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이미지 및 저작권 정보(N2L)
대표이미지 | 저작권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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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 국가유산진흥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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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누리 저작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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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L 정보 | |||
소스코드 | <iframe width="720px" height="480px" src="http://uci.k-heritage.tv/resolver/I801:1512010-001-V00001?t=3"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관련 파일 및 자원정보(N2R)
번호 | 파일명 | 파일크기 | 다운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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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지역민방_글로컬_문화유산_1편_선사인의기록암각화_마스터_CHF_1280X720.mp4 | 571.45 M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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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N2C)
UCI | I801:1512010-001-V000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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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지역민방 글로컬 문화유산] 1편 선사인의 기록 암각화 | ||||||||||||
콘텐츠 유형 | 동영상 | 언어정보 | 국문 | ||||||||||
생산자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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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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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키워드 |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147호;울주 천전리 각석; | ||||||||||||
내용 | - 암각화에 그려진 그림과 기호는 선사인의 생활 양식과 신념을 알 수 있는 지표
- 1970년대 초반 발견된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을 중심으로 선사인의 생활과 암각화의 의미를 살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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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정보 | VIDEONAR
# 자동차공장대한민국 산업수도 울산. 수출 강국을 이끌어 온 산업발전의 원동력이 이 곳에 있다. 자동차공업, 조선업, 화학공업. 오늘도 울산은 바쁘게 돌아간다. # 도시전경다른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화려하고 빽빽한 울산의 도심. 도시를 가로질러 태화강이 흐른다. 번잡한 도심을 뒤로 하고 태화강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깊은 숲 사이로 흐르는 태화강의 지류 대곡천을 만날 수 있다. # 좁은강⇒넓어지는조용하고 평범한 산골 같은 이 곳에 선사시대의 이야기를 담은 문화유산이 자리하고 있다. # 지도 # 대곡천거북이 한 마리가 넙죽 엎드린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반구대’ # 물 흐르는깊은 산과 맑은 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청정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 곳이다. # 정자반구대는 고려 말 언양에 유배된 포은 정몽주가 귀양살이의 설움을 달랜 곳으로, 시인묵객과 선비들이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 나뭇가지 햇살대곡천의 물길을 타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반구대의 호젓한 산길을 따라가면 대곡천을 사이에 두고 병풍을 두른 듯한 기암절벽이 나타난다. # 반구대관람객망원경을 들여다보며 건너편에 있는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는 사람들. (싱크) # 암각화울타리 너머, 물 건너에 있는 커다란 바위. 반구대의 상징, 반구대 암각화다. # 암각화 디테일오랜 세월을 견디는 동안 조금은 희미해졌지만 분명하게 보이는 동물 그림들. 이것이 선사인의 기록, 암각화다. # 인터뷰 # 암각화 전체칠천년 전, 신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반구대암각화. # 암각화 그래픽가로 10미터 세로 3미터의 넓은 바위에 총 3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 고래그림 줌인바다동물부터 육지동물까지 20여종의 동물들과 여러 가지 모습의 사람, 이런 저런 도구까지 그림은 다양하고 재미있다. # 다른나라의 암각화인류가 살았던 곳에서 암각화는 흔히 발견된다. 암각화에 그린 그림은 주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동물들. 반구대암각화도 마찬가지다. # 반구대암각화그런데, 특별히 반구대 암각화를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인터뷰 # 암각화그래픽 줌인반구대 암각화의 왼쪽 윗부분. 여러 가지 고래그림들 속에 그 옛날 선사인들의 고래잡이 흔적이 남아 있다. 인류 최초의 포경기록인 것이다. # 배그림사람들을 싣고 고래잡이를 떠나는 배, # 고래와 부구등부분에 작살이 꽂힌 고래와 고래잡이 도구인 부구도 묘사되어 있다. # 인터뷰 # 바다 속 고래반구대 암각화가 그려진 때는 칠천년 전 선사시대. 기술이 발달되지 않았던 그 시대에 어떻게 거대한 고래를 잡을 수 있었을까? # 암각화 속 부구물에 뜨는 도구 '부구'에 그 해답이 있다. # 인터뷰 # 고래잡이 그래픽거대한 고래를 잡기 위한 필수도구는 작살과 부구. (작살 던지는)‘부구’는 작살에 찔린 고래가 물 위로 떠오르게 하고 위치를 표시하는 장치였다 # 인터뷰 # 라마레라 고래잡이인도네시아의 고래마을 라마레라에서는 지금도 원시적인 방법의 고래잡이가 행해진다. 작살을 던지고, 부구를 띄우는 반구대 암각화에 표현된 것과 같은 방식이다. 반구대 암각화의 포경기록이 얼마나 정확한 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하늘칠천년의 시간을 담고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는 반구대 암각화. 그 속에는 생존을 위해 고래사냥에 나선 선사인의 치열한 삶의 기록이 남아 있다. # 암각화 그런데, 이 곳 대곡리는 바다와 수킬로미터 떨어진 곳 어떻게 이 숲 속에 고래잡이 그림이 있을까? ‘암각화박물관’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 관람객들2010년에 개관한 ‘암각화박물관’에는 가까이서 볼 수 없는 반구대암각화를 그대로 재현한 실물크기 모형이 있다. # 암각화돼지그림암각화 모형들 사이. 눈에 띄는 울산 지도 # 울산지형울산 앞바다의 지형변화 반구대에 고래잡이 그림이 있는 이유다. # 인터뷰 # 해수면 CG지금은 육지와 강으로 이루어진 울산시내 # 3000년전아주 오래전에는 울산시내의 많은 부분이 고래가 넘나드는 얕은 바다였다. # 울산 태화강울산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물줄기 태화강 지금은 양옆으로 빽빽한 건물이 가득한 전형적인 도심의 모습이다. # 바다 속 고래하지만, 오래 전에는 고래들이 뛰노는 바다였고 선사인들은 여기서 고래를 잡았으며, 그 기록을 바위에 남겼다. # 인터뷰 # 암각화CG반구대 암각화에는 여러 종류의 고래가 그려져 있다. 각각 생긴 모양이 다르고, 몸의 자세나 행동도 다르게 묘사된 고래 그림. 그 옛날 우리 바다에 어떤 고래가 살았는지 고래의 종류까지 유추가 가능할만큼 자세하고 정교하다. # 빨간 고래그림 암각화물론 세계의 다른 암각화에도 고래그림은 존재한다. 하지만, 고래의 종류까지 구분되어 있는 암각화는 반구대 암각화가 유일하다. # 인터뷰 # 동굴 재연반구대의 바위에 고래그림을 새기던 사람들. 그들은 고래의 종류와 특징까지 하나하나 자세하게 알고 있었고, 그것을 바위에 새기는 방식으로 세상에 남겨두었다. 그들은 어쩌면 인류 최초의 과학자가 아니었을까? # 대곡천선사시대의 신비를 간직한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대곡천. 반구대 암각화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두 번째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다. # 천전리각석 (지도)또 하나의 암각화‘국보 제 147호 천전리 각석’이다. # 얼굴모양 그림천전리 각석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암각화다. 반구대 암각화와는 달리 바로 앞 가까이에서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싱크) # 천전리 각석수천년전 바위에 새겨진 그림. 천전리 각석은 그토록 오랜 세월이 지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만큼 선명하다. # 인터뷰 # 각석 CG신석기부터 신라까지의 기록이 함께 남아 있는 천전리각석. # 상단부각석의 윗부분은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하학무늬가 주를 이룬다. # 하단부아랫부분은 신라시대에 기록된 것인데 가는 선으로 새긴 당시의 복식을 보여주는 그림, 말을 타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 글을 새긴 명문 등이 남아 있다. 천전리 각석에는 바위그림뿐만 아니라 신라시대의 글이 함께 새겨져 있기 때문에 ‘암각화’가 아닌 ‘각석’이라 부른다. # 인터뷰 # 상세천전리 각석에서 가장 눈에 띄는 그림들. 청동기 시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기하학무늬다. # 청동거울수렵을 주로 하던 신석기 시대를 지나 농경생활을 시작하게 된 청동기 시대. 청동기 시대 유물에는 공통적으로 천전리 각석에 남아 있는 것과 같은 기하학무늬가 등장한다. # 청동검손잡이동심원, 마름모 등으로 표현된 이 무늬들은 어떤 뜻을 담고 있을까? 농경생활을 시작한 청동기인들은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 인터뷰 # 물 파문 사라지고농경생활에 필수적인 조건 자연. 학계에서는 청동기시대 기하학무늬를 여러 가지 자연요소를 상징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명확한 의미는 누구도 확정할 수 없다. # 인터뷰 # 각석 미속선사시대부터 신라에 이르기까지 길고 긴 시간의 이야기가 하나의 바위에 담겨 있다. # 각석으로 들어가면천전리 각석은 선사인과 고대인들의 이야기를 품고 지금까지 꿋꿋이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 대곡천 헬리캠깊은 산 속을 흐르는 작은 하천 대곡천. 이 일대에 국보로 지정된 두 개의 암각화가 모두 모여 있다. 시대를 달리하는 두 개의 암각화가 나란히 이 곳에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 인터뷰 # 반구대 헬리캠뒤로는 산이 병풍처럼 버티고 서고 앞으로는 물이 휘감아도는 반구대 암각화 # 천전리 각석천전리 각석도 역시 유사한 지형구조를 갖고 있다. 산을 배경으로 하고, 물을 객석으로 한 극장을 닮은 구조다. # 반구대 팬대곡천 일대는 선사인들에게 특별하고 신성한 지역이었다. 특히 고래를 사냥했던 반구대의 신석기인들에게 이 곳은 중요한 의미였다 # 인터뷰 # 밤 미속생존이 절박했던 선사인들의 시대. 곳곳에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던 그 때 선사인들은 자연에 의지해서 살아가야만 했다. 자연 속에서 무사히 생존을 이어가고픈 그들의 염원. 선사인들은 그 염원과 희망을 담아 정성을 다해 바위에 그림을 새겼다. 자신의 삶과 후손의 삶이 무사히 지속되기를 바라며 암각화를 남긴 것이다. # 인터뷰 # 에필로그오래 전 어느 선사시대. 선사인들은 단단한 바위 위에 오래오래 남을 기록을 새겼다. 그것은 치열한 삶의 기록이자 생존을 위한 간절한 염원이었다.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록, 암각화. 대곡천 깎아지른 바위에는 선사인들이 들려주는 수천년전의 이야기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