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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
UCI I801:2108002-001-V00016
제목 백비, 나의 이름을 찾아서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국문
생산자 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생산일자
한국문화재재단 2021-12-03
기여자 정보
기여자 정보
역할 정보 기여자 명
제작사 드림스퀘어
기술 정보
기술 정보
기술 영역 기술 내용
기타정보
내용정보
내용정보_신규
역사정보 근현대사
역사정보_시대국가
인물정보
지리정보
관련 키워드 제주도;제주 4/3;백비
내용 1948년 4월 3일, 남한만의 총선거를 반대하는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무장 봉기를 일으켰다. 
이후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했고 집단 학살이 이뤄졌다. 

제주 4.3사건은 오랫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3년 처음으로 공식적인 사과가 이뤄졌고
그 후 평화공원이 만들어 지고 기념관도 생기게 되었으며 
이 유적을 통해 진정한 평화와 인권의 가치도 되새겨 볼 수가 있다.
대본 정보 자막> 1949년 1월 12일, 제주도의 한 마을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살아가던
36살의 평범한 해녀
어느 날, 마을로 들이닥친 군경토벌대
이들의 총격으로 턱을 맞고 쓰러진
여인은 평생 그 상처 때문에
무명천을 얼굴에 두르고 살아야 했다
할머니의 이름은 ‘진아영’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였다


자막>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
무명천 할머니의 삶을 찾아가는 길
할머니가 평생을 살았던 작은 집
이 조그만 공간에서
그 때의 상처로
사람들조차 만나지 못하고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했던 세월

자막> 곱디고왔던 젊은 시절
당시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미군이 통치하고 있었다


자막> 1947년 3월 1일
관덕정 앞에서 울린 총성
당시 3.1절 기념식을 마치고
거리고 나온 3만 여 명의 주민들
기마경관이 탄 말에 한 아이가 채이고
이를 무시하자 시작된 거센 항의
경찰은 습격으로 판단하고
무차별 발포를 시작
6명이 사망, 8명이 중상을 입었다

자막> 이후 7년 7개월 동안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되었다


자막> 그 숫자만
2만 5천 명에서 3만 여 명
생사조차 밝혀지지 않은
희생자들도 많이 있다


자막> 그러나


자막> 폭동 반란

자막> 아직까지
올바른 이름을 갖지 못한
제주 4.3 사건


자막> 그 이름 없는 역사의 아픔을 담은
제주 4.3 평화기념관
끔찍한 일들이 일어날 당시
주민들의 숨어 지냈던 피난처
어둡고 컴컴한 동굴에서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공포의 순간을
견뎌야 했던 주민들


자막> 그 동굴 끝 쪽에
조용히 누워 있는 커다란 백비


자막> 4·3 백비, 이름 짓지 못한 역사


자막> 왜, 이름 없는 백비일까?
왜, 백비는 세워지지 않고

누워 있을까?


자막> 제주 4.3 항쟁?
사건?
운동?


자막> 제주 4.3 사건은
어떤 이름의 역사이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