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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UHD 섬 문화유산 기행_섬의 들노래 장산도_CHF_1920X1080.mp4 737.37 MB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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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
UCI I801:1909002-001-V00004
제목 섬의 들노래, 장산도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국문
생산자 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생산일자
한국문화재재단 2019-10-16
기여자 정보
기여자 정보
역할 정보 기여자 명
제작사 Ctree
주연 강제윤
기술 정보
기술 정보
기술 영역 기술 내용
기타정보
내용정보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1호 장산도들노래,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52-1호 장산도씻김굿
역사정보
인물정보 장산도 들노래 기능 보유자 강부자, 장산도씻김굿 기능 보유자 이귀인, 지춘상
지리정보 전라남도 신안군
관련 키워드 섬;들노래;노동요;장산도;우장;밭매기 노래;논맴소리;오음마을;오동추;공수마을;마초마을;하중밭매기 노래;목화;둥더기타령
내용 전남 신안의 수많은 섬들 가운데, 가장 최남단에 위치한 장산도.
장산도는 주변이 섬으로 둘러 싸여 어업보다는 농업이 발달한 섬으로 대표적인 농작물은 마늘과 양파이다.
농업이 주가 되어 여성들의 일이 많았는데,
오음마을에서 시작되어 힘든 노동을 할 때 농요를 부르며 힘든 노동을 이겨내는 여성들의 들노래와
공수마을, 마초마을에서 전해지는 밭매기 노래를 취재 하였다.
대본 정보
문화유산기행


프롤로그>>

Na)누렇게 들판이 익어갑니다.


아저씨) 훠어~~ 훠어~~


Na) 알이 꽉 찬 나락을 기다리는 것은 농부만은 아닌가 봅니다.

수확을 앞두고 있는 이 곳.

1년 내, 농부가 흘린 땀을 저버리지 않는 비옥한 땅입니다.


자막> 땅이 찰 땅이여. 모래땅이 아니고 모래땅이 아니니까, 비와도 사태가 안 일어나
그러니까 장산도 땅은 쉽게 말해서 기름진 땅, 기름이 번들번들한 땅
할머니) 자막> 땅이 찰 땅이여. 모래땅이 아니고 모래땅이 아니니까, 비와도 사태가 안 일어나
그러니까 장산도 땅은 쉽게 말해서 기름진 땅, 기름이 번들번들한 땅

Na) 척박한 섬을 들로 만든 기름진 땅.

그 땅을 일구며 삶의 시름을 잊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섬에는 여인들의 들노래가 울려 퍼집니다.

자막> 그리고, 그 섬엔
여자들의 들노래가 있다

자막> 섬의 들노래, 장산도

Na) 황금 물결 넘실대는 이 너른 들판은 놀랍게도 육지가 아니라 섬입니다.

어엿한 섬이지만 어업보다는 농사가 발달한 곳. 장산도입니다.


(CG)

Na) 전남 신안의 수많은 섬들 가운데, 가장 최남단에 위치한 장산도.

장산도는 주변을 큰 섬들이 다 둘러싸고 있어, 큰 바다와 접하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 어업이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자막> 장산도

섬 전체가 하나의 긴 산줄기로 이어져 있어 이름도 장산도입니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1시간 반. 장산도에 들어서면 이내, 너르게 펼쳐진 들녘과 만납니다.


Na) 어업이 발달하지 못한 대신, 농경지가 발달한 섬.

해양성 기후에 강우량이 풍부해 기후도 농사 짓기에 적합합니다.

주민들 중에는 새우, 다시마 양식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농사를 주업으로 합니다.

이곳의 대표적인 농작물은, 마늘와 양파입니다.

초가을 들녘은 마늘 파종이 한창입니다.



강제윤) 일하는게 더 많이 힘들겠네

자막> 김영심
53세
어떻게 힘드나 하면, 농사 가격은 없지
여기 (장산도)는 다들 농사 지어요?
전부 농사짓지, (바닷일을) 하자 하면 새비(새우) 키우고 전복하고 이것 밖에 없어요


김영심) (농사일은) 죽을 만큼 힘들지 어떻게 힘드나 하면, 농사 가격은 없지

강제윤) 여기 (장산도)는 다들 농사 지어요?

김영심) 전부 농사짓지, (바닷일을) 하자 하면 새비(새우) 키우고 전복하고 이것 밖에 없어요



Na) 마을의 한 농가. 이 집에서도 마늘 파종을 합니다.

아저씨가 밭을 정리한 다음, 각 이랑마다 구멍이 있는 비닐을 깔아주면 여인네들의 파종작업이 시작됩니다.

자막> 강제윤
섬여행가
요새 마늘 심으시나 봐요?
네. 지금 마늘 파종이 적기에요
아, 지금, 장산에 마늘 농사 많이 짓나요?
주로 마늘, 양파 농사가 주작물이죠
아, 밭농사는 (그렇군요).
논은 벼가 주작물이고 그렇죠
마늘 양파. 그러시구나.
(아주머니들은)일 도와주러 오셨나봐요?
자기일도 많으면서도 우리 일 도와주러 오셨어요
들노래 한 자락 하시면서 하시면 일이 덜 힘드시겠어요?
어머니, 노래 한 자락 해주세요
논 노래요?
밭 노래죠. 밭이니까
밭노래?

자막> 밭매기 소리 中 받는 소리
알이시구나 에허여~ 허허
에야~에야 먼동~네로구나

강제윤) 안녕하세요. 일하고 계시네요
요새 마늘 심으시나 봐요?

아저씨) 네. 지금 마늘 파종이 적기에요

강제윤) 아, 지금, 장산에 마늘 농사 많이 짓나요?

아저씨) 주로 마늘, 양파 농사가 주작물이죠

강제윤) 아, 밭농사는 (그렇군요).

아저씨) 논은 벼가 주작물이고 그렇죠

강제윤) 마늘 양파. 그러시구나.
(아주머니들은)일 도와주러 오셨나봐요?

아저씨) 자기일도 많으면서도 우리 일 도와주러 오셨어요

강제윤) 들노래 한 자락 하시면서 하시면 일이 덜 힘드시겠어요?
어머니, 노래 한 자락 해주세요

아주머니) 논 노래요?

강제윤) 밭 노래죠. 밭이니까

아주머니) 밭노래?



Na) 장산도 여인이라면 누구나 한 자락씩은 부를 줄 아는 노래,

들노래입니다.

주거니 받거니, 한 자락만 해보자고 시작한 노래도

부르다 보니 흥이 납니다.


자막> 우리 할머니 때부터 입으로, 입으로 전해 내려온 농요입니다
아저씨) 우리 할머니 때부터 입으로, 입으로 전해 내려온 농요입니다


Na) 그런데 섬에서 어떻게 이런 들노래가 이어지고 있을까요?

하나둘 섬 주민들이 모여듭니다.

그들이 가는 곳은 다름 아닌 장산도 들노래 전수관.

장산도 들노래 팀원들입니다.

전통 의상까지 갖춰 입었습니다.

옛날에 농사지을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재현한 것입니다.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의상도 분장도 다릅니다.

이 아주머니는 심술궂은 양반 역할입니다.

장산도 들노래는, 모내기철이나 논매기철에 농부들이 일을 하면서 부르던 노래를 말합니다.


자막> 준비들 많이 하셨어요? 등에 멘 건 뭐예요?
비우장. 우장. 비 내리면 비 안 맞게
비옷이네

강제윤) 준비들 많이 하셨어요? 등에 멘 건 뭐예요?
아주머니들) 비우장. 우장. 비 내리면 비 안 맞게
강제윤) 비옷이네



Na) 날이 궂어도 일을 해야 하는 농부들에게 우장은 필수품 이었습니다.


자막> 이렇게 숙여서 일을 하니까..
초가집 있잖아요, (방법과) 똑 같아요
등에다 초가집 하듯이

강제윤) 이렇게 숙여서 일을 하니까..

아주머니) 초가집 있잖아요, (방법과) 똑 같아요

강제윤) 등에다 초가집 하듯이



Na) 장산도 들노래 단원들은 모두 장산도 주민들입니다.

그래서 다들, 오래 알고 지낸 이웃들입니다.


자막> 내가 송가인(가수)인 이요
아 그래요? 장산도, 송가인
네. 장산도, 송가인
그러면 노래 한 곡 해주세요

아주머니) 내가 송가인(가수)인 이요
강제윤) 아 그래요? 장산도, 송가인
아주머니) 네. 장산도, 송가인
강제윤) 그러면 노래 한 곡 해주세요



Na) 누구나 노래 한 자락에 어깨춤은 기본.

장산도 주민들은 다~ 흥이 많습니다.


자막> 밤에.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연습하고?
아이고 힘들겠네
낮에 고추 따고, 마늘 심고 녹두 따고, 그래도 여기오면 언제 아팠냐, 언제 힘드냐 여기 오면 힘든 것도 다 날려버려요

강제윤) 밤에.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연습하고?
아이고 힘들겠네
아주머니) 낮에 고추 따고, 마늘 심고 녹두 따고, 그래도 여기오면 언제 아팠냐, 언제 힘드냐 여기 오면 힘든 것도 다 날려버려요



Na) 장산도 들노래는 모내기부터 논매기를 마무리하기까지, 논농사의 주요 과정이 노래에 다, 들어있습니다.

마을사람들이 다 같이 품앗이를 하며 모를 뜨고, 모를 심고, 논을 매고, 마지막 뒤풀이 하는 과정까지 노래에 다 들어 있습니다.

노래의 구성도 메기는 소리와 받는 소리로 나뉩니다.

앞소리를 하는 사람이 소리를 먼저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이 뒤소리를 받습니다.

각 노래마다 가락의 빠르기도 다양합니다.

자막> 손경연
65세
마당, 마당이 늦은 소리부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넘어가면서 자꾸 템포가 빨라지면서 신명 나게 해주거든요.
그래서 듣는 사람으로 인해서 지루함이 없고 그래요. 어느 누구나 옆에 앉아 있으면 춤이 나오죠. 우리 장산 들노래가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손경연) 마당, 마당이 늦은 소리부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넘어가면서 자꾸 템포가 빨라지면서 신명 나게 해주거든요.
그래서 듣는 사람으로 인해서 지루함이 없고 그래요. 어느 누구나 옆에 앉아 있으면 춤이 나오죠. 우리 장산 들노래가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Na) 이번에는 하중 밭매기 노래입니다. 장산도의 노동요는 논에서

부르는 장산도 들노래와 밭에서 부리는 하중 밭매기 노래로 나뉩니다.


자막> 김진오 67세
장산 들노래보존회 회장
우리 하중밭매기노래는 육지에서는 들을 수 없는 아주 독특한 노래이죠
그러니까 앞 소절을 부르고 나면 이제 모든 밭 맨 사람들이 떠드렁 꿍떵 하고 받는데 앞 소리는 좀 경노리에 가깝고 뒤 소리는 육자배기 소리에 가까운 그런 노래죠.

김진오) 우리 하중밭매기노래는 육지에서는 들을 수 없는 아주 독특한 노래이죠
그러니까 앞 소절을 부르고 나면 이제 모든 밭 맨 사람들이 떠드렁 꿍떵 하고 받는데 앞 소리는 좀 경노리에 가깝고 뒤 소리는 육자배기 소리에 가까운 그런 노래죠.



Na) 호미질 하는 박자에 맞춰 노래를 부르다 보면, 어느새 그 긴 밭도 다 매게 됩니다.

밭을 다 매고 나올 때쯤 되면, 노래는 잦은 소리로 빨라집니다.

밭을 다 매고 나오면, 둥글게 둘러 앉아, 바가지 소리를 내는

둥덩기 타령을 부릅니다.

늦은 소리에서 잦은 소리로 바뀌는 둥덩기 타령를 부르며,

사람들은 밭일을 끝내고, 하루의 피로를 풀어줍니다.

이처럼 일 하는 동선, 감정 상태가 다 들어 있는 것이 노동요입니다.

장산도의 들노래는 전문 노래꾼이 아닌, 마을 사람들에 의해 전수되고 있습니다.

1981년 들노래단이 처음 꾸려진 이래 지금까지 제 3세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막> 정연배 70세
장산 들노래보존회 단장
지금은 나이가 그 전보다 아래로 내려왔는데, 70대 아래로 내려왔는데 80넘으신 분도 계시고 고령자가 두 분 84살, 82살 계시고
젊은 분들은 그러면은 (어떻게 되죠?)
젊은 분들은 50대 후반
제일 젊은 분이 50대 후반

정연배) 지금은 나이가 그 전보다 아래로 내려왔는데, 70대 아래로 내려왔는데 80넘으신 분도 계시고 고령자가 두 분 84살, 82살 계시고
강제윤) 젊은 분들은 그러면은 (어떻게 되죠?)
정연배) 젊은 분들은 50대 후반
강제윤) 제일 젊은 분이 50대 후반

Na) 농번기에는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밤 늦게까지 연습을 해야 하는

고된 일정입니다. 하지남 섬 주민들의 이런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장산도 들노래가 있습니다.



제작진) 다들 전문가가 아니라 섬 주민이신거죠?

자막> 박연석 64세
장산 들노래보존회 총무
그렇죠 다 섬 주민이죠
그러니까 이게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연습에 그래도 대부분 참여를 잘 하는 편이에요
거의 80-90퍼센트는 나와서 하거든요
일이 바빠도 뭐라 안하고 그러고 와서 한 두 시간씩 연습하고.
대부분 사람들이 일하고 힘들어도 (들노래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아요

박연석) 그렇죠 다 섬 주민이죠
그러니까 이게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연습에 그래도 대부분 참여를 잘 하는 편이에요
거의 80-90퍼센트는 나와서 하거든요
일이 바빠도 뭐라 안하고 그러고 와서 한 두 시간씩 연습하고.
대부분 사람들이 일하고 힘들어도 (들노래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아요


Na) 장산도 들노래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잘 전수가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자막> 김진오 67세
장산 들노래보존회 회장
장산 들노래가 발굴된 그 과정은 1976년 9월 16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우리 장산 들노래 지휘자였던 이귀인씨가 목포 문화원 주최 민요 경연 대회에서 장산도 논맴소리로 1등 상을 수상했어요
그래가지고 이제 79년도에 전남대학교 지춘상교수님이 그 장산도 씻김굿을 채록하러 오셔서
아주 이거는 값어치 있는 들노래기 때문에 남도 문화에 출연을 해라 그렇게 권유를 해가지고 (발굴되었죠)

김진오) 장산 들노래가 발굴된 그 과정은 1976년 9월 16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우리 장산 들노래 지휘자였던 이귀인씨가 목포 문화원 주최 민요 경연 대회에서 장산도 논맴소리로 1등 상을 수상했어요
그래가지고 이제 79년도에 전남대학교 지춘상교수님이 그 장산도 씻김굿을 채록하러 오셔서
아주 이거는 값어치 있는 들노래기 때문에 남도 문화에 출연을 해라 그렇게 권유를 해가지고 (발굴되었

Na) 자칫 잘못했으면 사라질 뻔한 노래를 발굴해, 1982년 대한민국 국악제에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때부터 장산도 들노래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1988년, 전라남도 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었습니다.



자막> 육지의 들노래가 좀 투박한 질그릇에 비유된다 하면 우리 장산도 들노래는 여성들의 아름다움
또 여성들의 내면의 정서가 아주 깊게 배어 있는 그런 들노래기 때문에
이제 전국 대회 나갔던지 남도 문화에 나갔을 때 호응을 받은 이유가 그거죠
보통 육지의 들노래는 남자분들이 부르는데
이제 우리 섬 지방 장산 들노래는 주로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서 부르는 노래기 때문에


김진오) 육지의 들노래가 좀 투박한 질그릇에 비유된다 하면 우리 장산도 들노래는 여성들의 아름다움
또 여성들의 내면의 정서가 아주 깊게 배어 있는 그런 들노래기 때문에
이제 전국 대회 나갔던지 남도 문화에 나갔을 때 호응을 받은 이유가 그거죠
보통 육지의 들노래는 남자분들이 부르는데
이제 우리 섬 지방 장산 들노래는 주로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서 부르는 노래기 때문에

Na) 그렇다면 이 장산도 들노래는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걸까요?

장산도 들노래의 고향은 이곳 오음마을입니다.

오음마을은 장산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오음산이 굽어 보고 있는 마을입니다.

다섯 개의 음을 가진 산이라는 뜻의 오음산, 그 이름만으로도 심상치 않은데요.

오음마을은 오음산을 시작으로 여러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예로부터 산골짜기에서부터 내려오는 물골이 발달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물골 주변으로 자연히 논이 생겨났고, 농토가 발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막> 그런데 개오리 들녘이 아주 비옥한 땅이라고 개오리 들녘 쌀밥을 먹고 죽은 송장은 더 다른 송장보다 무겁다고 그 정도로 비옥한 땅이었어요

그러니 논농사에 아주 적합한 곳이죠


김진오) 그런데 개오리 들녘이 아주 비옥한 땅이라고 개오리 들녘 쌀밥을 먹고 죽은 송장은 더 다른 송장보다 무겁다고 그 정도로 비옥한 땅이었어요

그러니 논농사에 아주 적합한 곳이죠



Na) 너른 논이 많다 보니, 그 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들노래는 자연스럽게 생겨났습니다.



자막> 손경연
65세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농가 일을 하면 그렇게 부를 누리는 사람들이 그렇게 (들노래를) 집에서 했었어요
그리고 뒷풀이로 마을 지주 집에 가서 마당에서 놀고 다들 그렇게 했어요

손경연)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농가 일을 하면 그렇게 부를 누리는 사람들이 그렇게 (들노래를) 집에서 했었어요
그리고 뒷풀이로 마을 지주 집에 가서 마당에서 놀고 다들 그렇게 했어요



Na) 하지만 이곳 사람들만이 알고 부르는 노래로 묻힐 뻔 했던 장산 들노래.

장산 들노래를 세상에 알리는데 기여를 한 이들이 있습니다.

장산도 들노래 기능 보유자인 강부자씨입니다

강부자씨는 각종 대회에 장산도 대표로 나가 수상을 하며 장산들노래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82세의 강부자씨는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자막> 강부자 82세
장산 들노래 기능보유자
나 젊을 때 왔으면…(말줄임)
작년까지만 왔어도
올해 내가 이렇게 못쓰게 되어 버렸어

강부자) 나 젊을 때 왔으면…(말줄임)
작년까지만 왔어도
올해 내가 이렇게 못쓰게 되어 버렸어


Na) 강부자씨를 노래꾼으로 발굴한 이는 다름 아닌 남편 이귀인씨였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이귀인씨는 오음마을 출신의 타고난 예인이었습니다.

어릴 적 듣던 들노래를 다 기억해 발굴해 낸 이도 이귀인씨였습니다.


자막> 어른(남편)이 처음에 들노래를 시작을 했어
장산에서 태어나서 장산에서 큰(자란) 사람이라 장산에서 들노래를 하더라고
꽹과리도 잘 치고 장구도 잘 치고 그래
그러니까 (뭐든) 앞소리(받는 소리)나가고
거문고 같은 거 치면 앞소리로 나가고 그런 것을 잘했어
그러니 소질이 있으니까 그거 다 한다고 했지

강부자) 어른(남편)이 처음에 들노래를 시작을 했어
장산에서 태어나서 장산에서 큰(자란) 사람이라 장산에서 들노래를 하더라고
꽹과리도 잘 치고 장구도 잘 치고 그래
그러니까 (뭐든) 앞소리(받는 소리)나가고
거문고 같은 거 치면 앞소리로 나가고 그런 것을 잘했어
그러니 소질이 있으니까 그거 다 한다고 했지



Na) 전라남도 무형문화재인 씻김굿 기능 보유자였던 이귀인씨는 집안 대대로 세습 무속인이었습니다.

그런 이귀인 씨에게 시집 와 오음마을에 살다보니 강부자씨에게도 들노래는 낯설지 않았습니다.


자막>
늙은 할머니들하고 논을 메러 가
논을 메러 따라가면 그렇게 오동추를 부르더라고
오동추를 부르니까 '아, 여기는 또 오동추를 저렇게 부르는구나 하고 귀로만 들었지
그런데 우리가 막상 준비해서 나가려니 누가 할 사람이 없어. 그래서 내가 들고 나섰지

강부자) 늙은 할머니들하고 논을 메러 가
논을 메러 따라가면 그렇게 오동추를 부르더라고
오동추를 부르니까 '아, 여기는 또 오동추를 저렇게 부르는구나 하고 귀로만 들었지
그런데 우리가 막상 준비해서 나가려니 누가 할 사람이 없어. 그래서 내가 들고 나섰지

Na) 남편은 연출자로, 아내는 진도 출신 타고난 노래꾼으로, 부부는 각종 대회를 휩쓸고 다니며 장산도 들노래를 전국에 알리는데 힘썼습니다.



자막> 노래 부를 땐 힘이 나세요?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아무리 해도 노래 부를 때는 힘이 나
힘이 나니 하지. 힘 안 나고 그냥 쭉정이 되면 못 해
막 그럴 때는 막 아주 용기 내서 해야지목은 생전 쉬지도 않아. 목은

제작진) 노래 부를 땐 힘이 나세요? 아무리 힘들어도
강부자) 그렇지 아무리 해도 노래 부를 때는 힘이 나
힘이 나니 하지. 힘 안 나고 그냥 쭉정이 되면 못 해
막 그럴 때는 막 아주 용기 내서 해야지목은 생전 쉬지도 않아. 목은


Na) 하지만 그 시절이 다 어디 갔나 싶습니다.

하루 종일 농사일 하고, 그 고단한 몸으로 밤새 노래를 해도 목 한번

쉬지 않던 시절, 들노래가 강부자씨에겐 큰 힘이었습니다.


자막>
그래도 들노래가 (인생의) 전부 이잖아요
전부지
전부야. 눈물로 막 세월을 보냈어
내가 왜 이런 것 하면서 고생을 하나
내 고생을 어떻게 말로 다해 논 하나를 다 망쳐버려다니까…(말줄임)
(들노래에만) 남편이 신경쓰고
아침에 사람 소집하려면 첫 새벽에 (남편이) 나가
내가 밥하려고 나오면
내가 고생 아주 많이 했지

제작진) 그래도 들노래가 (인생의) 전부 이잖아요
강부자) 전부지
전부야. 눈물로 막 세월을 보냈어
내가 왜 이런 것 하면서 고생을 하나
내 고생을 어떻게 말로 다해 논 하나를 다 망쳐버려다니까…(말줄임)
(들노래에만) 남편이 신경쓰고
아침에 사람 소집하려면 첫 새벽에 (남편이) 나가
내가 밥하려고 나오면
내가 고생 아주 많이 했지

Na) 들노래는 강부자씨의 지난 삶 그 자체입니다.


자막> 장산 들노래 중에서 한 소절 만 불러봐 주세요
오동추 불러줄까?

제작진) 장산 들노래 중에서 한 소절 만 불러봐 주세요
강부자) 오동추 불러줄까?



Na) 오음마을의 손경연, 윤순심 부부에게도 들노래는 남다릅니다.

남편은 장구를 치고, 아내는 노래를 하고

두 사람 다 장산도 들노래 단원입니다.

장산도에서 나고 자란 두 사람이 부부의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덧 40년 세월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마주 앉아 노래도 같이 할 정도로 여유가 생겼지만, 지난 세월은 그리 녹록치 않았습니다.

시할머니, 시어머니까지 모시는 시집살이에, 농사일, 김양식. 거기다 2난 1녀 자식뒷바라지까지.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다 해냈나싶습니다.


자막> 윤순심 64세
(섬 살이가) 엄청 힘들었죠
눈물 나서 말을 못하겠어요
(그때는) 김을 하고 사업을 하면서…(말줄임)
그렇게 (힘들게) 살았죠
내가 ‘저 배가 가면, 나도 꼭 나가야겠다’ 했어도
그 자식들 때문에 (못 갔죠)
제가 또 선창까지 나갔었습니다
뱃머리까지 나갔는데
다시 자녀들 놔두고 어디로 가겠어요
다시 도로 왔죠. 시집살이 엄청 했죠

윤순심) (섬 살이가) 엄청 힘들었죠
눈물 나서 말을 못하겠어요
(그때는) 김을 하고 사업을 하면서…(말줄임)
그렇게 (힘들게) 살았죠
내가 ‘저 배가 가면, 나도 꼭 나가야겠다’ 했어도
그 자식들 때문에 (못 갔죠)
제가 또 선창까지 나갔었습니다
뱃머리까지 나갔는데
다시 자녀들 놔두고 어디로 가겠어요
다시 도로 왔죠. 시집살이 엄청 했죠

자막> 윤순심
64세
우리 들노래를 하면
가세 가세 어서 가세 미엉(목화) 따러 어서 가세
느그 엄마 어디 가고
느그 형제 미엉 따나
그런 노래를 하면 굉장히 슬프고
부모 생각이 간절하잖아요
그런데서 이렇게 힘들게 일할 때도
혼자도 노래를 부르면서 해요
저는 그 노래를 안 잊으려고

윤순심) 우리 들노래를 하면
가세 가세 어서 가세 미엉(목화) 따러 어서 가세
느그 엄마 어디 가고
느그 형제 미엉 따나
그런 노래를 하면 굉장히 슬프고
부모 생각이 간절하잖아요
그런데서 이렇게 힘들게 일할 때도
혼자도 노래를 부르면서 해요
저는 그 노래를 안 잊으려고

Na) 장산도의 논과 들에서 허리 굽혀 일하던 여인들에게 들노래는 절로 나온 노래였습니다.



자막> 김진오 67세
장산 들노래보존회 회장
섬 안에서는 주로 일을 여성분들이 하거든요
여성들이 일을 하기 때문에 우리 장산은 자동적으로 여성의 노래가 발달했죠

김진오) 섬 안에서는 주로 일을 여성분들이 하거든요
여성들이 일을 하기 때문에 우리 장산은 자동적으로 여성의 노래가 발달했죠


Na) 1999년부터 들노래 단원으로 활동하며 고단한 삶을 견뎌온 윤순심씨.

그런 아내를 따라 남편 손경연씨도 들노래 전수에 열심입니다.

이제 이들 부부에게 장산도 들노래는 이 섬을 떠나지 않고 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막> 윤순심 64세
정말 장산 들노래가 저에게는 최고로 좋아요
그리고 저의 남편이 너무 좋아하시고
우리 자식들은 너무 힘들게 사니까 좀 힘 덜 들게 광주 와서 (살라고 해요)
우리 며느리도 아파트 앞에다 사준다고 오라고 해도 절대 안 간대요
우리 들노래 난 이렇게 좋은데 어딜 가냐고 절대 안 간대요

윤순심) 정말 장산 들노래가 저에게는 최고로 좋아요
그리고 저의 남편이 너무 좋아하시고
우리 자식들은 너무 힘들게 사니까 좀 힘 덜 들게 광주 와서 (살라고 해요)
우리 며느리도 아파트 앞에다 사준다고 오라고 해도 절대 안 간대요
우리 들노래 난 이렇게 좋은데 어딜 가냐고 절대 안 간대요


Na) 농사일은 사시사철, 철에 맞게 꼭 해줘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손경연, 윤순심 부부의 밭을 매러, 마을 사람들이 품앗이를 왔습니다.



아주머니) 일하면서 노래 부르면 겁나게 뻗쳐(정말 흥이나)



(자진밭매기 中 받는 소리)

알이시구나 에헤여~허허~

에야~에야 먼동~네로구나



Na) 장산도 들노래가 오음마을에서 전해진 거라면, 하중 밭매기 노래는 밭이 많았던 공수마을, 마초마을에서 전해지는 노래입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장산도는 목화재배를 많이 했던 섬입니다.

무더운 한여름에 목화밭에서 땀 흘리며 여인들이 부르던 노래가 하중 밭매기 노래입니다.



자막> 이 하중밭매기 노래는 이제 곧 밍주(명주)라고 하는데
이 밍주가 명, 명이 목화
여름에 밭을 맨다 해서 하중밭매기 노랜데
이 노래가 우리 장산에서는
목화 재배를 1965년도까지 했죠
그 목화밭을 매면서 부르는 노래가 밍주
밍주가 하중밭매기 노래
하중밭매기는 여름철에 밭을 매면서 부르는 노래가 하중밭매기 노래죠

김진오) 이 하중밭매기 노래는 이제 곧 밍주(명주)라고 하는데
이 밍주가 명, 명이 목화
여름에 밭을 맨다 해서 하중밭매기 노랜데
이 노래가 우리 장산에서는
목화 재배를 1965년도까지 했죠
그 목화밭을 매면서 부르는 노래가 밍주
밍주가 하중밭매기 노래
하중밭매기는 여름철에 밭을 매면서 부르는 노래가 하중밭매기 노래죠



Na) 입에서 입으로,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들노래가 지금처럼 기록으로 남기까지는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80년대와 90년대, 들노래를 부를 줄 아는 이들의 노래를 채록해 악보작업을 했고 그것이 책으로 정리됐습니다.



자막> 밭매기 소리 中 받는 소리 (1987년)

앞소리 : 강부자

맞이소리 : 운화덕, 진금순, 정금자

알이시구나 에헤여~허허~

에야~에야 먼동~네로구나

알이시구나 에헤여~허허~

에야~에야 먼동~네로구나



Na) 섬이면서 섬 같지 않은 비옥한 들녘을 품은 곳. 장산도.

장산도의 독특한 땅은, 그 섬에 사는 이들의 삶을 결정했고,

그 삶은 또 독특한 문화를 낳았습니다.

흥겨운 노래를 따라하다 보면, 여인들의 밭매기도 속도가 붙습니다.


자막> 이렇게 밭에서 일할 때 저희들이 힘들고 좀 마음이 서글플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하면 흥겹고 힘이 덜 들고

아주머니) 이렇게 밭에서 일할 때 저희들이 힘들고 좀 마음이 서글플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하면 흥겹고 힘이 덜 들고



자막> 둥더기타령

앞뜰에도 보리밭 뒤뜰에도 보리밭

어따야 저 보리 다 시들어 진단다



당기둥덩 둥덩에당



Na) 고단한 삶도 가슴속 응어리도, 흥과 웃음으로 승화시킬 줄 알았던 섬 여인들.

그들의 노래가 언제까지 장산도에 울려 퍼질 수 있을까요?

사람과 땅, 그리고 그들의 땀과 노동이 만들어 낸 들노래.

섬 여인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들노래가 있었기에 여인들은 삶에 순응할 수 있었습니다.


자막> 주제가 배운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지만
우리 들노래 들어와서 함께 합시다 해서
기꺼이 형님들이고 언니들이고 다 협조해서
지금 이렇게 해서 들노래 연습하면 즐겁고, 즐겁다잖아요


윤순심) 아주제가 배운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지만
우리 들노래 들어와서 함께 합시다 해서
기꺼이 형님들이고 언니들이고 다 협조해서
지금 이렇게 해서 들노래 연습하면 즐겁고, 즐겁다잖아요



Na) 하지만 이 들노래를 알고, 즐기는 이들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자막>
김진오 67세
장산 들노래보존회 회장
그런데 이제 앞으로가 문제죠.
왜 그러냐 하면 지금 현재 3세대 단원들이 제일 나이가 적은 분이
62년생, 63년생. 그런데 이제 50대 중반이 되고 다 60대 중, 후반인데
이분들이 이제 맥이 끊길 그런 염려가 있기 때문에 좀 약간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죠

김진오) 그런데 이제 앞으로가 문제죠.
왜 그러냐 하면 지금 현재 3세대 단원들이 제일 나이가 적은 분이
62년생, 63년생. 그런데 이제 50대 중반이 되고 다 60대 중, 후반인데
이분들이 이제 맥이 끊길 그런 염려가 있기 때문에 좀 약간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죠

자막> 이제는 또 얼마나 오래 이것이 지속적으로
전승이 될지는 알 수 없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점점 고령화되고
나이가 드시고…(말줄임)
농사짓는 사람이 없어지면 들노래도 사라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냥 문화재로만 남지 않을까 하는 그런 안타까움이 있죠

강제윤) 이제는 또 얼마나 오래 이것이 지속적으로
전승이 될지는 알 수 없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점점 고령화되고
나이가 드시고…(말줄임)
농사짓는 사람이 없어지면 들노래도 사라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냥 문화재로만 남지 않을까 하는 그런 안타까움이 있죠



자막> 씨앗이 앗은 소리



Na)장산도의 들녘을 물들이며, 들노래가 울려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