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이미지 및 저작권 정보(N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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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 국가유산진흥원 | ||
전자자원소장처 | 한국문화재재단 | ||
공공누리 저작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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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L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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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파일 및 자원정보(N2R)
번호 | 파일명 | 파일크기 | 다운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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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또 하나의 대한민국_2화_독립운동과 관련 과일_CHF_1920X1080.mp4 | 172.99 M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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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N2C)
UCI | I801:2302022-001-V000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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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독립운동과 관련 과일 | ||||||||||||||||||
콘텐츠 유형 | 동영상 | 언어정보 | 국문 | ||||||||||||||||
생산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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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여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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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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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1910년 국권강탈 후 광복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사람들이 독립에 힘을 보탰습니다. 그 중, 우리들이 생소한 해외에서도 독립운동의 흔적들이 남아있는데요. 김동우 사진작가와 박광일 여행작가와 함께 떠나는 해외에 있는 숨은 독립운동가들의 잊혀진 흔적들을 찾아가는 시간! 독립운동과 음식이 어떤 연관성이 있었는지에 대해 함께 알아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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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정보 | <타이틀> 또 하나의 대한민국 사라져가는 국외사적지 2부 박광일> 독립운동과 깊은 인연이 있는 과일이 있다. 김동우복숭아가 좀 연관이 있습니다. # 미국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의 첫 번째 키워드! 복숭아 <자막> 독립운동과 연관이 있는 과일? 복 숭 아??? 미국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의 첫 번째 키워드! 복숭아 김동우> 미국 사람들이 복숭아 잔털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거를 좀 해결하자고 해서 이제 개발된 게 넥타린이라는 종자가 있었어요. 그게 이제 털을 없앤 복숭아죠 그 묘목상을 하신 분이 한 분 계신데, 김형순 선생님이라고 <자막> 복숭아 잔털 알레르기가 많은 미국인 복숭아의 잔털을 없애기 위해 개발된 품종 넥타린 넥타린 묘목상을 한 김형순 선생! 박광일> 김형순 선생님 김동우> 그분이 이제 넥타린 종자를 가지고 돈을 많이 벌게 되죠. 그걸 통해서 독립자금도 나중에 납부하시게 되고 박광일> 한편으로는 독립운동 단체 이런 것들에 또 활동을 하셨을 거 같아요. <자막> 미연방 농무부로부터 넥타린 보급에 대한 공로상을 받는 김형순 독립운동 자금을 댔던 김형순 선생! 독립운동 단체와도 관련이 있다? 김동우> 미국에서 있었던 독립운동하면 대한인국민회라는 조직을 빼놓을 수가 없죠. 그래서 이 김형순 선생님도, 김형순 선생님의 사돈이었던 김호 선생님하고 같이 김형제 상회라는 걸 만들거든요. 이제 그걸 통해서 그 넥타린을 많이 유통시키면서 돈을 많이 벌게 되시는데 거기서 번 돈을 가지고 대한인국민회 2분이서 독립 자금을 많이 납부하신 그런 이제 기록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자막> 미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 ‘대한인국민회’ 김형순 선생이 사돈 김호 선생과 함께 만든 ‘김형제상회’ ‘김형제상회’를 통해 번 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냈던 것 박광일> 제가 자료를 보니까, 이제 2분이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위원으로서 활동을 하면서 독립 자금을 거기에 기부를 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한인 동포들이 머물 수 있는 예를 들어, 뭐 공동묘지 부지를 인제 구매를 한다거나 이런 어떤 활동도 하셨다고 하는데, 또 다른 어떤 활동의 흔적들을 볼 수 있는 그런 어떤 공간, 도시가 있을까요? <자막>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독립운동의 흔적이 남은 도시! 김동우> 중가주 하면 리들리라는 곳을 꼭 가봐야 됩니다. 거기에 김형순 선생님 무덤도 있고요. 제가 가장 놀랐던 것은 리들리에 가면 서대문에 있는 독립문을 4분의1 모양으로 축소화해 놓은 작은 독립문이 서 있어요. 이거는 우리 미국에 살고 있는 동포들이 성금을 모아 가지고. 야 이 리들리가 우리한테 정말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여기다 독립문 하나 세워보자 해서 만들어 놓은 거거든요. 저는 미국에 우리 독립문이 서 있으니까. 너무 깜짝 놀랬거든요. 너무 좀 가슴 좀 뭉클하기도 했고 그랬습니다. <자막> 서대문의 축소판 독립문! 미국의 동포들이 성금을 모아 미국땅 한복판에 세운 독립문 독립문 앞에 세워진 10개의 비석 박광일> 참 뭔가 국외해서 우리 독립문을 보면 진짜로 울컥하는 마음이 들 것 같고, 또 한편으로 그 땅에서 활동했던 많은 애국지사들이 떠오를 것 같아요. 그런데 김형순 선생 말고 또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만한 분들 있을까요? 김동우> 네 리들리에 있는 독립문 앞에 가면 미국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 10분의 비석을 제막해놨거든요. 근데 그중에 한 분이 누구냐면 김종림 선생님이세요. 김종림 선생님은 쌀과 관련 있습니다. 쌀 <자막> 그 중 한 사람, 김종림 독립운동가 노백린 손녀와 함께 # 미국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의 두 번째 키워드! 쌀! 박광일> 제가 듣기로는 또 우리나라 공군하고도 관련이 있다. 이렇게 얘기를 들었었거든요. <자막> 쌀?? 미국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의 두 번째 키워드! 쌀 김종림 선생은 공군과 관련이 있다? 김동우> 아주 아주 큰 관련이 있죠 이분 별명의 백미왕이었거든요. 라이스킹이었어요. 그니까 북가주에서 쌀농사를 처음 시작한 사람이 한국 사람이었던 거죠. 이분이었던 건데 1차 세계대전과 맞물리면서 쌀 농사로 흥하게 되죠. 이분이 되게 돈을 많이 벌게 됩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재벌 정도의 아주아주 큰 부를 일구거든요. 근데 그때쯤 또 미국에 있었던 분이 누구냐면 노백린 장군 그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총장이었던 노백린 장군이 미국에 있었는데, 2분이 합심해서 한인들을 중심으로 우리 파일럿을 한번 양성해 보자 해서 비행기를 사고 교관을 초빙하고 부지를 닦고 해서 공군을 양성했던 곳이 바로 북가주 윌로스에 남아있습니다. <자막> 별명은 백미왕 농부 시절 김종림 미국 최초의 한인 백만장자! 백미왕 김종림 노백린 / 대한제국 군인이자 임시정부 군무총장,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박광일> 그런데 윌로스 비행장 흔적 잘 남아 있나요? 김동우> 지금 보이는 이 사진이 윌로스 비행장에 남아 있는 교육장 건물입니다. 실제로 사용했던 건물이 아직 이렇게 남아있습니다. 여기서 노병긴 장군이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거죠. <자막> 윌로우스 비행학교 부지와 훈련기 구매를 위한 자금 약 5만달러를 제공한 김종림 선생 김종림 선생과 노백린 장군이 함께 만든 윌로우스 비행학교 <자막> 우리 공군의 시작이었던 윌로우스 비행학교 윌로우스 비행학교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 박광일> 노백린 장군이 1920년 7월 5일날 학교 개교하면서 우리 공군이 도쿄를 폭격할거다 쑥대밭을 만들거다 이런 선언도 하셨는데 그 장소가 여기가 되는 거에요그런데 어떻게 보면 야심차게 시작했던 윌로스 비행 학교 이 학교가 우리 기억 속에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이유는 김동우> 비행 학교가 뭐 2년, 3년, 4년 이렇게 갔으면 좋았을 텐데 1년 남짓만의 문을 닫게 되거든요. 김종림 선생님의 상황과 연관이 돼 있는데, 1920년 가을에 이제 북가주로 강타한 폭풍이 있었습니다. 그 폭풍으로 인해서 쌀을 수확할 수 없는 상황이 됐고. 그러면서 이제 더 이상 재정적 지원을 못 하게 되는 거죠. <자막> 윌로우스 비행학교 운영기간은 고작 1년 북가주를 강타한 폭풍으로 쌀농사에 타격 더이상 재정지원을 하지 못함 박광일> 여러 가지로 안타까운 것 같아요. 자료를 보면 1921년에 공군으로 비행사로 양성된 분들 중에서 박희성, 이용근 이런 분들 비행병 참의 지금으로 치면 소위 정도에 해당하는 장교를 양성하기도 했었는데 <자막> 박희성 / 윌로우스 비행학교 이용근 / 윌로우스 비행학교 대한민국 임시정부 최초의 비행장교인 ‘비행병 참위’로 임명 단군이래 첫 공군장교들 윌로우스 비행학교 출신 김동우> 말씀하신 대로 군군 장교로 임관이 된 거잖아요. 임시정부에 이 사실은 우리 단군 이래 첫 번째 공군 장교예요. 그분들이 근데 사람들이 바로 윌러스 비행장 출신하는 거죠. # ‘우리나라 공군은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영상 -----------------------vcr---------------------------- 대한민국 공군의 모태를 만든 노백린 장군과 김종림 선생 ‘한국인들이 비행장을 가지다’ 윌로우스 비행학교 설립은 미국 신문의 헤드라인을 차지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울 조종사를 양성하기 위해 비행학교를 만든다’ - 노백린 장군 - 조선의 독립을 간절히 바랐던 노백린 장군과 수많은 훈련생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았던 김종림 선생 그렇게 또 하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 박광일> 미국에 있는 독립운동과 관련된 얘기를 듣다 보니까, 뜻밖의 복숭아 그다음에 쌀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 제가 듣기로 이것 말고 또 다른 음식의 재료가 되는 것이 독립운동과 관련이 있다 김동우> 숙주나물입니다. 박광일> 숙주나물 <자막> 숙 주 나 물? 미국에서 발생한 독립운동의 세 번째 키워드! 숙주나물 # 미국에서 발생한 독립운동의 세 번째 키워드! 숙주나물 김동우> 유한 양행의 설립자셨죠 유일한 박사님 미국 계실 때 숙주나물을 이용해서 통조림을 만들어요. 그걸로 또 부를 창출하시죠. <자막> 유일한 박사가 만든 숙주나물 통조림 유일한 한국에서 모범적인 기업인,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 박광일> 다른 나라에서 온 한국인이 홍보라고 하는 부분이 굉장히 중요했을 텐데 김동우>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죠 이 유일한 박사님이 트럭에다가 통조림을 한 가득 싣고 갑니다. 일부러 바닥에 이렇게 사고로 위장한 걸로 해서 통조림을 바닥에 쏟아내요 그래서 뭐 기자들이 몰려들면서 그걸 찍고 통조림이 자연스럽게 언론을 통해서 홍보하는 그런 효과를 노리시거든. <자막> 홍보가 쉽지 않았을텐데... 숙주나물 홍보를 위해 아이디어를 낸 유일한 박사 트럭에 한 가득 숙주나물 통조림을 싣고 가다가 일부러 사고를 낸 유일한 박사 박광일> 그 당시만 하더라도 그런 어떤 숙주 통조림 이런 건 없었을 테니까. 저게 뭐지 그러면서 저기에 지금 싣고 가다가 쓰러졌네 김동우> 그래서 어떻게 보면 노이즈 마케팅을 통한 성공사례라고 볼 수 있죠. <자막> 노이즈 마케팅의 원조? 1926년 귀국한 유일한 박사 유한양행 설립 후 1938년 미국으로 돌아온 유일한 박사 박광일> 그런데 이제 이렇게 큰돈을 벌면 보통 외국에 있는 동포들 같은 경우는 귀국을 하잖아요. 김동우> 1926년 경에 귀국해서 동포들을 보니까, 너무 의료 혜택을 못 받고 헐 벗은 사람들이 많더라 해서 국내에 설립한 게 바로 유한양행이었죠. 박광일> 그럼 이제 계속해서 국내에 계셨던 거 김동우> 다시 이제 미국에 돌아가서 미국에서 또 독립운동 관련된 활동들을 더 해나가시죠. 재밌는 또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나서 유일한 박사가 미국에서 첩보 활동 요원으로도 활동하세요. 일본과의 싸움이었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미국 OSS 소속으로 이제 첩보 활동을 통해서 독립을 쟁취하겠다. 그런 맥락 속에서 이제 훈련도 받고 뭐 그러시죠. <자막> 미국에서 독립운동가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 1942년부터 미육군전략처(OSS)의 한국 담당 고문으로 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