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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
UCI I801:1807001-004-V00006
제목 위대한 유산 시즌 4 - 6편 (박익 묘 벽화, 천상열차분야지도, 동궐도)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국문
생산자 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생산일자
한국문화재재단 2016-12-31
기여자 정보
기여자 정보
역할 정보 기여자 명
제작사 한국문화재재단
기술 정보
기술 정보
기술 영역 기술 내용
기타정보
내용정보 사적 제459호 밀양 박익 벽화묘,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사적 제123호 창경궁, 보물 제837호 복각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국보 제249호 동궐도, 사적 제122호 창덕궁
역사정보 ,
인물정보 박익, 태조, 숙종, 순조, 효명세자, 정조
지리정보 경상남도 밀양시,서울시 종로구
관련 키워드 박익 묘 벽화;천상열차분야지도;동궐도;위대한 유산;SKY A&C
내용 우리 전통유산의 아름다움을 쉽고 재밌게 소개하는 <위대한 유산>
우리나라 곳곳에서 살아 숨쉬는 문화유산들을 소개해본다.
- 발굴 스토리 ‘태풍이 찾아준 보물 밀양 박익 묘 벽화’
- 7분 다큐 '돌에 새긴 옛 하늘, 천상열차분야지도'
- 7분 다큐 '동궐도에 담긴 개혁의 꿈'
대본 정보 <위대한 유산 시즌4-66>
 
위대한 유산 66화
 
타이틀 - sky A&c 문화유산채널 공동 기획 위대한 유산
 
▣ 이성현 / 스탠딩
 
우리 전통유산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쉽고 재미있게 전하는 <위대한 유산>.
안녕하세요 이성현입니다.

자막> 이성현/진행 
종이가 흔치 않던 과거에는 천, 나무 등 다양한 사물들이 캔버스가 되곤 했습니다.

자막> 다양한 캔버스에 그려진 우리의 미술 유산들
벽화도 그 중 하나인데요.

자막> 태풍이 지나간 폐허에 발견된 한 폭의 그림!
2000년 태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간 자리에 벽화 하나가 기적적으로 발견됐습니다.

자막> 묘 벽에 그려진 비밀스러운 이야기
고려의 충신 박익 선생의 묘에 그려진 벽화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져 있을까요? 그 현장으로 함께 가보시죠.
 
▣발굴 스토리
 
자막> 지난 2000년 태풍 ‘사오마이’가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강타
지난 2000년 태풍 ‘사오마이’가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강타했다. 돌풍과 비를 동반한 태풍으로 농경지 1천 헥타르가 침수되고 곳곳에 도로가 끊겼다. 그리고 며칠 후 태풍으로 인해 고려시대 벽화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는데...

자막> 태풍이 이 어른의 은공입니다.
태풍으로 빛을 본 고려시대 보물. 그 발굴에 얽힌 뒷 이야기를 따라가 보았다.

타이틀> 태풍이 찾아준 보물 / 밀양 박익 묘 벽화

자막>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
벽화가 발견된 곳은 경상남도 밀양시의 한 마을. 이 곳엔 고려시대부터 권세를 누려 온 밀양 박씨의 후손들이 모여 살고 있다. 그들의 조상인 고려시대 충신 박익 선생의 묘가 모셔져있기도 하다.

자막> 박길달 회장 / 밀성 박씨 송원공파 대종회
박익 선조는 (고려말) 사재소감을 지낸 어른으로서 정부의 모든 물품을 공급하는 위치에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벼슬이 현재로 하면 차관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때는 2000년 9월 태풍 사오마이 상륙 후 날이 풀리자 밀양 박씨 문중인 박한익씨는 태풍으로 훼손된 봉분을 보수하기 위해 박익 선생의 묘를 찾았다. 묘지를 손 보던 그는 봉분 위쪽에서 심상치않은 흔적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자막> 박한식 총무 / 밀성 박씨 송원공파 대종회
2000년도에 태풍에 비가 많이 와가지고 산소에 손실이 있나 와서 보니까 깊이가 이 정도 됐습니다. 이 정도 돼서 푹 꺼졌는데 이상하다 싶어서 삽 갖고 와서 한 삽 찌르니 안에 공간이 있더라고요. 누가 도굴을 했어요.

도굴꾼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석실 내부에는 예상치 못한 보물이 남겨져 있었다. 사방에 그려져있는 상서로운 기운의 벽화였다. 주요 언론 매체에서 벽화 발견 소식을 1면 톱으로 보도했고 문화재청은 벽화 고분을 국가사적으로 가지정한 뒤 본격 조사에 들어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벽화의 그림이 선명하게 남아있다는 사실이었다. 발굴팀은 무사히 남아있던 벽화의 나머지 부분이 떨어지지 않도록 보존 처리 작업을 진행했다. 드디어 벽화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벽화 속 여자는 저고리와 치마에 가죽 신발을 신고 있으며 남쪽 벽면에 그려진 마부는 직령포와 장화 몽골풍의 모자인 반립을 쓰고 있다. 벽화에는 마치 일반 풍속화처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자막> 이동주 교수 / 당시 발굴팀원
우리가 주인공을 뻔히 아는 상태에서 전체적으로 벽화가 그려져 있었고 기존에 알려져 있던 것과 전혀 다른 당시 생활 모습이 그려 있어 고고학자에게는 당시 문화상을 아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몰라서 편전 작업하고 분석 작업을 하는데 정확한 연대를 가지고 있는 벽화에 복식이 조선시대 것이라 생각했던 복식이랑 너무 다른 거죠. 지금까지 확인되지 못했던 사실이 그대로 그려져 있었던 거죠. 그래서 이건 당시 문화를 밝힐 수 있는 보물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죠.

지금껏 남아있는 고려말 조선초기의 그림들은 십이지신상만 등장했지만, 이 벽화에는 완전한 인물풍속도 양식으로 그려져있어 그 가치가 더욱 크다. 벽화는 네 벽에 석회를 고르게 발라 말린 후 다시 백분을 얇게 입혀 벽면을 고른 뒤 묵선으로 내용을 그리고 색을 칠하는 백묘화 기법으로 그려져있다. 당대 최고라 할 만큼 빼어난 작품성을 자랑하고 있는 작품은 무덤의 주인인 송은 박익 선생의 당시 권세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태풍이 오지 않았다면 벽화는 여전히 도굴꾼들의 흔적을 품은 채 여전히 지하에 묻혀 있을 지도 모르는 일. 박한식씨는 그 생각을 하면 아직도 아찔한 생각이 든다.

자막> 박한식 총무 / 밀성 박씨 송원공파 대종회
태풍이 없었으면 벽화가 대한민국에 공개가 안됐을 겁니다. 태풍 때문에 공개가 됐는데 어찌 보면 태풍이 이 어른의 은공입니다. 나는 그래 생각합니다. 안 그랬으면 대한민국에 벽화가 알려졌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태풍이 찾아 준 기적같은 선물. 박익 묘 벽화. 벽화는 송은 박익 선생의 절개와 충심을 간직한 채 오늘도 그와 함께 숨 쉬고 있다.


타이틀 - sky A&c 문화유산채널 공동 기획 위대한 유산
 
▣ 이성현 / 스탠딩
이번에는 돌에 새겨진 독특한 그림을 만나보겠습니다.

자막> 돌에 새긴 하늘 / 천상열차분야지도
세계에서 두번째로 오래 된 석각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인데요.

자막> 동양의 시각으로 그려 낸 전혀 다른 밤하늘!
여기에는 우리가 알던 서양식 별자리와는 사뭇 다른 새로운 하늘이 담겨있습니다.

자막> 고구려부터 이어진 하늘지도를 만나다.
고구려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태조 이성계가 돌에 옮긴 밤하늘. 하늘을 섬기는 마음을 담은 돌 위의 옛 지도를 함께 만나보시죠.

타이틀 >7min documentary
타이틀 >7분 다큐

하늘을 경외하며 그 뜻에 순응한 우리 조상들은 하늘의 모습을 거대한 돌판에 그려넣었다. 바로 천상열차분야지도이다. 돌에 새겨진 천문도. 그 속에 담긴 우리의 옛 하늘은 어떤 모습일까?

타이틀> 돌에 새긴 옛 하늘, 천상열차분야지도

자막> 1960년대 창경궁
조선왕조의 별궁으로 건설된 창경궁. 1960년대 말 창경궁에서 놀라운 유물이 발견되었다. 당시 창경궁은 일제에 의해 창경원으로 격하되어 유원지로 이용되고 있었다. 어느날 창경궁 명전전에서 야유회를 즐기던 시민들이 이상한 돌 하나를 발견했다.

자막> 정성희 / 실학박물관 책임 학예사
들판에 뉘어져 있어서 학생들이 소풍갈때 벤치처럼 의자에 앉고 사람들이 석각된 것이 마모가 많이 되다 보니까 별자리라고 생각을 못 했던 거죠. 후에 발견돼서 그게 아주 귀중한, 태조때 석각천문도라는게 알려졌다고 볼 수 있어요.

자막>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 국보 제 228호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발견된 것은 폭 1미터에 높이 2미터가 넘는 거대한 검은 돌판으로 표면에는 무수히 많은 홈이 파여있었다. 사람들의 발에 채이고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부서진 돌판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사라진 세계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석각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였다. 조선 건국 시 태조 이성계가 제작한 것으로 이미 제작된 고구려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14세기 조선의 하늘 모습을 그려넣었다.

자막> 김일권 교수 / 한국학중앙연구원
당시에 고려왕조 500년을 지속했기 때문에 역성혁명을 정당화 시킨다는게 결국 국민들에게 설득성을 부여하는 것인데 어려운 작업이었겠어요. 그리고 그 시대의 전통시대 논리에서는 ‘하늘의 뜻이다’라는 천명론이 항상 중요하기 때문에 그걸 보여주는 많은 장치를 만들었겠죠. 그 중 하나가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하늘의 별자리를 온전히 그려내는 이러한 천문도 제작 사업으로 진행된 것이라고 볼 수 있고요.

자막> 북각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 보물 제 837호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 천본관에는 또 다른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이 존재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표면의 별자리들이 닳게되자 300년 후인 숙종 13년에 다시 새긴 것이다. 천문도와 함께 하늘의 위엄이 옅어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자막> 김일권 교수 / 한국학중앙연구원
숙종 석각, 복각본이라고 합니다. 똑같은 걸 새겼기 때문에 그런데 완전 같지는 않고 별의 크기도 약간 다르고 글자 크기도 더 좋게 하고 이런 차이는 있죠. 그런데 내용이 똑같아서 숙종 복각본이라고 합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이름은 하늘의 형상을 구역 별로 나눠 순서대로 배열해 그린 그림이란 뜻으로 하나의 각석 안에 수많은 정보들이 들어있다.

자막> 천상열차분야지도 탁본 / 자료제공 : 성신여자대학교

자막> 김일권 교수 / 한국학중앙연구원
여기는 태양에 대한 설명이고 달에 대한 설명이고 24절기에 대한 이야기고 네가지는 사방, 사신도 별자리의 합계가 대충 몇 도 폭이냐 이런 것들을 계산해 둔 것이죠. 밑에 있는 것은 제작 경위에 대해서 (적혀있고) 천문학의 전문 지식이 전부 다 새겨져 있는 거죠.

각석에는 커다란 하늘을 표현하는 원 안에 총 1467개의 별을 담았고 4개의 동심원이 그려져있다.

자막> 주극원
가장 안쪽의 작은 원, 주극원에는 북두칠성처럼 1년 내내 볼 수 있는 별이 그려져 있다.

자막> 적도
중간 부분에는 북극과 남극이 있는 둥근 선인 적도가 표시돼있고

자막> 황도
이와 엇갈려 태양이 지나가는 길인 황도가 그려져있다.

자막>
가장 바깥쪽 원인 외규는 눈으로 관측할 수 있는 별자리의 한계선을 표시하고 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당시 북반구에서 관찰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별자리가 새겨져있고 은하수까지 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막> 정성희 / 실학박물관 책임 학예사
가장 놀라운 점은 조선시대 때 별자리를 표준화했다는 것입니다. 과거 고구려 때 사라진 천문도가 발견돼서 그걸 토대로 한양의 위도에 맞춰서 조선 전기에 어떤 천문학의 발전이 그대로 집약된 천문도라고 볼 수 있고요. 조선시대에는 그걸 기준으로 해서 모든 천문관측과 시간을 측정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자막> 천상열차분야지도 / 순우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보다 앞선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석각 천문도는 중국의 순우 천문도다. 13세기 남송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서양식과는 전혀 다른 동양식 별자리 체계를 잘 표현하고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체계는 비슷하지만 몇 가지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자막> 팔곡 / 호시 / 천직 / 기부
우선 같은 이름의 별자리이지만 위치와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별과 별 사이의 거리를 실제 하늘에서의 거리와 비례하도록 표현했기 때문이다. 또 순우천문도의 별은 크기가 같지만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별의 크기가 각각 다르게 그려져있다. 별의 크기로 별의 밝기를 표현한 것이다. 밝은 별은 크기, 희마한 별은 작게 그렸다. 이를 통해 조선이 독자적이며 정확한 천문관측기술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자막> 김일권 교수 / 한국학중앙연구원
지식정보, 교통통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그만큼 만듦으로 해서 아마 천문의 중요성과 보편화를 동시에 추구한 정말 큰 작품으로 생각되고 일본 같은 경우는 이런 지식도 다 가져간단 말이에요. 그래서 천상열차분야지도와 똑같이 생긴 것이 일본에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좋은 게 있으면 배워가는게 맞거든요. 이런 면에서 큰 의의를 보여준 거라고 볼 수 있죠.

우리 옛 하늘의 모습을 담은 천상열차분야지도. 천하의 중심임을 천명한 고구려의 천문 과학 지식을 가늠케하며 조선의 과학기술을 꽃 피운 위대한 과학유산이다.


타이틀 - sky A&c 문화유산채널 공동 기획 위대한 유산
 
▣ 이성현 / 스탠딩
 
자막> 비단을 수놓은 정밀한 궁궐배치도 / 동궐도
16첩 비단에 그려진 정밀한 궁궐지도, 동궐도.

자막> 조선 최고의 화가들이 그린 궁궐지도!
과거에 창경궁과 창덕궁을 담은 이 지도는 당대 최고의 화원들이 모여 그린 만큼 높은 예술적 가치를 자랑하는데요.

자막> 기록과 미술과 역사가 담긴 16폭 그림의 모습은?
세도정치 시대를 개혁하고자 했던 효명세자의 야심이 담겨 그 의미가 더욱 깊은 동궐도를 감상해보겠습니다.

자막> 동궐도 / 국보 제 249호 / 고려대학교 박물관
비단에 그려진 궁궐 그림.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렸다 하여 동궐도라 이름붙여진 작품이다.

자막> 동궐도 / 국보 제 249호 /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본
동궐도란 본래 16편 화첩의 형태로 제작되었다. 화첩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고려대학교 소장본과

자막> 동궐도 / 국보 제 249호 /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본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병풍 형태로 만든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본. 두 작품은 나란히 국보로 지정돼있다. 당대 최고의 도화서 화원들이 총 동원된 역작. 동궐도. 그 속에는 비운의 왕세자 효명세자가 품었던 개혁의 꿈이 담겨 있다.

타이틀> 동궐도에 담긴 개혁의 꿈

누가 언제 제작하였는지 아무런 기록도 남아있지 않은 동궐도.

자막> 효명세자(1809~1830) / 효명세자 (후에 익종으로 추존)의 초상화인 익종 어진 1954년 부산국악원 화재로 얼굴 부분이 소실됨
동궐도 제작에 효명세자가 깊이 관여했을 것이라 생각했던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그 제작시기를 짐작할 수 있는 자료가 남아있다. 1824년 화재로 소실된 창덕궁의 경복전.

자막> 창덕궁 경복전 터
동궐도에는 주춧돌만 그려져 있어 화재가 난 1824년 이후에 제작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자막> 경춘전 / 환경전 / 양화당
또 다른 단서는 1830년 불에 타 없어진 환경전, 경춘전, 양화당 세 전각이다. 이 건물들은 동궐도에 화재 이전의 상태로 묘사돼있다. 이처럼 화재로 소실된 전각들과 동궐도 속의 전각들을 비교해보면 1824년에서 1830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 조선을 다스리던 왕은 순조였다. 그렇다면 왜 순조가 아니라 효명세자가 동궐도를 제작한 것인걸까? 당시는 외척인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로 왕권이 한 없이 추락한 시기였다.

자막> 왕세자에게 서무를 대리하도록 하다. / 순조실록, 순조 27년 2월 9일
1827년 2월 38살이었던 순조는 맏아들인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명한다. 복잡한 정국을 전환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렇다면 대리청정 중이던 효명세자는 어떻게 동궐도의 제작을 지시한 것일까? 그 단서는 그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막> 규장각
정조가 왕권 강화의 목적으로 설치한 규장각. 주변의 건물과 비교해보면 실제보다 크게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수 만권의 책을 갖춘 규장각은 도서관을 넘어 정조의 개혁정치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다.

자막> 정조(1752~1800)
효명세자는 어린시절부터 할아버지인 정조를 닮으려고 노력했다. 실제보다 크게 그려진 규장각은 왕권을 회복하고 조선을 다시 살리려는 효명의 개혁의지가 반영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세도정치의 압박 속에서 외롭게 싸우던 효명세자. 그가 대리청정의 정당으로 사용한 곳은 중희당이다.

자막> 중희당 / 동궁으로 세자의 공식적인 활동 공간
중희당은 아들 정조가 문효세자를 위해 건설한 공간으로 넓은 마당에 해시계, 측우기, 풍기대 등 각종 기상관측 기기가 배치돼있다. 과학을 중시했던 정조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 하지만 200여년이 지난 지금은 덩그러니 터만 남아있다. 효명세자가 머물렀던 처소는 연영합이다.

자막> 연영합 / 효명세자의 처소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동궐도를 통해 단청도 없는 소박한 형태의 팔작 집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속 연영합에는 또 하나의 눈길을 끄는 특징이 있다. 마당에 학 두 마리가 마주보고 서있고 학 옆에는 두 개의 괴석이 놓여져있다.

자막>쌍학은 선회하여 뜰에 있고 늙은 바위는 문 앞에 있으니 이 누를 학석으로 이름 지은 것이 마땅하다. / 효명세자의 <학석소회소서> 중
효명세자가 쓴 학석소회소서라는 글에는 연영합 앞 마당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한 구절이 남아있다. 창덕궁의 북쪽에 자리한 금마문.

자막> 기오헌 / 운경거
금마문을 들어서면 나즈막한 단 위에 독특한 집 두채가 나란히 서있다. 온돌방 하나와 작은 대청. 누마루로 구성된 기오헌은 효명세자가 공부방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단청을 하지 않아 궁의 건물로는 단촐한 모습이고 궁궐 내 유일한 북향 건물이다.

정조를 빼닮아 영특하고 학문에 밝았으며 소박한 성정을 가졌던 효명세자. 단청도 없는 북향 건물에서 새로운 조선을 꿈꿨던 그는 대리청정의 시작과 함께 안동 김씨를 향해 사정의 칼날을 들이댔다. 신진세력을 등용하기 위해 과거제도의 비리를 척결하고 3년동안 50차례가 넘는 과거를 실시했다. 개혁의 꿈을 하나씩 실현해 나가던 효명세자. 그런데 22살이 되던 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대리청정을 시작한지 3년 3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할아버지 정조에 대한 존경의 마음과 개혁의 의지를 동궐도에 담은 효명세자.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효명세자의 야심은 22세 젊은 나이에 꺾이고 말았다. 하지만 그가 남겨놓은 유산 동궐도는 200여년 전 창덕궁과 창경궁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로 남아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 이성현 / 스탠딩
벽화, 천문도, 그리고 비단에 그려진 궁궐의 지도까지 다양한 형태의 그림을 통해 과거로 떠나 봤는데요. 눈 앞에 펼쳐지는 예술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글로 남겨진 역사와는 또다른 재미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위대한 유산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고요. 다음 시간에는 더 알찬 내용으로 찾아오겠습니다. 시청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