우리나라 발굴 사에 있어서 최초이자 최고의 유물이다.


# 자막, 음성 # 이정근 / 비봉리 패총 발굴 당시 발굴단원
A. 굉장히 경이로웠습니다. 토기나 석기 같은 일반 유물들은 수철 년 지나서도 확인이 되지만
도토리 같은 것은 쉽게 썩지 않습니까?
그런데 처음 발굴했을 때 흙에서 딱 드러난 모습은 지난해 가을에 떨어진 도토리를 보는 듯 그렇게 생생한 형태를 보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도토리 같은 유기물들이 잘 남아 있다면 유물도 정말 잘 남아 있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예상은 적중했다.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솔방울. 포도와 비슷한 나무열매인 가래.
망태기가 발견되었다. 음식을 담거나 물건을 담기위해 쓰였을 망태기의 발굴 역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신석기 시대 선사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생활 유물이 계속해서 발견되었다.
동물그림이 그려진 토기조각도 나왔다.
멧돼지 모습이 음각돼있는 이 그림은 울산 반구대 암각화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
사람의 배설물이 화석처럼 굳어 생긴 분석.
이것도 우리나라 고고학사에 있어 처음이자 최고의 유물이다.
최초의 저습지 유적을 확인한 발굴 성과는 놀라운 것들이었다.
생활유물을 물론 다양한 유물까지 나오자 발굴단의 기대와 욕심은 더욱 커져갔다.

# 자막, 음성 #발굴자 임학종 / 비봉리 패총 발굴 당시 발굴단장 #인터뷰
A. 동삼동 패총 1969, 70, 71년 국립박물관 발굴한 조사 경위에서 배 모양 토기가 나왔습니다.
조그마한 미니어처로 만들어진 것인데
그것을 보는 순간 우리나라 신석기 유적에서 배를 찾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죠.

기대한 유물은 바로 배였다.
한반도에서는 아직 한번도 발견되지 않은 선사시대의 배
일본에서는 이미 조몬시대의 나무 배 100여척이 발견되었다는 학계의 보고가 나와있었다.
그러나 고대하던 성과는 없었다. 무더운 여름에 접어들자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무더위와의 전쟁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발굴현장의 책임자인 임학종씨는 집에 돌아와 늦은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이상한 경험을 했다. 그것은 바로 꿈이었다.
꿈에서 본 모습은 또렷했다.
그 다음날에도 잊지 않고 그려볼 수 있을 정도였다.

# 자막, 음성 #발굴자 임학종
꿈에 이상하게 십자가 하나가 보이더라고요
그 십자가에 걸쳐서 무슨 끈이 하나 놓여 있는데 이렇게 꼬여 있었어요
이 끈을 타고 쭉 갔더니 여기에 배가 한 척이 있더라.

자막> 2005년 6월 24일

그날도 어김없이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다.
오전 작업을 끝낸 후 오후가 됐을 때였다.

# 자막, 음성 #발굴자 임학종 / 비봉리 패총 발굴 당시 발굴단장 #인터뷰
A. 하필이면 그날 제2피트를 발굴하던 송영진이라는 연구원이 오후에 집에 무슨 일이 생겼었어요.
그래서 오후 3시 넘어서 집에 급한 일이 있어 좀 다녀오겠다고 해서 제가 그 구덩이에 투입된 겁니다

오후 3시 무렵. 작업을 하고 있는 임학종씨의 손에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
조금씩 흙이 드러나자, 평면을 가진 단단한 그 무엇이 있었다.
마침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나무조각.
그것은 단순한 나무조각이 아니었다.
혹시 어제 밤 꿈속에서 본 배는 아닐까
작업을 하는 손길이 조금씩 떨리고 마음은 긴장됐다.
그리고 마침내 두 눈으로 확인하는 그 실체
길이 310cm 너비60cm 규모의 소나무로 만든 통나무 배.
한반도에서 봤던 고대 선사인의 뛰어난 선박기술과 해양문명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다.

# 자막, 음성 #발굴자 임학종 / 비봉리 패총 발굴 당시 발굴단장 #인터뷰
A. 안압지에서 나온 통일신라의 배도 그렇고
기껏해야 기원후 800년쯤 돼서 나온 배가 가장 오래된 배였는데
기원전 5000~6000년이 넘어가는 배가 나오니까 우리나라 선박의 역사가 6000년 이상 더 올라가게 된 거죠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였다.
이제 겨우 발굴만 했을 뿐. 다음은 수습을 해야할 차례
그런데 장마가 문제였다.
저지대의 습지지역인 비봉리
이곳에 조금이라도 비가 내리면 유적지가 금방 물에 잠길 것이 뻔했다.
발굴단은 배의 수습을 뒤로 미루고, 배를 다시 흙으로 덮어 버렸다.
물과의 사투 끝에, 마침내 공개된 배.
언론의 관심과 반응은 뜨거웠다.

비봉리 배는 신석기 시대 생활사는 물론,
우리나라 고 선박 연구에 있어 획기적인 자료가 되어주고 있다.

자막> 자료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엄청난 세월을 건너뛴 최고의 유물
비봉리 신석기 배
바다와 육지가 만나던 신석기 시대 비봉리의 자연환경을 추측할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유물이다.


(3)
이성현 우리 문화유산의 감동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전하는
<이미지 문화유산> 순서입니다.

오늘은 약 5km에 걸쳐 공룡 발자국이 펼쳐진 해남 화석지대를 만나볼 텐데요.
이곳에는 공룡 발자국 부터 익룡류 발자국, 새 발자국까지 화석 수만도 2천여 점에 달하는 데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절지동물 보행흔적이 발견되어 천연기념물 제394호로 지정되기도 했는데요.
자연유산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을 함께 느껴보시죠.

자막> 타이틀 “태곳적 신비의 공룡을 만나다 - 해남 공룡발자국 화석”


자막> 전라남도 해남군
자막> 해남 우항리 공룡, 익룡, 새발자국화석 산지
(천연기념물 제394호)

자막> 이곳의 퇴적층은 중생대 백악기 지층으로 세계 최다, 최대의 공룡발자국이 남아있다.

자막> 공룡, 익룡, 새 발자국이 한 층에서 발견된 세계 유일의 화석지

자막> 이러한 화석들은 아직도 퇴적층 속에 대규모로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수는 상상하기 어렵다.

자막> 화석이 많이 발굴된 곳에 문화재 보호를 위해 보호각을 설치했다.

자막> 대형공룡 발자국 화석
네 발로 걷는 초식공룡의 앞발자국 형태로 평균크기 75cm 정도로 원에 가깝다

자막> 발견된 263개의 공룡발자국 대부분이 초식공룡이고 육식공룡 발자국의 수는 많지 않다

자막> 익룡류 발자국화석
443점의 세계 최다 익룡 발자국이 산출되었고 해남이크누스 우항리엔시스라는 학명을 가지고 있다

자막> 물갈퀴 달린 새 발자국 화석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물갈퀴 달린 새의 발자국으로 추정되며, 황산이패스조아이, 우항리크누스전아이라는 학명이 붙여졌다.

자막> 나무화석(탄화목)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탄화목으로 공룡이 살았던 시기에 이 근처에서 화산활동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자막> 초대형 공룡 발자국 화석
뒷발크기 88cm에 달하며 몸길이 20m가 넘는 고룡의 화석으로 추정된다.

자막> 땅끝마을 해남에서 8000만 년 전 공룡을 만나다


(Ending)
이성현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화순의 고인돌부터 신석기의 배까지.
놀라운 고대 건축물들을 만나봤는데요

유익한 시간 되셨나요?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한 <위대한 유산>
다음 이 시간도 저와 함께 해주시고요.
저는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막> 다시보기 안내 : 본 프로그램은 문화유산채널(www.k-heritage.tv)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