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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N2C)

콘텐츠 기본 정보
UCI I801:1807001-002-V00029
제목 위대한 유산 시즌3 - 12편(직지, 은진미륵불상, 경천사지 십층석탑,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국문
생산자 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생산일자
한국문화재재단 2015-12-31
기여자 정보
기여자 정보
역할 정보 기여자 명
제작사 SKY A&C
조연 이성현
기술 정보
기술 정보
기술 영역 기술 내용
기타정보
내용정보 사적 제315호 청주 흥덕사지, 보물 제1132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보물 제1375호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사리장엄구, 국보 제48호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국보 제86호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국보 제323호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역사정보 ,
인물정보 석찬, 달잠, 묘덕, 백운화상, 순제, 기황후, 충목왕, 광종, 다나카 미쓰아키, 어네스트 베셀, 호머 헐버트
지리정보 충청북도 청주시,충청남도 논산시,강원도 평창군,
관련 키워드 ;위대한 유산;직지;은진미륵불상;경천사지 십층석탑;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인쇄;금속활자
내용 우리 전통유산의 아름다움을 쉽고 재밌게 소개하는 <위대한 유산>
우리나라 곳곳에서 살아 숨쉬는 문화유산들을 소개해본다.
- 7분 다큐 '직지 - 청주 흥덕사에서 만들어진 세계최고의 금속활자'
- 5분 추리X파일 '우리나라 최대 불상! 은진미륵불의 비밀!'
- 5분 추리X파일 '경천사지 십층석탑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유는?'
- 이미지 문화유산 '천년 숲 길 끝, 고려를 만나다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대본 정보 <위대한 유산 시즌3>
 
위대한 유산 12화
 
타이틀 - sky A&c 문화유산채널 공동 기획 위대한 유산
 
▣ 이성현 / 스탠딩
 
우리 전통유산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위대한 유산>
 
자막> 진행 이성현
안녕하세요 이성현입니다.
 
자막> 인쇄술이 꽃핀 고려시대
고려시대에는 인쇄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시기로
우리나라 인쇄 역사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이 시기에, 국보인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함께
세기의 인쇄물로 주목받게 될 또 하나의 책이 탄생합니다.
 
자막> 세기의 금속활자본의 탄생, 직지심체요절
금속활자로 찍어낸 세계 최초의 책, 직지심체요절인데요.
 
자막>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경이로운 책 속으로
서양의 금속활자 인쇄본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선 세기의 책!
고려시대를 꽃피운 경이로운 유산을 만나보시죠.
 
 
 
▣7분 다큐 
 
타이틀 >7min documentary
타이틀 >7분 다큐
 
 
자막> 청주고인쇄박물관 / 충청북도 청주시 운청동
충북 청주에 위치한 고인쇄박물관.
 
이곳엔 인류가 금속활자로 찍어낸 가장 오래된책 [직지심체요절]이 전시돼있다. 
 
자막> 직지심체요절의 복원본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 [직지]의 상권까지  복원해놓은 복원본과, 
 
자막> 직지심체요절의 영인본
원본을 사진으로 촬영한 후 그대로 복제한 [직지] 하권의 영인본이다.
 
금속활자로 찍어낸 원본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없다. 
 
직지의 원본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이 땅에 있지도 않은 [직지]는 어떻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던 걸까. 
 
 
타이틀 >직지 - 청주 흥덕사에서 만들어진 / 세계최고의 금속활자
 
자막> 청주 흥덕사지 / 충청북도 청주시 운천동
청주 운천동에 자리한 흥덕사 터. 
 
자막> 복원된 흥덕사 금당
문헌에도 기록돼 있지 않은 작은 절 흥덕사가 세상에 알려진 건 책 한 권 때문이다. 
 
자막> 백운화상 초록 불조 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 초록 불조 직지심체요절].
 
줄여서 [직지심체요절], [직지]로 부르는데
 
 현재는 하권만이 전해져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직지]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임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있다.
 
바로 책의 마지막 장에 적혀있는 발간기록이다.
 
자막> 선광 7년(1377년) 정사7월 청주목외 흥덕사 주자인시
‘선광7년 정사7월’, 1377년 7월 청주목외 흥덕사 주자인시’
 
자막> 자막> 선광 7년(1377년) 정사7월 / 간행 시기
청주목 교외에 있는 흥덕사에서 주조한 
 
자막> 청주목외 흥덕사 / 간행 장소
활자로 인쇄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막> 주자인시 / 간행 방법 
주자 즉 금속을 녹여 부은 활자라는 간행방법이 명확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간행 장소로 기재된 청주 교외 흥덕사에 대해서는 어떠한 문헌자료도 남아있지 않다. 
 
 때문에 직지가 탄생한 흥덕사를 찾는 것은 국사학계의 오랜 과제였다. 
 
자막> 1985년 흥덕사터 발굴조사 현장
흥덕사의 오랜 베일이 벗겨진 것은 1985년. 
 
 청주 운천동 일대 택지조성 공사중 주춧돌 몇 개가 드러났다. 
 
대대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고,마침내 결정적인 단서가 발견됐다. 
 
자막> 금구(쇠북) 절에서 쓰는 북 모양의 종
절에서 식사시간을 알리는 쇠북, 
 
자막 >서원부 흥덕사 금구일좌(西原府興德寺禁口臺座)
여기에 작지만 또렷하게 ‘서원부 흥덕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자막> 황통십년 흥덕사(皇統十年 興德寺)
‘황통십년 흥덕사’라고 쓰인 청동그릇도 발굴됐다.
 
[직지]가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된 책이라는 것이 
 
자막> 청동불발 / 청동으로 만든 부처 앞에 올리는 그릇
명확하게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흥덕사 터의 발굴은 직지가 우리의 위대한 유산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고, 직지의 가치를 해외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됐다. 
 
자막> 유네스코 프랑스 본부
1998년에는 직지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도 시작됐다.
 
자막> 1998년 직지 소유국인 프랑스의 공동신청 거부로 세계기록유산 등재 무산
하지만 현재 소유국이 프랑스라는 이유로 유네스코에서는 프랑스와 공동 신청을 권유했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거부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자막> 고인쇄문화 학술회의 / 박병선 박사
 이후 직지의 가치와 한국의 인쇄문화를알리기 위한 노력은 계속됐고, 
 
자막> 제 5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회의
2001년 우리나라 단독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마침내 직지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되었다. 
 
자막> 2001년 직지 세계기록유산 등재 
우리의 유산으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직지. 
 
그런데 직지를 펴낸 사람은 누구일까. 
 
자막> 연화문인 석찬달잠 시주비구니 묘덕(緣化門人 釋璨 達湛 施主比丘尼妙德
발간기록 뒷면엔 간행자에 대한 기록이 있다. ‘연화문인 석찬 달잠 시주비구니묘덕’
 
큰 스님의 제자 석찬과 달잠이 비구니 묘덕의 시주로 간행했다는 것이다. 
 
자막> 청주고인쇄박물관 전시실
직지의 간행 과정을 재현해 놓은 전시실. 
 
작은 절 흥덕사에서 이들은 어떻게 금속활자인쇄본을 만들어낸 것일까?  
 
직지는 본래 스승인 백운화상이 펴내려던 책이었다. 
 
하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입적하자 제자들이 직접 간행에 나섰다. 
 
두 제자는 벌집에서 추출한 밀랍으로 어미자를 만든 후, 쇳물을 부어 금속활자를 만들었다. 
 
지방의 작은 사찰에서도 금속활자의 주조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고려의 금속활자인쇄술은 얼마나 발달해 있었던 것일까. 
 
정확한 문헌자료는 없지만 금속활자의 발명은 직지보다 훨씬 빨랐다. 
 
기록에 의하면, 가장 먼저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은 
 
자막> 남명천화상송중도가 / ㅇ에 공장들을 모집하고 주자본을 중조하여 오래도록 전해지게 하조가 하는 바이다 / 기해(1239)년 9월 상순에 중서령 진양공 최이는 삼가 기록하는 바이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이다. 
 
책 끝에 ‘기해년 9월 주자본을 중조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주자본을 목판에 복각해 펴냈다는 의미다. 
 
기해년 9월은 1239년을 말한다. 
 
몽골 침입으로 수도를 강화도로 옮긴 이후로, 이미 개경에서 금속활자 인쇄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자막>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후집
금속활자 인쇄본에 대한 또 다른 기록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남아 있다. 
 
‘상정예문(詳定禮文) 50권 28부를 금속활자로 인쇄했다’는 기록인데, 
 
자막> 고려의 밀랍주조술 / 벌집에서 추출한 밀랍을 이용해 금속활자를 만드는 방법
상정예문 인쇄는 1234년에서 1241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지보다 130여년이나 앞서 간행된 것이다. 
 
직지가 간행된 1377년은 몽골의 지배로 중앙 관서의 인쇄기능이 중단됐던 무렵이다.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의 작은 사찰에서 재래의 밀랍주조법으로 활자를 만들어 직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직지의 간행은 고려 금속활자인쇄의 맥을 이어주었고, 
 
자막> 고려 금속활자 기술의 맥을 이어준 직지 
여러 문헌에 적힌 금속활자인쇄에 대한 기록을 모두 사실로 인정받게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무엇보다 직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인쇄본으로 남아, 우리의 인쇄문화가 얼마나 발달해 있었는지전 세계에 입증하고 있다. 
 
 
타이틀 - sky A&c 문화유산채널 공동 기획 위대한 유산
 
 
 
▣ 이성현 / 스탠딩
 
고려시대의 또 다른 유산을 찾아 
충남 논산에 자리한 관촉사로 떠나보겠습니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불상을 만날 수 있는데요.
 
자막> 높이가 18미터! 국내 최대 크기의 석조 은진미륵보살 입상
높이가 무려 18미터에 달하는 석조 은진미륵보살 입상입니다.
 
자막> 큰 머리에 친근한 미소 / 독특한 매력의 불상
이 불상의 재밌는 점은, 2등신 비율의 거대한 머리 때문에
위압적인 크기에도 불구하고 친근한 느낌이 든다는 것인데요. 
 
자막> 고려시대 대형 불상에 담긴 의미는?
여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과연 어떤 사연인지, 함께 들어보시죠.
 
 
▣ 5분  X-파일
 
타이틀> 5분 추리 역사  X-파일1
 
 
충남 논산에 위치한 관촉사. 
 
이곳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불상인 “관촉사 석조 은진미륵 보살 입상“을 만날 수 있다. 
      
자막>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論山灌燭寺石造彌勒菩薩立像) / 보물 제218호
신장 18미터, 아파트 6층에 가까운 높이다. 
 
자막> 높이 : 55척 5촌(약 18m) / 둘레 : 30척(약 9.1m)
그리고 몸과 머리의 비율이 2등신이라고 할만큼, 머리와 갓이 크게 제작되어 있다.
 
기이할만큼 커다랗고, 정교한 불상들과는 달리 왠지 토속적이고 익살스러운 느낌을 주는 관촉사 은진미륵불상! 
 
이 안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타이틀> 우리나라 최대 불상! 은진미륵불의 비밀!
 
 
 
자막> 관촉사(灌燭寺)
 관촉사에 가면 우리나라 최대 크기인 은진미륵불상이 너무나 압도적인 규모여서
 
 
자막> 주변의 건축물들이 사소하게 보일 정도의 거대한 불상
주변의 다른 건축물들이 사소하게 보일  정도다.  
 
 
거대한 은진미륵불상 주위에 커다란 불전 건물도 세우지 않아 지역주민들 누구나 멀리서도 이 불상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랗게 제작되었다.
 
어떻게 보면 조화와 균형을 헤친 듯한 모습 도대체 이 불상을 왜 이토록 크게 지은걸까?
 
 
 
Q1  관촉사 은진미륵불상을 커다랗게 지은 이유는?
 
 
자막> 광종 19년 세워지기 시작한 관촉하 은진미륵불상
려가 건국 50년 뒤인 광종 19년에 세워지기 시작한 관촉사 은진미륵불상! 
 
자막> 반야산 기슭의 넓은 평야지대 위치한 관촉사
이 은진미륵불상이 세워진 관촉사는 넓은 평야지대 중심에 위치하여, 사방에서 다 볼 수 있는 곳에 조성되어 있다. 
 
그런데 고려 초기 불상들을 보면 유난히 거대 불상이 많이 제작된 걸 알 수 있다. 
 
자막> 논산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論山 開泰寺址 石造如來三尊立像)보물 제219호
자막> 본존 높이 : 407cm / 좌협시, 우협시보살 높이 : 436cm
논산 개태사 삼존불, 
 
 
자막>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 입상(扶餘 大鳥寺 石造彌勒菩薩立像) / 보물 제217호 / 높이: 10m
부여 대조사 보살입상, 
 
자막>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唐津 安國寺址 石造如來三尊立像) / 보물 제100호 / 높이 : 5m
안국사 삼존석불입상 등  거대 석불은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불상양식이었다. 
 
거대불상이 있는 곳은 모두 깊은 산속이 아닌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었다.
 
                                
고려 초기 고려 건국을 주도한 지방 호족들은 자신들의 넘치는 힘과 경제력, 자유 분방하고 개성적인 성향을 널리 과시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지역마다 거대한 불상들을 세워 건국의 주역인 자신들의 세력을 널리 알리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은진 미륵불상은 머리 부분이 불상의 반을 차지하는 이등신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왜 이토록 기이한 형태로불상을 만들었을까?
 
 
 Q2 관촉사 은진미륵불은 왜 이등신으로 만들어졌을까?
 
         
사실 이 은진미륵을 세운 당시 사람들이 인체비례를 몰라 이등신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자막> 강력하고 원초적인 느낌의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의도적으로 강력하고 원초적인 느낌을 전하기 위해 이런 신체 비율을 선택한것이다
 
자막> 경주 석굴암 석굴(慶州 石窟庵 石窟) / 국보 제24호
고려 이전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굴암은 완벽한 조형미를 지니고 있다.
 
자막> 예술적 감각과 웅장함 속의 근엄함
그리고 절대자의 온화함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불상은 절대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근엄한 모습이었다.
 
그런데,이 은진미륵불상은 완벽한 질서와 조화가 아닌 동네마다 서 있는 
 
자막> 고려시대 형식적 파격성을 보여주는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장승과도 같은 토속적이고 익살스러운 모습을 띠고 있다. 
 
자막> 세련되지 못한 토속적인 모습이 특징
숨막힐 듯 짜여진 질서가 아닌.. 인간미가 있으면서도 괴력을 발휘할 것만 같은 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관촉사 은진미륵불을 정면에서 보면 비율이 안맞아 보이지만, 바로 아래에서 엎드린 상태에서 올려다보면 비율도 잘 맞아 보이고 더 온화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인다.   
 
어쩌면, 불상 앞에 겸손하게 몸을 낮추고 불상을 바라보라고 이렇게 기이한 비율로 지었을 지도 모른다.
 
자막>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우리나라 최대 불상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우리나라 최대 불상, 관촉사 은진 미륵불상! 
 
자막> 조상들의 강한 뜻과가신비감으로 어려운 이들을 위로하고자 했던 마음이 담겨있다
그 안에는 우리 조상들의 개성 넘치는 정신세계와,언제 어디서나 백성들이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 어려울 때마다 보는 이들을 위로하고자 했던우리 조상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타이틀 - sky A&c 문화유산채널 공동 기획 위대한 유산
 
 
 ▣ 이성현 / 스탠딩
 
 
자막> 독특한 재료로 마들어진 경천사지 십층석탑
우리나라의 석탑들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인데요.
고려시대 석탑 중에는 드물게도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것이 있습니다.
 
자막> 경천사지십층석탑 / 고려 충목왕 4년에 만든 국보 제86호 대리석탑 /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일제강점기에 약탈당한 이후로 몇 번이나 이사를 다녀야 했던
 
자막> 경천사지십층석탑 / 1960년 경복궁에 복원되었으나 풍화작용으로 1995년 해체된 후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에 복원되었다
경천사지 십층석탑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자막> 대리석탑에 숨겨진 사연이 밝혀진다!
석탑을 이루는 독특한 재료와 양식에 담긴 비밀,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 5분  X-파일
 
타이틀> 5분 추리 역사  X-파일2
 
자막> 국립 중앙 박물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자막> 경천사지 십층석탑
국립중앙박물관 내부에 들어가면 고려후기 충목왕 때 만들어진 경천사지 십층 석탑을  만날 수 있다.
 
 
이 석탑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대리석 석탑이다.
 
우리나라 석탑들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만들어진데 비해 이 석탑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게다가, 만들어진 양식도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   
 
 
 
경천사지 십층 석탑은 왜 우리나라에서 잘 나지도 않는 대리석으로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특수한 문양들을 담게 되었을까?
 
 
타이틀> 경천사지 십층석탑이 /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유는?
    
 
경천사지 십층 석탑은 하늘을 향해 날렵하게 솟아오른 세련된 탑신과 다양하고  화려한 불상,  조각의 정교함으로.. 
 
 
고려시대 석탑 중 가장 아름다운 석탑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려시대의 석탑은..신라시대의 석탑 양식을 이어 받아 평면사각형의 석탑 또는 다각다층석탑이 유행하였는데, 이 경천사지십층 석탑은 이와 전혀 다른 특수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자막> 1~3층 / 한자의 아(亞)자를 닮은 형태로 원나라 라마교 형식
석탑의 기단부와 탑신석 1층에서 3층까지의 평면은 소위 한자의 아(亞)자와 같은 형태로, 사면이 돌출되어 있다. 
 
면은 중국 원나라에서 유행한 몽골, 티베트계 불교인 라마교 불탑의 기단부나 불상 대좌 형태와 유사한 외래적 요소이다. 
 
자막> 4~10층 / 평면적인 우리나라 전통 양식
반면 탑신부 4층부터 10층까지는 평면으로 기존 우리나라 전통적인 요소 들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경천사지 십층석탑은 왜 티베트 불교인 라마교 불탑의 양식을 지니게 되었을까?
 
 
 
Q1 몽골 티베트계 라마교의 영향을 받았다?
 
 
자막> ‘원나라의 황제와 고려왕실의 수복(壽福)을 기원하며 나라가 평안하고 백성이 편안하기를 바란다. ‘ / -1층 탑신부의 명분 
경천사십층석탑은
 
고려 충목왕 4년인 1348년에 건립된 것으로 ‘원나라 황제와 고려왕실의 수복(壽福)을 기원하며’  세워졌다.
 
자막> 고려 14세기 금동관음보살좌상 / 갸름한 얼굴에 화려한 장식으로 뒤덮인 신체 등에서 라마 불상의 영향을 볼 수 있다
당시 원나라에서는 라마교를 국교로 
 
자막> 서 티베트 / 13세기 비로자나불
삼을 정도로 라마교가 크게 유행했다.
 
따라서, 경천사지 십층석탑이 라마교 양식을 띤 것은  원나라의 영향으로 보이며..
 
자막> 서 티베트 / 14세기 문수보살
석탑의 재료인 대리석도 원나라에서 공수해온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경천사지 십층 석탑은 원나라와 고려의 안녕을 구하며 세워지게 되었을까?
 
자막> 순제 원나라 제 11대 황제
고려 충목왕 당시 원나라의 황제는 순제였고
 
자막> 기황후 / 원나라 순제의 황후
그의 아내는 고려여인인 기황후였다.
 
 
기황후는 37년간 황후로 지내면서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였고, 
 
자막> 두 나라 교류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 기황후
두 나라의 교류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자막> 개경관련지명 / 대청광여도
고려에서 기씨 일족과 친원 세력의 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고
 
자막> 개경 외성 
이러한 배경 가운데.. 
 
자막> 개경 남대문
개경에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경천사에
 
원의 번영과 고려왕실의 천수 만세를 기원하는 대리석탑이 세워진 것이다.
 
 
 
현재 국립박물관 실내에 위치한 경천사지 십층 석탑! 
 
그런데 야외에 있어야 할 석탑이 실내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Q2 경천사지 십층석탑이 박물관 안으로 들어오게 된 이유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궁내대신이었던
 
자막> 일제강점기 1907년 다나카 미쓰아키가 일본으로 약탈해감
다나카 미쓰아키는.. 경천사십층석탑을 보고 한눈에  반하고 만다. 
 
그는 “고종 황제가 나에게 하사했다.”는 사기행각을 벌이면서 당시 주민들이 무력저항하며 반대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1907년 강제로 경천사지십층석탑을 해체해 일본으로 약탈해 가는 만행을 저지른다. 
 
 
자막> 어네스트 베셀 / 영국 신문 특파원
자막> 호머 헐버트 / 미국 선교사
이를 지켜본 영국의 젊은 저널리스트 어네스트 베셀, 미국 선교사 호머 허버트는.. 
 
자막> 일본의 문화재 약탈을 국제사회에 고발함
일본 다나카의 문화재 약탈을 국제사회에 고발했다.
 
그러자, 국제적 여론이 악화되면서 1918년 드디어, 경천사지 십층 석탑이 우리나라에 반환되고 오랜 기간동안 복원작업을 거쳐
 
자막> 1960년 경복궁 뜰안에 다시 세워짐
1960년 경복궁 뜰안에 세워지게 되었다. 
 
                 
그런데, 또다시 뜻밖의 상황이발생하고 만다. 
 
자막> 산성비 등의 환경적 요소 때문에 손상되기 시작한 경천사지 십층석탑
대기오염에 따른 산성비로 대리석의 아름다운 조각들이 손상되기 시작한 것이다.  
 
수차례 논의한 결과 
 
자막> 결국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 실내로 이전 
결국 2005년 경천사지 십층석탑은 국립중앙박물관 실내로 옮겨지게 되었다.
 
 
6백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개경에서 일본인의 정원으로 그리고 경복궁 뜰에서 또 다시 박물관 안까지 들어오게 된 경천사지 십층석탑!
 
자막> 경천사지 십층석탑에는 우리 민족의 역사 또한 함께 새겨져 있다
그 석탑에는 우리 민족의 험난한 역사가 함께 새겨져 있다.
 
 
 
타이틀 - sky A&c 문화유산채널 공동 기획 위대한 유산
 
 
 
▣ 이성현 / 스탠딩
 
고려시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불교 유산들로 꾸며봤습니다.
 
불교유산은 예술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자막> 경건함으로 더욱 빛나는 불교유산
경건함이 더해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전한다는 데 그 의미가 더욱 깊은 듯한데요.
 
 
자막> 고려 불교문화의 집대성 / 월정사
고려 불교문화가 한데 모여진 사찰, 월정사를 소개하며저는 이만 인사드리겠습니다.
 
사찰 입구로 향하는 천년의 숲길을 따라 걸으며
고려 불교의 향취를 함께 느껴보시죠. 
 
 
 
▣ 이미지 헤리티지
 
타이틀 - 이미지 헤리티지
 
타이틀 >천년 숲 길 끝, 고려를 만나다 /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자막> 오대산 / 강원도 평창군
 
자막>  월정사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까지 약 1km에 걸쳐 전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자막> ‘천 년의 숲’으로 불리는 월정사 전나무 숲은 평균 수령 80년이 넘는 전나무 1,700여 그루로 이루어진다
 
자막> 세속을 씻어내며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면 월정사 천왕문에 이른다
 
자막> 오대산 월정사 / 강원도 평창군
 
자막>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 석탐(국보 제48호) / 고려 전기 석탑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당시 불교문화 특유의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는 탑이다
 
자막> 탑의 꼭대기 머리장식이 완벽하게 남아 있고 지붕돌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아 화려한 아름다움을 더한다
 
자막> 특히 1970년, 기울어진 탑을 해체 복원할 때 내부에서 9종 12점의 사리장엄구(보물 제1375호)가 발견되었다
 
자막> 10~11세기 경, 석탑이 건립될 때 내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유물들은 고려 초 화려했던 금속공예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자막> 다시보기안내
자막 >본 프로그램은 문화유산채널(www.k-heritage.tv)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자막> 기획 이정민
자막 >책임프로듀서 유진규
자막 >프로듀서 이준환
 
자막> 녹음 예정민
자막> 종합편집 박인성
자막> CG 박희경 박유미
 
자막> 편성 김원정 하지선
자막> 글/구성 김경선
자막> 연출 최상은 
 
자막 >공동 기획 / 제작   sky A&C 문화유산채널 
 
타이틀 - sky A&c 문화유산채널 공동 기획 위대한 유산
 
자막 >다음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