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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I I801:1807001-001-V00018
제목 위대한 유산 시즌1 - 18편(신윤복 풍속화 2부, 진주하씨 묘 출토 유물, 선교장)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국문
생산자 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생산일자
한국문화재재단 2014-12-31
기여자 정보
기여자 정보
역할 정보 기여자 명
제작사 SKY A&C
조연 이성현
기술 정보
기술 정보
기술 영역 기술 내용
기타정보
내용정보 보물 제1973호 신윤복 필 미인도, 국보 제135호 혜원풍속도, 국가민속문화재 제229호 산청 전주최씨 고령댁 상여, 국가민속문화재 제5호 강릉선교장
역사정보 ,
인물정보 신윤복, 곽재우, 곽경, 곽주, 효령대군, 이내번
지리정보 서울특별시 성북구,대구광역시 달성군,강원도 강릉시
관련 키워드 ;위대한 유산;신윤복;풍속화;진주하씨 묘 출토 유물;한글 편지;선교장;
내용 우리 전통유산의 아름다움을 쉽고 재밌게 소개하는 <위대한 유산>
우리나라 곳곳에서 살아 숨쉬는 문화유산들을 소개해본다.
- 7분다큐 '신윤복 풍속화 2부 혜원 신윤복 조선의 뒷골목을 그리다'
- 발굴 스토리 '열흘에 걸친 묘 이장 작업, 400년 전의 타임캡슐을 열다 -진주하씨 묘 출토 유물'
- 이미지문화유산 '정을 나누는 집, 선교장'
대본 정보 SKY A&C 공동제작 - 위대한 유산 시즌 1 : 18편
 
(1)
이성현 안녕하세요. 
                  전통 유산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쉽고 재밌게 소개하는 <위대한 유산>시간입니다.
 
                  조선시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많은 화가들이 있지만 
                  이렇게 섬세하고 수려한 붓터치를 선보인 화가가 또 있을까요?
                  혜원 신윤복의 이야기인데요.
                  
                  신윤복은 조선 후기 당시의 화가들은 그리지 않았던, 조선의 뒷골목 이야기를 화폭에 담은 화가입니다.
                  담장 밑에서 밀회를 나누는 연인부터 기녀를 두고 몸싸움을 벌이는 양반들까지
                  은밀하면서도 대담한 시선이 담긴 신윤복의 그림. 지금 만나보시죠.
 
 
 
자막> 7min document
 
자막> 7분 다큐
 
 
이미 통금이 지난 시각. 인적 드문 골목에 한 쌍의 남녀가 부둥켜안고 깊은 정을 나누고 있다. 
 
자막> 자료제고 : EBS 한국교육방송
 
그리고 담 모퉁이에서 두 사람을 몰래 지켜보고 있는 여인이 있다. 이들은 과연 무슨 관계일까. 
 
자막> 월야밀회(月夜密會)
 
남자는 전복에 푸른 전대를 두르고 머리에 전립을 쓴 차림새로 보아 관청에 소속된 하급 군관으로 보인다. 
남자에게 안겨있는 여인은 남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허리에 흰 띠를 동여매고 있다. 차림으로 보면 양반집 여인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질투에 찬 여인은 누구일까. 화려한 옷차림에 머리를 크게 올리고 삼회장저고리에 장옷을 걸친 차림새로 보자면 양반집 여인이거나 기녀일 수 있다.  
 
보름달이 뜬 밤. 뒷골목에서 밀회를 즐기는 남녀와 이를 몰래 지켜보고 있는 여인. 
엄격한 유교적 윤리관이 지배했던 조선시대, 신윤복은 도시 뒷골목을 통해 또 다른 조선의 모습을 그렸다.  
 
자막> “타이틀 “혜원 신윤복 - 조선의 뒷골목을 그리다”
 
달밤의 밀회를 그린 또 다른 그림 <월하정인(月下情人)> 
조각달이 뜬 캄캄한 밤. 길모퉁이 담장 곁에 한껏 차려입은 남녀가 밀회중이다.
 
쓰개치마를 여미고 있는 여인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다. 
 
자막> 김범수 교수 /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회화문화재보존수복학과
 
차림새를 보면 양반가의 여인으로 보인다. 몸을 돌리고 있지만 발걸음은 남자를 향해있다. 초롱불을 든 남자는 코와 뒤축에 따로 옥색을 댄 호사스런 가죽신을 신고 있다. 마음은 여인 곁에 있지만 발끝은 이미 갈 길을 향하고 있다. 
 
남들의 눈을 피해 은밀히 만난 남녀.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일까. 신윤복은 이 정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자막> 달빛 침침한 삼경,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아는 듯... 안개 속에 잠긴 듯한 흐릿한 담장 아래 두 사람의 모습만 선명히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달이 조금 특이하다. 초승달이라 하기엔 볼록한 면이 위쪽으로 향해있어 모양이 다르다. 신윤복의 달의 모양을 모를 리 없고 왜 이런 모양으로 그렸을까. 전문가들은 이 달의 모양을 토대로 그림이 그려진 날이 정조 18년인 1793년 8월 21일이라 추정한다. 이 날에 일어났던 부분 월식을 그렸다는 것이다. 
 
승정원일기에는 실제 7월 15일 밤 2경에서 4경까지 월식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자막> 夜自二更至四更, 月食
         밤2경에서 4경까지 월식(月食)이 있었다
               승정원일기 원본 1719책 / 정조17년 7월 15일(병오)
 
 
조선 최초의 에로티시즘을 선보인 천재 화가 신윤복. 그의 그림 속 여인들의 풍모에는 도시적인 세련미가 흐르고
 
자막> 미인도(美人圖)
 
그것을 표현한 필선이나 색채 역시 매우 감각적이다. 
그의 그림을 좀 더 살펴보면 그의 관심이 단순한 남녀 간의 밀애에만 머물러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자막> 야금모행(夜禽冒行)
 
깊은 밤의 나들이를 담은 ‘야금모행’. 그믐달이 떠 있는 것으로 보아 자정이 넘어 새벽 시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장죽을 문 여인과 갓을 쓴 선비가 사내 종을 앞세우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팔에 토시를 끼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계절은 겨울임을 알 수 있다. 남자의 차림새는 양반 같은데 그 곁에 선 여인은 부인 같지는 않고 기녀인 듯하다. 그리고 빨간 옷을 입고 있는 이는 술집을 관리하는 별감이다. 그런데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며 말을 하고 있다. 입막음 대신 돈이라도 요구하는 것일까. 
 
자막> 유곽쟁웅(遊廓爭雄)
 
술집 앞에서 양반들의 싸움이 벌어졌다. 
 
두루마기에 갓을 쓴 남자가 다독거리고 붉은 옷의 별감이 싸움을 말리는 것으로 보아 울상을 짓고 있는 이 남자가 싸움에서 진 모양이다. 가운데 버티고 서 있는 남자는 벗어부친 윗옷을 다시 걸치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오른쪽 끝의 남자는 떨어진 갓을 주워들고 있다. 그리고 싸움에 전혀 간섭하지 않으면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이가 있으니 긴 장죽을 물고 있는 기녀다. 
 
기녀를 사이에 두고 한 판 싸움을 벌이는 양반들.
 
이들을 바라보는 기녀의 눈길에서 양반들의 허위의식을 꼬집는 신윤복의 비판의식을 엿볼 수 있다. 
 
 
조선을 뒤흔들 만큼 파격적이고 대담한 그림들을 남기고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린 혜원 신윤복. 그가 그린 조선시대 뒷골목 풍경에는 거침없이 정을 나누는 남녀와 당시의 향락적인 유흥 문화,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혜원 자신의 날카로운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2)
이성현 이번에는 400년 전에 묘를 이장하면서 일어난 기이한 발굴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1980년대 말, 경상북도 달상군의 한 야산에서는   열흘에 걸친 험난한 이장 작업이 한창이었는데요.
                  송진으로 꽁꽁 싸인 관을 우여곡절 끝에 열고나니 그 안에서는 놀라운 것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온전한 형태의 옷과 함께 백여 통이나 되는 편지가 나온 것인데요.
                  이 편지는 누가 쓴 편지일까요?  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을까요?
                  400년  전에 쓰인 무덤 속 편지를 따라 펼쳐지는 흥미로운 이야기 속으로 지금 떠나봅니다.            
 
 
 
자막> 발굴
자막> 복원
자막> 보존
 
자막> 발굴 스토리
 
자막> 대니산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1980년대 말, 경상북도 달성군의 한 야산, 
 
자막> 자료 협조 : 현풍 곽씨 문중
 
그곳에서 현풍 곽씨 후손들이 묘 이장작업을 하고 있었다. 묘의 주인은 400년 전 조선시대에 살았던 먼 윗대 할머니. 
 
그런데, 관 속에서 놀라운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닌가. 완전한 형태의 옷과 백여통이나 되는 편지.
 
누가 쓴 편지일까, 무슨 내용이 적혀 있을까.
 
400여 년 전, 무덤 속 편지를 따라가는 흥미로운 발굴이 시작됐다.
 
자막> 타이틀 “열흘에 걸친 묘 이장 작업 400년 전의 타임캡슐을 열다 - 진주하씨 묘 출토 유물”
 
자막>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대구광역시 현풍면 대리. 이 마을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유명한 곽재우 장군의 고향으로, 대대로 현풍 곽씨들이 살고 있는 집성촌이다. 
 
자막> 포산(현풍) 곽씨 세거지
 
오래된 가문이다보니 모셔야 할 조상묘 또한 많은데,  문제는 조상의 묘가 위치한 선산의 산림이 우거지면서 묘에 가는 일 자체가 어렵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자막, 음성 #곽병도 / 현풍 곽씨 12세손 #인터뷰
A. 선문산성의 상단부에 대니산에 (할머니 묘가) 있었어요. 길도 없는 곳을 가시밭을 헤치고 묘사를 지내러 가려면 그 곤욕이 이루 말할 수가 업죠. 그래서 해마다 제관을 뽑는데 어려움을 겪느니 오히려 이장을 하는 것이 안 낫겠느냐고 한 거죠
 
자막> 현풍면 대리
 
1989년, 현풍곽씨 문중은 유독 험한 곳에 있는 12대 조상의 묘를 이장하기로 결정한다. 
 
자막> 대니산
 
몇 명의 남자들이 대니산에 있는 묘지로 떠났다. 그곳은 차도 다닐 수 없는 험난하고 깊은 산중이었다. 그렇게 산을 오른지 2시간 만에 조상의 묘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묘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은 곧장,  이장작업에 들어갔다. 파고, 또 파고,  
 
자막> 자료 협조 : 현풍 곽씨 문중
 
3미터 깊이의 땅을 파자, 드디어 관이 드러났다. 
 
자막> 진주 하씨의 관
 
이 묘는 현풍 곽씨 12대 조상의 묘로,  400년 전 조선시대에 살았던 진주 하씨의 묘였다. 
 
자막> 포산(현풍) 곽씨 참의공파 족보
 
진주하씨는 ‘곽경’의 19세손이자 곽재우의 조카인 곽주에게 시집을 왔다.
 
 족보에는 진주 하씨가 곽주의 두 번째 부인이라고  기록돼 있다. 12대조 할머니 진주 하씨의 관. 이제 관만 수습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왠일일까, 도대체 관이 열리질 않는 것이다.
 
#자막, 음성 #인터뷰
A. 보통 (이장을) 가면 시골에서는 곡괭이, 삽 같은 간단한 장비를 준비해 가거든요
     그런데 해 보니까 그 장비를 가지고는 도저히 (관을) 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당일 (이장을) 못하고 돌아왔던 거죠
 
 
다음날, 사람들이 다시 산을 찾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관 뚜껑은 쉬이 열리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이유일까?  수차례 관을 조사하고서야 그 원인이 밝혀졌다. 바로 송진 때문이었다. 
 
#자막, 음성 #곽병도 / 현풍 곽씨 12세손 #인터뷰
A. 송진을 녹여가지고 녹은 물 자체가 적어도 20~30말은 돼 보였어요. 
     이런 송진을 이 정도로 수집하려면 대단한 노력을 했지 않나 싶어요. 윗선에 대한 정성이라든지.
     내가 아주 감탄을 했던 게 이 송진을 보고 더 감탄을 했다고요.
 
자막> 송진의 기능
          관을 밀봉해 습기나 나무뿌리로부터 관을 보호
 
 
송진으로 단단히 관을 밀봉해 보호할 정도로  중요한 무덤이었던 것일까.
가까스로 정을 쪼는 방법으로  송진을 없앤 후에야 관을 열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관, 그 속에서 나타난 것은 미라였다.  미라는 놀랍게도 옷이 입혀진 상태 그대로였다. 
그리고 치마와 저고리, 장옷, 바지 등, 17세기 조선시대의 복식들이 완전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관속에는 많은 양의 편지도 들어 있었다.  당장 글씨를 알아볼 수 있을만큼 선명한 한글편지였다. 
무덤 속에서 나온 유물은 상상 이상이었다.             
 
#자막, 음성 #곽병도 / 현풍 곽씨 12세손 #인터뷰
A. 유물 자체가 그렇게 생생하게 보존될 수 없어요. 실이 여러 타래 들어 있었는데 그 실로 바로 바느질해도 될 정도고 옷감도 많이 들어가 있고, 버선도 많이 들어 있고 조금이라도 (유물이) 손상되고, 손실될까 싶어서 자연스럽게 (이장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더군다나 교수님이라든지 소문이 나니까 구경꾼들이 인산인해였어요.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화제가 되었던 사건, 
 
자막> 발굴 당시 보도 자료
 
하루 예정이던 이장 작업이 열흘이나 걸리게 된 것도 유물의 희소성 때문이었다.              
                                             
#자막, 음성 #곽병숙 / 현풍 곽씨 종친회장 #인터뷰
A. 유물이 이렇게 많이 나왔으니까 ‘이 유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대한 문제 때문에 고심도 하고 ‘우리가 소홀하게 간단하게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판단해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지어 놓은 제실이 있습니다. 그 ‘유연재라는 제실에 모시자’라고 결정했죠.
  
자막> 유연재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곽씨 문중의 집성촌인 대리에 위치한 재실. 문중의 뜻에 따라, 조상의 묘에서 수습한 시신과 유물은 일단 이곳으로 옮겨졌다.
 
시급한 것은 유물의 보존처리와  발굴된 유물이 어떤 가치를 갖는 지 파악하는 일.   
경북대 백두현 교수가, 편지를 분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자막, 음성 #백두현 / 경북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인터뷰
A. 가서 실제로 자료를 손으로 만지면서 볼때는 정말 감회가 깊었습니다. 
 
 
이 편지는 무덤의 주인인 진주 하씨에게 남편인 곽주가 보낸 편지가 대부분이었다. 
 
자막> 진주 하씨 묘 출토 편지 172매 中
• 남편 곽주의 편지 105매
• 출가한 딸의 편지 42매
• 기타 편지 25매
 
편지는 모두 170 여 매, 그런데 편지를 읽어갈수록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자막, 음성 #백두현 / 경북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인터뷰
A. 이렇게 ‘부부간에 한글 편지를 많이 주고받은 이유가 뭘까.’ 이게 사실 좀 궁금하죠. 
     근데 그 170매가 넘는 그 편지 내용 속에 그 답이 나와 있어요. 
 
A. 곽주라는 분의 전처가 광주 이씨가 계셨는데, 이 분이 아들을 하나 두고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후처로 진주 하씨가 새로 들어왔는데. 이 진주 하씨와 전처의 아들들, 이 두 사이가 원만치 못했어요.
 
A. 그래서 곽주가 살고있는 마을이 현풍의 소례라는 마을인데요.      자막> 소례마을(대리), 논공마을
A.  그 마을에서 약 걸어서 한 시간. 또는 한 시간 남짓 걸리는 논공이라는 데가 있어요. 
      이 논공으로 집을 따로 하나 지어서 하씨 부인은 그쪽으로 나가서 살게 된 거죠
 
 
 결국 그런 사정으로 떨어져 사는 아내 진주 하씨에게 남편 곽주는 자주 편지를 썼던 것이다.  
 
자막> 진주하씨 묘 출토 유물 / 중요민속문화재 제299호
 
곽주는 이처럼 백 여 통이 넘는 편지를 보내는데, 눈길을 끄는 점은 어린자녀들에게  언문, 즉 한글교육을 시키라는 부분이다.
 
자막> 수고로우시겠으나 언문을 가르치옵소서
          - 곽주가 장모 합산댁에게 - 
 
자막> 촬영 협조 : 국립대구박물관
 
당시 곽주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선비였다.  그런만큼 곽주가 한문이 아닌 한글을 가르칠 것을 강조하는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한글창제 이후 민간에서 한글교육을 어떻게 했는지 알려주는 귀한 자료다.
 
자막> 가운데 아기 언문을 쾌히 배웠다가 내게 보이라 하소. 
         셋째 아기도 이제는 쾌히 온전하여 있을 것이니 언문을 외워 있다가 보이라 하소 
                - 곽주가 부인 하씨에게
 
자신이 직접 가르칠 수 없는 상황에서 곽주는  편지로 3남 5녀 자녀들의 교육을 걱정하고 있다
 
자막> 아이에게 글을 힘써서 읽으라 하소 
       - 곽주가 부인 하씨에게
 
#자막, 음성 #백두현 / 경북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인터뷰
A. 우리가 구체적으로 조선 시대에 한글 교육을 누가 시켰는지 증거가 확실이 없었는데
     현풍 곽씨 언간에 장모님한테 편지를 보내서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달라는 사연이 바로 
     ‘여성들이 한글 교육의 주체였다.’라는 명백한 증거가 됩니다.
 
 
편지 속엔, 아내를 걱정하는 남편의  애틋한 정도 보인다. 
 
자막> 내가 있었던 때는 어떻게 하여도 무던하지만 내가 없을 때는 절대로 혼자 자지 마소 
              - 곽주가 부인 하씨에게
 
진주 하씨가 아이의 출산 때문에 친정에 가있을 동안 소식이 없자, 곽주가 아내의 기별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새 인편을 보내는 상황도 적혀있다. 
 
자막> 기별 몰라 한때도 잊은 적이 없고 걱정도 가이 없네. 자네 기별 기다리다가 못 견디어 사람을 보내네 
              - 곽주가 부인 하씨에게
                            
 헤어져 사는 아내를 애달파 하는 남편의 마음을 토로한 편지도 있다
 
자막> 추위에 어찌 계신고 기별 몰라 한때도 잊은 적이 없으니
              - 곽주가 부인 하씨에게
 
 
하루하루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썼던 곽주의 편지. 그 편지들은 우연히 벌어진 묘 이장덕분에 세상에 알려졌다. 이는 400년 만에 공개된 한 부부의 이야기였다.
 
 
 
(3)
이성현 재미있는 전통 예술이야기 <위대한 유산> 함께 하고 있습니다.
                  
                  강릉에는 370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가옥이 하나 자리하고 있는데요.
                  99칸의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상류주택 강릉 선교장입니다.
                  
                  수백년의 세월에도 그 원형이 잘 보존된 건축물로 
                  중요민속문화제 제5호로 지정된 가옥이기도 한데요.
 
                  객들과 풍류를 함께 즐기던 정자, 활래정부터
                  흉년이면 이웃을 위해 문을 활짝 열었던 곳간까지.
                  사대부 고택의 면면을 전하면서 저는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여유로운 멋이 그대로 느껴지는 선교장의 아름다움 지금 바로 감상하시죠.
 
 
자막> 이미지 문화유산
 
자막> 타이틀 “정을 나누는 집 - 선교장”
 
자막> 선교장
          강릉에 위치한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상류 주택
 
자막> 효령대군의 11대 손인 이내번에 의해 지어져 후손 10대에 걸쳐 지켜온 370여 년 전통의 가옥
 
자막> 만석꾼 살림에 비해 소박함이 느껴지는 집으로 사람과의 조화를 중시한 주인들의 철학이 담겨 있다.
 
자막> 객이 부담없이 드나들 수 있도록 배려한 작은 대문
 
자막> 활래정
         객과 함께 자연의 아름다움을 나누기 위해 지은 정자
 
자막> 열화당
          ‘친척과 정다운 얘기를 나누며 기뻐한다’는 뜻을 지닌 선교장의 사랑채로 객을 접대하는 응접실
 
자막> 동별당
          친척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를 나누던 공간
 
자막> 연지당
          집안의 홀로 된 여인들을 위해 지은 건물
 
자막> 곡간
          지역에 가뭄이나 흉년이 들면 이웃을 위해 곡간의 문을 활짝 열었던 선교장의 주인들 
 
 
자막> 다시보기 안내 : 본 프로그램은 문화유산채널(www.k-heritage.tv)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