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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본 정보
UCI I801:1807001-001-V00015
제목 위대한 유산 시즌1 - 15편(초상화 1부, 대동여지도 목판, 경기전)
콘텐츠 유형 동영상 언어정보 국문
생산자 정보
생산자 정보
생산자 생산일자
한국문화재재단 2014-12-31
기여자 정보
기여자 정보
역할 정보 기여자 명
제작사 SKY A&C
조연 이성현
기술 정보
기술 정보
기술 영역 기술 내용
기타정보
내용정보 국보 제317호 태조대왕어용 , 보물 제817호 창덕궁 선원전 , 보물 제932호 영조어진, 사적 제149호 서울 육상궁, 보물 제1492호 철종 어진, 보물 제1581호 대동여지도 목판, 사적 제339호 전주 경기전, 보물 제1578호 전주 경기전 정전
역사정보 ,
인물정보 김홍도, 태조, 백은배, 박기준, 조중목, 태종, 세종. 영조, 철종, 김정호,
지리정보 서울특별시 종로구,서울특별시 용산구
관련 키워드 ;위대한 유산;초상화;어진;대동여지도;전주한옥마을;경기전;
내용 우리 전통유산의 아름다움을 쉽고 재밌게 소개하는 <위대한 유산>
우리나라 곳곳에서 살아 숨쉬는 문화유산들을 소개해본다.
- 7분다큐 '초상화 1부 어진, 조선의 왕을 말하다'
- 발굴스토리 '역사를 새로 쓰게 한 발견 -대동여지도 목판'
- 이미지문화유산 '전주가 지킨 조선의 자긍심, 경기전'
대본 정보 SKY A&C 공동제작 - 위대한 유산 시즌 1 : 15편
 
(1)
이성현 우리 전통유산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쉽고 재미있게 전하는 <위대한 유산>
                  안녕하세요 이성현입니다.
                  
                  인물의 모습을 남기는 전통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초상화죠.
                  지금은 누구나 원하면 자신의 초상화를 가질 수 있지만,
                  과거에는 특정 인물이나 목적을 가지고 그려지는 일이 많았는데요.
 
                  특히 왕의 초상화를 뜻하는 어진은 
                  그 시대 통치자를 표현하고 권위를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누구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없었던 왕의 얼굴
 
                  때문에 더욱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초상화 ‘어진’ 이야기 함께 들어보시죠.
 
 
 
자막> 7min document
 
자막> 7분 다큐
 
 
조선시대 최고의 화원으로 꼽히는 김홍도. 
그는 왕의 초상화를 그리는 어진화사에 여러 차례 임명된다. 
 
자막> 김범수 교수 /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회화문화재보존수복학과
 
그러나 단 한 번도 왕의 얼굴을 그리는 주관화사를 담당하지 못했다.
 
까다로운 절차와 법도 아래 그린 어진. 어진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왕 그 자체였다. 
 
자막> 타이틀 “어진, 조선의 왕을 말하다”
 
조선왕조 제1대 왕인 태조의 어진이다. 
 
자막> 조선태조어진(朝鮮太祖御眞) / 국보 제317호
          조선 1대 임금인 태조(재위 1392~1398)의 초상화
 
곤룡포를 입고 익선관을 쓴 채 화려한 용상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태조의 경우 많은 수의 어진이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 남아있는 것은 전주 경기전에 봉안되어 온 이 한 점 뿐이다.
 
이 어진은 생전에 화가가 왕의 용안을 직접 보고그린 것이 아니다. 1872년 원본에 충실하게 모사된 이모본이다. 
 
자막> 어진이모도감의궤(御眞圖寫都監儀軌)
          1872년 태조어진을 모사한 전 과정을 기록한 의궤
 
태조 어진 모사를 둘러싼 전 과정은 ‘어진이모도감의궤’에 기록돼 있다. 
당시 박기준, 조중묵, 백은배 등 십여 명의 화원이 참여했고, 
 
자막> 백은배   /   박기준   /  조중목
 
이모 작업은 대략 한 달 가량이 걸린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모본을 살펴보면 우측 상단에 붉은 종이가 눈에 띈다. 
 
자막> 태조고황어제어진
 
‘태조고황제어진’이라 쓰인 종이다. 그 옆에는 이 어진이 어느 왕의 어진이며 제작시기가 언제인지를 알려주는 표제가 붙어 있다. 
 
자막> 태조대왕어용 소자사복지구년임신 이모
          조선 태조 임금의 어진으로 선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고종 9년인 임신년에 이모하였음
 
자막> 사복
 
여기에서 ‘사복’은 선인의 업적을 잇는다’는 뜻이다. 
 
당시 존귀한 인물의 초상인 경우, 표제를 쓸 때 비단바탕 위에 직접 쓰지 않고 종이를 덧붙이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태조어진은 정면관으로 그려졌다. 
그림 속 태조는 몸체가 상당히 크고 당당한 모습이다. 
또한 노인임에도 눈에는 정기가 가득 차 있어 위풍당당한 군주로서의 위엄이 가득하다. 
 
자막> 창덕궁 구 선원전(昌德宮 舊 璿源殿)
          조선시대 역대 임금의 어진을 봉안하던 장소
 
왕의 초상화는 단순히 자손이 조상을 추모한다는 의미 뿐 아니라 진전에 모시고 1년에 수차례 제사를 올림으로써 왕실이 영구하기를 기원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담고 있다. 
 
태조는 역성혁명을 통해 새로운 나라를 연 개국시조이기 때문에 이러한 상징성이 더욱 절실히 필요했을 것이다. 
 
태조의 어진은 198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후 예술성과 상징성, 학술적 가치 등을  고려해 2012년 국보로 승격되었다. 
 
자막> 조선태조어진(朝鮮太祖御眞) 2012년 국보로 승격
 
태조 이후 조선시대 대부분의 왕들은 어진을 제작했다. 3대 왕인 태종은 생시에 어진이 제작되었지만 털끝 하나라도 틀리면 그 사람이 아니다 라는 생각에 자신의 어진을 없애라 명했다. 
 
자막> 태종은 ‘조금이라도 꼭 같지 않은 데가 있으면 나 자신이 아니다’고 하면서 곧 불살라 버리기를 명했다
 
그러나 아들인 세종은 차마 그럴 수 없어 어진을 보존해 두었다 전해진다.  
 
자막> 하지만 임금(세종)이 차마 그리하지 못하고 간직해 두었다.
          『세종실록, 1444년(세종 26) 10월 22일』
 
그런데 태종의 어진은 물론이고 세종의 어진 또한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조선 왕실에서 가장 소중히 여겼던 그림, 그 많은 어진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한국 전쟁 초기, 어진을 비롯한 상당수의 왕실 유물이 부산으로 옮겨졌다. 
 
자막> <경향신물> 1955년 1월 6일
 
휴전 이후 어진을 비롯한 유물을 서울로 옮기는 계획을 세우던 무렵, 보관 창고에 화재가 났다. 
 
자막> 조선의 열두 임금의 어진이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
 
이 화재로 대부분의 어진이 불에 타버렸다. 
 
화염 속에서 구해낸 어진 중 용안이 보존된 것은 영조 어진과 철종 어진 두 점 뿐이다. 
 
자막> 영조 어진 . 철종 어진
 
현재 보물로 지정돼 있는 영조의 어진은 1900년 이모 작업을 한 것이다. 
보고 그린 범본은 1744년에 그려진 영조의 51세 반신상이다. 
 
늘 안색이 붉고 윤기가 있었다는 영조. 
 
자막> 영조어진(英祖御眞) / 보물 제932호
          조선 21대 임금인 영조(재위 1724~1776)의 초상화
 
어진 속 안면에 붉은 기가 가득하다. 치켜 올라간 눈매, 오똑 서있는 콧날, 한 올 한 올 공들인 흔적이 남아있는 수염. 변덕스럽고 깐깐한 영조의 성정이 엿보이는 초상화다. 
 
조선시대 어진의 색채를 칠할 때는 배채라 하여 먼저 비단의 뒷면에 물감을 칠했다. 
 
자막> 배채기법(背彩技法)
         그림의 뒷면에 색을 입혀 안료가 앞으로 배어나오도록 하는 채색 기법
 
물감의 얼룩이나 변색을 막아주는데 효과적이고 얼굴색을 자연스럽게 나타내기에 좋은 기법이다. 
 
영조의 어진 역시 배채 기법으로 그렸다.
 
영조는 이 반신상 어진을 매우 흡족히 여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자막> 영조실록(英祖實錄)
 
신하들에게 어진을 보이며 후일에도 어진을 보고 자신의 저술과 업적을 기억해주기를 당부하기도 하였다. 
 
자막> 지금 이 화상(畫像)을 여러 신하에게 내어 보이는 것은 이것을 구경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후일의 사람들로 하여금 이 화상을 보고 길이 대훈(大訓)의 뜻을 따르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전신상이 아니라 반신상으로 그려졌을까. 
 
이 어진은 진전에 걸어 제사를 지내는 용도가 아니었다. 
 
자막> 자료제공 EBS 한국교육방송
 
모친인 숙빈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사당에 걸어두기 위한 초상화였다. 
 
자막> 서울 육상궁(서울 毓祥宮) / 사적 제149호
          조선 숙종의 후궁이며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신주를 모신 사당
 
그래서 아담한 반신상으로 그려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온전히 남아있는 태조의 어진과 영조의 어진은 모두 범본을 두고 모사한 작품이다. 
 
조선시대에 어진의 상태가 조금이라도 훼손이 되거나 색이 바라면 도감을 설치하고 거국적인 이모작업이 거행되었다.
 
어진이 곧 조선의 왕실이고 왕이었기 때문이다.
 
 
 
(2)
이성현 왕의 얼굴을 넘어 왕실의 권위를 그린 초상화 어진을 만나보았습니다
                  이처럼 그림에는 글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세밀한 역사가 담겨있어 중요한 사료가 되는데요
 
                  그렇다면 이러한 과거 유산들은 어떻게 현대로 전해지는 걸까요?
                  시대 역사 그 자체를 그림으로 새겨넣은 <대동여지도>가 현세와 새롭게 만나는 현장을 담아보았는데요
 
                  준비한 영상 함께 보시죠.
 
 
자막> 발굴
자막> 복원
자막> 보존
 
자막> 발굴 스토리
 
 
 
#자막, 음성 #소재구 / 前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 관리직원  #인터뷰
A. 제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게 5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고 
    분명히 거기에 다 불태워졌다고 기록이 돼 있었어요
    학교 교과서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없어졌을 것으로 알고 있었죠
 
 
 
유물번호 K93. 
이름도 모르고 쓰임도 알 수 없었던 목판 열 한 장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우리는 한국사를 새롭게 다시 써야만 했다.
 
자막> 타이틀 “역사를 새로 쓰게 한 발견 - 대동여지도 목판” (k-93)
 
자막> 국립중앙박물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규모와 권위를 가진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의 유물이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전시실에 진열된 모습만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사실, 유물들이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장소는 바로 이곳, ‘수장고’다. 
 
 
철통같은 보안 속에 굳건히 닫혀있는 보물창고. 
그런데 1995년 10월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대한민국을 뒤흔든 놀라운 발견이 있었다. 
장소는 목재 수장대 K열.  당시 K로 구분됐던 유물들은 수장고에서 조금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물이란 표식의 ‘K'. 
 
그 중 K-93은 1923년부터 조선총독부 박물관에서 보관해온 목판이었다. 
 
자막> 조선총독부
 
1950년 6.25 전쟁이 발발 했을 때는  다른 유물들과 함께 부산으로 옮겨졌고, 
 
자막> 부산
 
이후 경주박물관에 보관됐다가, 
 
자막> 경주
 
1970년대 초 다시 서울로 이관됐다. 
 
자막> 서울
 
그리고 그로부터 오랫동안, 박물관 수장고 안에서 긴 침묵을 지킨 채 잠들어 있어야 했다.
 
 
 
K-93의 정체가 밝혀진 것은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의 문이 학자들에게 열렸던 1995년의 일이었다. 
 
자막> 한국역사문화지리학회 활동사진
 
당시 ‘한국역사문화지리학회’에서는 전국 모든 고지도의 목록을 작성 중에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열람이 허락된 기간은 딱 3개월. 만나 볼 수 있는 지도 역시 연구원들이 신청한 목록에 한정돼 있었다.   
 
 
어느 덧 약속한 세 달의 시간이 흐르고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학회연구원들과 당시 수장고 담당이었던 소재구 소장이 작별의 인사를 나눌 때였다.  문득, 소장의 머릿 속을 스쳐지나가는 유물이 하나 있었다.
 
 
소장은 돌아가려는 그들을 붙잡고  지도를 딱 하나만 더 살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자막, 음성 #소재구 / 前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 관리직원 #인터뷰
A. (전문가들의 지도 전수조사가) 끝나고 ‘그동안 수고했다’하고 헤어질 즈음에 
     ‘선생님 사실은 제가 이런 목판을 하나 본 게 있습니다. 이거 하나만 별도로 봐 주시죠.’ 해서 본 거예요.
     그렇게 봐서 드러나게 된 거예요. 
 
 
열한 장 목판의 크기는 각각 두께 1.5cm, 
 
자막> 두께 1.5cm
 
가로 43, 세로 32센티미터 였다. 
 
자막> 가로 43cm, 세로 32cm
 
기존의 다른 목판들과 비교하자면  크기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어떤 목판은 완성되지 못한 것처럼 비어 있었고 
 
자막> 지도를 새기지 않은 부분
 
뒷면에 책을 찍어낼 때 쓰는 줄이 새겨져 있기도 했다. 
 
자막> 목판의 뒷면
 
그럼에도 이 이상한 목판을 의뢰했던 건 불에 타 없어졌다는 대동여지도 진품이 아닌가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소재구 소장이 이 목판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은 나름에 이유가 있었다. 
 
자막> 古山子校刊 고산자교간
 
오른쪽 아래에 표기된 ‘고산자’는 너무나 유명한 실학자의 호였다.  
그리고 표제에 선명하게 새겨진 제목, ‘대동여지도’. 
 
자막> 大東輿地圖 대동여지도
 
그렇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이 목판이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자막, 음성 #소재구 / 前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 관리직원 #인터뷰
A. (제가 배울 당시) 5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고분명히 거기에 다 불태워졌다고 기록이 돼 있었어요. 
    전 국민이 학교 교과서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거야 당연히 그렇게 없어졌을 것으로 알고 있었죠. 
 
 
이러한 이유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이 목판을 대동여지도의 복제품이라고 착각해 왔던 것이다.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베일에 싸여 있던 목판의 비밀은 하나둘씩 밝혀져 나갔다. 
 
 
이 면은 함경북도 북청지역을 판각하고 있다.  
 
자막> 함경도 북청지역(7층 8판)
 
그런데 같은 면 다른 귀퉁이에선 평안도 용천이 새겨져 있다.  
 
자막> 평안도 용천지역(8층 19판)
 
이렇게 한 면에 들어간 도엽만 세 장. 
 
자막> 경기도 교동지역(13층 15, 16판)
 
만일 k-93이 복제품이라면 굳이 목판을 아껴야 할 이유가 없다. . 
 
 
특히 경상도 성주의 안언역 위치를 수정한 흔적은 K-93이 복제품이란 전제를 뒤흔든 명백한 증거였다. 
만일 이 목판들이 완성품을 베낀 작품이라면  지도를 만드는 도중 수정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자막> 잘못된 위치에 조각된 글자를 도려낸 흔적,   위치를 바로잡아 글자 조각을 새로 삽입한 곳
 
자막> 대동여지도 초간본 1861년, 대동여지도 재간본 1864년
 
 
 K-93은 다른 목판에 비해 재질이 유난히 얇고 가벼웠다. 판각에 최소한의 비용만 들였단 증거.
 
이것은 가난하고 청빈한 삶을 살았던 실학자 김정호 선생의 생애와 정확히 일치하는 대목이었다. 
 
 
1995년 12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K-93이 진품인지를 최종 확인하기 위해 확대 실견 모임을 개최했다. 
 
조사 과정에서 K-93은 대동여지도 인쇄본인 고종원년갑자본과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자막> 고종원년 갑자본 / 1864년
 
이제 남은 것은 당시까지 유일하게 전해지던 숭실대 소장 대동여지도 목판과의 비교.  
 
자막> 숭실대 목판
자막> k-93
 
검사 결과, K-93은 김정호가 제작한 진품이 확실했다.  지난 수십 년간 박물관에 고이 모셔왔던 국보를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다시 찾게 된 보물, 대동여지도 목판! 
하지만 그 우연한 기회가 있기 전까지  사람들은 대동여지도 목판이 존재한단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일제가 왜곡한 역사 때문이었다. 
 
자막> 조선총독부 박물관
 
기록에 의하면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대동여지도 목판을 소장한 것은 1923년.  
 
 
하지만 2년 후인 1925년.  동아일보에서 대동여지도에 관한 기사가 등장했다. 
 
자막> 대동여지도는 그만 몰이해한 관헌에게 그 판목을 몰수당하고 
         너무 뛰어나 시빗거리가 된 그 제작자는 인간의 가장 비참한 운명으로써…
          - 동아일보 1925년 10월 9일 기사 -
 
 
기사는 대동여지도가 모두 불태워졌으며, 제작자인 김정호는 감옥에서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조선총독부의 역사왜곡은 그 후로도 계속됐다.  1934년. 대동여지도에 관해 날조된 내용이 조선어 교과서 지문으로 쓰였다. 
 
자막> 조선 정부와 대원군은 국제정세에 무지하여 김정호를 옥사시켰다.
          실권자인 흥선대원군은 완성된 지도가 외국에 알려질 경우를 두려워하여
          수십 년 고생하여 만든 목판을 불태워 버리고 김정호와 그의 딸을 함께 옥사시켰다
                                                                      - 조선어독본(1934년) 중 -
 
 
수업을 받은 학생이라면 대동여지도 진품은 우리 민족의 무지함으로 인해  사라진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자막> 1967년 5학년 국어 교과서
 
해방이후에도 변함없이 이 내용은 교과서에 등장했다. 
그리고 어느덧 대동여지도에 관한 정설로 굳어져 버렸다.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 진품을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왜곡된 역사의 힘은 실로 엄청났다
 
 
자막> 세상이 어지러우면 이 지도로써 쳐들어오는 적을 막고
         시절이 평화로우면 이 지도로써 나라를 경영하고 다스리니…
                                           - 대동여지도 첫머리 지도유설 -
         
150여 년 전. 이 땅에는 선구자 한명이 살고 있었다. 
그는 조선 팔도의 완벽한 모습을 담고자 직접 발로 전국을 걸어 다니며 지도 하나를 완성해 냈다.
 
 
하지만 그의 숭고한 정신과 실체는 일제의 의해 철저하게 왜곡되고 숨겨져 왔다.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난 우리의 보물. 그 보물은 단순히 대동여지도 목판을 되찾은 게 아니다. 
잃어버리고 훼손됐던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운 것. 그것이 우리가 발견한 ‘진정한 보물이었다.
 
 
 
 
(3)
이성현 앞서 조선시대 왕의 초상화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는데요.
                  이번에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가 봉안되어있는 곳으로 떠나보겠습니다.
                  바로 전주 한옥마을에 자리한 경기전인데요.
 
                  한옥마을은 이성계의 어진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면서 
                  일제강점기에 일본 상인들의 세력에 항거하는 의미가 담긴 전통 한옥촌이기도 합니다
                  전주 한옥마을과 경기전, 그리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감상하시면서 오늘 <위대한 유산>은 마무리하겠습니다.
                  전주 백성들의 자긍심이 깃든 한옥마을의 풍경 함께 하시죠.
 
 
자막> 이미지 문화유산
 
자막> 타이틀 “전주가 지킨 조선의 자긍심 - 경기전”
                  
자막> 전주한옥마을 / 1930년대 일본 상인들이 전주 최대의 상권을 차지하게 되자 이에 대항해 한국인들이 형성한 도심 속 한옥촌
 
자막> 전부 백성들의 꼿꼿한 절개와 드높았던 자긍심 
          그 속에는 조선왕실의 본향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자막> 전주 경기전(사적 제339호)
          조선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신 곳
 
자막> 조선은 전주 이씨의 시조로부터 태조의 고조부가 살았던 전주를 조선 왕조의 발상지로 여겨 이곳에 태조의 어진을 모셨다
 
자막> 또한 경기전 내부에 사고를 두어
          왕조의 역대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을 함께 보관했다
 
자막>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출 것을 명하는 하마비(下馬碑)
 
자막> 홍살문
 
자막> 외삼문
 
자막> 내삼문
 
자막> 전주 경기전 정전(보물 제1578호)
          조선 왕조를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곳
 
자막> 안정된 구조와 조형 비례, 섬세한 조각과 화려한 단청이 다른 유교 건축과 차별화된 왕실의 권위를 보여준다
 
자막> 조선태조어진 
         현재의 어진은 1872년(고종 9)에 서울 영희전의 영정을 모본으로 새로 그린 것, 
         진본은 국보 제317호로 경기전 수장고에 보존되고 있다
 
 
자막> 다시보기 안내 : 본 프로그램은 문화유산채널(www.k-heritage.tv)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