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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N2C)

콘텐츠 기본 정보
UCI I801:2105005-002-V00005
제목 EP 5. 예술 그리고 역사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국문
생산자 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생산일자
한국문화재재단 2021-12-31
기여자 정보
기여자 정보
역할 정보 기여자 명
제작사 마로블루
기술 정보
기술 정보
기술 영역 기술 내용
기타정보
내용정보
내용정보_신규
역사정보 조선시대, 18세기 유럽
역사정보_시대국가
인물정보 유우춘, 유득공, 송실솔, 요제프 하이든
지리정보
관련 키워드 역사토크쇼;하이든;두개골;유우춘;해금;천재음악가;송실솔;썬킴;심용환;키노;강문종;임용한;김준우;Korea
내용 대한민국 최고의 역사 인플루언서들이 펼치는 역사 이야기 대결!
다섯 번째 편 키워드는 '예술 그리고 역사' 입니다!
아이돌 가수 키노(펜타곤/PENTAGON)와 강문종 교수의 이야기 맞대결! 과연 그 결과는?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 천재 음악가의 머리가 사라졌다?!
조선시대 최고 음악가 유우춘의 해금연주에 양반가 도련님들은 졸았다?!
그 흥미진진한 역사 스토리 속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대본 정보 키노 오늘 제가 들려드릴 이야기는 영면한지 145년이 지난 후에야
진짜 장례를 치른 비운의 천재 음악가의 이야기입니다
혹시 장학퀴즈의 오프닝송 기억하시나요.

썬킴 제가 장학퀴즈를 진행을 좀 해봤기 때문에
빠-빠 빠-빠 빠빠~빠빠~빠~ 2회 하고 아웃됐어요

키노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트럼펫 협주곡의 작곡가인데요.
1809년 5월 31일 오스트리아의 빈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존경받는 천재 음악가이자 현대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요제프 하이든이 7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자식이 없던 그의 시신이 교회로 옮겨졌고 사제의 축복을 받은 후에
공동묘지에 묻혔는데요.

(자막)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1732~1809)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대표작 《천지창조》, 《사계(四季)》 등
100여 곡의 교향곡과 약 70곡의 현악 4중주곡 작곡

키노 그로부터 수십 년 후 그의 유해를 이장하기 위해 관을 다시 열었을 때
사람들은 경악합니다 시신의 머리가 없어 그렇습니다
누군가 하이든의 시신에서 두개골만 훔쳐간 거죠

강문종 엽기네요

키노 그렇다면 대체 누가 왜 이 천재 음악가의 머리만 훔쳐 갔을까요

김준우 누굴까

키노 저희는 그 이유를 알기 전에 먼저 하이든이 어떤 음악가였는지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에스테르하지 이 집안에서 30년 가까이 공직을 했다고
합니다 이제 열성적인 아마추어 음악인들도 많이 돕고
이제 파울 안톤 그리고 니콜라우스 이 두 공작을 위해서 거의
모든 장르에 걸친 작품을 수백 개 작품을 작곡하기도 했던 작곡가입니다

심용환 지금 음악가라는 존재 자체가 좀 고상한 직업처럼 보이지만
혹자들은 이런 얘기까지 하더라고요 중세 말 근세 초입의 음악가는
요리사 대우랑 비슷했다 말 그대로 귀족이 있고 그 귀족의 궁정에서
실제로 그 귀족의 귀에 맞춰서 음악을 들려줘야 되는 신세가 컸다고
하더라고요 쉽게 말하면 전속 귀족의 음악가인 거죠 이 집안 자체가 좀
식견이 있었고 이래가지고 그런 어떤 그의 창작활동 자체를 많이
좀 존중해주고 배려해주는 입장이 있었다고 하는데

키노 그러다가 이제 자신이 모시던 니콜라우스 1세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를 얻게 되요 이제 굉장한 음악 활동을 하게 되죠.
그의 명성은 사실 일전부터 유럽 전역에 널리 널리 퍼져 있어 가지고
어딜 가나 환대를 받는 입장이었는데요 그는 영국의 귀화 제안도 뿌리치고
에스테라지 궁전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곳에 터를 잡고 음악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키노 지금도 그가 그 당시에 머물던 집은 하이든기념관 이라는 이름의 곳으로
잘 보존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자막) 하이든 기념관
하이든(1732~1809년)이 살았던 집을
1899년 기념관으로 만들어 그의 유품과 악보 등 전시

심용환 굉장히 유명한 작품 오라토리오의 천지창조 그리고 사계 이런 것들이
여기서 다 작곡이 되고 했던 공간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박물관으로
너무 잘 돼 있고 가보면 이제 음악을 잘 몰라도 장학퀴즈 음악 같은 걸
들으면서가보면 너무나 그 영감이 느껴지는 그런 공간으로
잘 활용되는 것 같습니다

키노 그가 이제 유언에 따라서 처음에는 공동묘지에 안장이 되었는데
에스테라하지 가문에서 이제 그 가문의 뜻에 따라서 가족묘로 이장 작업이
진행이 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두개골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는거죠

심용환 이장을 하다가

김준우 누가 혹시 원한을 산 사람이 있을까요.

키노 이제 그 오스트리아의 사람들이 의문에 빠지게 됩니다.
아니 대체 누가 그랬을까 누가 머리를 가져갔을까
하이든의 머리를 팔아서 큰돈을 챙기려는 도굴꾼일까

썬킴 하이든인지 아닌지도 어떻게 알아

김준우 두개골인데

썬킴 두개골인데

키노 아니면 하이든을 정말 미치도록 사랑했던 팬의 소행일까

심준우 이게 확률이 높지 않을까

썬킴 다른 뼈도 아니고 머리가 없어졌잖아요

키노 너무 기이한 나머지 유족들과 오스트리아 정부가 필사적으로 찾기
시작합니다 수사 결과 놀랍게도 범인이 아주 가까이 있었는데요

키노 평소에 하이든과도 가깝게 지냈던 에스테레하지 가문의 비서
칼 로젠바움 그리고 빈의 형무소장이었던 요한 페터라는
그 두 사람의 합작이었던 것입니다
왜 하필 다른 부위도 아니고 머리였을까요 좀 짐작이 가시나요

썬킴 일단 갖고가기가 편하잖아요

키노 그런데 손을 갖고 가면 손 잡고 가면 되는데

썬킴 어디까지 손인지 애매하니까

키노 그에 대한 설명은 심작가님께서 도와주실겁니다

심용환 사실 이유가 좀 엉뚱해요 뭐냐면 그러니까 19세기에 들어오면서
골상학이 발달을 해서 그렇다 하더라고요

(자막) 골상학 Phrenology, 骨相學
두골의 형상에서 사람의 성격을 비롯한
심적 특성 및 운명 등을 추정하는 학문

심용환 이제 옛날이 좀 사실 안 좋은 거지만 우생학 같은 것들이
맹의를 떨치던 시대가 있었고
그가 이 정도의 천재인데 교향곡도 한두 곡 작곡할 사람도 아니고
천재니까 이 사람은뭔가 특별한 어떤 뇌를 갖고 있을 것이고
머리를 갖고 있을 것이다 사실 연구차 이런 도난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키노 어떻게 이렇게 천재적인 재능을 뽐낼수 있는지

심용환 그러니까

키노 그걸 연구하기 위해서 가져갔던 것이죠

키노 결국 모든 죄를 시인한 그 두 사람이 에스테라지하지 가문에
하이든의 두개골을 반환하게 됩니다 그가 세앙을 떠난지 11년만입니다

키노 이제 드디어 하이든이 진짜 영면에 잠드나했는데 그로부터 125년 후에
무려 한 세기가 더 넘은 이 시점에서 빈 음악협회에 굉장히
황당한 물건이 이송됩니다

김준우 머리가 또 없어진거에요

키노 바로 하이든의 진짜 두개골이었죠

썬킴 그럼 그 전에 있었던건 뭐에요

키노 알고보니까 이 두 사람이 또 사기를 친거죠

키노 이 두 사람은 하이든의 머리를 더 비싼 값에 팔기 위해서
이제 다른 시체에서 두개골을 가져와서 이게 하이든의 두개골입니다
하고 속여 판 거예요

임용한 한두개 판 솜씨가 아닌거 같은데

키노 그 당시에는 DNA 검사나 정확한 정밀도 검사가 없었기 때문에
두번째 사기도잘 안걸리고 넘어갔는데

키노 결국 머리를 찾았죠 가까스로 하이든의 머리를 찾는 데 성공했지만
빈 음악가협회에서는 이제 하이든 음악 하이든음악가의 두개골을
반환할 수 없다 밝히면서 수십년간 또 하이든 두개골의
반환 소송이 이어집니다

키노 이거 진짜 두개골 수난시대 아닙니까

심용환 하이든이 무슨 죄야

키노 거기에다 설상가상으로 1차 세계대전이나 2차 세계대전이 겹치게 되면서
유해 반환 소송이 잠정 중단되죠
마침내1954년 6월이 되어서야 하이든의 머리는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는데
그야말로 145년만에 반환입니다

심용환 너무하다


키노 이 사건은 당시 오스트리아에서도 굉장히 큰 주목을 받았었는데요
대통령 및 정치인들도 미사에 참석해서 조국의 천재 음악가의 안식을
기도하고 후손들에게도 정식으로 사과하면서 해프닝이 마무리가 됩니다
현재 하이든의 영묘가 있는 곳은 이제 오스트리아 아이젠슈타트의
베르크 교회 일명 하이든교회'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데요

(자막) 베르크 교회 (Bergkirche)
에스테르하지 가문에서 만든 교회로
1954년 하이든의 두개골을 포함한 영묘 안장

키노 어쨌든 세상을 떠난 지 145년 만에야 두개골을 함께 묻힐 수 있게 된
하이든 행복했던 천재 음악가에게 죽어서 찾아온 시련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용환 대단하죠 제가 키웠어요

임용한 유명한 사람들이 죽으면 이런 비슷한 일을 많이 겪더라고요
아인슈타인도 따로 보존하고 있고

김준우 키노씨와 또 옆에서 든든하게 도와주신 심용환 작가님의
하이든과 관련된 미스테리한 이야기 잘 들어봤습니다
이번에는 강문종 교수님께서 이야기를 이어 주겠습니다


강문종 여러분들이 국립국악원이라든지 혹은 다른 데서 그 해금 연주를 감상을
할 때 굉장히 무대와 이렇게 관중석이 분리된 굉장히 우아한 형태로
연주가 이뤄지잖아요 기록에 보면 유달리 해금이 많이 등장을 해요
그리고 귀족이나 왕실의 전유물이었고 그 다음에 해금에 관련된 설화가
그렇게 또 많이 등장하고 그래서 가져왔는데

(자막) 해금 奚琴
고려 시대 때 우리나라에 들어와 깡깡이·깡깽이라고도 불리며
궁중음악과 민속음악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연주됨

강문종 이것이 대중화되었던 그 18세기에는 굉장히 달랐어요 예를 들면 모기소리
파리 소리 도둑이 도망치는 소리 다람쥐가 막 숨어들어가는 소리

심용환 해금으로요

강문종 네 그러니까 삼라만상의 어떤 소리를 해금으로 다 내려고 했던 것이죠
이것이 대중을 향한 연주였죠

강문종 특히 이렇게 대중을 향한 연주 전문 연주가들은 주로 어떤 형태의
공연을 했을까요

키노 길거리공연을 하지 않았을까요

강문종 길거리 공연 버스킹입니다 정답입니다 주로 버스킹을 했어요
시장이라든지 유동인구가 많은 종로 일대에서 주로 버스킹으로 많이
연주를 했는데

강문종 그런데 놀라운 기록들이 있어요 버스킹이 일반 마치고 해금 연주자가
이제 어느 정도 쌓인 곡식과 돈을 가지고 공연료죠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둘레에 있었던 사람이 막 따라가 집까지 따라가
팬클럽이 있었어요

썬킴 사생팬이네

김준우 사생팬

강문종 사생팬이죠

심용환 선배님들이시네

강문종 특히 이제 추제라고 하는 호를 갖고 있는 이제 조수삼이라고 하는 분은
또 해금수라고 하는 글도 남겨요

(자막)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
조선 후기 시인이자 서예가

강문종 그런 약간의 판타지가 들어가있는 굉장히 짧은 글이지만 그건 뭐냐면
연주가 굉장히 뛰어나다 자유자재로 연주했다

강문종 당시 최고의 해금 연주자는 유득공이라고 하는 사람이 지은
유우춘전이라고 하는 유우춘의 이야기입니다.

심용환 유둑공은 실학자 아니에요?

강문종 유둑공은 실학자죠 이 유우춘의 전을 남깁니다 전을남기는데


(자막) 유우춘전
악사 유우춘(柳遇春)의 생애를 전기화한 작품

강문종 유우춘이라고 하는 분은 굉장히 개성적인 인물이에요
이 분의 원래 기본직무 직업은 뭐냐면 군인입니다
한양도성을 경비하는 하급 군인이었는데 이 조선시대 때도
하급 군인들의 연봉이 낮었어요 굉장히 힘들어요 그래서
노모를 봉양하는 유우춘이라고 하는 분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투잡을 갖게 돼요

강문종 이 분이 선택한 게 해금이었어요 당초에 해금을 연주를
잘했던 건 아니에요 그런데 해금을 딱 들고 3년 동안 골방에서
남는 시간에 집중적으로 연습을 했어요 그리고
조선 최고의 해금 연주가가 되는거죠

심용환 재능도 있었나보다

강문종 그래서 조선이라고 하는 나라는 유우춘의 해금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경지까지 올라간 거죠.

강문종 그러니까 이제 양반집 아드님들이 파티를 열고 싶은 거야
조선시대 때는 파티 기획자가 조방꾼이라고 있었어요 기생이라든지
여러 사람들을 모아서 파티를 기획해주는 전문가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파티를 열면 놀랍게도 유우춘이 연주할 때
우리 도련님들은 졸아요

썬킴 재미가 없어서

강문종 재미가 없어서

심용환 종묘제례악 느낌으로

강문종 이 분은 굉장히 순수 음악 했죠. 그런데 이제 이걸로는 밥 벌어먹기가
힘든거죠 그런데 이제 당초 본인이 해금을 연주하려고 했던 것도
어머님 때문이었고 그래서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이 분이 절현했다라고 합니다 현을 잘랐다
더 이상 해금 연주를 하지 않았다라고 유둑공은 지필하고 있는데요

강문종 해금 연주자와는 좀 별도로 이제 가수들은 1700년 전에도 동의전에
삼국지 동의전에 보면 한반도의 사람들이 술 노래 춤 파티 환장해
이런 기록이 있잖아요


강문종 그 중에 이제 18세기 제가 여러분에게 소개시켜 드릴 가수는
송실솔이라고 하는 분이에요

키노 이름에 송이 들어가네요

심용환 뭔가 잘할거 같아요

키노 솔도 들어가네요

강문종 이분이 노래를 하게 되면 들판에서 노동을 하는 사람
거리에서 노동을 하는 사람이 하늘을 쳐다봤다고 해요 너무 아름다워서

썬킴 천상의 소리다

강문종 일하는걸 다 멈추고 이렇게 쳐다볼 정도로 엄청난 노래를 잘했던
사람이고요 이 분들이 보통 아까도 말했다시피 왕실 연회도 있었고
귀족잔치에서 가서 노래도 부름녀 상을 많이 받았어요 임금 많이
받았다고요 이 분들이 전문가수들이 버스킹을 했을 때 얼마나 벌었을까
보통 이 분들이 약 20냥정도를 받았다고 해요

키노 월급을요?

강문종 아니요 한번 공연할 때

썬킴 한 번 공연할때요?

키노 두 번 공연하면 바로 집 한채 아니에요

강문종 그렇죠 쉽게 말하면 고급 양반이나 지식인들은 돈이 있으면 얼마든지
예술을 즐겼지만 버스킹을 하게 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다 감상을
하잖아요 그래서 이분들이 이분들은 그 대신 덕분에 예술의 취미가
넓어지니까 오히려 또 소비자가 많아지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났던 거예요

강문종 이 18세기를 전후해서 이 문학과 예술의 어떤 상품화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이뤄졌고요 말씀드린 대로 해금이 굉장히 거기에 많이
등장을 하고 그 다음에 가수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하죠

강문종 조선시대 때 대중 음악을 굉장히 좀 리드했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

강문종 대표적으로 이제 전문 연주가와 전문 노래꾼 나는 조선의 가수였다
이 정도로 말할 수 있는 이제 송실솔 이야기 두 개를 해봤습니다

키노 공연문화의 발전에 기여를 한 두 인물이네요

강문종 맞습니다

김준우 네 알겠습니다 우리 이 오늘 키노와 그다음에 강문종 교수님 이렇게
두 분의 예술과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봤는데요.
역시나 오늘도 피해갈 수 없는 순서를 선택의 순간이 왔습니다

김준우 이렇게해서 동점이 나왔네요

키노 아름다운 게임이에요 사실 제가 강교수님이랑 견줄만큼의
실력이나 입담은 아니었지만
제가 할 수 있었던 이야기의 7, 80%는 심작가님이 계셨기때문이죠

김준우 뭉클한 수상소감 감사합니다

김준우 그러면 시상을 할토록 할텐데요 축하드립니다

김준우 우리 강문종 교수님

강문종 고맙습니다

김준우 처음 아닌가요 두 번은?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