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이미지 및 저작권 정보(N2L)
| 대표이미지 | 저작권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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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 국가유산진흥원 | ||
| 전자자원소장처 | 다빈치커뮤니케이션 | ||
| 공공누리 저작권 |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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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CL 정보 | |||
| 소스코드 | <iframe width="1000px" height="480px" src="http://uci.k-heritage.tv/resolver/I801:2101002-002-V00003?t=3"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
콘텐츠 기본 정보(N2C)
| UCI | I801:2101002-002-V000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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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한국 속의 과학 - 신찬벽온방 | ||||||||||||||||||
| 콘텐츠 유형 | 동영상 | 언어정보 | 국문 | ||||||||||||||||
| 생산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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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여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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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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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키워드 | 신찬벽온방;허준;전염병;사회적거리두기 | ||||||||||||||||||
| 내용 | 조선시대에는 전염병 치료제와 관련하여, 어떤 기록이 있을까? 1612년 12월은 광해군에게 잔인한 해였다. 함경도에서 시작된 전염병이 강원도를 거쳐 전국으로 급속히 퍼지고 있었다. 광해군 4년(1612년)에 전염병 예방과 치료법에 대한 매뉴얼이 생겼는데 그게 신찬벽온방이다. 광해군의 명으로 허준이 펴낸 의서로 동의보감보다 약 9개월 앞서 발간된 의서이다. 1612년 당시 함경도 지방에 유행하던 전염병의 예방과 치료법을 적었다. 1991년과 2006년에 각각 보물 제1087-1호(3종 3책, 활자본)와 보물 제1087-2호(1권 1책, 필사본) 지정되었으며, 2014년 현재 서울대학교규장각 한국학연구원과 허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허준은 전염병 창궐의 원인을 어떻게 보았을까? ‘운기의 부조화’로 보았다. 따뜻해야 할 봄이 춥거나, 더워야 하는 여름이 서늘하거나, 서늘해야 하는 가을이 덥거나, 추워야 하는 겨울이 따뜻해지는 경우를 말한다. 동의보감에서는 ‘춥고 더운 것이 때에 맞지 않으면 사람들은 흔히 역병에 걸린다’고 역시 적고 있다. 온역(瘟疫), 맥리(脈理), 형증(形證), 약명(藥名), 치법(治法), 양법(穰法), 벽법(辟法), 부전염법(不傳染法), 침법(鍼法), 불치증(不治證), 금기(禁忌) 등 22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에서도 온역(溫疫)의 예방과 치료법을 실은 전문의학서이다. 앞부분에서는 화운(火運)의 해에 온역병(溫疫病)이 많다는 것, 운기(運氣) 변화로 온역병이 생긴다는 것, 철에 맞지 않는 기후로 온역병이 생긴다는 것과 온역병의 원인을 설명한 다음 온역병의 경과 과정을 3개의 단계로 나누고 매 단계의 증상과 치료법, 처방, 온역병 때의 합병증, 감별해야 할 질병 등을 구체적으로 썼다. 책의 뒷부분에는 온역병 때의 섭생과 금기, 그리고 온역 예방법을 설명했다. 조선 광해군 시기 한국의 전염병 전문 치료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하게 사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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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본 정보 | 서울 강서구 가양동 일대를 거닐면 도로와 아파트 사이로 작은 계단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길 끝에 만나게 되는 천연동굴. ‘허가바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바위에는 왜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일까요. 이 바위의 정기를 받고 뛰어난 인물들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내려오는데요. 그 중 한 사람이 허준입니다. 허준의 시조인 허선준이 태어난 곳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동의보감이 이곳에서 완성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1610년, 허준이 쓴 조선 최고의 의학서적, 선조 때 왕명을 받아서 쓰기 시작한 이 서적은 광해군 때 빛을 보게 되는데요. 광해군은 또다른 의서를 허준에게 명합니다. 동의보감과 같은 의학서적이 있는데 왜 다른 의서가 또 필요했던 걸까요. 광해군 4년, 1612년 말. 함경도에 전염병 온역이 돌기 시작해서 전국으로 퍼집니다. 그동안 전염병에 대한 치료는 미신에 의지해 왔지만 마음이 급해진 광해군은 허준을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허준은 전염병 예방과 치료에 관한 저술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이듬해 나오게 된 책이 ‘신찬벽온방(新纂辟瘟方)’입니다. 신찬벽온방을 오늘날로 보자면 전염병 환자를 대하는 방법을 적어놓은 조선시대 진단키트였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써있을까요? “문을 열어두고 큰 솥에 물 두 말을 태워 집 한가운데 두고 소합향원 20환을 넣고 달인다. 향기가 역기를 흩어버릴 수 있다. 환자가 한 그릇을 마신 후 의원이 들어가 진찰한다.” 여기서 소합향원은 기로 인한 모든 질병과 중풍 치료, 소독약으로도 사용한 약물입니다. 신찬벽온방에는 이외에도 소독과 살균에 관한 여러 내용들이 기술돼 있습니다. “집안에 시역, 즉 전염병이 유행하면 처음 병이 걸린 사람의 옷을 깨끗하게 세탁한 후 밥 시루에 넣고 찐다.” “웅황가루를 참기름에 개어 콧구멍 속에 바르면 환자와 침상을 함께 해도 전염되지 않는다.“ 여기서 웅황은 살균작용을 한다고 알려져 있는 광석을 뜻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생활 속 거리두기와 흡사한 방법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환자를 상대하여 앉거나 설 때는 반드시 등지도록 한다” 이렇게 신찬벽온방 속에는 전염병이 발생하는 원인, 증상, 처방법이 구체적으로 쓰여 있는데요. 지금 봐도 의학적으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들입니다. 페스트, 콜레라, 천연두, 서양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이 돌았지만 19세기 말까지 전염병의 예방과 치료에 대한 방법은 없었습니다. 점성술과 종교의식에 기대어 병이 낫기를 기대했었는데요. 허준은 신찬벽온방을 통해 이미 17세기에 전염병 치료에 과학적인 접근을 했던 겁니다. 오늘날 K-방역의 아성은 이미 이때부터 쌓아 올려진 거죠. 조선시대 유아 사망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두창, 역병을 피해 살아남았지만 얼굴에 남은 마마자국. 조선시대에 전염병은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허준의 신찬벽온방이 나온 이후 이런 전염병에 대해 굿이나 제사가 아니라 의학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커졌는데요. 1711년 의사 박진희가 지은 <두창경험방>, 1798년 정약용이 홍역의 치료법을 수록한 <마과회통> 등 다양한 의서들이 나오게 됐습니다. 신찬벽온방이 나온지 400년이 지난 현재, 세상은 다시 한 번 바이러스와 전염병의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새삼 허준이 지적한 내용에 귀 기울이게 되는데요. 전염병이 생기는 원인이 ‘운기(運氣)의 부조화’에 있다는 겁니다. 자연의 기운도 조화를 잃으면 전염병이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자연은 어떤가요? 우리가 겪는 고통에 대한 해답을 허준이 의서 속에서 재발견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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